2018년 1월 18일 by 진각
기승전치킨집
직장인은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은퇴할 시기가 가까워진 40대 중후반 직장인은 더욱 불안해진다. 그러다 보면 직장생활이 아니라 장사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적어도 자영업자는 ‘피고용 상태의 지속’에 대한 불안은 없을 테고, 잘만 하면 수입이나 일자리의 유지 측면에서도 직장생활보다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쉽게 든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은퇴 후의 계획에 한정되지 않는다. 요즘에는 자진해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자영업자로 돌아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게 고려되는 자영업 중에서도 처음 떠오르는 것이 ‘치킨집’이다. 문과 출신이든 이과 출신이든 직장생활의 끝은 결국 ‘치킨집’ 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치킨집은 대표적인 자영업의 하나다. 직장생활의 끝은 결국 치킨집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치킨 장사라도 하면 먹고는 산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잘 따져 물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문과 출신이든 이과 출신이든, 직장생활을 접고 치킨을 팔기 시작한 많은 사람이 실패하는 경우는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는 2만4천여개이며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치킨집까지 더하면 4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전 세계 맥도널드 점포 수 3만 6천여 개를 가볍게 누르는 숫자다. 이 정도면 월스트리트저널이 우리나라의 자영업 시장에 대해 ‘치킨버블(Chicken Bubble)’이라고 표현한 것도 터무니없진 않다. 한겨레 신문은 지난 2013년 낸 기획기사에서 당시 치킨집의 수를 약 3만여 개로 추산했다. 그 수치가 얼추 맞는다면 불과 3년여 동안 1만 개의 점포가 더 생긴 셈이다.
우리나라의 닭고기 소비가 늘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치킨집이 이렇게나 늘어난 것은 장사가 무한정 잘 되기 때문이 아니다. 치킨집은 진입장벽이 낮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은퇴 후 재취업이 어려운 사람들이나 장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 눈에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뿐이다.
어떤 시장이든 소비자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있으며, 치킨집도 예외는 아니다. 프랜차이즈 치킨집의 경우 2016년 한 해 4천 개의 점포가 개업을 했으며 2천8백 개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하루에 11개의 치킨집이 개업을 하고 8개의 치킨집이 문을 닫는다는 얘기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11개 중 3개의 점포에 속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정도 되면 망하지 않고 살아남기만 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살아남는 것이 다가 아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5년 프랜차이즈 치킨집의 1년 평균 영업이익은 2,360만 원이다. 재료비와 판매관리비를 뺀 영업이익은 장사해서 손에 쥐게 되는 수익이다. 그 수익이 중소기업 신입사원 평균 연봉 수준밖에 안 되는 게 치킨집의 현실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모두 들러붙어 인건비를 아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을 거드는 가족들의 노동력 또한 기회비용 차원에서 계산을 해야 한다. 알바를 쓰는 대신 아내와 아들이 일을 했다고 해서 수익을 늘렸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아내와 아들이 같은 수준의 노동을 다른 곳에서 했을 때 분명 수입이 있기 마련이다. 포기한 그 수입(마이너스)도 수익에 포함시켜야만 한다. 그렇게 계산하면 가족들의 무임금 노동은 수익에 포함시킬 수가 없다.
그래도 까먹지 않은 게 어디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까먹지 않거나 ‘똔똔’을 만드는 것이 장사의 목적일 수는 없다. 더구나 퇴직금 털어 넣고 하나밖에 없는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서 시작한 장사가 망하지 않은 것을, 까먹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면 치킨집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아이템이 분명하다.
커피 & 편의점
은퇴 후 사업으로 많이 고려하는 커피 전문점이나 편의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커피전문점이나 생과일주스 전문점 같이 흔히 말하는 ‘카페’의 점포 수는 프랜차이즈와 개인 사업을 합해 9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점포 수가 많다는 것은 진입장벽이 그만큼 낮다는 얘기다. 커피 전문점을 하려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는 사람들도 있지만,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그런 자격증을 가진 것도 아니다. 사실 에스프레소머신은 한나절만 다뤄봐도 손에 익는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은 내가 장사를 시작하기 수월하다는 얘기도 되지만 경쟁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 9만여 개의 카페들 중에 개업 2년 미만 업체가 41.1%이고 5년 이상 되는 업체는 29.8%밖에 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카페의 70%가 5년 안에 망한다는 얘기다.
서울시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도 이와 비슷하다. 커피음료점의 경우 3년 이내 폐업률이 36%에 이른다. 서울이라는 지역에 한정한 통계이므로 전체 시장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생존률이 결코 높지 않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망할 확률이 높더라도 수익이 괜찮다면 도전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카페는 그렇게 벌이가 좋은 편에 속하지도 않는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의 1년 평균 영업이익은 2110만 원이다. 점포의 위치나 프랜차이즈의 특성 같은 것들이 변수가 되긴 하겠지만, 한창 벌어야할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개가 가로저어지는 수입이다.
브랜드가 널리 알려진 데다가 사업 차원에서 시장에 접근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의 수준이 이 정도인데, 개인이 운영하는 영세한 카페의 상황은 더 어려울 것이 뻔하다. 이해타산을 따져보자면 커피전문점 같은 키페 장사도 망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얘기다.
편의점도 은퇴자들이 많이 몰리는 자영업 중에 하나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국내 편의점 수는 총 3만4천여 개다. 2016년 한 해에만 5천 개가 늘 정도고 전체 시장 규모가 20조 원이나 되는 큰 시장이다. 매출 증가율도 2014년 7.8%, 2015년 24.6%, 2016년 18.6%로 상승세에 있다 이렇게 보면 불황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편의점 전체 시장의 분위기가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점장)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주진 않는다.
실제로 편의점 시장 전체의 매출은 8년 동안 4배 성장했지만 가맹점주의 매출액은 거의 늘지 않았다고 한다. 목 좋은 곳에 편의점 점포를 몇 개씩이나 가진 사람이 아닌, 동네 어귀에 편의점 열고 동네 슈퍼마켓과 경쟁하는 많은 점주들은 노동한 만큼도 벌지 못한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래도 본사와 재계약을 해가며 버티는 것은 재취업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의 노력이 매몰 비용으로 취급되는 상황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이다.
은퇴 후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알면서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겨우 위로가 되는 것은 ‘그래도 나는 괜찮을 거야, 나는 잘 될 거야’라고 하는 자기 최면에 가까운 긍정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잘 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한 확실한 근거가 없는 이상,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불안하기는 직장생활과 별다를 바 없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그러한 자기 최면마저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문: 마흔하나, 생각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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