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한 냄비
세 주간 동안 아내 류은경 님이 평화열차(10.7-10.29)를 타는 바람에 우리 가족 세 남자는 근근히 그러나 화려하게 살았습니다. 영화 ‘설국열차’의 머리 칸을 탄 사람과 꼬리 칸을 탄 사람, 또는 그 반대 입장을 상상하면 될 것입니다. 아내의 부재는 곧 살림살이의 부재와 같았습니다. 그래도 세 남자가 신통하게 잘 지낼 수 있던 것은 각자 바빴기 때문입니다. 부재 상황이 끝날 무렵인 지난 목요일 저녁에 처음 함께 외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목욕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 주면서 평가 시간도 가졌습니다.
고맙게도 ‘길고 긴’ 3주간이 금새 지난 느낌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멀고 먼’ 시베리아도 단문수신이 가능했고, 대도시에 머물 때는 카톡 전송도 비교적 자유로웠습니다. 종종 인터넷에서 평화열차를 검색하고, 또 참가자들이 올린 사진을 찾아보았습니다. 무려 10,000킬로미터의 기차 여정은 설국열차 1등 칸은 틀림없는데, 좁은 기차와 메마른 음식 때문에 고달픔이 절로 느껴졌습니다.
평화열차의 목적지는 WCC 제10차 총회가 열리는 부산역입니다. 10월 8일 저녁 베를린 중앙역을 출발해 모스크바, 이르쿠츠크, 베이징 그리고 단둥을 거쳐 10월 28일 아침에 인천항에 도착합니다. 어제 단둥에서 압록강을 바라보면서 아침을 먹었답니다. 베이징에서 떠난 열차는 분명히 ‘북경 발 평양 행’인데 일행은 결국 압록강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밤바다를 건너며 곧 황해가 ‘분쟁의 바다에서 평화의 바다’로 바뀌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이번 평화열차 탑승자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인광삼 씨였습니다. 독일 국적의 재독 동포로 옛 복흠교회 교우입니다. 본명은 최광삼인데 남편의 성을 따랐습니다. 눈길을 끈 이유는 평화열차를 탄 목적이 가장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남편 인소천 집사님과 최광삼 집사님 부부는 오래 전부터 남북관계의 화해에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습니다.
최 집사님은 행여 기차가 북한을 통과하게 되면 황해도에 사는 두 언니를 만날까 하는 기대가 컸습니다. 1991년에 처음 북한을 방문하였고, 고향을 찾았습니다. 사리원에 사는 언니 집에 ‘무려’ 일주일 간 머물며 가족과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비록 남북관계의 창구는 막혔으나, 북한 당국은 해외동포들에게 친지방문의 문을 열었습니다. 언니 집에 머물면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니와 상의했더니 개 한 마리만 잡으면 온 동네잔치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전설같은 이야기지만 그때, 그 미담이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평소 최 집사님은 광어 찜을 맛있게 요리했습니다. 커다란 광어에 간장 양념한 양파 채를 얹어 오븐에 쪄 냈습니다. 그 댁에서 손님을 초대할 때나, 교회의 잔치에서도 늘 별미를 대접했습니다. 최 집사님은 광어 찜을 먹을 때마다 두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는 학생 간호사로 어린 나이에 독일에 왔기 때문에 한국 음식을 잘 못한다는 변명과 또 맛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자신의 넉넉한 생활과 달리 북한에 있는 가난한 두 언니에 대한 안쓰러움입니다. 최 집사님의 솜씨는 지금도 입안에 군침을 돌게 합니다.
2002년 처음 평양방문을 앞둔 내게 인 집사님 내외가 찾아왔습니다. 언니네 조카가 혼인을 하는데 축의금을 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조선그리스도교련맹 파트너에게 축의금 전달을 위해 황해도 황주를 다녀와야 한다면 수차례 요청했지만 이런 ‘황당한 ’요구를 들어줄 리 만무였습니다. 결국 평양중앙우체국에서 우편환으로 송금하였고, 나는 그 변경사실을 알리려고 독일로 전화를 걸어 확인해 드린 일이 있습니다. 보통강 호텔 1층에서 독일 복흠으로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냥 연결되더군요. 그리고 한 달 후 북한 언니로 부터 돈을 잘 받았다고, 배달부 목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담은 반가운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언니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평화열차에 탑승한 이유입니다.
독일에서 한 달 가까이 아내 없이 산 일이 있습니다. 아내가 갓난 한규를 데리고 장모님 회갑연에 참석한 것입니다. 참 막막하였습니다. 초등학생 민규는 늘 보호가 필요했고, 한국 음식은 대부분 부엌에서만 나왔습니다. 당시 복흠교회에 <소외론 연구>로 유명한 정문길 교수 내외가 교환방문 기간 동안 출석하였습니다. 어느 날 부인 권사님이 예배 후에 미역국이 가득 든 커다란 냄비를 차에 실어 주었습니다. 아내의 부재중에 문득 그 미역국이 떠올랐습니다. 고마움과 함께 권사님의 하소연 때문에 웃었습니다. “목사님! 냄비를 돌려주세요. 우리 집에는 국 끓일 냄비가 그거 하나 밖에 없거든요”.
이번에도 어김없이 엘리야의 친구 까마귀들의 도움으로 잘 지냈습니다. 미역국도 참 맛나게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