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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5일 주일성결회 설교문
제목: 성령충만의 역사
성경: 요 7장 37-39절
(초막절의 배경) - 성령충만과 밀접한 관계성
본문에 나오는 절기는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유월절, 오순절과 함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는 유대력 7월 15일부터 시작되는데, 태양력으로는 9월 하순경이 되며 추수의 마침과 연결됩니다. 초막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하여 가면서 광야를 지날 때 초막생활을 하였던 것을 기억하기 위한 절기로, 절기 때는 모두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초막을 짓고 그 곳에 우거하면서 일주일간 종교의식을 행하였습니다.
(초막절 행사)
이 절기에 사용되는 가장 중요한 상징은 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 생활을 하는 데에는 물이 매우 중요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절기 동안에는 비, 물, 샘물, 생수, 강 등과 연결되는 성경 구절들을 읽고 암송하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행렬을 지어 남쪽 시온산 아래 실로암으로 흐르는 물줄기의 원천인 기혼샘터까지 내려가, 찬양대가 이사야 12장 3절의 말씀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를 찬양하면 제사장은 금그릇으로 기혼 샘에서 물을 기릅니다. 이 때, 행렬의 찬양대는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옵소서”(시118:25) 할렐루야 찬송시를 부르면서 성전으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제단 옆에 올라가 제단에 물을 붓습니다. 그러면 그 물이 은으로 만든 깔대를 통하여 지면으로 흐릅니다. 그런데 절기 마지막 날인 7일째 날에는 모든 제사장들이 물을 부으면 여러 제사장들이 물그릇으로 물을 펴서 사방으로 흘러가게 합니다.
초막절은 시기적으로 더운 때입니다. 그 때 사방으로 흘러내리는 물을 바라보고 있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기분을 상상해 보세요. 무언가 답답한 것이 해결되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광야를 거닐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르비딤에서 기갈에 허덕일 때, 모세가 친 바위에서 물이 나와 해갈의 감정을 느끼던 그 때와 같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초막절기 마지막 날 사방으로 넘쳐흐르는 물을 보는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일어서서 외치신 말씀이 바로 오늘의 본문 가운데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성령 충만의 시대가 올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39절에 요한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 약속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성령이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서, 이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있어 예수님이 지상 사역을 마친 다음에 성령께서 인격적으로 교회에 임하고 새 시대가 도래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오순절에 120명의 문도가 다락방에서 모였을 때 성령이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행 2장 33절에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이것은 객관적인 면에서는 ‘성령 강림’이라는 구속사적인 사건인 동시에, 주관적인 면에서는 성도들이 ‘성령 충만’을 체험한 사건입니다.
오순절 사건을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끝난 다음에 일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경륜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태초부터 역사하신 분입니다. 또한 우리는 구약의 여러 곳에서 성령이 역사한 일에 대한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한 예로, 성령은 삼손에게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모습은 아니었다. 성령의 충만한 실체는 예수님에게서 비로소 보게 됩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성령 충만의 본을 예수님에게서 보여주신 후 교회에 성령 충만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완전히 계시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참 모습을 읽는 동시에 성령의 충만한 모습을 읽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충만한 성도는 예수를 닮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에 지금이 성령 충만을 받을 때입니다. 성령은 이미 교회에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있는 예수님의 선언은 약속일뿐 아니라 우리에게 복된 소식이다.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큰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요14장 12절에 “예수를 믿는 자는 예수의 하던 일을 할 뿐 아니라 더 큰 일을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여러분!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의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마다 승리의 비결은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2. 성령 충만의 역사는?
“믿는 자에게는 성경에 이름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성령께서 생수의 강 같이 역사할 때에는 소극적이고 적극적인 양면의 결과가 일어납니다.
1) 생수의 강이 흐를 때에는 그곳에 있던 더러운 것들이 다 씻어내려 갑니다.
여리고 근처엔 ‘와디’가 있다고 한다. ‘와디’는 개울인데 물이 하나도 없는 건천입니다. 그 개울 밑에는 지저분한 것들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에 큰 비가 내리면 그 개울에 물이 넘쳐흘러 거기에 남아 있던 지저분한 것들이 모두 씻어 내려간다고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신자의 마음에 생수의 강이 흐르듯 충만히 역사할 때에는 그 신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더러운 것들, 곧 내재적인 죄가 완전히 씻겨 나갈 것(겔36:23,25절)임을 주님이 말씀을 통해 암시하여 주셨다.
회개하고 주님을 믿음으로 죄책(Guilt)에서 용서받은 자는 의롭다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죄의 부패성(Depravity)에서 씻음을 받아 중생합니다. 중생한 자는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의인, 중생, 그리고 양자됨을 동시적 사건으로 보며 구원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중생함으로 죄의 부패성에서 온전히 씻음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부분적으로만 씻음을 받은 것이기에 중생한 신자 안에는 아직도 죄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활발하게 사역을 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중생한 신자는 내재적인 죄에서 온전히 씻음을 받기 위하여 성화의 과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신자는 그 내재적인 죄에서 온전히 씻음을 받기 전까지는 갈등 속에서 고민합니다.
롬7장 15-24절에서 바울이 고백한 신자로서의 고민을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내 속 곧 육신에 선한 것이 겋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7:18-21)
신자가 승리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이 그랬듯이 이러한 갈등에서 승리하여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재적인 죄에서 온전히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생수의 강같이 흐르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그 내재적인 죄에서 온전히 씻음을 받아 승리하는 신자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마음속에 있는 죄적인 요소들을 모두 깨끗이 씻음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2) 생수의 강이 흐르는 곳에 활기가 있고 열매 맺음이 있다.
여호수아가 본부를 삼았던 곳인 길갈이 보인다. 거기에는 나무가 무성합니다. 그 나무들에는 열매가 달려 있다. 그 이유는 그 곳에 물이 철철 흐르고 있는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물이 흐르고 있는 곳에는 나무가 소생하며 열매가 맺힙니다(겔47:8).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수의 강같이 흐르는 성령 충만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것입니다.
또한 길갈에 있는 나무들이 활기를 띠고 있는 것과 같이 성령 충만을 받은 성도는 능력을 받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아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은 선교적 관점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우리를 또한 이 세상에 보내십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선교의 사명을 다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눅24:49)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능력을 얻으십시오.
마땅히 하여야 할 일들을 할 능력이 없어 고민하십니까? 이 시간에,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생수의 강은 계속해서 흐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할 것은 생수의 강은 계속해서 흐른다는 것입니다.
물의 흐름이 중단되면 그 강 저변에는 다시 더러운 것이 생깁니다. 강물이 마르면 무성했던 나무가 시듭니다. 성령의 충만도 계속하여 받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형 동사로 현재진행형으로 계속적으로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뜻이다. 여러분, 전에 성령 충만을 받은 것에 만족하지 말고, 지금 그리고 계속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 곧 성결을 유지하는 것은 순간순간 주를 의지하며 걸어감으로써 되는 것입니다.
창문을 열어 빛이 들어왔으면 계속해서 창문을 열고 있는 한 그 방은 밝은 것입니다. 문을 닫는 순간 그 방은 다시 어두워질 것입니다.
3.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면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저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2:38-39)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거듭나야 합니다.
아직도 거듭나지 못한 자는 바로 이 시간에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새 생명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부모가 자기의 자녀가 강건하기를 원하시듯이 하나님은 거듭난 모든 신자가 성령의 충만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강제적 그리고 기계적으로 역사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호응(반응)을 따라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값없이 주는 선물인 동시에 능력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주님께서 외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 말씀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요, 초대의 말씀이요, 우리가 채워야 할 말씀이다.
1) 목마르거든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목마름을 느껴야 합니다.
성령충만의 필요를 느껴야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컬컬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여전히 내 속에 남아 있어 성령의 충만을 방해하는 것들을 회개를 통해 비우시기를 바랍니다.
무디 목사가 시카고의 페어웰 힐 홀에서 목회하고 있었다. 설교 중에 무디 목사는 두 명의 여 성도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 두 여 성도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목사님께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셔야겠는데요”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후, 교회에 화재가 나서 무디 목사는 뉴욕에 모금을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 그는 두 여 성도의 말이 생각나서 만사를 제쳐놓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는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영혼 상태는 어떻습니까? 부흥사 휫틀(외팔이)이 찬송한 172장 “빈들에 마른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하며 간절히 간구하시길 바랍니다. 이외에도...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찬 465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찬 410장...
2) 내게로 오라
성령 충만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은 예수께로 나와 간구하여야 합니다.
성령의 원천이신 주께 나와 간구해야 합니다.
(눅 11: 9-13)
기도하며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도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들에게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그러므로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 충만을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구세군의 사관 프라이(Fry) - 가로전도 악기동원하여 노래했듯이 173장 “모든 것 다 받치고 비고 빈 마음에, 성령 충만하도록 주여 채워주소서”하면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에만이 “성령이여 임하사 우리 영의 소원을 만족하게”하실 것입니다.
3) 마시라
마지막으로 주님은 마시라고 명령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성령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성결함을 받는 믿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첫째, 이 약속이 성경에 있다고 믿는 것(확신하는 것)
둘째,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하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셋째,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시되, 지금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넷째, 이는 하나님 자신이 행하신다고 확신하는 것.
이러한 믿음으로 성령 충만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주님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또한 사도 요한도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5:15)
결론;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목마릅니까?
마음의 컬컬함, 부족함과 내재적인 죄들, 무능함을 주 앞에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을 채워달라고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은 일 많이 했다고 공로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여야 하나 무능한 뿐인 우리에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성령의 충만이 언제임하였나?
교회가 위기 가운데 있었을 때, 제자들이 어려움과 위협 하에 있었을 때, 도움을 구하매 성령의 충만을 주시어 일을 해 낼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정욕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간구하시길 바랍니다.
찬송가 344장 부릅시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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