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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대구 공방전] 01
S#1. 뮤지컬 공연장
신나는 음악, 화려한 조명, 꽉 찬 객석.... 뜨거운 열기의 공연장.
신나는 락 뮤지컬 ‘그리스Grease’ 공연 중이다. 남녀 주인공과 친구들 ''Summer night''을 부른다.
친구들이 남녀주인공에게 지난여름 만났던 사람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장면.
신나는 노래와 춤, 이 작품의 유명한 씬이다.
남자코러스 : Tell me more, tell me more 한눈에 반한거야?
여자코러스 : Tell me more, tell me more 솔직히 얘기해 너 키스했지?
남주인공 : 해는 지고 기횐 왔지
여주인공 : 해는 지고 슬픈 이 밤
남주인공 : 뜨거운 열정의 키스
여주인공 : 뜨거운 작별의 눈물
주인공들 : Summer love 그 짧은 만남 우우워-- 지난 summer night
객석에 앉아있는 한 여자의 발, 무대 위 배우들과 똑같이 스텝 맞추며 흥에 겨워있다.
혼자서 타박타박 박자를 세고, 무릎도 개다리 춤을 추듯 훌렁훌렁 넘실댄다.
손가락 튕겨 박자도 맞추고, 리듬을 타 고개를 끄덕이는 뒷모습... 입도 립싱크를 하듯 벙긋벙긋.... 혼자 완벽하게 빠져있다....
무대 위도 흥겹다.
남자코러스 : Tell me more, tell me more 우와- 궁금해 미치겠네!
여자코러스 : Tell me more, tell me more 야, 말해봐 말해봐-
객석의 여자, 아까보다 더 신나있다. 발장단 더 흥이 오르고 손도 혼자 둥글게 둥글게를 한다.
엉덩이도 들썩 들썩..... 뭔가 일을 칠 기세다.
남주인공 : Summer dreams 그 짧은 만남....
여주인공 : 아아. . . .
클라이막스, 벌떡 일어서 여자주인공과 똑같은 모션으로 팔을 뻗으며 목청높이는 여자. 황메리다.
주인공에 몰입해 완전 동화된 상태.
메리 : 아아.... 지난 Summer night....!
객석의 사람들, 메리를 의아하게 쳐다본다. 무대의 배우들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황메리를 바라보며 마무리.
관객들, 무대와 메리를 번갈아보며 어리둥절, 어색하게 박수....
메리, 뻗었던 손을 멋지게 탁 거두며 마무리!
S#2. 공연장 밖 / 낮
진행요원들에게 잡혀 내쫓기는 메리. 공연장 밖으로 던져지다시피 내동댕이 쳐진다.
S#3. 공연장 3층
꼭대기 좌석. 그 중에서도 뒷자리. 무대가 아주 멀다. 배우들의 얼굴, 콩알만하게 보인다.
몇몇 사람들 대여용 오페라 글래스를 손에 들고 보고 있다.
뒤쪽 중에서도 가장 자리, 강대구와 깜찍 여자친구, 나란히 앉아있다.
대구, 청바지에 상의는 츄리닝. 깜찍녀, 표정이 좋지 않다. 불만족스럽고 화가 난 듯 뾰루퉁해 앉아있다.
대구, 촌스럽게 고개를 빼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대구 : 방금 1층에서 누구 끌려 나가지 않았니?
깜찍녀 : (톡 쏘는) 알게 뭐야. 뭐가 보여야 말이지.
대구 : . . .안 보였어? 진작 얘길 하지.
대구, 커다란 배낭을 조심스레 주섬주섬 뒤지더니 망원경을 꺼낸다. 해적선 망대에서나 썼을 법한 한 줄짜리 긴 망원경이다.
대구 : (내밀며) 이걸루 봐.
깜찍녀 : . . . .(황당! 더 짜증난다) 지금 보물섬 찾으러 가니?
대구 : 이거 디게 잘 보여. (길게 뽑는다. 뽑다가 앞 사람의 뒷통수를 친다)
앞 사람 : (뒤 돌아 째려본다)
대구 : 죄송합니다. (무대를 보며) 야... 이거 짱이다. 와... 이제 보니 주인공 하나도 안 잘생겼네.... 한번 봐봐, 내가 더 나아.
깜찍녀 : 왜 이래 쪽팔리게. 오빠나 봐.
신나는 무대. 멀리서 빛나는 망원경 렌즈 하나.
대구, 입가 싱글거리며 한 쪽 눈은 감고 한 쪽 눈은 망원경에.
대구 : 진작 이걸루 볼껄. 아까 그럼 누가 끌려 나갔는지도 다 봤을꺼 아냐..
S#4. 메리네 집 외경 / 밤
소박하고 낡은 한옥 스타일의 집이다.
대문 아래 한 쪽에 <외국인 민박 환영 We are the world>라 나무판에 매직으로 쓴 허술한 팻말 놓여있다.
가운데 마당이 있고 문간방도 있는 구조. 밖으로 천둥치듯 엄마의 고함소리 들린다.
성자(E) : 도둑이야! 도둑! 아니 이게 어딜 가?
S#5. 메리네 마당 / 밤
오성자, 냄비 하나를 들고 나와 펄펄 뛴다.
성자 : 여기있던 돈 어디 갔어? 십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이랑 만 원짜리 두 장. 당신이 가져갔어?
대야에 발 담그고 발가락 사이사이를 씻고 있던 메리 아버지 황도철, 아내를 본다.
도철 : 그 안에 돈이 있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 그리구 국 끓여 먹는 냄비에다 왜 돈을 숨기고 그래. 드럽게.
성자 : 드러워? 그래, 드러워서 평생을 피해 다니냐. 마누라가 친구 딸년 결혼식에 입고 갈 옷 한 벌 없게 만들게.
도철 : 옷이 왜 없어, 당신 지금 빨개 벗고 있나?
성자 : 아으 시끄러워요. 당신이랑은 말을 말아야지. (냄비를 뒤집어 보며) 아니 거금 12만원이 대체 어딜 가....
금숙이 딸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이 없어서, 그거 하나 장만할려구 몇 달 동안 푼 돈 모아 만든 건데.... 내가 못살아...
대문 열리고 메리, 흥얼거리며 들어온다.
성자, 메리를 보자 뭔가 스치는 듯...
성자 : 너 이리 와봐. (메리를 끌어다 거칠게 여기저기 뒤진다)
메리 : (피하며) 왜 이래.... 숙녀의 몸을 함부로 더듬고... 아.... 간지러....
성자, 메리의 지갑 꺼내 열어본다. 텅 비어있다.
다시 여기저기 뒤지다 옷 주머니에서 뮤지컬 티켓을 찾아낸다. VIP석 12만원이라 찍혀있다.
‘12만원’ 이란 아픈 글자, 성자의 눈에 팡팡팡 클로즈업으로 들어온다.
성자 : 이 년이!
메리 : 흡!!!
성자 : 이게 어떤 돈 인줄 알고나 훔쳤니?
메리 : 엄마, 나 들어가서 딱 밥 한공기만 먹고 맞을게. 나 지금 배고파서 돌아버릴 것 같어. (후다닥 안으로)
S#6. 메리네 부엌 / 밤
후다닥 들어온 메리, 전기밥솥을 열고 주걱으로 밥을 퍼 입으로 넣으려는 찰라 엄마의 우왁스런 손이 밥을 움켜잡는다.
손 한가득 밥을 잡고 주걱을 채간다.
메리 : 아, 진짜..... 엄마... 인간적으루.... 나 밥 좀 먹고 맞...(을게)...
성자, 메리를 잡히는 대로 두들겨 패기 시작한다. 분이 나서 펑펑 때린다. 성자 : 이게 자식이야 웬수야, 응? 친구 딸년은 명문대학 강사에다, 고시패스한 신랑까지 물어서 시집가는데 이년아... 너는 직장도 없고 남자도 없이 빌빌대면서.... 한다는 짓이 엄마 비상금이나 훔쳐? 에라... 이 천하에 후진 년아. 메리 ; 내가 평생 이러냐? 내가 평생 후져? 성자 ; 너는 백일 지나고부터 문제가 있었어. 메리 ; 어머니! 나 오늘 점심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 밥 먹고 맞을게. 성자 ; 금숙이 딸 결혼식에 뭘 입고 가, 뭘 입고 가아! 메리 ; 안 가면 되잖아! 성자 ; 잘못 했다는 얘긴 끝까지 안하고..... 내가 12만원 모으기까지 몇 달 걸렸는지 알어? (등 짝 때리며) 알어 몰라. 메리 ; 아으으윽! (뛰쳐나간다) 성자 ; 이게 어딜 도망가.
S#7. 메리네 마당 / 밤 후다닥 도망가는 메리. 질 수 없다는 듯 따라나와 메리와 추격전을 벌이는 엄마. 수건으로 발을 닦고 일어서는 아버지를 밀쳐 황도철, 맨 발로 다시 땅 바닥을 디디고. 밖의 시끄러운 소리에 문간방의 외국 청년 두 사람, 문을 열고 내다본다. 메리, 엄마를 피해 드디어 대문으로 가는데 엄마 수도꼭지에서 호스를 빼 휭휭휭 돌린다. 윙윙윙~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호스. 메리, 굳은 얼굴로 돌아보며 메리 ; 아... 안 돼. . .(다급) 엄마 제발 그건 참아줘. 성자, 호스를 크게 휘두른다. 아버지, 눈을 감는다. 외국 청년들도 얼른 문을 닫는다. 메리(E) ; (으아아아...... 하는 소리 에코우로 들린다) S#8. 메리네 건넌 방 / 밤 외국 청년들, 얼른 노트북을 쳐 뭔가를 검색하는........ 두 사람, 역시 하는 얼굴로 마주보며 끄덕끄덕..... 노트북 팽개치고 얼른 짐을 싼다. 노트북에는 메리의 얼굴 커다랗게 뜨고 “a Crazy girl in the house" 란 글이 보인다. 메리(E) ; 네, 저는 유명한 사람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소개된 바 있죠. S#9. 오디션장 회상. 메리, 맘마미아의 나팔바지를 입고 신나게 노래한다. 가슴에는 수험번호 ''444번 황메리'' 붙이고. 메리 ; (댄싱 퀸 노래) 넌 정말 최고의 댄싱 퀸...... 심사위원석, 땡! 하는 실로폰. -또 다른 오디션. 고양이 옷을 입은 메리, ‘Cats'에 나오는 Memory를 부른다. 수험번호 666 붙인 메리, 메리 ; (노래) Memory... all alone in the moonlight... 심사위원의 실로폰, 아까보다 더 신경질적으로 땡! 실로폰 치는 막대기가 뚝 부러진다. - 또 다른 오디션. 수험번호 777을 붙인 메리, 노래한다. 뮤지컬 ‘그리스’ 의 You''re the one that I want. 70년대 여대생처럼 원피스에 굵은 머리띠하고 메리 ; (노래)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너! 너 뿐이야.....(하다가 삑살나는) 집어 던져지는 실로폰. S#10. 메리네 집 / 밤 술이 잔뜩 취해 담을 넘는 메리. 메리 ; 운이 안 따랐을 뿐이야. 정말 자신있었다구. 메리, 살금살금 마루로 들어갈까 하다가 성자(E) ; 아니 메리 이년은 어떻게 된 거야.... 들어오기만 해봐 이걸 그냥.... 엄마의 소리에 움찔, 다시 돌아와 건넌방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두운 방, 가방을 던지고 아무렇게나 털썩 엎어지는데 손에 뭔가 뭉클한다. 눈 게슴츠레하게 뜨는 메리. 이게 뭐지.... 한두 번 왈랑왈랑 주물러본다. 금발미녀(E) ; (비명소리) 메리 ; (화들짝) !!! 쌩하게 생긴 금발미녀, 벌떡 일어나 불 켜고 펄쩍펄쩍 뛴다. 끈 런닝에 반바지 차림으로 자던 금발, 가슴을 가리며 메리에게 퍼붓는다. 금발 ; What the hell are you doing here? Who the hell are you. (밖에다) Please call the police! Anybody hear me? 메리 ; (놀라고 당황... 술에서 깨려 머리 흔들며) No, No! I'm not. 오해예요. I'm 이 집 딸.... 아들 아니구 딸! 금발 ; Are you crazy? (밖에다) Somebody call the police! 메리 ; No, No! I don't like woman. I like a man. Yes, I like man very much! 잠옷 바람의 엄마, 달려와 메리를 끌어낸다. 마당으로 끌려 나간 메리, 물이 가득한 고무 다라이에 던져진다. 메리, 고무 다라이에 주저앉은 채 엄마가 내리치는 빨래판을 두 손을 크로스 해, 원더우먼처럼 막는다. 빨래판이 쪼개진다. 엄마의 이 악문 표정, 비굴한 메리의 표정이 컷, 컷 금발의 디카에 담긴다. S#11. 몽타쥬 커다란 지구본 뱅글뱅글 돌아간다. 챠도르를 쓴 아랍의 여인들, 노트북 앞에 앉아서 움푹 파인 눈을 더욱 크게 뜬다. 인터넷 여행 사이트에 뜨는 메리의 얼굴과 함께 ‘a Crazy girl in the house!' 란 제목. ‘I love Korea, I'd love to visit again..... but Never want to go there! Never!' 로 시작하는 본문. 엄마에게 빨래판으로 찍히는 장면, 메리의 비굴한 표정, 날이 밝아 마당의 평상에서 원산폭격하고 있는 메리의 모습. 옆엔 허리에 두 손 짚고 서서 메리를 째려보는 엄마, 한 쪽에서 구두 닦으며 구경하는 아버지의 소심한 사진 등이 올라와 있다. 메리(E) ; (동시통역하듯 동강동강 끓어지는 말투로) 나는... 한국을 사랑합니다... 나는 한국에 또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거긴 절대 절대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음.... 미친 여자가 그 집에 있어요... 음.... (해석이 막힌) 음. . . 제 이름은 제니예요. 하버드를 나왔죠. 세계 각국의 표정들이 메리의 사진들과 함께 교차로 보여진다. 뉴욕, 케냐, 러시아, 에스키모..... 등등의 젊은이들이 여행 사이트에서 글을 읽고 놀라운 표정으로 고개 절레절레 흔든다. 메리(E) ; 동시통역에 약한 나는 두 번째 문장부터 막혀 읽기를 포기 했습니다. 내가 엄청 열 받길 바라면서 몇 번씩 고쳐가면서 썼을텐데 금발의 제니에겐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녀도 알았으면 좋겠네요. 인생이 언제나 맘대로 풀리진 않는다는 것을요. S#12. 메리네 마당 / 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윙윙윙 돌아가던 호스, 메리의 등짝을 강타한다. CSI 수사대처럼 메리 옷 속으로 호스가 지나간 자국, 고속도로가 서 듯 등 위로 뻘겋게 찍히며 부풀어 오른다. 메리 ; 끄아아악...... (대문열고 뛰어나간다) S#13. 동네 골목길 / 밤 메리, 달려가고..... 벽이나 전봇대에 붙은 개 찾는 광고, 보인다. 개 사진과 함께 <개를 찾습니다. 이름 - “메리” 식탐 많고 멍청하지만 상냥함. 보신 분 연락주세요. 010 - 789- 3247> 성자(Echo) ; 메리야! 이년아! 메리야! 동네 개들, 이 집 저 집서 왈왈왈 일제히 짖기 시작하며 뜀박질하는 메리는 멀어져간다. S#14. 레스토랑 / 밤 깜찍녀, 근사한 스테이크 썰고 있다. 앞에는 대구, 물 한잔 놓고 앉아있다. 대구 ; (지나가는 웨이터에게) 저기요.... 여기 물 한잔만 더 주세요. 웨이터, 주전자에 물을 따라주고 간다. 대구 ; (물을 꿀떡꿀떡 마시면) 깜찍녀 ; (나이프와 포크를 탁 내려놓는다) 대구 ; 왜..... 깜찍녀 ; 불편해서 못 먹겠어. 대구 ; 맘 놓고 먹어. 오빠는 속이 안 좋아서...... 깜찍녀 ; 오빠가 속이 안 좋을 때도 있어? 대구 ; (껄떡스런) 우리 이거 먹구 DVD방 가자. 아님 찜질방 가서 같이 잘까? 딴 짓 안 해. 손만 잡고 코 자자. 흐흐흐..... 깜찍녀 ; 오늘은 피곤해. 나 화장실 갔다 와서 같이 나가자. (일어서는데) 대구 ; (남아있는 스테이크로 눈길, 탐욕스런 시선으로 보는데) 웨이터 ; (다가와) 식사 다하셨음 치워드릴까요? 대구 ; . . . . . . 깜찍녀 ; 네, 치워주세요. 후식은 됐어요. 웨이터 ; 네! (접시를 반짝 든다) 대구 ; . . . . . . S#15. 부띠끄 매장 화려한 옷들이 걸려있는 화려하고 세련된 고급 매장. 사람 없는 매장을 지나 뒷쪽 창고로 통하는 직원 외 출입금지 같은 공간. 조그만 휴게 공간 같은 곳에서 장은자, 뿌듯한 표정으로 간짜장을 막 비비고 있던 찰라.... 지친 표정의 메리, 들어선다. 짜장면을 보자 표정이 확 밝아진다. 메리 ; 어?! 지금 저녁먹니? 은자 ; . . . (뜨악한 표정, 불안하다). . .왜? 메리 ; (테이블에 여분으로 놓여있던 나무젓가락을 쪼개며) 나는 왜 이렇게 먹을 복이 있을까... 은자 ; (비비던 짜장면에 침을 탁 뱉는다) 퉷! 메리 ; 이런 썩을 년! 은자 ; (먹기 시작한다) 메리 ; (들고 있던 나무젓가락을 분질러 버리며) 넌 친구도 아냐. (랩에 싼 단무지를 들고 나가버린다) 은자 ; 야! S#16. 편의점 앞 / 밤 메리, 터덜터덜 걸어온다. 편의점이 보이자 멈춰 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본다. 5백 원짜리 동전 하나와 단무지가 담긴 플라스틱 그릇이 나온다. 메리 ; 5백 원과 단무지..... 이게 나의 현실인가. 한숨 쉬며 편의점을 바라보는데 광고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김장탕면 사은 대잔치’ -- 탕면을 사시면 햇반을 덤으로! 단돈 5백원> 메리 ; (눈이 번쩍) 아싸! 메리, 편의점으로 날듯이 들어간다. 편의점에서 나오던 강대구와 얼굴 못 본 채 스친다. 편의점으로 들어간 메리, 라면이 쌓여있는 진열대로 가 흥얼거리며 샅샅이 찾는 눈길.... 카운터로 간다. 메리 ; 김장탕면 하나 주세요. 진열대에선 못 찾겠네요. 점원 ; 다 팔렸는데요. 메리 ; 설마요.... 점원 ; 행사중이라 다 나갔어요. 하나 남은 거 방금 나가신 분이 사갔는데... 메리 ; (전기를 맞은 듯 뛰어나간다) S#17. 동네 거리 일각 / 밤 열과 성을 다해 뛰어가는 메리. 저 멀리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메리 ; 저기요. . .잠깐만요..... 저기요! 배고파 걸음을 재촉하던 대구, 돌아본다. 대구 ; .......? 메리 ; (대구 손에 든 김장탕면과 햇반을 본다. 환해지며 미소) 그거요, 저한테 파세요. (5백 원을 내민다) 대구 ; ...... 싫은데요. 메리 ; 돈 드리잖아요. 자요! 대구 ; 싫다니깐요. 메리 ; 왜 싫은데요? 대구 ; 배 고파서 이거 먹어야 돼요. 메리 ; 다른 가게 가서 사시면 되잖아요. 전 지금 걸을 힘도 없어요. 대구 ; 다른 데 다 팔리고, 지금 여기 하나 남은 거 산건데요. 메리 ; . . . 그럼 그거 나한테 팔고 집에 가서 밥 드세요. 대구 ; 댁이나 그러셔요. 메리 ; 우리집에 밥 없어요. 대구 ; 우리 집도 밥 안줘요. 메리 ; 그러지 말구, 제가 5백 원에 (단무지 꺼내며) 이거 얹어드릴게 저한테 파세요. 대구 ; 아, 그거 잘됐네. 내가 백 원 드릴게 그 단무지 나한테 파세요. 메리 ; (화난다. 표정 변해) 나 지금 장난 아니거든요. 대구 ; 그럼 그냥 주시던가. 메리 ; 5백 원에 팔아요. (뺏으려하자) 대구 ; (안 뺏기려 위로 치켜들며) 이상한 여자네.... 메리 ; 댁도 이상해요. 그거 하나 파는 게 그렇게 힘든가?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 주고 산다는데. 대구 ; 댁이랑 실랑이 할 시간 없어요. 배꼽이 지금 등가죽에 달라붙고 있거든요. 메리 ; 난 벌써 붙었어요. 파세요 제발! 메리, 억지로 뺏으려 한다. 대구는 이리저리 피하고 두 사람 실랑이 벌이다 햇반을 떨어뜨린다. 햇반, 모로 서서 떼구르르 굴러간다. 두 사람, 긴장으로 지켜보는데 구르던 햇반, 차도로 툭 떨어져 지나가던 트럭에게 밟힌다. 비통하고 강한 음악 짠짠짠 쾅~! 두 사람, 충격. 메리 ; (펄쩍) 내가 미쳐! 대구 ; 환장허네! 당신 때문에 이게 뭐야. 저 피 같은 쌀밥을! 메리 ; 나한테 곱게 팔았으면 이런 일이 왜 생겨요. 그거라도 줘요, 빨리! 메리, 다시 실랑이 시작. 힘을 줘 사발면을 확 뺏다가 땅바닥에 떨어뜨린다. 대구, 수류탄이라도 안 듯 팍 엎어져 잡으려다가 박살을 내놓는다. 두 사람 충격! 메리 ; (버럭) 내가 진즉에 팔랬쟎아요. 이게 뭐야. 대구 ; (박살난 라면을 손으로 만지며) 내 밥.....내 저녁. . . . 메리 ; 아으! 아까워.....(발 동동) 아까워 죽겠네. 대구 ; 5백원 내놔요. 메리 ; 뭐요? 대구 ; 당신 땜에 이렇게 됐쟎아. 변상하라구요. 5백원 내요, 당장. 메리 ; 미쳤어요? 대구 ; (손에서 동전 빼려) 내놔요, 당장.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말야. 메리 ; 이런 강도를 보게. 대구 ; 내 놔! (손에서 뺏으려 붙잡고 밀치고 실랑이) 메리 ; 어쭈... 이거 치한 아냐... 어딜 만져 이게.... (대구의 급소를 팍 걷어 찬다) 대구 ; 윽! (다릴 모으며 고꾸라진다) 메리 ; 넌 지금껏 내가 본 남자 중에 제일 후진 놈이다. 배고픈 여자한테 야박한 게 남자냐? 그거 당장 떼 버려! 메리, 사라진다. 대구, 간신히 추스르고 두 발로 선다. 저만치 멀어지는 메리를 보며 대구 ; (아파서) 아흐. . . . 이 동네에 미친 여자가 하나 산다더니..... S#18. 메리 방 / 밤 1인용 침대(아버지가 만들어준, 나무 판 위에 요와 이불을 깐 수준)와 간이 옷장, 낡고 작은 오디오, 책상 등이 놓인 작고 소박한 방. 쪼그려 앉아 손으로 단무지 집어먹고 있는 메리. 서럽다. 눈물이 쪼금 난다. 옆엔 집에서 담근 듯 보이는 인삼주 병의 뚜껑 열려 있다. 메리 ; . . . .예전엔 미처 몰랐었어..... 단무지가 이렇게 단지.... 잔에 담긴 인삼주를 쭈욱 마시고, 한 잔 가득 따른다. 많이 줄어든 인삼주통에 생수를 콸콸 부어 채워놓는다. F.O. S#19. 성형외과 / 이른 아침 성형외과 복도. 카메라, 사람의 시선이 되어 걸어간다. 어기적 어기적... 불편한 시선으로. 복도에서 청소하던 아줌마, 시선을 돌리다 ‘흐악’ 하고 놀라 쓰러진다. 얼굴부터 몸까지 붕대로 칭칭 감은 미이라, 쓰러진 아줌마를 지나 걸어간다. 상담대기실로 걸어가는 미이라. 간호사, 하품하며 챠트 정리하는데 미이라, 간호사 앞에 와서 선다. 간호사, 깜짝 놀라 간호사 ; 이소란씨!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소란(E) ; 선생님 아직 출근 안하셨어요? 간호사 ; 지금이 몇 신데 벌써 출근을 해요. 소란(E) ; 궁금해 죽겠어요, 빨리 풀어줘요. 빨리! 간호사 ; 아직 하루 더 기다리셔야 돼요. 지난번에도 못 참고 먼저 풀었다가 부작용 났쟎아요. 소란(E) ; 짜증나.... 짜증나 죽겠어. 간호사 ; 어서 입원실로 가세요. 이러다 큰일나요. 소란(E) ; 데려다주세요. 혼자 가기 심심해. 미이라의 팔을 잡고 입원실 침대로 걸어가는 간호사. 아기 달래듯 상대해 준다. 소란(E) ; 저. . . 많이 이뻐졌겠죠? 간호사 ; 그럼요. 소란(E) ; 날 사랑해주는 남자도 이제 만날 수 있겠죠? 간호사 ; 그럼요. 하루만 더 기다리세요. 하루만. 소란(E) ; 하루만 기다리면 나도 행복해 질 수 있는거죠. 간호사 ; 이미 행복한 분 아니세요? 부잣집 따님이 왜 그러세요. 소란(E) ; 날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요. 간호사(E) ; 만나고도 남을 꺼예요. 소란(E) ;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해 지고 싶어요. 소란, 소녀처럼 붕대 감은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갸우뚱 기댄다. 밝은 강한 음악(카르멘 서곡 같은)터져 나오며.......... S#20. 동네 일각 / 아침 봄날의 화창한 아침. 메리, 뛰어간다. 통닭가게를 지난다. 변강미의 웃고 있는 증명사진이 들어간 간판 ‘변강미네 장작구이 통닭’ 가게 앞. 섹시한 차림으로 장작을 빡 내리쳐 쪼개는 변강미를 스쳐 뛰어간다. 메리 ; 안녕하세요. 강미 ; 황메리양 외상값, 2만 7천원. (장작 빡!) 메리 ; (듣기 싫다는 듯) 네, 감사합니다. 메리, 양가위 헤어살롱을 지난다. 유리창 안으론 가위를 양손에 들고 춤을 추듯 체조를 하는 양가위가 보인다. 뛰다보면 오징어 파는 트럭이 천천히 가고 있다. 코믹하게 내는 메리의 목소리, 스피커에 나온다. 메리(F) ; 싱싱한 오징어 눈알이~ 떴다 감았다, 떴다 감았다~ 싱싱한 오징어 사려. 자아.... 오징어가 왔어요... 싱싱한 생물 오징어... 메리, 뛰면서 운전석의 트럭 아저씨에게 인사. 메리 ; 사장님, 매출은 좀 어때요? 트럭장수 ; 잘 나가다 요샌 좀 그러네. 메리 ; 아이템 한번 바꿔 드릴께요. 저 지금 또 일하러 가요. (뛰면서) 오늘은 스케줄이 두 개나 되요. 엄청 바빠요. 트럭장수 ; 누가 물어봤어? 메리 ; 수고하세요! 메리, 뛰어간다. S#21. 녹음 스튜디오 반짝이 의상을 입은 짝퉁 트로트가수 ‘현찰’의 고속도로 메들리 음반 녹음 현장. 메리와 다른 여자 둘이 모인 세 명의 코러스, 같이 산들산들 춤추며 손가락 튕겨 박자 맞춰가며 코러스를 넣는다. 곡명, 사랑의 이름표. 가수 ; 이름표를 붙여 내 가슴에~ 코러스 ; 짠! 가수 ; 확실한 사랑의 도장을 찍어~ 코러스 ; 쾅! 가수 ; 이 세상 끝까지 나만 사랑한다면 확실하게 붙잡아 코러스 ; (흥겹고도 방정맞게) 아야야 아야야 붙잡아 붙잡아! 가수 ; 놓치면 깨어지는 유리알 같은 코러스 ; 싸~! 가수 ; 사랑은 아픔인거야 코러스 ; 아파 아파 아야 아야! 가수 ; 정 주고 마음 주고 사랑도 주고 메리 ; (랩) 준 년이 바보여. 가수 ; 이제는 더 이상 남남일 수 없쟎아... 오오 사랑하는 내 가슴에... 코러스 ; 뽕! 가수 ; 이름표를 붙여줘.... 코러스 ; 아야야 아야야 짠짠짠! 메리, 열과 성을 다해 열심이다. S#22. 오피스텔 / 아침 거실 창으로 햇살 들어온다. 선도진과 강대구가 함께 사는 오피스텔. 방 하나에 거실 하나. 방은 선도진이 사용하고 대구는 거실의 소파에서 잔다. 옷걸이엔 3가지의 츄리닝과 낡은 청바지가 무릎 나온 채 걸려있고 앉은뱅이 책상과 한 쪽에 ‘풍운도사의 백팔번뇌’ 1,2권이 가득 쌓여있다. 창 밖에서 바람이 휭 불어와 책장 겉표지가 날린다. 겉장에는 ‘행복하세요 강대구’ 라 싸인이 돼 있다. 소파에 이불을 쓰고 누워있는 물체, 들썩들썩하며 신음소리를 낸다. 2인 1조로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다. 대구 ; 아아. . . .음. . . 흐억. . . .헉헉. . . .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처럼 들썩거리더니 ‘으악’ 하는 소리와 함께 이불을 확 차 내던지며 일어나는 대구. 대구 ; . . . .뭐야. . . 꿈이었어? 죽이는 아이디어를 잡았는데.... 메모를 해야 돼, 메모... (옆에 있는 책상에서 볼펜을 들어 아무데나 메모하려는데 볼펜이 안 나온다) 아 뭐야.... 으쒸 잊어버렸다... 다시 꿈을 꿔야 돼. 대구,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는 데 밖에서 시끄러운 트럭장수의 호객멘트 크게 들려온다. 메리(F) ; 오징어가 왔어요 싱싱한 생물 오징어... 이모, 화투장 던지고 빨리 나와. 두 눈을 깜빡깜빡... 다리를 접었다 풀었다하는 오징어가 왔어요. 대구, 쿳션으로 귀를 틀어막는다. 대구 ; 다시 자야 해. 꿈을 꿔야 돼. 메리(F) ; 시끄럽다고 귓구멍 틀어막지 마시고 어서들 나와서 오징어를 보세요. 아싸아아 오징어 오징어! 날이면 날마다 오는 오징어가 맞아요. 대구 ; (짜증나 벌떡) 아으으으! 이건 또 뭐야. 어제 그 미친 여자 목소리랑 왜 이렇게 똑같애. 짜증나는 듯 쿠션을 확 집어던진다. 서 있던 CD진열대 3개가 도미노처럼 와장창 넘어지며 벽에 기대 세워둔 액자가 넘어진다. 대구도 놀란 표정. 액자가 넘어지며 벽에 숨겨 붙어있던 포스터가 나온다. 저렴하게 제작한 포스터 티가 난다. <팬 싸인회- 무협소설의 새 바람! 풍운도사의 백팔번뇌 1,2권 동시출시. 작가 강대구 팬들과의 만남> 팔짱을 끼고 하늘을 보는 대구의 어색한 시선과 표정. S#23. 양가위 미용실 / 아침 가위에 혼을 불어넣듯 양가위, 가위를 손에 들고 헛 가위질을 하고. 거울 앞에 앉아있는 대구의 머리칼을 만져보며 이리저리 디자인을 구상하고 있다. 대구 ;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에 가니까요, 깔끔하게 조금만 다듬어 주십시오. 가위 ; 여부가 있습니까. 대구 ; 이 동네에서 머리를 제일 잘 하신다면서요. 가위 ; 양가위 헤어살롱에 처음 오시나부죠? 대구 ; 네, 이사 온지 일주일밖에 안됐어요. 가위 ; 한번 만 잘라보면 압니다. 이제 딴 데 못 가실 껄요. (머리에 물 뿌리고 빗기기 시작하는데) 대구 ; 참 이 동네에 미친 여자 하나 있죠? 가위 ; 그걸 어떻게..... 대구 ; 어젯밤에 봤어요. 젊은 여자던데.... 가위 ; (놀라) 그래요? 어제 보셨어요? 대구 ; 왜 그리 놀라십니까? 가위 ;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이 동네를 떴는데 가끔씩 다시 나타난다고 하더라구요. 그 여자가 나타나면 반드시 동네에 이상한 일이 생긴다는데..... 어제 보셨다 그거죠? 대구 ; 네! 생긴 건 멀쩡해가지고 아주 험하게 돌았던데요. 가위 ; 미인이라면서요? 대구 ; . . .뭐. . .대한민국 미친 여자 중에선 젤 이쁠꺼 같더라구요. 가위 ; 큰일이네.... 우리 동네에 또 무슨 일이 생기겠는데... 대구 ; 걱정마세요. 다음에 또 만나면 제가 확실하게 쫓아 버릴 테니깐. S#24. 스튜디오 밖 / 낮 메리, 봉투에서 돈을 꺼내 세어보고 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미소가 가득한 얼굴. 메리 ; 크으.... 5만원! 같이 코러스를 하던 여자, 다가온다. 여자 ; 페이가 너무 짜지 않아? 메리 ; 다섯 시간 노래하고 5만원이 어디예요. 신나게 노래하고 돈 받고.... 여자 ; 자기 뮤지컬 배우 지망생이랬지? 메리 ; 네. 여자 ; 이런 거 하기 쪽팔리고 싫지 않아요? 메리 ; 좋진 않지만......뭐 다 경험이죠. 여자 ; 지난 주에 오디션 본 건 발표 났어? 메리 ; 토요일이 발표예요. 여자 ; 잘됐음 좋겠다. 메리 ; 친구가 용한데 가서 점을 봤는데 이번엔 붙는대요. 흐흣. 여자 ; 녹음 할 때 마다 느끼는 건데 자기가 다듬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정말 타고난 뭔가가 있어. 메리 ; (신나서) 정말요? 여자 ; 나 혼자만 느끼는 게 아닐껄. (스튜디오 쪽에) 현찰씨! 이 친구 목소리 좋죠? 스튜디오 안의 현찰, 악보 보며 엔지니어와 얘기중이다. 밖에서 뭐라고 얘기를 거는 게 보인다. 여자, 메리를 가리키며 뭐라고 벙긋벙긋.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웃는데 현찰 ; (스튜디오 안에서 웃으며 끄덕끄덕, 같이 엄지 세워준다) 엔지니어 ; (부스 밖을 보며) 뭐라는 거예요? 현찰 ; 내도 모른다. 스튜디오 밖의 메리, 기분 업! 여자 ; 봐! 저 사람도 인정하잖아. 내가 듣는 귀는 있다니까. 메리 ; 오디션 붙으면 언니한테 떡볶이 한번 살께요. 여자 ; 잘 나가는 음악감독한테 보컬레슨을 받아봐요 한번. 메리 ; 레슨비가 장난 아닐텐데.... 여자 ; 돈이야 어떻게든 못 구하겠어? 내가 다른 아르바이트 소개해줄테니까 걱정하지 말구. 토욜날 합격발표나면 연락해요. 메리 ; 네! S#25. 허름한 건물 앞 / 낮 어색하게 머리가 빗겨진 대구, 걸어온다. 허름한 빌딩 앞에서 멈춰 선다. 먼지 낀 2층 창문에 ‘임대문의’ 라 붙어있고 <천고마비 출판사>나무 팻말 떼어져 나동그라져 있다. 마치 습격을 당한 문파의 도장을 찾은 것처럼 징소리 울리는 충격을 받는 대구. 대구 ; . . . . !! S#26. 출판사 사무실 안 / 낮 먼지와 신문지가 날리는 황량한 사무실. 천장 구석엔 거미줄. ‘풍운 도사의 백팔번뇌’ 1, 2권 잔뜩 쌓여있다. 대구, 들어선다. 한 쪽에선 사장(30대 중반), 쪼그려 앉아 쿠킹호일에 싸인 김밥을 먹고 있다. 대구 ; 형!. . .아니 사장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사장 ; (김밥 꾸역꾸역 먹어 목이 맨다. 가슴치고 물마시며) 점심은 먹었니? 대구 ; . . . 아뇨! (다가가 손으로 두 알을 한꺼번에 집는다) 사장 ; . . .(못 마땅) 한 알씩 먹어라. 대구 ; (김밥 먹으며) 어떻게 된 일이예요, 이게. 어쩌다 이런 멸문지화를 입은 겁니까. 사장 ; 니 책 덕분이지. 대구 ; 형. . .이건 진짜 아닌데. . . 내가 정말 괜찮은 거 하나 잡았단 말야. 어젯밤부터 아이디어가 막 솟아나더니 꿈에서까지 얘기의 몸통을 얻었어요. 이건 정말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얘기예요. 사장 ; 넌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더니, 나와 내 가족만 울렸다. 대구 ; 이번 껀 정말 죽여요. 광녀가 나와. 미모의 미친 여자. (김밥을 하나 또 집어가며) 형, 신조협려 기억 나? 사장 ; (김밥 집어가는 손을 원망의 눈길로 보며 말 없는) 대구 ; 거기 나오는 마녀, 이막수 캐릭터 알지? 그보다 멋진 여자예요. 사랑에 배신당한 여자가 미쳐서 강호를 떠돌다가 어느 날 밤에.... 사장 ; (벌떡 일어나 화를 버럭) 너 나까지 미치게 할래? 너 때문에 망한 거 안 보여? 내가 너 뻔뻔하고 앞 뒤 못 가리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하지 않냐. 대구 ; . . . . . 사장 ; 에휴.... 아니다. 공과 사를 구별 못한 내 잘못이지. 학교 후배라고 되지도 않을 책을 내 준 내 불찰이다. 대구 ; . . . . 죄송합니다, 형. 저 책들은 그럼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쌓인 책으로 가는데) 사장 ; 둬라. 폐지 수거하는 데 팔았다. 지금 가지러 올꺼야. 대구 ; . . . . . S#27. 거 리 / 낮 바람이 분다. 나뭇가지가 떨고 꽃잎이 흩날린다. 거센 바람이다. 비통한 표정의 대구, 터벅터벅 걷는다. 몹시 울적하다. 한참을 걷는데 핸드폰 벨이 울린다. 대구 ; 여보세요? (F) ; 고객님의 카드대금이 7만 4천 3백원 연체되고 있습니다. 조속한 입금 부탁 드립.... 대구 ; (끓어버린다) 대구, 걷다가 아무 벤치에나 걸터앉는다. 고개 떨군 채 울적하게 앉아있다. 사장(E) ; 넌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더니, 나와 내 가족만 울렸다. 대구 ; (괴로운) 아흐으으..... 대구, 고개를 드는 데 저 앞에서 미스코리아 띠를 어깨에서 허리까지 두른 수영복 차림의 아가씨 걸어온다. 대구 ; (그 와중에도 눈이 번쩍) !!!!!!!! 대구, 고개 도리도리하고 다시 보면 ‘노숙자 무료급식’ 이란 띠를 두른 젊은 여자 생글거리며 걸어온다. 여자 ; 노숙자를 위한 무료급식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줄 서시면 드실 수 있을 꺼예요. 대구 ; 괜찮습니다. 저 그렇게까지 힘든 상태는 아닙니다. 여자 ; 오세요. 괜찮아요. 처음엔 다들 쑥스러워 하세요. (대구를 잡아끄는) 대구 ; 아닙니다... 한 노숙자가 담아오는 식판, 닭다리 튀김과 김이 모락모락나는 제육볶음이 푸짐하게 담겨있다. 대구, 태도를 바꿔 적극적으로 걸어가기 시작. 거리 일각, 노숙자 무료급식 앞에 늘어선 줄. 대구 맨 마지막에 식판 들고 서 있다. 쪽 팔린 듯, 식판으로 얼굴 반쯤 가리고 있다. 대구의 앞 사람에서 음식이 다 떨어진다. 대구, 뻘쭘. 빈 식판을 아가씨에게 건네고 돌아선다. 여자 ; 죄송해요.... 월수금마다 여기서 급식하니까 다음엔 일찍 오세요. 대구, 다시 벤치에 앉아있다. 바람이 쌩하니 스쳐간다. 대구 ; . . . . (무협 속 주인공처럼) 이런 날 바람만으로 되겠는가..... 비까지 내려다오. 천둥이 우르릉 치더니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린다. 대구 ; . . . .(놀라운) S#28. 황제 수퍼 앞 / 낮 ‘황’ 자 아래 ‘ㅇ’받침이 떨어질락 말락 하는 간판. 먼지 끼고 쇠락해가는 동네 수퍼다. 가게 처마에 붙어 서서 비를 피하고 있는 대구.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참치 캔 하나와 소주 한 병을 들고 나오는 대구. 가게 앞 파라솔에 앉는다. 열라 시스터즈, 우산 쓰고 껄렁하게 걸어온다. 파라솔에 앉아 소주 마시는 대구를 저 만치에 쪼르르 서서 구경한다. 열라1 ; 열라 빈티나네. 대구, 그 와중에도 맛나게 참치 캔을 들고 맛있게 먹고 있다. 열라2 ; 열라 강한 저 식욕. 비단 ; (까칠한 카리스마) 확실히 이 동네... 터가 안 좋아. 열라1 ; 미친 여자가 떠나더니 남자거지가 들어 왔나봐. 비단 ; 쟤 보니까 배고프다. 야, 들어가서 식빵 한 줄만 가져와. 열라1 ; 니가 해. 나 니네 아빠 무서워. 비단 ; 우리 중에 니가 달리기 젤 빠르쟎아. 잔말 말고 빨리 가. 열라1, 꺾어 신었던 운동화를 바로 신고 가게로 쌩하니 뛰어간다. 들어가다 대구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친다. 소주병 툭 내려져 떨어지는 찰라 대구, 발끝으로 차 올린다. 공중으로 높이 붕 떠오르는 소주병, 손으로 채는 대구. 안의 술, 찰랑대며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비단 ; (놀라운) !!!!!!!!!!!!!! 대구 ; (자신도 놀라운) !! 비단, 퍼뜩 뭔가 스친다. 비단 ; 안 돼! 열라1, 긴 식빵 한 봉지 들고 뛰어 나오는데 백구두에 판타롱 바지 입은 최황재가 따라 나오며 황재 ; 도둑 잡아라! 대구, 전광석화 같은 발놀림으로 열라 1의 발을 건다. 발에 걸려 비틀하는 열라1의 허리춤을 잡아 번쩍 드는 대구.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열라1. 황재 ; 너 이 녀석, 학생이 공부는 않고 도둑질이나 하고. 비단과 열라2, 숨어서 지켜보는 비단 ; 애드립을 쳐! 열라1 ; 이 오빠가 훔쳐오랬어요. 대구 ; (어벙벙... 내려놓으며) 내가 언제? 열라1 ; (식빵을 내던지고 도망간다) 황재 ; (대구 머리통을 갈기며) 비오는 날 소주 쳐 먹을 때부터 내 알아봤다. 어린 학생한테 도둑질을 시켜? 대구 ; 저 아닙니다. 황재 ; 뭐가 아냐 자식아. (또 때리는데) 대낮부터 술이나 쳐 먹고... 백수짓을 할려면 곱게나 하지 이 놈아. 대구 ; 왜 이러세요 진짜. 대구, 황재를 살짝 미는데 저만치 날아가 빈 라면 상자위에 풀썩 떨어진다. 대구 ; 흐악! 비단 ; 아빠아..... (달려온다. 열라 1,2도 따라서 오고) 아빠 정신차려 봐. 대구 ; (황재를 흔들며) 아저씨! 비단 ; (대구에게) 저희가 잘못했어요. (식빵주며) 이거 갖고 꺼져주세요. 대구 ; . . . . . 앰블런스 소리 삐뽀삐뽀..... S#29. 동네 거리 / 낮 식빵 안고 걸어오는 대구. 비는 계속 내린다. 대구 ; 참말 꿀꿀한 날이다.... 아으으..... 이 놈의 비 좀 그쳤으면 좋겠네! 비가 딱 멎고 하늘의 먹구름이 바람을 타고 걷혀간다. 대구, 놀라서 멈춰선다. S#30. 암자 뒤 숲속 같은 / 낮 회상.... 안개와 햇살이 어우러진 숲 속. 풍운도사의 실루엣. 커다란 나뭇가지에 올라 앉아 햇살을 역광으로 받는 모습. 신비해 보인다. 풍운 ; 무공이 깊어지면 우주의 호흡을 감지한다. 태양과 바람과 비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지. 그리 되고 싶으냐? 대구, 한 쪽 다리 츄리닝 걷은 채 불량하게 짝다리로 서서 대구 ; 별로요. 풍운 ; 거기서 조금 더 무공이 깊어지면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그리 되고 싶으냐? 대구 ; 별로요. 풍운 ; 피하고 싶대서 피해지더냐.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의지와 상관없이 가야하는 길이 인생엔 있단다. 나뭇가지가 뚝 부러지며 땅으로 곤두박질하는 풍운도사. 풍운(E) ; 보아라....... S#31. 동네 거리 / 낮 대구, 로또라도 당첨된 표정으로 대구 ; 내가 그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구, 눈을 감고 주먹을 쥐고 호흡을 집중한다. 이때 지나가던 자동차, 물을 확 튀기고 지나간다. 대구, 옴팡 젖는다. 대구 ; 저런 개나리..... S#32. 메리네 마루 / 낮 메리, 엄마 앞에 앉아있다. 엄마, 봉투에서 5만원 꺼낸다. 엄마 ; 다냐? 메리 ; . . . .트럭 테이프 녹음한 건 다음 주에 준대. 2만원 더 들어올 꺼 있.... 엄마 ; 도합 7만원. 한 달 수입 7만원. 메리 ; 7만원, 절대 작은 돈 아냐. 엄마 ; 넌 무슨 배짱이니? 일 년 연봉이 백만 원도 안되는 주제에, 어쩌자고 12만 원짜리 공연을 봐? 메리 ; 투자야, 그건. 엄마 ; 금숙이 딸 결혼식엔 나 대신 니가 가. 메리 ; 나도 입고 갈 옷 없는데. 엄마 ; 내가 만들어줄게. 메리 ; 엄마가 만들어서 입고가심 되쟎아요. 엄마 ; 내가 만든 옷을 내가 어떻게 입니. 엄마, 낡은 재봉틀을 열심히 돌리고 있다. 알록달록한 천(또는 파도무늬가 있는 천)을 잘라 박고 있다. 방에 있던 메리, 츄리닝 차림으로 방문을 열어보면 마루에 쳐진 커텐 중 한 쪽이 뜯겨 나와 재봉틀에 누워있다. 메리 ; (불안한) 엄마.... 설마 내가 상상하는 그건 아니겠지? 성자 ; . . (말 없이 재봉틀만 드르륵). . . . 메리 ;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어? 차라리 날 딴 집으로 입양 보내줘. 성자 ; 남의 집에 못할 짓하면 쓰나. 메리 ; 나 가출한다. 성자 ; 해. 메리 ; . . . .(조용히 밖으로 나간다) S#33. 이세도 저택 / 낮 근사한 2층집 거실. 부길, 미술품과 액자들을 옮기는 인부들에게 계속 잔소리를 하고 있다. 부길 ; 조심조심.... 그건 저 창 옆으로요.... 아문, 소파에 앉아 열심히 게임하고 있고 이세도, 서재에서 나온다. 세도 ; 이삿짐 정리는 이제 얼추 끝나가나? 부길 ; 그림 걸 자리만 정하면 돼요. 당신은 뭐하느라고 서재에 콕 박혀서 꼼짝도 안하우? 세도 ; 개교기념 행사에 가서 한마디 해야 하쟎아. (읽어보는) 닭이 울지 않으면 목을 비틀어야합니다. 바로 이런 정신! 내가 원하는 건 반드시 이루어 내겠다는 의지! 야망과 비젼을 가진 젊은이야말로 미래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부길 ; 당신은 닭 모가지 비트는 것 말곤 할 얘기가 없어요? 세도 ; 내 인생에 지표가 된 말이야. 헤맹맹한 정신상태를 가진 요즘 애들한테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구. 아문 ; 개교 기념행사에 이사장이라구 와서 길게 얘기하면 애들 싫어해요. 내 체면도 생각을 해주셔야지. 세도 ; 넌 전학 수속 다 끝난거지? 아문 ; 즐겁고 튼튼하게 잘 크세요 여러분, 기말고사 끝나면 동방신기를 학교 강당에 불러주겠습니다. 이거 한마디면 되는데. 세도 ; 시끄럽다. 동방 같은 소린 내 앞에서 꺼내지도 마. 아문 ; 아빤 동방신기 얘기만 나오면 되게 싫어하시더라. 세도 ; 소란이는 내일 퇴원인가? 부길 ; 병원에서 그 새를 못 참고 소란을 피우지 않았음 내일 오겠죠. 아문 ; 언니는 졸업 앨범마다 얼굴이 달라서 좋겠어. 세도 ; 인물이 나아지면 남자보는 눈도 좀 달라지겠지. 그 자식은 누굴 닮아 남자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 부길 ; 용서하세요. 날 닮아 그래요. 세도 ; (단호) 츄리닝 입은 놈만 못 만나게 하면 돼! 어떻게 된 게 천하의 이세도 장녀가, 자기가 일하는 중국집에서 건해삼이나 쌔벼다 팔아 먹는 배달 보이한테 반해? 어떻게 된 게 헬스클럽에서 만난 조폭 똘마니를 보고 눈에 콩깍지가 씌울 수 있느냐구. 아문 ; 언니는 나보다 순수해서 그래요. 귀엽잖아요. S#34. 입원실 / 밤 붕대 미이라 소란, 다리 흔들흔들하며 맥주 캔에 빨대 꽂아 붕대 사이로 넣어 쪽쪽 빨아 마시고 있다. 소란 ; 아.... 이제 살 것 같다. 옆엔 아침에 기절했던 청소아줌마 옆에 서서 걱정스러운 듯 아줌마 ; 하도 부탁을 해서 사다주긴 했지만.... 영 찜찜하네.... 아직 술 마시면 안될텐데... 소란 ; 걱정말구 그거나 챙기세요. 아줌마 ; 간호사한텐 비밀이야. (손에 든 만 원짜리 두 장, 주머니에 찔러 넣고 간다) 소란 ; 건배! 외로운 밤은 오늘로 끝이야! 이제 다신 츄리닝 입은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꺼야. S#35. 오피스텔 / 밤 츄리닝 입은 대구, 명상하듯 가만히 앉아있다. (대구의 츄리닝은 3등급이 있다. 외출용, 동네용, 가정용. 집에서 입는 게 가장 후진 것. 지금 입고 있는) 대구 ; . . . 깜찍이한테 전화가 온다.... 전화가 온다. 핸드폰 본다. 아무 소리 없이 말짱하다. 대구 ;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아직 내공이 부족한가.... 다시! 깜찍이한테 문자가 온다.... 문자가 온다. 문자음. 보면 ‘오빠, 잠깐 만나. 깜찍이’ 라 찍힌 문자. 대구 ; 헉! S#36. 공 원 / 밤 가로등이 켜진 공원. 대구, 깜찍녀의 손을 잡고 끌고 온다. 터프하다. 대구 ; 말해! 갑자기 끝내잔 이유가 뭔지. 깜찍녀 ; 안 듣는 게 신상에 좋을텐데. 대구 ; 보고 싶단 뮤지컬까지 예매해서 보여줬는데 왜 이래? 깜찍녀 ; 흥! 그 잘난 C석. 로얄석도 아니고 A석도 아니고, 3층 꼭대기 보이지도 않는 C석. 대구 ; 너 치사하게 이럴래? 깜찍녀 ; 오빠의 모든 게 다 싫어졌어, 다! 그렇게 잘생겨 가지구 왜 그렇게 돈이 없어. 그리고 어쩜 그렇게 가난한 걸 부끄러워 하지 않는거야? 대구 ;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지금 내 나이에 그럼 뭘 얼만큼 갖고 있어야하는데. 이 들 옆으로 조금 떨어진 곳, 이동식 화장실이 서 있다. 화장실 안에는 100원짜리 휴대용 티슈를 손에 쥔 메리가 앉아있다. 밖에 귀를 기울이며 진지한 표정. 대구(E) ; 부모 잘 만나 운 좋은 몇 놈들 빼곤 내 또래 대한민국 남자들 다 비슷해. 깜찍녀(E) ; 그 딴 사고방식이 짜증 난다는거야. 그러니까 발전이 없지. 그래가지고 어디 평생 집 한 채 갖겠니? 메리 ; (혼잣말) 여자애가 당돌하네.... 대구 ; 너 왜 이래? 다음 달이면 우리 만난 지 백일이야. 경포대 여행 가기로 했잖아. 여행은 갔다 오고 헤어져 그럼. 깜찍녀 ; 밝히기는.... 야, 그렇게 돈도 없이 밝히니까 더 싫은거야. 대구 ; 너 정말 날 사랑하지 않았구나.... 나는 참 가슴이 아프다. 메리 ; 아 이거 애매하네..... 지금 나가기도 뭐하구. . .듣자니 미안하고.... 깜찍녀(E) ; 라면 먹으면서 맛있는 척 연기하는 것도 이제 싫고, 보이지도 않는 3층 C석에 앉기도 이제 짜증나. 대구 ; . . . . . 깜찍녀 ; 초밥이 먹고 싶어도 오빠 주머니 사정 생각해서 떡볶이 먹고 싶다고 거짓말하고, 눈에도 안 차는 선물... 싸구려 향수 나부랭이 그거 받고도 좋은 척 박수치고 웃고......내가 쓰는 향수, 적어도 5만원 이상 가는 것들이야. 오빠가 준 싸구려 장미향수, 그거 우리집 화장실에 뿌리고 있어. 메리 ; (숨 죽여 듣고 있다) 대구 ; 그래 미안하다 싸구려만 사줘서. 깜찍녀 ; 돈 없는 남자랑 사귀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이지 이제 알았어. 진심으로 헤어지고 싶으니까 제발 나 잡지 마. 깜찍녀, 잔뜩 퍼부은 다음 쌩하니 사라진다. 대구, 멍하니 서 있다. 화장실 안의 메리, 밖이 조용하다. 메리 ; (문 쪽으로 귀를 기울이며). . . 갔나. . .? . . . . .(밖, 조용하다) 갔나 부다.... 이제 마음 놓고 해야지.... (힘 주는) 읍......! 대구, 멍하니 서 있다가 발걸음을 뗀다. 터벅터벅 걷다가 갑자기 화가 나는지 앞에 보이는 화장실로 달려가 발로 걷어찬다. 대구 ; 흐으얍! 화장실, 크게 요동친다. 메리 ; (입 막으며) 읍!!!! 대구, 돌려차기 이단옆차기로 마구 화장실에 분풀이를 해댄다. 메리, 변기에 앉은 채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숨죽이고 있다. 화장실이 비틀비틀 움직인다. 메리 ; (앉은 채 벽을 잡으며) 안 돼.... 그것만은 안돼. . . . 대구, 문을 주먹으로 팡팡 찍어 내리친다. 울분의 주먹질, 플라스틱으로 만든 문이 점점 구겨진다. 메리, 안에서 기도하듯 손을 모으며 마인드 콘트롤을 하고 있다. 메리 ; . . . 나는 운이 좋아... 운이 좋은 편이야.... 걱정하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꺼야... 그럼 그럼.... 절대 안 일어나. 대구 ;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흐아아아압! 메리 앉아 있는 코앞으로 쑥 들어오는 주먹. 메리 ; (놀라) !!!!!!!! 들어온 주먹, 잠시 멈칫하며 머물러 있다 나가려고 하는데 잘 안빠진다. 메리 ; . . . (긴장으로 주시) 밖의 대구, 주먹이 들어가긴 했는데 안 빠진다. 대구 ; 으윽. . . . 대구, 주먹을 확 뺀다. 메리, 앞의 주먹이 확 빠져 나간다. 그 순간 밖의 대구과 눈이 딱 마주친다. 대구 ; (화들짝) !!! 메리 ; . . ..!!! 대구 ; . . . . .(메리를 보며). . . 메리 ; 뭘 봐요. 대구 ; (황당해 하며 시선 돌린다) 메리, 잠시 후 화장실에서 나온다. 대구, 벙 찐 표정으로 메리를 보고 있다. 메리 ; . . . . (뭔가 말을 하려 하다가..... 그냥 후다닥 달아난다).... 메리, 달아나고 대구, 황당해서 멍하니 서 있는데 화장실 문 열려 있다. 대구 ; (코를 잡는다) 으. . . . (숨을 참다가 버럭) 이봐요! S#37. 공원 일각 / 밤 공원 일각. 달아나는 메리. 대구, 따라간다. 화가 나 소리 버럭버럭 지르면서. 대구 ; 이봐요! 당신 미친 거 다 알아. 거기 서! 메리 ; (도망간다) 대구 ; (후다닥 따라잡아 뒷덜미를 잡는다) 메리 ; . . . .이거 놔요! 대구 ; 당신 미쳤어도 말은 알아듣지? 메리 ; . . . . .? 대구 ; 당장 이 동네를 떠나요! 메리 ; (같잖다)...뭐요? 대구 ; 밤마다 늑대처럼 나타나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자꾸 이렇게 무고한 동네 사람 놀래킬래요? 메리 ; 아니... 내가 들을려고 해서 그런 건 아니고.... 어쨌건 난 화장실에서 볼 일 보고 있던 죄 밖에 없어요. 대구 ; 그것부터 문제야. 정상인들은요, 이 시간엔 다 집에서 볼일을 봅니다. 신문이나 잡지 같은 걸 읽으면서 말이죠. 메리 ; 이보세요. 사람마다 각자 사정이 있는거지. 대구 ; 미친 사람 타이르고 있는 나도 참 웃긴 놈인데.... 어쨌든 당장 꺼져요. 메리 ; 뭐? 꺼져? 대구 ; 당신이 나타나면 동네에 이상한 일이 생긴대. 그러니까 얼른 이 동네를 떠나요. 메리 ; . . . (황당하다, 웃음이 터지는). . .하하하하하하. . . 대구 ; . . . .소름 끼쳐! 메리 ; 깔깔깔...... 대구 ; 당장 꺼지지 못해! (손으로 휘휘 내치듯 저으며) 가! 가! (하다가 확 밀치는데) 메리 ; (달려들어 손을 물어버린다) 우왕! 대구 ; 으아악! (손 잡고 펄쩍펄쩍) 메리 ; 화장실에서 나온 여자를 모독하다니! 너 한번만 더 나한테 걸리면 그땐 국물도 없어. (뛰어간다) 대구 ; (손 잡으며) 아흐으으으...... 대구, 아파 쩔쩔 매며 뛰어가는 메리를 본다. ‘아하하하하’ 높은 소리로 웃으며 은빛 머리를 흩날리며 나뭇가지를 타고 지붕을 타고 흰 치맛자락 휘날리며 날아가는 백발마녀로 보인다. 대구 ; 아.... 이 와중에도 영감이 떠오른다..... 펜! 볼펜! F.O S#38. 메리네 마루 / 아침 F.I. 도철, 가방에서 볼펜 12개들이 세트와 A4용지 한 팩을 꺼내놓는다. 도철 ; 어제 가져온 걸 안 꺼내놓고 갈 뻔 했네. 성자 ; 쯔쯔쯔..... 하는 짓이라곤 ........ 도철 ; 나, 국가에 섭섭한 게 많은 사람이야. 공직에 있어 좋은 게 뭐야. 성자 ; 사람이 잘다 잘다 어쩜 그렇게 쫌스러워? 빼내려면 판교나 송탄 신도시 개발 정보 같은 걸 훔쳐야지. 그렇잖아도 궁핍한 동사무소 비품은 왜 빼내와. 도철 ; 쉿! 남편 구속되는 꼴 보고 싶어? 성자 ; 구속될 만한 것 좀 가져와 봐 제발. 도철 ; 커텐 한 짝은 왜 뜯었어? S#39. 결혼식장 / 낮 화환이 가득 늘어서 있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결혼식장. 커텐 원피스를 입은 메리, 두리번거리며 들어선다. 금숙 ; 어머나, 얘 너 메리 아니냐. 메리 ; 어? 아줌마 안녕하셨어요. 엄마가요.... 요즘 좀 바쁘셔서요.... 금숙 ; 안다 알어. 입고 올 옷 없어서 안 온 거. 어여 부주하고 식권 받아라. 메리 ; 네....... 금숙 ; 너 우리 진경이 사시 패스한 남자랑 결혼하는 거 알지? 연수원 동기들 많이 왔으니까 괜찮은 신랑감 없나 열심히 찍어 봐. 니가 학벌하고 집안은 딸려도 인물은 좀 되잖니. 자신감 갖고 부지런히 찾아봐. 메리 ; 밥 부터 먹구요. 신부 쪽 식당 어디예요? S#40. 피로연장 / 낮 결혼식은 진행 중. 메리는 뷔페에서 혼자 열심히 밥 먹고 있다. 잔뜩 퍼다가 신나게 먹는다. 메리 ; (흐뭇) 혼자 먹어도 맛있다! 깔끔한 수트 차림의 멋진 남자, 급하게 걸어온다. 남자 ; 황메리씨 되시나요? 메리 ; (설렘과 긴장) 그런데요.... 남자 ; 신부 측 어머님께서 축가 좀 불러 달라시는데요. 축가를 부르기로 한 팀이 지금 차가 막혀서 못 오고 있대요. 메리 ; 그러죠 뭐. 초밥 세 개만 더 먹고 갈께요. 남자 ; (끌고 간다) S#41. 결혼식장 / 낮 메리, 경황없이 마이크를 잡는다. 피아노 반주 시작. 축가, 한동준의 ‘너를 사랑해’ 메리 ; 아침이 오는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 (신랑 신부 쪽 보는데 얼굴이 굳는다) 햇살 아래 잠든 너에게........우우우우... 신부 보며 웃고 있는 신랑. 신랑, 메리와 눈이 마주친다. 역시 얼굴이 굳는다. 메리 ; 너를 사랑해.... 영원히 우리에게 서글픈 이별은 없어... (서글픈 표정으로 노래한다) 하늘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우우우... 너를 사랑해... 노래 계속 흐르고....... 결혼식 끝난 후 금숙, 메리 손을 잡아 끌어 신랑 친구들에게 데려가는.... 금숙 ; 내 친구 딸이예요, 생긴 건 이렇게 이쁜데 여태 남자가 없어요. 작업 좀 걸어봐들. 친구1 ; 어떤 일 하시는데요? 금숙 ; 여자가 일이 뭐 필요해. 집에서 놀아요. 친구2 ; 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 금숙 ; 서울은 아니지만 뭐.... 4년제지. 졸업하고 논 지는 한 8년 됐나? 공습경보.... 웽웽웽 사이렌 소리 울린다. 메리를 빙 둘러 서 있던 남자들, 폭발물이라도 피하듯 동시에 두 세 걸음 물러선다. 메리 ; . . . . . . 친구3 ;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데요? 금숙 ; 아버지는 동사무소 다니고 엄마는 뭐 가끔 민박 같은 거 치고.... 얼마 전까지 집에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는데 그건 다 풀었지 아마. 메리 옆의 남자들 싹 흩어지고 메리, 혼자 서 있다. 커텐 원피스 입고 혼자 처연하게 서 있는 모습, 우스우면서도 애잔하다.... 금숙, 화환에서 뽑은 꽃을 한 아름 갖고 온다. 금숙 ; 아이구....화환이 한 두 개라야 말이지.... 메리야, 오늘 고맙다. 이거 집에 갖다 꽂아. S#42. 동네 거리 / 낮 햇빛 쨍한 거리. 꽃을 한 아름 든 메리, 흐느적 흐느적 걸어온다. 메리(E) ; 아줌마... 진경이랑 신랑은 어떻게 만났대요? 금숙(E) ; 소개로 만났지. 진경이가 강의 나가는 대학 있쟎아. 거기 교수가 소개해 줬어. 진경이 신랑 말야... 멀쩡하게 생겨갖구 공부만 한 쑥맥이야. 한 번도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댄다.... 메리 ; 난 그럼 남자였냐..... 무협지를 한 아름 싸들고 하드를 물고 지나가던 대구, 멀리서 걸어오는 메리를 본다. 흠칫 놀라 한 쪽으로 몸을 숨긴다. 풀 죽은 표정의 메리, 꽃을 들고 지나간다. 대구 ; . . . .왜 미친 여자들은 꽃에 집착하는걸까... 메리, 걸어가는데 눈물이 글썽하다. S#43. 양가위 헤어살롱 / 낮 거울 앞에 앉아있는 메리. 양가위는 옆에서 헛가위질 하며 메리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본다. 메리 ; 변신하고 싶어요. 내가 날 몰라보게 변신시켜 주세요. 양가위, 가위손처럼 빠르게 손을 움직여 메리의 머리를 흩날려 놓는다. 메리 ; (눈을 감는다. 눈물이 주르르) 메리, 눈을 뜬다. 메리의 머리, 사자대가리처럼 돼 있다. 꽃도 하나 꽂혀있고. 메리 ; . . . (울음을 터트리는) 으아앙. . . F.O. S#44. 무 대 메리의 꿈. 하얀 스모그가 가득해 몽상적인 무대. 흰 드레스에 화려한 컬의 가발을 쓴 메리, 뮤지컬 ‘팬텀 오브 오페라’에 나오는 Think of me를 부르고 있다. 메리 ; Think of me think of me fondly when we say good-bye... (잠시 목이 말라 침을 꿀꺽한다. 그 순간에도 노래는 흐른다. 립 씽크다) 가면을 쓴 오페라의 유령이 환상적으로 스르륵 다가온다. 메리 ; 오..... 팬텀! 이제 난 어쩌면 좋을까요. 내 사랑이 떠났어요. 그 남자가 날 떠났다구요. 대구(Echo) ; 그렇다면 당신은 이 동네를 떠나라! 으하하하하하..... 메리, 놀라 가면을 잡아챈다. 대구다. 팬텀 오브 오페라의 유명한 테마곡, 웅장한 ‘짠짠짠짠짜~’ 음악 나오며 으악 비명 지르는 메리. S#45. 메리 방 / 아침 핸드폰 벨 소리. 방바닥에서 쪼그리고 자던 메리 눈을 뜬다. 옆에서 울리는 전화벨. S#46. 공원 / 낮 신록이 푸른 나무들. 쨍한 햇살. 산들거리는 바람이 나뭇잎을 흔든다. 메리와 옛 남친, 결혼식의 신랑이 서 있다. 두 사람 말 없다. 어색한 눈빛 오간다. 신랑 ; . . . . 고맙다. 메리 ; 뭐가? 신랑 ; 그 날.... 결혼식장에 깽판치러 온 줄 알았어. 그런데. . . 축가까지 불러주고 얌전히 돌아가줘서 고맙다구. 메리 ; . . . . . . 신랑 ; 설마.... 그 동안 날 기다렸던 건 아니겠지? 난 혹시 니가........ 메리 ; 기다렸어. 신랑 ; . . . . . 메리 ; 나 3년 동안 너 기다렸어. 시험 붙으면 연락하겠지. 지금이 뭐 70년대도 아니구 고시붙었다고 마음이 바뀌는 촌스런 남자가 설마 있을까. 내 생각하면서,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겠지... 그러면서 기다렸어. 신랑 ; . . .. 미안하다. 1년 넘게 연락 없으면 단념 했겠거니 생각했어. 메리 ; 시험 붙었고 장가도 간다고 말은 해줬어야지. 신랑 ; 미안하다..... (선물 상자를 건넨다) 너 줄려고 신혼여행 때 산 거야. 원주민들이 직접 염색한 건데 행운을 가져다 준대. 메리, 상자에서 큼지막한 알로하 티셔츠를 꺼낸다. 유치한 색상, 알록달록한 하와이풍. 신랑 ; 잘 어울리겠다. 너 이런 원색 좋아했쟎아. 메리 ; 와이프도 니가 스물여덟에 포경 수술한 거 아니? 신랑 ; . . . . 메리 ; 우리 남이섬에 여행가서 손만 잡고 잔 거....... 니네 처가에 절대 말 안할 게 걱정마라. 신랑 ; (주머니에서 봉투 꺼내며) 이거 받아. 니가 처음 석 달 학원비 마련해 준거야. 거기다 조금 더 보탰어. 메리 ; . . . . . 신랑 ; 넌 참 좋은 여자였어. 하지만 이제 추억이다. 너도 좋은 인연 만나길 바래.. . 잘 살아 메리야. (뒤 돌아 가는데) 메리 ; 잠깐! 신랑 ; (멈춰선다. 돌아보면) 메리 ; 잠깐 있어봐. (봉투를 열어 돈을 꺼내본다) 작다! 신랑 ; ? 메리 ; 3년 동안 물가 상승률이 얼만데 겨우 이걸 가져와. 신랑 ; 야, 황메리.... 메리 ; 돈 많은 니네 장모님 성격 안 좋은거 알지? 내가 그 아줌마한테 해운대 민박집에서 너 빤스 입고 춤추는 사진을 보내야겠니. 신랑 ; 너 지금 나 협박하냐? 니가 감히 사법연수원생을 협박해? 메리 ; 너는 엄청난 위증을 했더라. 여자를 한 번도 사귀어 본 적이 없어? 난 그럼 남자냐? 신랑 ; 너 같은 여자랑 사귄 게 그럼 자랑이겠니. 메리 ; . . . .너 참 못났다. 신랑 ; 못난 건 니가 아닐까. 우리가 헤어져있던 3년 동안 발전이라곤 없잖아. 메리 ; 왜 없어. 나 3년 동안 하루도 노래연습 거른 적 없고, 뮤지컬 오디션도 빠짐없이 다 봤어.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 뭔가 내 안에서 이만큼 키가 컸을꺼야. 꼭 취직을 하고 통장 잔고가 늘어야 발전한 건 아니다. 신랑 ; 평생 그러구 살아. 너랑 헤어진 게 참 다행이라고 느꼈다 지금. 돈은 조금 더 부쳐줄게. 신랑, 서둘러 떠난다. 메리, 휭하니 혼자 서 있다. 메리 ; 나쁜 자식.... (눈물이 흐른다..... 숨을 고르고 서 있다가 쓱 닦고) 내가 울 줄 알아? 천만에요! 난 성공할꺼야. (벤치에 올라 수상소감)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힘든 시간이 길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실연을 당하고, 돈이 없어 밥을 굶고, 미친 여자로 오해받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이 때 갑자기 핸드볼 벨소리. 무협영화에나 나올법한 벅찬 음악이 들린다. 메리 ; ???? 뒤 돌아 있는 옆의 벤치에 납작하니 누워있던 대구,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는다. 대구 ; 여보세요. 메리 ; (경악) 헉! 대구 ; 벤치에 있는데요. (번쩍 손든다) 여기요. 보이시죠? 메리, 보면 저 멀리서 짜장면 배달 오토바이 달려오고 있다. 메리 ; . . . . 대구 ; 미안해요.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닌데.... 일어나 앉을 시점이 애매...(하더라구).... 벤치에 서 있던 메리, 날아올라 이단 옆차기로 대구를 향해 날아 가는데서....... 메리(E) ; 가끔 나는 생각합니다. 인생은 나에게 왜 이렇게 야박한가. 올 여름도 매미는 이렇게 울겠죠. 인생은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어어어어.... 메리 ; 흐이얍! 메리, 낡은 운동화 신은 발을 쭉 뻗는다. 대구 어깨를 강타하는 발. 대구 ; (쓰러지며) 윽! 메리, 대구를 걷어차고 땅으로 떨어진다. 메리, 발딱 일어나 대구를 미친 듯이 팬다. 대구 ; 앗 따거! 앗 따거! 메리 ; 인간도 아냐. 사람도 아냐. 대구 ; 일부러 들은 거 아니라니까요! 앗, 따거. 그만 때려요. 진짜 아퍼. 대구, 메리의 두 팔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메리, 발끈해 대구의 손을 문다. 대구 ; 으아악.... (메리를 확 밀치며) 그 때 문데 또 물고 있어. 메리 ; (밀쳐나가 벌러덩 주저앉는다). . . . . 대구 ; . . . . .괜찮아요? 메리 ; . . . . . .(멍하니).... 대구 ; (다가가 무릎 꿇고 앉으며) 이봐요. 다쳤어요? 메리 ; (앉은 채 두 발로 대구의 가슴팍을 뻥 차 넘어뜨린다) 대구 ; (벌러덩 나가 자빠지고) 중국집 배달청년, 태연하다. 둘의 싸움 관심 없다는 듯 벤치에 곱빼기 짜장면과 단무지와 젓가락을 놓고 있다. 젓가락을 하나만 놓고 철가방 문을 닫다가 시선 돌려 두 사람을 본다. 치고받는 두 사람. 젓가락 하나 더 꺼내 두 개를 나란히 놓는다. 배달, 두 사람을 향해 배달 ; 식대는 4천 5백원입니다. 메리 : 달아놔요! 하늘에 구름이 흘러간다. 메리, 머리가 수세미가 되고 종아리가 뻘겋게 까져 벤치에 앉아있다. 팔 다리와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있다. 저 쪽 떨어진 벤치에선 대구, 역시 머리가 엉망이 되고 추리닝 바지의 옆선 세 줄이 뜯겨져 덜렁거린다. 대구, 짜장면을 비비고 있다. 메리를 힐끗 본다. 메리 ; . . . . 대구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일부러 들은 거 절대 아닙니다. 맹세해요. 메리 ; . . . . . . 대구 ; . . . . (비벼서 한 젓가락 먹으려다).....시장하죠? 메리 ; . . . . 대구 ; 곱배기 시켰어요. 나눠먹읍시다, 젓가락도 두 갠데. 메리 ; 너나 쳐 먹으세요. 대구 ; 사람 참 까칠하네.... 그러니까 차이지. 메리 ; (째려본다) 대구 ; 근데 정말 3년 동안 연락도 없는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메리 ; ........... 대구 ; 와.... 세상에 그런 여자가 정말 존재하네요. 그래서 정신이 약간 힘드시게 된 건가요? 메리 ; 당신 이 동네 살아? 대구 ; 이사 온지 열흘쯤 되요. 메리 ; 직업 없이 노나? 대구 ; 놉니다. 하지만 저도 그래요. 지금 당장 보이는 건 없지만 내 안에서 뭔가 이만큼 키가 크고 있을 꺼라구요. 와.... 그 말, 찡했어! 메리 ; 댁은 어쩜 사람에 대한 예의가 그렇게 없나? 대구 ; 그러는 당신은? 그날 밤 화장실에서 다 들었잖아요, 나 차이는 거. 메리 ; 더 이상 마주치지 않았음 좋겠네요. (일어서는데) 대구 ; 운동화 좀 사 신어요. 사람들이 보면 진짜 미친 여자로 알겠네. 메리 ; 댁의 추리닝도 위협적이예요. 대구 ; 밤엔 돌아다니지 마세요. 무서워요. 메리 ; (뒤돌아 다가간다) 대구 ; (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