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속마을을 찾아
며칠 전 아산 공세리 성지를 가던 길이었다. 아산시 설화산 아래 송악면을 오른 쪽으로 하며 국도를 달리던 중이었다. 길 옆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 눈 안에 들어왔다. 마을은 고향 시골 동네처럼 길옆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초가집들이 앉아 있었다.
마을은 마음에 그려오던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있는 외암 민속마을-마을 숲이 가장 아름다워 전국에서 대상을 탄-이었다. 마을은 50여 채의 초가와 기와집으로 이루어진 400 여 년의 내력을 자랑하는 예안 이씨가 주민의 반을 차지하는 집성촌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마을을 찾아보기로 하고 향수 갈증에 타는 서울 친지에게 알렸다.
이렇게 해서 두 집 부부는 지난 24일부터 2박3일간 민속마을에서 민박을 하며 마을과 주변을 두루 살폈다. 첫 날 오후에는 민박집 주인이 안내하는 봉곡사 입구로부터 대웅전에까지 이르는 이름난 소나무 숲길을 찾아 향긋한 솔 향과 맑은 공기 여러 새 소리를 즐겼다. 숲길에서 나온 일행은 민속마을이 자랑하는 토속음식 전문 식당 <외암촌>으로 들어갔다.
재래식 조미료만을 써서 조리를 한다며 식당이 내세우는 차림은 묵 밥, 파전, 손 두부, 도토리 묵, 칼국수, 잔치 국수! 어쩌다 한번 찾아 와 이 집 음식에서 어머니 손끝 맛을 보면 자주 찾아온다는 식당. 식당에서는 배추 300포기 열무 200단으로 마치 김장하듯 김치를 담아 몰려드는 주말 손님 맞을 준비를 해 놓았다고 했다. 잔치 국수 만들기 20여 년을 해 왔다는 할머니는"할머니의 손이 보물"이라는 손님들 말에 활짝 웃었다. 이 식당은 음식이 식으면 맛이 없다며 사기 그릇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틀째는 이른 아침 5시경 모두 일어나 새벽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을 골목길을 두루두루 거닐며 살펴보았다. 마을 안 골목골목은 집과 집을 구획시켜 놓은 사람 키보다 낮은 돌담이 이어져 담쟁이덩굴이 피어 오른 돌담 길이만도 무려 5.3 km! 외암리가 왜 돌 많은 석다의 마을로 불리는지 알만 했다.
집 울안에는 은행나무 밤나무 호두나무 살구나무 매실나무와 같은 유실수가 많았다. 골목 안 길에는 수형이 훌륭한 소나무 느티나무와 같은 고목들이 서서 마을이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담장이와 능소화가 피어 오른 고목도 눈길을 끌었다. 마을길에서 농익은 뽕나무열매 오디가 떨어져 길을 검게 물들인 것도 볼 수 있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영양 군수 댁-건재고택을 비롯해 참판댁, 송화댁의 정원, 성균관 교수를 지냈다는 교수댁 등은 마을에서도 손꼽히는 집들이다. 마을 곳곳에서 사당과 정자 디딜방아와 물래 방아도 볼 수 있었다. 마을은 오랜 전부터 사극이나 영화 촬영 장소 TV드라마 촬영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떠나오던 날 민박집 주인은 10월이면 해마다 열리는 외암 짚풀문화제를 보러 다시 오라고 알렸다.
문화제는 추수 후 짚풀로 초가 지붕을 해이고 미투리 망태기 등을 짜는 짚풀 체험마당 등 다양하게 베풀어진다고 했다. 외암 민속마을은 향수로 갈증을 타는 사람들에게 고향의 맛을, 고향 사람들의 정을 느끼게 해 주기에 충분한 전통의 마당이었다. 외암은 인위적으로 박제처럼 조성된 민속마을이 아니라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이었다.
외암은 우리 고향 사람들이 우리 전통을 지키며 살고 있는 영원히 소중하게 보존되어야 할 우리 문화의 보물창고와 같은 마을이었다. 떠나오던 날 이른 아침부터 마을에 가득했던 매미 울음소리 여러 새 소리는 마치 다시 살아나는 고향 소리처럼 들렸다. 주말마다 외지에 사는 노부부가 마을을 찾아 와 한바퀴 돌고 잔치국수를 들고 간다는 말도 살아 있었다. 마을 곳곳에는 붉은, 흰, 분홍색 접시꽃이 활짝 피어 마을을 떠나는 발길을 잡는 듯 했다.
(2005. 6. 29.)
첫댓글 참 좋은 여행이구려 나도 늘 생각해 온... 언제인가 시작해 볼 그리움일세.
마음의 고향을 찾아 한번 가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네.
그 마을의 한국식 정원에 들마루를 놓고 시원한 냉수를 마시며 매미소리를 들으면 여름의 더위가 가실듯하구먼 아직도 그런 마을이 있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