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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62 - 공회전 1
S#1. 전산과 건물 내부 / 낮
강의가 끝났는지 학생들이 우루루 나오고 있다. 그 중에 지원이 혼자 나서고 있다.
지원 걸어오다가 문득 보는 곳. 남희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다.
지원이 부르려는데, 남희는 혼자의 생각에 빠져서 지원은 돌아보지도 않고 점점 급하게 걸어서 지나쳐간다.
지원, 이상해서 돌아본다.
S#2. 복도 다른 곳
거의 뛰다시피 걸어오는 남희. 그 뒤로 지원이 복도 저쪽에서 나타나며 남희를 본다.
남희는 걸어오며 옆의 방마다 조금씩 열어보고 다시 닫고 걸어오고 그렇게 세 번쯤 하다가 어느 방으론가 들어간다.
지원, 보고 있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가온다.
거의 남희가 들어간 방 앞으로 왔을 때, 방안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 (의자 정도를 걷어차는)
지원, 움찔해서 닫혀진 방문을 돌아본다. 그 요란한 소리가 한번 더 나고 조용해진다.
지원 문을 열려다가 그만두고 망설이다가 돌아서서 오던 길로 간다. 가는데 한번 더 들리는 요란한 소리.
S#3. 박교수 연구실 / 낮
박교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세상 모르고 작업 중이다.
열중할 때 늘 그렇듯이 제대로 의자에 붙어앉지도 못하고 들썩이며 완전히 빠져있다.
E (노크소리 )
박교수, 듣지 못한다. 한번 더 노크소리가 들리고 남희가 들어선다. 열중해있는 박교수를 보고 좀 한심해지는 기분.
남희 : 교수님.
박교수 : ....
남희 : (다가서며 좀 더 크게) 교수니임.
박교수 : (그제야 멍청한 얼굴로 남희를 보더니) 어..안녕. (다시 모니터에 집중한다)
남희 : 지금 두시 다 되가요. 그분들 오실 때 다 됐다구요. 랩에 가서 기다리셔야죠.
박교수 : (건성으로) 어.
남희 : (기다리다가 가까이해서 또박또박) 이제, 그만. 일어나시라구요.
박교수 : (불쌍한 얼굴로 남희를 보며) 쪼끔만. 응? 이거 거의 다 풀려 가구 있어. 이 고비만 넘기면 뭔가 풀릴거 같애. 그니까 조금만 응?
(얘기하는 도중에 이미 작업으로 정신이 넘어가고 있다)
남희 한숨을 쉬며 보다가...
남희 : 그럼 그분들을 일루 모시고 올까요? 여기서 말씀 나누시겠어요?
박교수 : (건성) 어..좋지. 그러지 뭐.
남희 할수없어서 돌아선다.
S#4. 박교수 랩
문을 열고 들어서던 남희 잠시 한심해서 선다.
가운데 테이블에 잔뜩 너질러져 있는 과자며 음료수 빈병, 종이컵들들. 랩 안에는 아무도 없다.
남희 얼른 쓰레기통을 들고 와서 그것들을 치우고 있는데.
E (노크소리)
남희 : 네 들어오세요. (하며 돌아서는데)
벌써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50대 남자(실장)와 30대 남자(대리).
대리 : 여기가 박기훈 교수님 연구실 맞지요?
남희 : 어머. 혹시 대영산업에서 오신 분들이신가요?
대리 : 그런데요. 오늘 약속을 했는데..
남희 : (놀라서 시계를 보아가며) 일찍 오셨네요. 교수님께서는 지금...(하다 보면 아직 쓰레기통을 들고 있었다. 당황해서 슬그머니
한쪽에 치우며) 교수님께서는 지금 연구실에 계신데.. 그러니까 여기는 랩이구요. 교수님 방이 따로 있는데.
지금 거기서 기다리시거든요. 저기.. (슬금슬금 문으로 가며)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해드릴게요.
실장은 권위적인 얼굴로 랩의 실내를 둘러보다가 문득 옆의 책상 위에 놓인 것을 들어 본다.
거기에는 만화책이 여러권 쌓여있었다. 남희 당황해서.
남희 : 저희 랩에 외국에서 온 교포가 하나 있는데.. 우리말을 배우느라고.. 이리 주세요. 제가 치울게요.
실장, 못마땅한 얼굴로 만화책을 남희에게 건넨다.
그때 열린 문으로 해성이 들어서며.
해성 : 아 계셨구나. 이거 갖다드리라고 해서요. (하며 들고온 복사물 한 뭉치를 남희에게 건넨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남자들을 향해
어정쩡하게 인사를 하고)
남희 : 어 그래 고마워. 내가 나중에 연락할게.
하는데 만화책을 들고 있던 손으로 받던 자료가 떨어지면서 바닥에 흩어진다.
남희 당황해서 남자들에게 웃어보이며 부리나케 줍고. 해성도 도우면서 힐끔거리며 남자들을 본다.
실장은 아주 맘에 안든다는 듯한 얼굴이다.
S#5. 이교수 랩
만수, 명환 앞에서 눈치를 보고 있고. 명환 보고서를 넘기며 읽고 있다.
명환 : 지금 이거 석사논문 주제라고 잡아온거 맞니?
만수 : 에이.. 당연하죠. 제가 어디 감히 박사논문 주제를 잡아왔겠어요.
명환 : (만수를 본다)
만수 : (찔끔)
명환 : 학사논문도 이렇게 진부한 건 안해. 논문이라고 할 때는 뭔가 너만의 연구라는 게 있어야 되는 거 아냐?
만수 : 저라구 어디 빛나는 연구를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된게 내가 할려구 하는건 다른 인간들이 벌써 다 해버렸드라구요.
그러니 내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어야죠. 아니 어뜩하면 인간들이 그렇게 다 나하구 생각이 같은거죠.
명환, 으이그해서 한 대 치고 싶은데 들어서는 해성.
해성 : 다녀왔습니다.
만수 : (얼른) 오오 그래 해성아. 수고했다. 이제는 전산과 정도는 가볍게 다녀오는구나. 도중에 길도 안 잃어버리고. 장하다.
명환 : 자료 남희씨한테 전달했지?
만수 : (거의 동시에) 우리 남희 선배는 안녕하시겠지?
해성 : 남희선배님께 전달했구요. 그리고 별로 안녕해보이지 않았는데요.
명환 : 왜.
만수 : 어째서. 어디 아프대? 왜?
해성 : 어떤 남자들이 왔는데 양복을 입었는데. 인상이 고약했어요. 그 남자들 때문에 아주 초조해보였어요.
만수 : 남자아?
S#6. 박교수 연구실
남희가 커피를 쟁반에 받쳐와서 나누는데 그 앞에 앉아있는 실장과 대리.
박교수는 거의 선 채로 컴퓨터의 마무리 작업을 하며.
박교수 :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요거만 저장하면 됩니다. 다 되갑니다.
실장 : 아 예 천천이 하세요. (하고는 남희에게) 아가씨. 나는 커피 말고 다른 걸 줬으면 좋겠는데.
남희 : 어뜩하나. 여기 커피 말고 다른 게 없는데.
실장 : 그럼 찬 물이나 한잔 줘.
남희 : 네.
대리 : 나도 물 한잔 더 줄래요. 운전을 오래 했더니 갈증이 나서.
남희 : (좀 언짢아지고 있지만 참고 웃으며) 네. 잠시만요.
남희 가는것과 엇갈려서 박교수가 드디어 이쪽으로 오며.
박교수 : 죄송합니다. 오시는 길은 편안하셨구요? 아참 우리 학교에 벚꽃이 엄청 피었는데 보셨어요?
실장 : 여기 벚꽃이 있었습니까?
박교수 : 에구 저런. 그걸 못 보시다니. 그럼 우리 아예 나가서 벚꽃 밑에서 얘길 나눌까요.
실장 : (대답을 못하는데)
대리 : 저.. 바로 계획을 듣고 싶은데요. 메일은 받았습니다만 거기 보니까 전자동화시스템을 생각하신다구..
박교수 : 메일? 아.. 메일. 남희양.
남희 : (물을 준비하며) 네.
박교수 : 좀 설명드려. 그 메일 남희양이 보낸거잖아.
남희 : (급히 물을 갖고 오며) 창고에서 로봇을 작동시킬 때요. 책같은 거처럼 작고 찢어지기 쉬운 것들도 모두 자동화 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선데요.
실장 : (남희를 보고 박교수를 보며) 저 아가씨가 메일을 보냈다구요?
박교수 : 아이 이런이런. 소개를 안 시켜드렸구만. 이쪽은 우리 랩을 책임지고 있는 학생입니다. 박사 2년차구요. 인사드려.
남희 : (새삼 인사하며) 안녕하세요. 신남희입니다.
실장 : 아니 그러니까 이 아가씨가 우리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는 겁니까?
박교수 : 그렇죠. 저는 교수밖에 안되지만 이쪽은 랩장이니까 사실은 이쪽이 실세입니다. 하하.
실장 : 어쩐지.. 그래서 그런 만화같은 생각을 했었구만.
남희 : (저도 모르게 찡그려진다) 만화같다니요.
대리 : 전자동 시스템 말입니다. 아직은 우리 로봇 기술이 그렇게 작고 부드러운 것까지 다를만큼 발전되있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남희 : 그건 로봇 팔의 재질을 소프트한 걸로 바꿔주면 되는 문젠데요.
박교수 : 그렇다는데요.
실장 : (아예 남희는 보지않고 박교수를 향해) 아무래도 안전하게 수동 식을 겸비한 방식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겟어요?
박교수 : 남희양 생각은 어때?
남희 : 완전자동식이 가능한데 굳이 수동식을 병행하는 건 이해가 안되는데요. 소프트한 재질이 문제라면 그건..
실장 : (자르고 박교수에게) 우리쪽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이게 급한 아이템이라서요.
박교수 : (남희를 돌아본다)
남희 :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에 할수 있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실장 : (짜증나는 듯 남희를 보며) 허어 참. 우리는 시험용으로 해보다가 안되면 첨부터 다시 하고..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가씨.
박교수 : 일주일. 일주일 뒤에. 시스템 작업 결과를 보는 겁니다. 그걸 보고 판단하면 어때요.
남희 : (놀라서 박교수를 보는)
대리 : 정말 일주일 안에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박교수 : 글세요. (남희를 보며) 어때 나올 수 있을까?
남희 : ... (마음 다잡고)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박교수 : (만족해서) 충분하다는데요. 하하
S#7. 이교수 랩
문이 벌컥 열리면서 이교수가 들여다본다.
이교수 : 다들 있니?
작업을 하던 명환, 중희, 만수, 정태, 해성 등이 분분이 일어선다.
이교수 : 대성반도체에서 연락이 왔어. 4차 테스트에서 에러가 났대.
명환 : 예? 그럴 리가 없는데..
이교수 :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런 일이 생겻대잖아 지금. 인공지능랩에 연락해서 내일 중으로 미팅 시간 잡어. 오후에 시간이 비니까
그때로 잡으면 좋겠고. 우리 랩에선 모듈제작을 새로 해야할 거 같으니까 각오들 하고 있어.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이 문을 쾅 닫고 나간다.
남은 아이들... 다들 맥이 풀리는데.
만수 : 아아참. 이래서 내가 제대로 논문을 준비할 수가 없대니까요. 도대체 3차까지 멀쩡하다가 왜 4차에서 에러가 난단 말입니까?
이게 다 내 논문에 대한 방해공작이라고 봐.
명환 : (미워서 만수를 흘기고 모두에게) 들었지? 중희야. 대성에 연락해봐. 테스트 과정을 잘 좀 알아보라구.
중희 : 예.
명환 : 정태하고 해성인 내일 전산과하고 미팅하기 전에 다시 한번 검토해보고.
정태 : 예.
해성 : 네.
명환 : 만수는 논문땜에 바쁘니까 냅두고.. (문으로 가며) 나 지능제어랩에 다녀올게.
만수 : 제가 갈까요. 거기 남희선배 본지도 오래됐는데..
명환, 따라온 만수의 코앞에서 문을 닫아버린다.
S#8. 박교수랩
남희와 지원 규한 마이클.
남희 : 지원이 니가 관절 모터 부분을 체크해줄래? 내일 오전까지는 마쳐줘야겠는데.
지원 : 그럴게요.
남희 : 규한인 팔 동선을 좀 체크해주고. 너도 내일 오전까지 해줘.
규한 : 어이 아침까진 무리라구요.
남희 : 왜.
규한 : 그게 물리적으로 밤을 꼬박 새워야 되는 분량인데요.
남희 : 꼬박 새우면 되잖아.
규한 : 어이참. 도대체 일주일 안으로 결과를 낸다는 게 말이 되는 계획입니까? 교수님은 참...
남희 : (잘라서) 내가 된다구 했어. 그러니까 날 봐서라두 좀 해줘.
마이클 : 규한이형 나도 도와줄게. 나 리포트 다 썼어. 할 수 있어.
남희 : 마이클 너는 웹사이트 뒤져서 로봇팔 재료 좀 알아봐. 어떤 걸 찾아야 되는지는 알지?
E (전화벨소리)
남희 : (수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지능제어랩... 엄마? 왜요.....(마음이 바빠서 퉁명스럽다) 글세 시간없어요.
시간도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구요.
아이들, 각자 자리로 돌아가는데.. 열린 문으로 들어서던 명환, 남희를 본다.
남희 : (전화에만 정신이 팔려서) 글세 맞선같은 소리 좀 제발 그만해요좀. 내가 지금 얼마나 바쁜지 얘기했잖아요. 그리구 나 결혼안해.
안할거니까 그냥 나 잊어버려줘요 예? (화나서 들으며) 글세 무슨 박사구. 의원보좌관이구 남자 안 만난다니까.
안만나요. 끊어요. 엄마 끊어요오..
수화기를 쾅 내려놓고 돌아서다가 명환과 시선이 마주친다.
명환, 자기도 어색해서 우물거린다.
S#9. 전산과 휴게실
명환이 음료수를 들고 와서 기다리는 남희에게 놓아주며.
명환 : DSP칩 4차 테스트에서 문제가 생겼대요. 이번 주 안으로 공장 측에 보완책을 건네줘야 할 거 같은데.
남희 : 그럼 우리 랩에서는 팔로우챠트까지만 준비해가면 되는거죠?
명환 : 예. 내일 오전 중에 프로그램 데이터 자료를 먼저 저희쪽에 보내주시면 되구요.
남희 : 내일 오전까지요?
명환 : 우리 교수님은 미팅을 내일 오후에 하셨으면 하시든데..
남희 : (한숨이 나오는)
명환 : 그쪽 랩이 지금 바쁜가부죠?
남희 : 예 좀.. 갑자기 일이 겹치네요.
명환 : 꼭 그렇죠. 문제가 생겨두 한꺼번에 생기고.. 사고가 나두 연달아 나구.. 좋은 일은 가뭄에 콩 나듯이 생기는데 말이죠. (웃는데)
남희 : ... (긴장이 되어있다가 자기도 좀 웃으며) 선배님은 언제나 여유가 있으시네요.
명환 : 여유가 아니라 어느정도는 자포자기죠. (웃고.. 망설이다가) 집에서 선을 보라고 합니까?
남희 : 아.. 전화...들으셨어요?
명환 : 예.. 그게.. (하하 어색하게 웃는)
남희 : 그냥 우리 어머니 취미세요. 엄마는 여자가 시집을 못가면 인생실패자라고 생각하셔서... (역시 어색하게 웃는)
명환 : 그건 남자두 마찬가진데요. 우리 집에서두 나만 보면 아주 불쌍하게 쳐다봅니다. 전 벌써 한번 실패했잖아요. (웃다가) 안 드세요?
찬 거 말고 뜨거운 걸로 드실래요? (엉거주춤 일어선다)
S#10. 엔진랩 야외 천막
동현이 두리번거리며 천막 쪽으로 온다. 천막 앞에는 만들다 만 자작자동차가 있고. 주위에 작업하다 만 공구들이 흩어져 있고.
동현 : 추자현! 어이 추자현.
천막 안에서 기름칠이 잔뜩 되어있는 자현이 뭔가를 들고 나오며.
자현 : 추자현이 여기 있슴다. 왜요.
동현 : (자현의 꼴을 아래위로 보며) 넌 어뜩게 된 게 맨날 기름칠을 화장처럼 하구 다니냐. 남들이 널 보면 기계과는 무슨 수리공처럼
뚝딱거리는 것만 배우는 줄 알거 아냐.
자현 : 솔직히 저는 컴퓨터 앞에서 시뮬레이션 하는 게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습니다. 실제루 이렇게 뚝딱거려야 속이 다 시원해지는 걸
어뜩합니까?
동현 : 너 요즘 한마디두 안 지구 말대답하는 거 알어?
자현 : 기죽지 않고 굳세게 살아가려다보니 인간이 이렇게 됐습니다. 뭐 시키실 일 있으십니까?
동현 : 교수님께서 부르신다.
자현 : (울상이 되며) 왜요..
동현 : 왜는 알아서 뭐할래. 맘에 안드는 용건이면 안 갈거냐?
S#11. 기계과 랩 내부
정교수가 학생들과 작업을 하며.
정교수 : 우리 2호차 제작발표회가 언제인지 알지?
자현 : (그 옆을 따라다니며) 알고 있습니다.
정교수 : 그래서 우리 랩이 지금 얼마나 바쁜지도 알겠구만.
자현 : 물론입니다. (긴장하고 있다)
정교수 : 그런데 자작자동차 대회에 나가게 이틀이나 빼달라구?
자현 : 일생일대의 소원입니다. 교수님. 부탁합니다.
정교수 : (저만치서 다른 작업 중인 동현에게) 여기 얘. 랩일에서 빼두 되겠어?
동현 : (돌아본다)
자현 : (재빨리 교수가 안보게 두손으로 비는 시늉)
동현 : 가기 전에 맡은 일만 다 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자현 : (재빨리) 할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정교수 : (그제야 자현을 돌아보고) 그리구 니가 만든 자작자동차.
자현 : 예 교수님.
정교수 : 차축에 문제가 있어 보이던데.
자현 : 그럴 리가 없는데요.
정교수 : 그런 거 끌구 나가서 사고치고 싶어? 좋아. 자동차대회에 나가는 거 좋은데.
자현 : 캄사합니다. 교수님.
정교수 : 동현아.
동현 : 예.
정교수 : 니가 같이 가줘라.
동현 : (놀라서) 예?
정교수 : 얘만 보내면 열에 아홉 사고칠거니까. 가서 감시하라구.
동현 : 그렇지만 여기 랩일은...
정교수 : 우리 학교 이름을 걸고 나간대잖아. 가서 학교 이름 단 차가 사고 치는 걸 뵈줘야겠어?
동현 : (좀 황당한데)
정교수 : (다른 거 점검하는 척 하며) 어제 XX대에 김교수가 전화했어. 자기네 학생들이 만든 차가 이번에 일등을 할거니까
와서 보라고 하드만.
동현과 자현 서로 마주 본다.
정교수 : (흠흠... 지나가는 말처럼) 난 못가니까 가서 보구와. 그리고.. 이왕이면 그 차를 앞질러보든가.
(괜히 저쪽으로 가며) 어이. 데이터 나왔나?
자현, 교수가 안보는 뒤에서 신나게 춤을 춰보인다. 동현 그저 한심하고.
S#12. 민재 사무실 앞 / 밤
자현이 신나서 온갖 폼을 잡으며 뛰어온다. 문 앞에서 한번 더 쇼를 하고는 문을 벌컥연다.
S#13. 민재 사무실 내부
컴퓨터 앞에서 대욱과 작업을 하던 민재 돌아본다. 자현이 신나서 뛰어들며.
자현 : 우하하하하. 여러분 여기 잠깐 봐주십쇼. 여기 이 사람이 바로 이번에 자작자동차 대회에 나가서 우리 학교 이름을 빛낼
그 이름도 빛나는 추자현입니다. 네.
경진,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서 컵라면을 먹고 있다가..
경진 : 그래 어서 와라. 빛나는 자현아. 여기 컵라면 하나 남았으니까 먹어라. 불어터지기 전에.
자현 : 아이구우.. 이렇게 축하파티까지 준비되있다니.. 아이그 좋아라.
민재 : (설레설레 다시 대욱에게 모니터를 가르키며) 디자인은 좋은데 좀 더 기능성 쪽을 생각해달라는거야.
대욱 : 그 말 나올줄 알았어. 아무래도 나이드신 분들은 이런 디자인을 이해 못하시는 모양인데요. 이건 말이죠.
민재 : (잘라서) 기능성. 실용적이고 쓰기 편한 기능성.
대욱 : 알겠습니다. 알았다구요.
민재 : 그리고..
하는데. 뒤에서는 자현이 정교수의 말을 경진에게 해주느라고 낄낄대고 떠들고 있다.
민재 참으며 돌아보며.
민재 : 거기 여자 두분.
경진 : 왜요 남자 사장님.
민재 : 여기가 동네 미장원입니까. 분식집입니까. 니들 꼭 여기까지 와서 라면냄새 풍기면서 떠들어야겠냐?
경진 : 뭔소리를 하는거야. 우린 널 도와주러 온 엔젤들이야. 돈 대신 머리와 시간을 투자해줄 엔젤.
민재 : 그럼 일을 해라. 경진이 넌 좀전까지 전화통화만 디립다해대드니 이젠 자현이까지 붙잡고 수다냐. 여자들은 그렇게 일하냐?
경진 : 이민재 아무래도 사장이 되드니 권위주의 차별주의자가 되가는 거 아냐? 거기서 여자가 왜 나와.
민재 : 너 하는 꼴이 그렇잖아.
경진 : 그럼 나만 갖고 얘기해. 왜 여자루 일반화를 시켜.
민재 : 어쭈.
경진 : 나야말로 어쭈다. 수다떨구 먹어가면서 일하는 걸로 치자면 남자들이 한수 위지. 남자들은 모든 비즈니스 약속을 점심때,
아니면 저녁때, 아니면 술집에서 하잖아. 밥먹고 술먹지 않으면 일이 안되냐?
자현 : (대욱에게) 얘들 왜 이래. 얘들 나 오기 전에 싸우고 있었냐?
대욱 : 뭔진 몰라도 둘이 분위기가 좀 이상하긴 했어.
자현 : 왜?
민재 : (그만두자싶어서 다시 컴퓨터로 돌아앉는)
경진 : 왜긴 왜야. 내가 심술이 나있으니까 그렇지.
자현 : 왜 심술이 났는데?
경진 : 라면 먹으라고 끓는 물까지 넣어줬는데 안 먹잖아.
자현 : 누가.
경진 : 누구긴 누구야. 이민재라고 웃기는 인간이지.
자현 : 그럼.... 이게 그 ..라면?
자현, 먹던 것을 어정쩡하니 보고.. 민재. 으이그.. 머리를 두손으로 긁어버린다.
S#14. 캠퍼스 외경 / 밤
밤.... 건물... 불켜져 있는 방들...
S#15. 박교수 랩
환하게 불이 켜진 빈 방... 주욱 돌아보면 남희가 혼자 앉아서 작업을 하고 있다. 주위에는 자료들이며 디스켓들이 어지러이 널려져있다.
남희 힘이 든 듯 목 뒤를 만지고 움직여보다가 한숨을 쉬고 다시 작업에 몰두한다.
S#16. 전산동 건물 앞 / 아침
지원이 오고 있다. 마악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저만치서 지민이 달려오며.
지민 : 언니. 지원언니.
지원 : 일찍 나왔네. 수업있어?
지민 : 어 수학... 미치겠어. 9시 수업이 뭐야. 9시면 꼭두새벽이잖아. 수학시간에 애들이 반은 자고 있다구.
지원 : 찬물로 세수하고 들어가. 아까운 수업시간 날리지 말구.
지민 : (하품하며) 마이클 오빠는 분명히 결석할 거 같은데.
지원 : (들어가려다말고) 왜.
지민 : 어제 밤샜잖아. 하여간 언니네 랩 우리 과에 유명해졌어. 아침에 우리과 보드에 그 결투 얘기가 실린 거 알어?
우리 과 애들 다 흥분해있다구. 이럴 수가 없다면서..
지원 : 결투라니.
지민 : 언니네 랩에 규한이선배라구 있지? 그 선배하구 마이클하구 둘이서 우리 과의 애들을 다 깼대.
나중에는 4대 2로 했는데도 무참하게 깨졌다는 거야.
지원 : 무슨 소리야?
지민 : 아유참. 온라인 게임말야. 우리 과 애들이 저번부터 벼르고 있었나봐. 그래서 어제 날 잡구 열명 정도가 돌아가면서
도전했대는 거야. 결과는 완전 케이오패.
지원 : (싸늘해진다)
지민 : 다음 주에 한번 더 도전한대. 언니네 랩에서는 일 안하구 맨날 게임만 하나봐. 그치?
S#17. 박교수 랩
남희와 아이들이 회의 중. 마이클은 거의 졸고 있다.
남희 : 지원이 수고했다. 모터프로그램은 이걸루 됐구..마이클. 어떻게 됐어.
마이클 : 지금 찾고 있는 중이야. 웹사이트 뒤지는 거 이거 넘 어려워. 마이클 아주 고생하고 있어. 진짜야.
지원 : (마이클을 말없이 본다)
남희 : 급한거야. 좀만 더 부지런히 찾아봐줘. 알았지?
마이클 : 오케이. (하품)
남희 : 규한이는.
규한 : 아직 못 끝냈는데요.
남희 :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는데.
규한 : (생글거리며) 솔직히 말하면 시작도 못했어요. 어제 밤에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거든요.
남희 : 그럼 어뜩해. 이거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뭔데.
지원 : 어제밤 11시부터 오늘 아침 6시까지 온라인 게임을 햇다고 들었는데.. 그게 이거보다 중요햇니?
규한 : (잠깐 당황하다가) 와우.. 구지원.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몰랐는데.
남희 : (굳었다) 정말이야?
마이클 : (찔끔해서 얼른 서류를 뒤지는 척 하고)
규한 : 에이.. 사나이들의 약속이었어요. 알잖아요. 이런 약속은 안 지킬 수가 없는 거였다구요.
남희 : 그래서 니들 사니이들 약속은 그렇게 중요하고. 내가 랩장으로 업체하구 한 약속은.... (하다가..참고...) 그만두자.
오늘 안으로 할 수 있겠어?
규한 : (일어서며) 노력해볼게요. 일단 강의가 있으니까 거긴 가봐야겠죠.
마이클 : (슬그머니 따라 일어나며) 나두.. 강의 있어. 다녀와서 열심히 할게요. 약속해.
둘 나가고.. 남희, 잠시 마음을 진정하며 앉아있다.
지원 : (앞의 것들을 챙기며) 좀 더 강하게 말했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남희 : (자기 자리로 가며) 화낸다구 어제밤을 돌릴 수 있는 것두 아니잖아.
지원 : 오늘 오후에 지능랩하구 미팅있다면서요. 자료 준비해야 된다구 들었는데.. 정태가 어제 전화해줘서 알았어요. 그 준비는..
남희 : 내가 대충 햇어. 어제 밤에.
지원 : 선배 혼자서요?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닐텐데.
남희 : 니들한테는 다른 일 시켰잖아. 그냥 내가 했어.
지원 : (남희를 본다)
남희 : (시선을 피하며) 그냥.. 내가 할수 있는만큼만 했어.
지원 : (뭔가 말하려다가 그만둔다)
S#18. 소형 세미나실
이교수 : (보던 자료 탁 덮으며) 이런식이면 곤란한데요.
박교수 이교수 남희 명환이 자료들을 놓고 앉아있다.
박교수 : 뭐가 잘못됐습니까
이교수 : 박교수님쪽에서 ROM에 입력할 program을 작성해오기로 한거 아닌가요. 근데 flow chart까지 밖에 안돼있잖아요.
이러면 저희쪽이 module 제작 준비를 아무리 한들 일을 진행시킬 수가 없잖아요
박교수 : (뭔소린가 그제서야 남희가 작성한 자기쪽 보고서 넘기다가) 남희양?
남희 : (기가 죽으며) 이번에는 flow chart 작성 정도까지 하면 될거 라고 생각했는데요.
이교수 : 그건 우리쪽 하드웨어 제작 진도에 대해 전혀 숙지를 안했다는 말이니?
남희 : (할말없고)
이교수 : 박교수님. 프로젝트는 학생을 보고 맡긴게 아니라 교수를 보고 맡긴거에요. 이렇게 뒷짐지고 계시면 어떡하자는 거죠?
이교수 말은 박교수에게 하고있지만 실은 남희를 혼내고있는 중이다.
박교수 : 남희양이 요즈음 새프로젝트 준비 땜에 좀 바빴거든요.
이교수 : 여기 명환이는 그 세배일을 하고 있어요.
남희 : (명환을 본다)
이교수 : 정명환.
명환 : 네.
이교수 : PCB 제작 부분은 어떻게 하기로했어?
명환 : 반도체동에서 다음주 까지 제작해주기로 했습니다.
이교수 : 시간이 없는데. 니가 남희가 못한 프로그램 짤수 있겠니?
명환 : (곤란해서) 저...그게..(남희를 보면)
이교수 : 할 수 있다는거야 없다는거야.
남희 : (쥐구멍이라도 찾고싶은 얼굴)
박교수 : (자기도 기가 죽어서) 아..그러면 되겟네.. 서로 돕고 사는 게 좋은거니까. 하하. 그럼 이건 명환군이 해주고..
남희 :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맡은거니까. 제가..
이교수 : (박교수에게) 언제까지 가능한데요.
박교수 : 남희양 언제로 하지?
남희 : 일주일 뒤쯤..
이교수 : (자르고) 너무 늦어요. 대성반도체 일정과도 맞춰야죠. (남희에게) 이틀내로 충분히 가능하지않니?
남희 : 네.. 이틀..알겠습니다.
이교수 : 그럼 이틀 뒤에 다시 보죠
이교수 일어선다. 아이들 일어나고.. 박교수 이교수의 뒤를 따라나가며...
박교수 : 이교수님. 오늘 벚꽃 보셨어요? 일정이 빡빡할수록 그런 걸 보고 살아야 되는건데. 가는 길에 보실래요?
명환, 자료를 챙기면서 남희의 눈치를 본다.
남희 선채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책상만 내려다보고 있다.
S#19. 복도
나란히 걸어오는 남희와 명환. 명환은 굳은 얼굴의 남희를 슬쩍 보며 걷다가 괜히 웃으면서.
명환 : 맘에 담아두지 마세요. 우리 교수님 성격이 원래 직선적이세요. 우리야 매일 한번씩 당하는데요 뭐.
조용히 지나가는 날은 뭔가 허전하고 그러죠. 하하.
남희 : (웃지 않는다)
명환 : (더 웃지 못하고) 요즘 일에 과부하가 걸려있어 보이는데 도울 거 있으면 말해요. 나두 나중에 힘들면 지원요청할게요.
남희 : (멈추더니) 선배님은 제 몇배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명환 : 그거야 말이 그런거지..
남희 : 이건 일의 양이 문제가 아니구. 다른 문제일거에요. 먼저 가겠습니다.
남희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명환 더 쫓지 못하고 보는...
S#20. 박교수 랩
만수가 책상에 걸터앉아서 떠들고 있는 중이다.
마이클은 그 앞에 앉아 듣고 있고. 규한은 작업을 하면서 반은 이쪽에 참견하고 있고.
만수 : 내가 한가지 충고를 하겟는데 말이야. 석사논문 그거..너무 앞서 가면 안돼.
교수나 선배가 이게 뭔지.. 응? 이게 뭐하자는 소리인지 정도는 이해할만한 걸 골라라 이 얘기야.
날 봐라. 너무 앞서나가는 논문 주제를 잡았드니 아무도 이해를 못하잖아. 이거 진짜 괴롭다.
마이클 : 그래서 형 논문 주제가 뭔데.
만수 : 짜아식. 아직 대학두 졸업안한 주제에 들으면 아냐?
마이클 : 그러니까 말해봐. 나도 모르는 거면 형은 진짜 선구자야.
만수 : 선구자가 무슨 소린지는 알어?
마이클 : 에헤.. 일송정이야 그거. (노래하는) 일송정 푸른 솔은...
만수. 신이 나서 온갖 폼을 잡으며 같이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하고.
규한도 흥얼대며 따라 부르는데 들어서는 남희. 좀 화가 나서 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다가.
남희 : 니들 그렇게 시간이 남아도니?
만수 : 오우 마이 남희씨. 아이 미스드 유. 아이 원티드 유. 아이..
남희 : (농담 받아줄 기분이 아니다) 넌 이제 남의 랩까지 와서 놀자판이야? 느네 랩에선 니 맘대루 떠들지 못하니까
만만한 우리 랩에 와서 애들 붙잡고 노는거야?
만수 : 에헤이.. 왜 또 이렇게 날카로우시나. 뭐에요? 예? 누가 나의 남희씨를 건드린거에요? 누굽니까? 내 당장 가서..
남희 : 정만수.
만수 : 그대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뛰는 이 가슴.
남희 : (정말 화가 나서) 너 이제 그만해.
만수 : 그대가 나를 바라볼 때마다 멈추는 이 심장..
남희 :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니?
만수 : (계속 하려다가 보는)
남희 : 내가 니 장난감이야? 나 니 선배야. 니가 맘대로 농담따먹기할 상대가 아니라구. 내가 그동안 귀찮아서 그냥 웃고 말았더니
너 그거 잊어버린 모양인데. 이제 그만해. 이제 더 이상은 받아주지 않겠어. 알았어?
만수, 잠시 말이 없다. 규한과 마이클도 조용해져서 그들의 눈치를 본다.
만수 : (벙해있다가..억지로 좀 웃으며) 난 그냥.. 마이클이 말하기를 선배가 요즘 힘들다구 해서.. 그래서 귤 좀 사갖구 왔어요.
비타민을 먹으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피부에도 좋구 그러니까..저기 놔뒀으니까 드세요. 혼자만 먹어요.
(마이클에게) 니들 절대 뺏어먹으면 안돼 알았지?
만수, 남희를 향해 웃는데 그 웃음이 밝지는 못하다.
만수 : 그럼 가볼게요.
만수 나가버리고, 남희는 스스로가 싫어서 폭발할 지경이다. 돌아보는 곳. 자기 책상 위에 귤봉지가 올려져 있다.
마이클 : (조심스레) 웹사이트에서 몇 개 소재 찾았어요. 지금 볼래요?
남희 그저 어쩔줄 모르고 서있는데..
규한 : (마이클에게) 야야 그냥 놔둬. 여자들은 히스테리가 시작되면 그저 건드리지 않는 게 상수야.
남희, 후딱 규한을 돌아본다. 규한 어깨를 으쓱하더니 작업을 하는 척.
S#21. 전산동 내 복도
지원과 정태가 함께 걸어오고 있다.
지원이 손에 들린 서류를 정태에게 보여주면서 뭐라 말하고 있고. 정태 그것을 보다가 가방에서 다른 서류를 꺼내느라 멈춘다.
정태, 서류를 꺼내서 들추며 지원에게 보여주려다가 보면, 지원이 다른 쪽을 보고 있다. 정태도 돌아보면.
복도 저만치에서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는 남희의 뒷모습. 이방 저방의 문을 조금씩 열어서 안을 확인하고 있다.
정태 : 남희선배잖어.
지원 : 응. 요즘 저런 모습을 자주 보는데.
정태 : 저런 모습이라니.. (하며 다시 남희를 본다)
남희는 빈 방 하나를 발견했는지 들어서서 문을 닫아버린다.
S#22. 빈강의실
별로 크지는 않은 낡은 강의실.
들어선 남희, 혼자 분에 못 이겨 서성거리다가 느닷없이 옆의 책상을 발로 냅다 차버린다. 요란한 소리가 나고.
남희 그걸로 성이 안차서 이번에는 의자 하나를 번쩍 들더니 옆에 쾅 부딪힌다.
씩씩거리면서 돌아다니면서 발로 차거나 어우 어우.. 소리를 지르다가 칠판으로 가더니 두 주먹으로 칠판을 쾅 치고는 잠시 조용해진다.
이마를 칠판에 대고 진정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모르는 남희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잠시 후 남희 다시 평온을 찾은 얼굴로 돌아오더니 조용히 넘어진 의자를 바로 세우고, 비뚜러진 책상줄을 맞추기 시작한다.
S#23. 센터 외경 / 저녁
그 위로 들리는 석우의 목소리.
석우 : (E) 누구? 동현이도 온다고?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데?
S#24. 센터 랩
석우가 전화를 하고 있다.
석우 : 어 뭐하러 그리 멀리까지 나가. 난 다시 들어와봐야 돼. 위성 수신에 좀 문제가 있었거든. 그거 체크해봐야 된다고.
그러니까 가까운데서 하지.
저 뒤에서 대희와 민재와 작업을 하고 있는 경진.
석우의 통화에 신경을 쓰면서 손짓을 해가며 입모양으로 나가라.. 멀리 나가라..하고 주문을 외고 있다.
민재, 그런 경진의 입을 막으려 하고 대희는 웃고 있고.
석우 : 뭐? 두달만이라구? 그렇게 오래 됐어? 야 이거 너무하네. 같은 학교 안에 있으면서 그렇게 안만나구 살았단 말야? 알았다. 간만에
술이나 한잔씩 사줄게. 근데 가까운데서 하자. ..그래 어디 가나 똑같은 술을 파는건데 멀리 헤메구 다닐 필요있냐? 석학의 집 어때.
경진, 낙담을 한다.
석우 : 오냐. 이따 일곱시. 그래.
전화를 끊고 돌아서다가 입이 나온 경진과 눈이 마주친다. 경진, 얼른 작업을 계속하며..
경진 : 오랜만에 후배들을 만나시는 모양인데 확실하게 놀다 오지 그러세요.
석우 : 니가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딜 가서 뭘 확실하게 놀 수 있겠냐.
경진 : 하이구. 보아하니 랩장들끼리 모이시는가본데요. 랩장의 군기 잡는 법 강의하시려면 하루밤으로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아예 날 잡으셔가지구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랩장 필살 군기법을 강의하시고 오십쇼. 여긴 제가 책임지죠.
석우 : 나야말로 좀 배우고 와야겠다. 도대체 요즘 애들은 어떻게 다뤄야 될지 알 수가 없단 말야. ...이민재.
민재 : 예.
석우 : 넌 요즘 애들같지가 않아서 물어보는 건데. 어떻게 요즘 애들은 머리는 안 굴리고 입만 놀리고 사냐.
민재 : 요즘 애들이라고 다 그러겠습니까? 일부 몰지각한 후배들이나 그러겠죠.
석우 : 어이 일부 몰지각한 후배.
경진 : 네. 부르셨습니까?
대희와 민재 웃고. 석우 어이그..해서 본다.
S#25. 랩 밖 복도
박교수가 기웃거리며 안을 들여다보다가 옆에서 차트를 보고 있는 서교수에게.
박교수 : 여기 랩은 화기애애하네. 응? 아주 보기좋아.
서교수 : 우리 랩장이 다 알아서 해주니까. 난 그 점에서 아주 운이 좋다구 할까. 애들 분위기나 작업 분담이나.. 난 전혀 신경 안써.
그냥 우리 랩장한테 가끔 물어보기만 하면 된다구.
박교수 : 하이구 우리랩장 우리랩장..아주 침이 마르는구만. 그런 점에선 나두 운이 좋지. 우리 랩장은..(하다가 좀 생각해 보더니) 서교수.
서교수 : 왜. (하면서 지나가는 학생에게 차트를 건네준다) 이거 랩장 갖다 줘. 검토 다 했다고 하고.
학생 인사하며 받아가고..
박교수 : 전에 그런 말을 했었잖아. 학생들이 백명이면 백가지 종류의 인간형이 있는거다. 그러므로 각각 학생에 맞는 교육법을
발견해내는 게 교수의 능력이다.
서교수 : 내가 그런 좋은 말을 했었어?
박교수를 이끌어 다른 쪽으로 가는..
얘기가 진행되면서 서교수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고 나름대로 작업을 계속하고.. 박교수는 졸졸 따르는 상태.
박교수 : 그럼 이런 학생은 어떨까. 그러니까.. 일단 너무 착해.
서교수 : 착하다. 좋은 거네 뭐.
박교수 : 그냥 착한 게 아니라 너무 착하다고. 그래서 화도 안내고 신경질도 안내고, 못한다 소리도 안하고. 싫다는 소리도 안해요.
서교수 : 그게 지금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거야?
박교수 : 문제지. 그래서 나도 뭔 말을 못하겠어. 꾀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 거니까.
서교수 : 그런데 일을 잘 못하는구만.
박교수 : 아냐아냐. 일을 못하는 건 아닌데. 에...뭐랄까.. 일을 하는데 요령이 없다구 할까.. 리더십이 좀 부족하다고 할까..
서교수 : 박교수네 랩장 얘기야?
박교수 : 내가 언제 우리 랩장이라고 그랬어.
서교수 : 랩장 얘기하다가..리더십 얘기까지 하구 있잖아 지금.
박교수 : 음.. 그랬나... 하여간 그런 학생한테는 어떻게 해야되지? 니가 이러저러한 점이 모자라다고 하면 상처 받을까봐말야.
딱 보면 상처받게 생겼다구. 아주 내가 먼저 가슴이 아파요.
서교수 : 학생이 문제가 아니라 교수가 문제구만.
박교수 : 교수가? 내가?
서교수 : 박교수 지금 어떤 학생을 설명하는게 아니라. 어떤 여자를 설명하는 거처럼 말하고 있어. 그 학생 앞으로 연구 계속 시킬거 아냐?
사회에 내보내야 되잖아.
박교수 : ....그렇지.
서교수 : 근데 뭐가 가슴이 아프고 말구야. 박교수 가슴 아픈게 뭐가 중요해.
아니면, 그 착한 여학생 앞에서 계속 착한 남자교수의 이미지를 고수하고 싶은거야?
박교수 : (생각해본다)
서교수 : (저쪽의 학생에게 가며 일을 체크하고)
박교수 : (계속 혼자 이리저리 심각하게 생각해보고 있다)
S#26. 전자과 로비 복도 / 밤
이층에서 명환이 혼자 이리저리 거닐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현재 말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명환 :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들이죠. 학부때 제가 잠시 문학 동아리에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석우 선배는 그 창단멤버셨구요. 그리고..
동현선배도 그 동아리에서... (멈추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뭔 동아리 동문회 여는 거 같잖냐. (흠.. 다시 생각을 가다듬고)
아무 생각없이 나오세요. 사람두 별루 안나오구요. 다 랩장들이니까 재미난 얘기들도 많을 겁니다. 그냥 간단하게 맥주나 한잔씩..
(에이 맘에 안든다 )
명환, 우뚝 서서 말을 고르다가 얼핏 보는 곳.
이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래층에 만수가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며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가 한쪽에 놓여있는 피아노로 가더니 소리도 안나는 전자피아노를 마구 쳐대기 시작한다.
온갖 폼을 잡으며... 그러다가 멈추더니 한숨을 푹 쉰다.
이층에서는 그런 만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명환.
S#27. 박교수 랩 / 밤
남희가 대여섯장 정도의 종이를 들춰보며 앞의 규한에게.
남희 : 이게 전부야?
규한 : 시킨대로 했는데요.
남희 : 이거 가지군 데이터가 너무 모자라잖아. 니가 지금 할수없이 초등학교 숙제하는 것도 아니고.
전체 작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면서 이것만 달랑 주면 어뜩게 해.
규한 : 선배. 나두 하느라고 한거에요. 이거 땜에 리포트도 포기했다구요. 그리구.. 이건 그냥 이 기회에 저에 대해서 좀 설명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선배가 저를 너무 잘 모르시는 거 같아서요.
남희 : 지금 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시간 없어. 내가 듣고 싶은 건 어째서 이틀이나 줬는데 이거밖에는 갖고 온 게 없느냐는거야.
규한 : 그걸 설명할래믄 우선 나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된대니까요. 나.. 이규한이는 어떤 인간이냐.
지원이 저쪽에서 책을 챙기며 싸늘해서 규한을 보고 있다.
규한 : 나는 이렇게 숙제처럼 주어진 일은 잘 못해요. 왜냐. 재미가 없으니까. 날 한번 신나게 해줘봐요. 예를 들어서 이 프로젝트 전체를
너 혼자 한번 해봐라.. 그러든가. 아니면 니가 책임을 지고 한번 진행해봐라.. 이러든가.
지원 : 그러니까 니 말은 니가 리더가 되서 끌고 나가는 건 잘할 수 있는데. 시키는 일은 하기 싫대는 거니?
규한 : 어허참 내 말을 잘 이해해보라니까. 하기 싫대는게 아니고 잘 못한다는 거지. 난 뭐든 도전할 마음이 생기면 목숨걸고 하는 놈이야.
단, 도전 목표가 내 흥미를 끌어야 된다구.
남희 : (그저 골치가 아파서 머리를 짚는다)
지원 : 선배 이런 말에 신경 쓸 거 없어요. 해야 될 일을 제대로 못해놓고 말도 안되는 핑계를 늘어놓고 있는 거니까.
규한 : 야야 구지원. 안 그래도 나 지금 너를 어떻게 공략할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야. 자꾸 내 비위를 건드려서 좋을 거 없다구.
지원 : 그참 이상하네. 너는 온갖 사람 비위를 건드리며 살면서. 남이 니 비위를 건드리는 건 못 참겠니?
남희 : (두손을 저으며) 됐어. 그만해. 둘다 됐다구. 규한이는 가 봐.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게.
지원 : (답답해서 남희를 보는데)
남희 : (지원에게 변명을 하듯) 그러는 게 낫겠어. 이러구 말쌈하는 시간에 그냥 나혼자 해치우는 게 빠를 거 같애.
규한 : (가방을 챙겨들면서) 다음에는 나를 좀 잘 이용해보세요. 나 한번 맘만 먹으면 기가 막힌 놈이라구요.
마이클. 가자. 오늘 재도전을 받아줘야지.
마이클 : (계속 눈치를 보고 있다가 얼른 일어나 규한을 따르며) 저.. 나 방에 있을거에요. 필요하면 전화해줘요. 오케이?
남희 : 알았어. 얼른 가봐. (만사 다 귀찮다)
규한과 마이클이 나가며 엇갈려 들어서는 명환.
마이클 : 안녕하세요.
명환 : 어 그래. 벌써들 가는거야.
남희 명환을 보고 대충 고개만 숙여보인다. 지원도 명환에게 대충 인사하고는 다시 남희를 돌아본다.
지원 : 선배.
남희 : 됐어. 알어 나도 뭐가 내 문제인지 아니까 확인해줄 필요없어.
지원 :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들어갈게요.
남희 : 그래 수고했다. 니꺼는 다시 안봐도 되니까 그나마 살겠어.
지원, 나간다. 명환 어정쩡하게 서있다.
남희 : 아직 못 끝냈어요. 내일 아침까지는 될거 같은데..
명환 : 그게 아니구.. 저.. 저녁 드셨어요?
남희 : 대충 먹었어요. (컴퓨터로 돌아가며 작업할 준비)
명환 : 저녁에 좀 쉬시는 게 어때요.
남희 : 쉬다니요.
명환 : 아니 내 말은 아무리 바빠도 좀 쉬면서..
남희 : 안그래도 오늘 저녁에 쓸데없는 약속이 잡혀 있어서 괴로워 하구 있어요. 그냥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명환 : 아.. 저녁에 약속이 있으셨군요.
남희 : (그저 자기 생각에만 빠져서) 그게 내 문제인가 봐요. 무시해도 되는걸 무시하지 못하는 거. 이런 내가 정말 싫을 때가 있어요..
(하다가 명환을 의식하고) 죄송해요. 일땜에 오신 분한테 신세타령이나 하구..
명환 : 아닙니다. 일 땜에 온 건 아니구..
남희 : 걱정마세요. 내일 미팅은 차질없게 준비해놓을게요. 안녕히 가세요.
명환 : ...예.. 그럼요. 그럼.. (어색하게 문쪽으로 가다가 남희를 돌아보면)
남희는 이미 컴퓨터 앞에서 파일을 불러내고 있다.
S#28. 석학의 집
들어서는 석우.
미순 : 어서 와요. 오랜만이네.
석우 : 근데 어째 그렇게 안 변하세요?
미순 : 나요?
석우 : 십년이 지나두 여전히 이십대 아가씨같으셔. 젊은애들하구만 노셔서 그런가?
미순 : 그렇지요? 그래서 아주 골치에요. 길 갈때마다 자꾸 이놈저놈 말을 붙여서 말야. 약속이 있어서 온거지요? 저기들 있네.
보면 이만치 한 쪽에서 동현과 앉아있던 명환이 손을 들어보인다.
미순 : 어서 가봐요. 맥주지? 저녁은 드셨고?
석우 : 어이구 내가 이집에 오면서 저녁 먹구 오는 거 봤어요? 김치볶음밥. 되죠?
미순 : 오케바리. 석우씨를 위한 김치볶음밥. 8분만 기다리라구.
동현 : 아 뭐해요. 고만 회포를 풀고 얼른 와요.
석우 : 가구 있잖아. 근데 소개해준다는 랩장은 아직 안왔어? 여학생이래매.
S#29. 주차장 / 밤
백곰이 사복을 입고 건물에서 나서고 있다. 흥얼대다가 보는 곳.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오더니 자전거들이 주차되 있는 앞에 차를 세운다.
백곰 부지런히 달려간다.
차에서 내리는 상현. 말끔한 양복차림이다.
백곰 : 실례합니다. 저는 캠퍼스 폴리스 일면 백곰이라고 하는데요. 일단 차를 좀 빼주시죠.
상현 : 왜요?
백곰 : 아니 왜라니요. 지금 선생님께서 차를 세우신 위치는 학생들의 자전거가 주차되어있는 앞이잖습니까?
그럼 학생들이 자전거를 빼낼려면 고생하지 않겠습니까? 더 설명해야 될까요?
상호 급한 듯한 얼굴로 시계를 보다가..
상현 : 근데 여기 석학의 집이 어딘지 아세요?
백곰 : 석학의 집.. 알죠. 너무 잘 알죠.
상현 : 여기서 머나요? 여긴 학교 안에 너무 넓어서 찾기가 어렵군요.
백곰 : (부지런히 조수석으로 가서 문을 열며) 타시죠. 이걸 타고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상현 : 아니 그러실 건 없구 어딘지 가르쳐만 주시면..
백곰 : 제가 바로 거기루 가는 도중이었거든요. 아주 잘됐습니다. 뭐하세요? 얼른 타시라니까.
백곰, 안으로 들어가 앉는데 상현이 조수석으로 오더니 다시 문을 열고 열쇠를 백곰에게 건넨다.
상현 : 운전 하시죠? 운전 하시겠어요? 길을 잘 아는 분이 하는게 빠를텐데.
S#30. 석학의 집
동현과 명환은 맥주를 마시고 있고. 앞에서 석우는 볶음밥을 먹으면서..
석우 : 그러니까 뭐냐. 그 후배라는 친구가 랩장으로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 같다. 그러니 나한테 노하우를 좀 가르쳐줘라.
명환 : 그렇죠. 선배는 우리 학교에서도 전설의 랩장이시잖아요.
동현 : 가만 있어봐. 명환이 너. 뭔가 흑심이 있는 거 아냐? 여학생이라고 했지. 그 랩장.
명환 : 그러지 마라. 안그래도 상대가 여자래서 내 맘대로 가르치지도 못하겠고 괴롭다.
석우 : 니 눈에 나는 남자루 안뵈니? 난 여자 상대래두 아무 느낌도 없을거다 이거야?
명환 : 에이 선배야 여자구 남자구 그런 거 초월한지 오래시잖아요.
석우 : 너 점점 말이 심하다.
명환 : 안그러구서야 어떻게 그 나이되도록 애인 하나 없으십니까.
동현 : 그거야 능력의 문제지 초월의 문제냐. 괜히 선배 아픈데 찌르지 말라구.
석우 : 나 오늘 카드 갖구 왔는데. 술값 못내. 니들이 알아서 내.
동현 : 말이 잘못 나왔습니다. 어서 드십쇼. 충성.
그들 웃고 있고. 입구쪽에는 백곰과 같이 들어서는 상현.
미순 : 어서 오세요. 아니 댁은 또 오셨수?
백곰 : 이렇게 손님까지 모시구 왔잖아요. 좀 고마운 얼굴 좀 해봐요.
상현은 실내를 두리번거린다. 저만치 구석자리에서 왁자하게 웃는 석우네가 보인다.
S#31. 캠퍼스 밤
벚꽃이 피어있는 나무 주변. 박교수가 이리저리 꽃나무들을 둘러보고 있다. 적당한 자리를 잡으려는 것.
손에는 봉투를 들고 있다. (남희의 논문 심사평이 있는)
이쪽에 앉아봐다가 마음에 안드는지 저쪽에 앉아보다가.. 그러다가 보는 곳. 저만치 남희가 총총거리며 오고 있다.
박교수 반가워 부르려고 손을 들다가 멈춘다. 남희가 우뚝 서더니 뭔가 생각하더니 뒤돌아서 다시 걸어간다.
몇걸음 못 걷고 다시서더니 안타가운 듯 거의 뛰는 자세이다가. 한숨을 쉬고 다시 돌아선다. 우물거리다가 할 수 없는 듯 걸어간다.
박교수 고개를 갸웃해서 그러는 남희를 보고 있다.
S#32. 석학의 집
석우네 뭔 얘기를 했는지 와그르 웃는다.
석우 : 그러니까 랩장은 말이지. 어느 정도는 욕먹어주는 게 필요한거야. 걔들도 얼마나 살기가 힘들겟냐. 맨날 이 학교 울타리 안에서
기껏 튀어봐야 궁동에 어은동이고.
동현 : 맞습니다. 연구에 리포트에 논문에 도망치고 싶겠죠.
석우 : 그러니까 그 스트레스 해소를 해준다는 마음으로 욕먹을 짓을 해줘. 그게 은혜를 베푸는 길이야.
명환 웃다가 얼핏 보는 곳. 남희가 들어서고 있다. 명환 반가운 마음에 거의 일어서는데..
남희는 명환은 못 보고 가운데 앉아있던 상현에게로 다가선다. 상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미소로..
상현 : 결국 왔습니다.
남희 : 남상현씨 맞죠?
상현 : 아. 제 사진 안보셨습니까? 남희씨는 사진 보다 훨씬 미인이신데요.
저만치에서 차를 마시던 백곰과 미순도 벙해서 그들을 보고 잇다. 남희 여전히 선 자세로.
남희 : 오실 필요없다고 연락드리려 했는데. 연락처가 없었어요.
상현 : 다행이군요. (웃는) 당분간 연락처를 알려드리지 말까요? 하여간 좀 앉으시죠.
남희 : (굳은 얼굴) 멀리까지 오셨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상현 : (잘라서) 아닙니다. 대전에 올 일이 있었어요.
남희 : 제가 앉아서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어서요. 그래서..
상현 : 그래요. 그럼 나가시죠. 가는데까지 가면서 얘기해도 충분합니다.
남희 : (어이없어 보는)
상현 : 가세요. 차로 바래다 드릴까요. 아니면 걸을까요.
상현, 재빨리 미순에게 가며.
상현 : 커피 얼마죠?
미순 : 천원인데... (하며 남희의 눈치를 보는)
이만치에서 동현과 석우가 명환을 보고 남희 쪽을 본다.
명환은 말없이 남희만 보고 있다.
동현 : 어이. 혹시 아까 말한 랩장이 저...
석우 : (동현을 툭 찔러서 말을 멈추게 하더니 술잔을 든다) 마시자구. 마시구 가서 또 애들 괴롭혀야지. 엉?
명환 그제야 시선을 돌리고 자기의 잔을 든다. 그러다가 또 본다. 입구쪽에 남희와 상현이 나란히 나가고 있다.
상현은 매너도 좋게 남희를 보호하듯이하며 문을 열어주고 있다.
S#33. 캠퍼스 길 / 밤
남희 굳은 얼굴로 걷고 있고. 그 옆을 걷는 상현은 심호흡을 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상현 : 여긴 확실히 공기가 좋군요. 꽃향기가 나는 거 같은데요.
남희 : (결국 걸음을 멈춘다)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와주셨는데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서.
상현 : 선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니까 없던 일로 하고 돌아가달라.. 이런 말이죠?
남희 : (보는)
상현 : 이하동문이었습니다. 저도 선보고 일생의 반려자를 찾는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남희씨 사진 보구나서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드라구요. 이거 잘못하다가 진짜 괜찮은 여자를 놓치는 거 아닌가.
남희 : (헛기침을 하고)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상현 :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선본걸루 하지 맙시다.
남희 : ...네?
상현 : 그런 거 하지 말구요. 그냥 내가 대전에 내려왔다가.. 이 학교에 그냥 꽃구경하러 들렀다가 남희씨를 우연히 만난 걸루 하죠.
그렇게 시작해보면 어때요.
남희 : (페이스에 말려들지 말자..해서) 솔직히 저는 지금 우연히 어떤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어요. 오늘 밤만 해도 밤새서 정리해야 되는
프로젝트가 두 개에요. 그리고.. 어떤 남자하고도 아무것도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없구요.
상현 : (빙긋 웃더니) 좋습니다. 남희씨는 그런 마음으로 시작하세요. 나는 그런 남희씨를 여자로 만들어드리죠.
남희 : ...뭐라구요?
상현 : 본래의 남희씨. 공학이나 하는 중성이 아니라. 원래 남희씨가 갖고 있는 여성을 눈뜨게 해드리겠다구요.
남희 : (기가 막히다) 아니 잠깐만 ...이거 보세요.
상현 : 자자..오늘은 여기까지만. (두어걸음 물러나며) 모레까지 대전에 있을 예정입니다. 일이 남아서요. 그럼 내일 뵙죠. 전화 드릴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남희의 대답도 듣지 않고 혼자 가버린다.
남은 남희, 기가 차서 혼자 서있다가 돌아선다. 몇걸음 걷다가 뭔가 시선을 느낀다. 돌아보면.
거기 벚나무 아래. 박교수가 빤히 남희를 보고 있다가 손을 들어보인다.
박교수 : 하이. 안녕.
S#34. 캠퍼스 일각 / 밤
박교수 먼저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가로등 밑의 벤치로 온다. 불빛을 올려다보고.. 들고 있던 논문평을 비춰보고..
박교수 : 여기면 되겠군. 난 여기서 얘기하고 싶어. 괜찮지?
남희 : 예.. (아주 난처하다) 저기 아까 그 남자분은요..
박교수 : 잘생겼든데.. 말도 아주 잘하는 거 같고.
남희 : ...죄송합니다. 랩에 할 일이 태산인데.. 개인적인 일로..
박교수 : 아아참. 개인적인 일.. 이게 바로 그 개인적인 일 중에 하난데. (손에 들었던 것을 들어보인다) 이게 뭐게.
남희 : ....
박교수 : 아이 트리플 이(IEEE)에서 남희양 논문의 심사결과가 왔어.
남희 : (기대감으로 기분이 확 밝아지며) 그래요?
박교수 : (먼저 벤치에 앉으며) 앉어. 앉아서 얘기하자구.
남희 : (기대감으로 앉으며 박교수 얼굴 살피며) 뭐래요? 뭐라고 되있어요?
박교수 : (건네준다) 직접 봐.
남희, 받아서 읽는데 얼굴이 점점 굳어진다.
박교수 : 시스템 피드백 에러범위 부분. 체크해서 보내라 그랬는데 그렇게 안했었나?
남희 : 그보다 이 방법이 확실하다고 생각됐거든요.
박교수 : 그 방법도 좋긴한테 ..하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아서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
남희 : (말없이 읽고만 있다)
박교수 : 악평을 받아본 소감이 어때?
남희 : 이 정도 평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는데.. (힘없이 웃는다)
박교수 : 인터네셔널 저널 온 시스템 12월호 안 읽었나?
남희 : 읽었는데요.
박교수 : 거기 히로타 교수 논문 중에 컴플렉시티 애널리시스 부분과 남희양 논문주제가 겹치잖아.
남희 : 제가 잡은 주제하곤 상관없지 않나요?
박교수 : 남희양이 잡아온 주제대로 쓰다보면 파라메터 애널리시스 부분에서 겹치게 되있어.
남희 : ....
박교수 : 좀더 창의적으로 사고해봐. 남희양 박사논문은 몇년뒤에 나올 논문이야. 지금 나오는 어떤 논문들 보다 앞서있어야 된다고.
남희 : ...다시 잡아볼께요.
박교수 : 언제 어떻게.
남희 : 예?
박교수 : 지금 랩일만으로도 쩔쩔매구 있잖아.
남희 : (굳는)
박교수 : 남희양.
남희 : 네.
박교수 : 나 지금 교수로서 아주 엄하게 묻고 있는거야. 남희양도 학생으로서, 그리고 내 랩의 랩장으로서 솔직하게 대답 해줬으면 해.
우리 랩의 프로젝트. 그리고 남희양의 논문. 언제 어떻게 처리할거지? 할 수 있는 거 맞아?
남희,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사실은 울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고 있는 중이다.
S#35. 박교수 랩 / 밤
어두운 방안에 불이 밝혀진다. 형광등 불빛 아래 드러나는 랩 내부. 문가에 남희가 서서 멍하니 안을 들여다본다.
가운데 테이블에는 또 누군가가 어지러 놓은 듯한 종이컵이며 과자봉지들...
// 시간경과
남희 혼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다 모니터를 보며 옆에 쌓이 자료들 중에 뭔가를 집어드려는데.
잘못 건드리면서 거기 쌓여있던 자료들이 흩어져 떨어진다.
남희 난감해서 떨어져 흩어진 자료들을 본다.
// 시간경과
남희가 바닥에 엎드려 자료들을 줍고 있다. 자료들을 안고 일어서다가 돌아보는 곳. 거기 어질러진 테이블.
// 시간경과
남희가 쓰레기통을 들고 어지러진 쓰레기들을 주워담고 있다. 가만 보면 남희는 혼자 울고 있다. 거의 펑펑 흐느껴 운다.
S#36. 캠퍼스 / 낮
S#37. 매점 / 낮
초췌한 모습의 남희가 매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들고 나오고 있다.
거의 졸린 눈으로 걸어오는데 자현이 우당당탕 뛰어지나가다가 급브레이크를 밟고 남희에게 돌아온다.
자현 : 선배 남희선배. 이따 11시에 뭐하세요.
남희 : (멍하니 보는)
자현 : 우리 엔진랩에 자동차 제작발표회 있거든요. 구경 와요 예? 그거 끝나면 운동장에서 시승식 할건데요.
내가 특별히 선배를 태워드릴게. 그니까 꼭 오세요. 아셨죠?
자현은 대답도 안 듣고 다시 가던 길로 뛰어간다. 남희 멍해서 가는 자현을 보고 있다. 그 위로.
남희 : (E) 이따금 횡단보도 앞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S#38. 캠퍼스 일각 / 낮
어느 벤치에 앉아 있는 남희. 쓸쓸하게 혼자 우유를 먹고 빵을 먹고 있다. 이따금 그 앞을 지나가는 이들을 보기도 한다.
남희 : (E) 빨간불이 꺼지고 파란 불이 들어오면 내 옆에 사람들 모두 몰려나가고. 저 앞의 사람들 모두 몰려오는데.
나는 기억할 수가 없다.
S#39. 발표회장
객석에 정교수와 앉아있는 동현과 자현의 모습이 보여지는 정도. 그 위로 계속.
남희 : (E) 내게도 목메어 그리던 이름이 있었겠지. 그러기에 이 길을 떠나왔겠지.........이제 고향은 꿈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S#40. 운동장
남희 혼자 걸어오다가 보는 곳. 거기 운동장에는 시승식을 위한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니 모여있다. 남희, 걸음을 멈추고 본다.
원장을 비롯한 보직 교수들이 시승을 해보는 스케치. 왁자지껄하고 웃는 분위기.
교수님들 사이에는 배교수님 옆에 정교수가 있어서 뭔가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학생들 사이에서 동현과 있는 자현. 떠들썩하니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그러다가 문득 보는 곳.
저만치 구경하는 사람들 뒤로 남희의 모습이 보인다. 남희는 혼자 외따로 떨어져 서있다.
// 남희, 구경을 한다기보다 혼자 생각에 잠겨있다가 몸을 돌려 걸어가려는데.
자현 : (E) 남희선배.
돌아보면 자현이 달려온다.
자현 : 우와아.. 저땜에 이거 보러 오신거죠? 저 응원해주실려고. 그쵸?
남희 : (힘없이 웃으며) 그렇게 말하니까 꼭 저 자동차 너 혼자 만든 거 같다얘.
자현 : 아하하하.. 난 항상 그런 자세로 자동차하고 놀고 있슴다. 이건 내꺼야. 추자현이 한거야. 어때 멋지지? 이런 자세요. 히히.
남희 : 그래.. 보기좋아. 부러워.
자현 : 그러지 마시구요. 일루 오세요. (잡아끌며) 저기 교수님들 시승식 끝나면 아무나 다 타보게 할거거든요.
내가 특별히 선배님의 순서를 마련하겠습니다. 얼른요.
남희 : (버티며) 아니야. 나 가봐야 돼. 일할 게 많어.
자현 : 에에이. 일이야 시간 날 때 하는거구요. 즐기는 건 시간을 놓치면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희 : (굳어지며 잡힌 팔을 억지로 빼며) 아니 정말로 가봐야돼. 나 이럴 시간없어. 진짜야. 그럼 미안하다. 넌 얼른 가봐.
남희 도망치듯 자리를 뜬다. 자현 이상해서 보는데 뒤에서 동현이 부르는 소리.
동현 : (E) 추자현 뭐하구 있어.
자현 : 아이구 젠장. 내가 무슨 상머슴인줄 안다니까. (큰소리로) 갑니다. 가요.
자현 달려간다. 저만치 걸어가던 남희, 멈추더니 돌아본다. 남희의 눈에 비치는 사람들... 웃는 모습들....그 위로.
남희 : (E) 이따금 횡단보도 앞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내가 목메어 그리던 이름아. 한번만 소리내어 나를 불러주겠니?
이 노란 불이 끝나기 전에.
S#41. 오리연못 근처
길가에 세워진 상현의 자동차. 저만치 연못가에 상현이 서서 연못을 내려다보다가 손목 시계를 본다. 그러다 돌아본다.
저만치에 남희가 걸어오고 있다. 남희는 똑바로 상현의 앞까지 온다.
상현 : 안녕하세요.
남희 : 네...
상현 : 봄이 걸어오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 봄같은 분이군요.
남희 : (조금은 굳은 얼굴... 그러다 뭔가 결심한 듯) 우연히.. 처음 만난 걸로 하려면, 일단 인사부터 해야겠죠?
상현 : (? 보는)
남희 : 안녕하세요. 저는 신남희라고 해요. 처음 뵙겠습니다.
상현, 남희를 보다가 유쾌한 듯 웃는다.
상현 : 안녕하세요. 저는 남상현이라고 합니다. 이런 우연을 만나다니 정말 최고의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 다.
웃어보려고 하는 남희의 얼굴. 역시 어색한 듯 멀리로 시선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