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1.19 광주에서 1남 3녀중 둘째로 태어나 광주수창초등학교 - 광주무등중학교 - 광주일고를 나왔으며 성균관대 휴학중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 처음으로 글러브를 잡았다. 광주 수창 초등학교와 무등중을 거친 김병현이 세상에 이름 석자를 알리게 된 것은 지난 95년 제 50회 청룡기 대회에서다.
당시 광주일고 2학년인 김병현은 대회기간 동안 23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을 벌이며 방어율 0.035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남겼다.
특히 덕수상고와의 결승전에서는 8이닝 동안 삼진 18개를 잡아내는 기염을 토하며 팀을 7년만에 청룡기 정상에 올려놓았다.
청룡기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그 해 태극마크를 처음으로 단 김병현은 97년 성균관대 진학 당시 아마추어 최고 스카우트 금액인 2억 원을 받았다.
지난 98년 7월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열린 한·미 대학 국가대표 대항전을 계기로 김병현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 3차전에 등판한 김병현은 6⅔이닝동안 삼진 15개를 잡아내며 무실점의 쾌투를 펼쳤다.
곧 이어 7월 22일부터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김병현은 아마 세계최강인 쿠바와의 결승전에 선발등판, 3회까지 150㎞대의 빠른 직구와 변화무쌍한 슬라이더를 곁들이며 쿠바 강타선을 2피안타 무실점으로 봉쇄했다.
이후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등 김병현이 참가하는 각종 국제대회에는 빠짐없이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이 김병현을 관찰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김병현은 아시안게임 중국과의 준결승전에서는 4회부터 9회까지 6이닝동안 퍼펙트를 기록하며 8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는 위력적인 피칭을 선보여 팀의 금메달 획득에 큰 역할을 해 병역의 의무를 면제받았다.
결국 김병현은 99년 3월 19일 계약금 225만 달러를 제시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입단 계약을 하게 된다. 당시 계약금 225만 달러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국내선수들 가운데 최고 몸값이었고 99년 메이저리그 신인중에서도 6번째에 해당하는 특급대우였다.
입단 첫해 마이너리그에서 40이닝도 던지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승격하여 마이크 피아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데뷔 경기에서 세이브를 기록한 투수가 되었다.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 김병현이 소속되어 있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우승한 바 있다.
첫댓글 제목좀 바꿔주실래요... 병현선수 이력사항이라고.. 등으로..
나보다 딱 2일 먼저 태어났네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