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캤는데
시스템의 오류로
계약했던 생협에 정상적인 출하를 못하게 됐어
저희는 그냥 직거래로 팔면 안될까요?
물어봤더니
감자를 사서 팔아주는 구매 실무자가
감자값이 폭락이래
그래서 넌 못팔거래
난 생각했어
감자를 그냥 다 먹어버려?
토리노의 말이라는 영화를 보면
우울한 외팔이 아빠와
늙은 딸이 한 겨울 내내 하는 일이
일어나서 감자를 삶고 감자를 먹어
나중엔 땔감도 떨어져서 생감자를 먹어
소금도 찍지 않고 맨손으로 뜨거운 감자를 후후 불어가며
존디어 쓸쓸하게 감자로 사는 거야.
농부라면 그런거야?
우울하게 둘러 앉아 감자만 먹어?
천년간 단 한번도 회복되지 못했던 농민에 대한 인권이
이젠 습관처럼 혓바닥에 굳어져 버린거야.
넌 못해
아 쉬바 근데 나 오늘 저녁 감자로 때웠네
난 안돼
뭔가 오해를 불러 일으킬 것 같아서
기존의 생산 유통 소비의 시장 구조가 생협의 구조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유통업자와 생산자의 계급적 상하 관계가 생협의 대형화로 인해 생협 내부에서도 개선되기 힘든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농민과 실무자와의 만남이 가치 지향의 대화를 나누는 인간적 만남일때와 생산물에 대한 구매와 판매의 관계로 만날 때 그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만 만나다가 요즘 실무자들과의 만남이 잦아 지면서 종종 오고가는 실무적 대화 속에 '우리가 없으면 안돼'라는 느낌의 이야기를 실무자에게 들을때가 있다. 처음 한두번 들었을때는 울컥하는 성정이 튀어나올뻔도 했지만 몇번 듣다보니 그런류의 사고가 그 실무자의 인격적 한계 때문에 생기는 말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와 같은 관점은 지난 수천년간 '농민'이라는 직업에 대한 일반적 사고(농민은 하층 계급, 무지랭이, 천민)의 습관적 언어의 연장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기록된 역사 속에서 농민이 농민으로서의 권위를 정당하게 인정받았던 적이 없었지 않는가. 이 천년의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생명을 살리는 농민'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온 현대의 지식인들에게조차 농민이라는 직업에 대한 이성적 존중이 무의식적 편견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몇몇의 훌륭한 농부님들이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일궈낸 그들 스스로의 깨달음들이 보편의 다수 대중에게 존경 받아 질때 괜스리 못마땅한 마음이 든다. 그 존경이 나에게는 지난 천년간 천시되었던 농민이라는 직업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존경 같은 기분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의 생산과 유통 구조가 인간적 규모와 관계로 재정립 되지 않는다면 농민에 대한 이 무의식적 편견은 계속되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생산과 유통 소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권위 혹은 권력을 가지는 쪽은 언제나 소비를 관장하는 자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아니면 정말 자급의 생활양식을 굳건하게 지켜 나갈 수 있는 농부들이 많이 많이 늘어나면 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직업으로서의 '농민'이 아닌 삶의 향연을 위한 농사를 지을 거니까 꿀릴게 없어!
흠. 과연? ^^
첫댓글 시스템 오류는 뭘까? 궁금
시스템 오류 ㅎㅎ 복잡해서 글로 설명할 수 없음. 엄마닭 델고 가서 얘기해 드릴게요.
감자 먹는건 즐거운 일인데.. 우울해 하지 마라. 오손도손 둘러 앉아 감자안주에 술이나 먹자^^
글을 보면 이건 이삭이 쓴것이겠구나 하지요
갑자기 감자가 마니마니 먹고싶어집니다
감자주문하면되나요?
이제 곧 가을 감자 심을때가 되었답니다. 봄 감자는 저희 먹을 작은 것들만 있어요. 죄송해요.
제가 이해를 잘못한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