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풍수에서 산(山)을 음(陰)이라하고 물(水)을 양(陽)이라 하는가?
채목당(蔡牧堂)은 발미론(發微論)에서 그 이유를 밝힌다.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초학자는 필히 알아야 하는 내용이므로 중요하다.
또한 "풍수지리보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고전서의 장서와 발미론, 영성정의, 설천기를 필히 이해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민중원 초대 회장님의 번역을 토대로 원문과 함께 올려드립니다.
대한민국 풍수지리연합회 학술분과 위원장 장원기
2014년 10월 20일
發 微 論(발미론)
蔡牧堂(채목당)송대의 풍수학자로 이름은 채발(蔡發)이고 호는 목당노인(牧堂老人)이다.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있는 발미론(發微論)을 지은 채원정(蔡元定)의 아버지이다. 아들 채원정은 남송 건주(建州) 건양(建陽) 사람. 자는 계통(季通)이고, 호는 서산(西山)이며,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과 강학에 몰두했다. 어려서 아버지 채발(蔡發)에게 배웠고, 장성하여 이정(二程)과 소옹(邵雍), 장재(張載)의 학문을 배웠다. 나중에 주희(朱熹)를 찾아가 수학했다. 주희가 강우(講友)로 대우했다. 영종(寧宗) 경원(慶元) 연간에 심계조(沈繼祖) 등이 주희를 공격할 때 그도 연루되어 도주(道州)로 귀양을 갔다. 용릉(舂陵)에 이르렀을 때 많은 학자들이 와서 배웠다.
<剛柔篇: 강유편>
“易曰立天之道陰與陽立地之道柔與剛郡氏文曰天之道陰陽盡之矣地道剛柔盡之 矣故地理之要莫尙于剛柔剛柔者言乎其體質也.
”역(易)에 이르기를 하늘의 도(道)를 세워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워 유(柔)와 강(剛)이라고 하였다. 소씨(邵氏:소강절)의 글에 이르기를 하늘의 도(道)는 음양의 다함이고 땅의 도는 강유(剛柔)의 다함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리의중요함은 강유보다 더 한 것이 없다. 강유(剛柔)라는 것은 그 체질(體質)을 말한다.
天地之初固若沙之勢未有山川之可言也旣而風氣相摩水土相 則剛者屹而獨 存柔者洶而漸去于是乎山川形馬.
천지(天地)의 시초에는 진실로 양사(漾沙:출렁이는 물가)의 세(勢)와 같고 산천(山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미 풍기(風氣:바람과 五氣)가 서로 부딪치고 수토(水土)가 서로 씻기니 강(剛)한 것은 우뚝 솟아 홀로 존재하고 유(柔)한 것은 꿈틀거려 흘러간다. 여기서 산천(山川)에 형(形)이 있다.(이것이 산과 물이 탄생하는 과정이고 연유이다)
凡山皆祖崑崙分枝分脈愈繁愈細此一本而萬殊也凡水皆宗大海異派同流愈合愈廣此萬殊而一本也.
산(山)은 모두 곤륜(崑崙)산을 조산(祖山)으로 하여 가지(枝)와 맥(脉)을 나누고 더욱 번(繁)하고 더욱 세(細) 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로 다르게 되었다. 수(水)는 모두 대해(大海)로 향한다. 다른 갈래가 같이 흘러 더욱 합(合)하고 더욱 넓게 된다. 이것은 만 가지로 다른 것이 하나의 근본이 된 것이다. (이는 중국의 산맥을 인용하여 말 한 것이다)
山體剛而用柔故高聳而凝定水體柔而用剛故卑下而流行此又剛中有柔柔中有剛也.
산(山)의 체(體)는 강(剛:강함)하나 유(柔:부드러움)를 용(用)한다. 그러므로 고용(高聳:높이 솟으나)하나 응정(凝定:움직이지 않는다)한다. 수(水)의 체(體)는 유(柔)하나 강(剛:거침없이 빠르게 흐르므로 강이다)을 용(用)한다. 그러므로 비하(卑下:낮음)하니 유행(流行:흘러간다)한다. 이것은 또 강(剛)한 것 중에 유(柔)가 있음이고 유(柔)한 중에 강(剛)이 있음이다.
邵氏以水爲太柔火爲太剛土爲少柔石爲少剛所謂地之四象也水則人身之血故爲太柔火則人身之氣故爲太剛土則人身之肉故爲少柔石則人身之骨故爲少剛合水火土石而爲地猶合血氣骨肉而爲人近取諸身遠取諸物無二理也.
소씨(邵氏)는 수(水)로 태유(太柔)를 삼고 화(火)로 태강(太剛)을 삼으며 토(土)로 소유(少柔)를 삼고 석(石)으로 소강(少剛)을 삼는다. 이른바 땅의 사상(四象)이다. 수(水)는 인신(人身)의 혈(血)이다. 그래서 태유(太柔)가 된다. 화(火)는 인신(人身)의 기(氣)이다. 그래서 태강(太剛)이 된다. 토(土)는 사람 몸의 육(肉)이다. 그래서 소유(少柔)가 된다. 석(石)은 사람 몸의 골(骨)이다. 그래서 소강(少剛)이 된다. 수(水) 화(火) 토(土) 석(石)을 합하여 땅이 된다. 혈(血) 기(氣) 골(骨) 육(肉)을 합하여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 가까이에서 신(身)을 취(取)하고 멀리서 물(物)을 취하니 두 가지 이치가 없다.
若細推之凡燥者皆剛坦夷者皆柔然坦夷之中有燥則是剛中有柔柔中有剛也凡强急者皆剛緩弱者皆柔然强急之中有緩弱緩弱之中有强急則是柔中有剛剛中有柔也自此以往推無窮知者觀之思過半矣.
만약 자세히 헤아린다면 학조(涸燥:마르고 건조한)한 것은 모두 강(剛)하고 탄이(坦夷:평탄 온화)한 것은 모두 유(柔)하다. 그러나 학조(涸燥)한것 중에 탄이(坦夷)한 것이 있고 탄이(坦夷)한 것 중에 학조(涸燥)한 것이 있으니 이는 강(剛)중에 유(柔)가 있고 유(柔)중에 강(剛)이 있다. 강급(强急:강하고 급한)한 것은 모두 강(剛)하고 완약(緩弱:완급하고 유약)한 것은 모두 유(柔)하다. 그러나 강급한 중에 완약이 있고 완약한 중에 강급이 있으니 이는 유(柔)중에 강(剛)이 있고 강(剛)중에 유(柔)가 있다. 여기서부터 끝이 없이 다 헤아리면 지자(知者)는 그것을 보면 생각하여 얻는 바가 많을 것이다.
첫댓글 대단하신 석봉위원장님 감사합니다.
다시 글 올리시니 감사드립니다.
대풍련의 발전은 잡다한 설보다 고전에 충실하다보면 그 진면목이 나온다 하겠습니다.
하늘과 땅의 도가 행한다 함은 음양과 강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하늘과 땅은 불과 물이지요. 음양으로 보기도 하지요, 그러면서도 강함과 부드러움이 그 안에 있으니 하늘의 도, 땅의 도란 바로 사랑입니다. 상대를 안고 돌아 춤추는 환희의 생명 잉태의 바로 그 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술 한잔에 잠시 글 올리나 본의는 이 글이...장원기 학술분과 위원장의 글이 다시 개시 됨을 기뻐하는 글입니다. 대풍련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대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