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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대로 산다면 인생이 무슨 재미, 때로는 파괴도 있어야지,,,맛있게 먹고 편하게 쉬기로 했다. |
아타까마에서 산티아고로 이동하는 시간은 버스로 24시간 이상이 걸리는 먼 거리였다. 중간 도시를 경유하지 않고 직접 가는 버스를 타면 조금 빠르기는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아타까마에서 깔리마를 경유하는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항공편을 이용하면 서너 시간이면 충분했다.
이 구간을 직접 버스로 체험하고 싶다는 다섯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국내선 항공을 이용하기로 했다. 굳이 마음 먹자면 산티아고까지 버스로 이동하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직 많이 남아있는 일정을 무리없이 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체력 관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차를 많이 탔기 때문인지 24시간 버스로 이동한다는 것쯤은 그리 큰 부담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동하는 여정에서 만나는 풍경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여행의 소득이었기 때문에 잠시 망설이기는 했지만 이쯤에서 컨디션 관리를 해두는 편이 좋을 듯했다. 몸이 아프거나 불편해지면 여행이 힘들어진다. 이동수단을 필요에 따라 적절히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은 배낭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2015년 4월 8일 수요일 아침 5시, 침대를 정리했다. 칠레 국내선 비행기를 타려면 아타까마에서 깔라마 공항까지 가야했다. 예정시간을 20여 분 늦게 도착한 전세 버스는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길을 부지런히 달려 7시 30분 깔라마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사막답게 제법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비행기가 아타까마 공항을 이륙한 시각은 오전 9시, 기내식으로 나온 빵과 커피로 가볍게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비행기는 이내 산타이고의 잘 닦인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버스로는 밤을 새워 달려야 하는 먼 거리를 이렇게 간단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고맙게 여겼다. 공항에서 택시를 이용해 숙소까지 단번에 달렸다.
사막 도시답게 낮은 산맥들로 둘러싸인 깔라마 공항에서 탑승대기 중
산티아고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중에 만난 산티아고 거리
산티아고의 숙소
숙소는 아르마스 광장 인근에 있는 Santiago Backpackers. 모두 다인실로 이루어진 호스텔이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이 호스텔에서 별관으로 운영하고 있는 22층 오피스텔이 배정되었다. 평소 현지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처음부터 숙소만큼은 더불룸을 사용해왔는데, 이곳의 숙소는 산티아고 시내를 비롯하여 산 크리스토발 언덕에서부터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안데스 산맥의 눈덮인 높은 봉우리들까지 멋진 라인이 한 눈에 들어오는 매우 특별한 숙소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경관 좋은 숙소를 감상하는 일은 잠시 미루고 짐을 풀자마자 산티아고에서 유명하다는 한식집으로 달려갔다. 얼큰하고 친근한 음식이 나오자 누구하나 망설임 없이 수저를 들었다. 빨깐 뚜껑의 소주 병이 탁자 위에 머물 시간도 없이 비워졌고 음식은 무엇 하나 남지 않았다. 그렇게 기분이 풀어졌고 그렇게 산티아고에서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한식당에 다녀오는 길에 만난 마포초 강의 벽화. 산티아고 북쪽에 있는 이 마포초 강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서너 번이나 오갔다.
산티아고 프리 투어 Free Tour
오후 3시, 아르마스 광장에서 시작되는 프리 투어에 참가했다. 투어는 아르마스 광장의 대성당, 국립역사박물관, 페드로 발디비아 동상을 둘러보고 대통령궁인 모네다 궁, 헌법광장의 살바도르 알렌 데 고센 동상, 누에바 요크, 산티아고 증권거래소 등을 거쳐 산 크리스토발 언덕아래 파블로 네루다의 집까지 둘러보는 코스로 진행되었다.
프리 투어를 이끈 가이드는 자그만한 키에 해박한 지식과 위트, 유머가 풍부한 턱수염이 수북한 칠레 청년으로 인사를 나누면서 이름을 듣기는 했지만 돌아서면서 잊었다. 그 역시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산티아고의 프리 투어에 참여한 것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단순하게 건물만 둘러보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도시의 역사를 이해하고 이곳에 담긴 삶들을 느끼면서 투어를 해보고자 한 것이었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유익했고 얻은 것이 많았다. 물론 알아 듣지 못한 부분들은 영어가 유창한 우리의 젊은 일행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나 같은 여행자가 효율적으로 시내 투어를 하기에는 매우 훌륭한 프로그램이었다.
대성당, 국립역사박물관, 발디비아의 동상 등이 있는 산티아고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
1541년 피사로의 부하인 발디비아가 이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한 이래 칠레의 중심이 되어온 역사적인 아르마스 광장은 보행자 전용거리인 아우다마 거리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데, 멋진 분수와 파고라가 있는 야자수 정원을 가운데 두고 둘레에 대성당과 시청사, 중앙우체국, 국립역사박물관, 산티아고 박물관 등 역사적인 건물들이 모여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산티아고의 여행을 이곳에서부터 시작했다.
프리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각국의 여행자들이 아르마스 광장에 모여들었다.
여행자들의 뒤편으로 보이는, 마치 옛 궁전을 연상케하는 건물은 칠레 중앙우체국 Correo Central으로 식민시대 스페인 총독의 관저로 지어졌다. 이후, 모네다 궁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다가 19세기 후반부터 중앙우체국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우체국 내부에는 우편, 전신 박물관이 마련되어 있다. 중앙우체국 오른쪽의 노란색건물은 국립역사박물관이고, 그 옆에 산티아고 시청사가 있다.
아르마스 광장의 기마순찰대와 견공. 건장한 말들과 견주기라도 하듯 같은 포즈로 시선을 끌고 있는 견공의 도발적인 자세가 이채롭다.
1646년 산티아고의 모습이 새겨진 동판. 아르마스 광장의 국립역사박물관 앞 바닥에는 1580, 1646 그리고 1712년의 산티아고 옛 모습이 새겨진 동판이 있다.
아르마스 광장 서쪽의 대성당. 1541년 발디비아가 산티아고를 건설하면서 함께 바로크 양식으로 짓기 시작하여 1558년에 완공되었다.
산티아고 대성당 내부
아르마스 광장의 찰리 채플린이 아내에게 다섯 번이나 큰 절을 하고 내게 이런 포즈까지 취해준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르마스 광장의 국립역사박물관.
아르마스 광장의 국립역사박물관은 1810년 칠레의 첫 의회가 들어섰던 곳으로, 1911년 박물관이 들어오기 전까지 전화국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산티아고의 옛 지도들을 비롯하여 칠레 원주민들의 유물, 식민시대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1973년 쿠데타로 희생된 아옌데 대통령의 유품과 기록들도 있다.
아르마스 광장, 산티아고 시청사 앞의 "페드로 데 발디비아 Pedro de Valdivia(1498~1554)" 기마상
스페인 육군에 복무하다 1534년 남미에 파견된 발디비아는 프란시스코 피사로 휘하에서 근무하다 1540년 칠레 원정에 나서 칠레 계곡에서 대규모 인디언군을 격파하고 1541년 산티아고를 건설했다. 그러나 1554년 자신의 부하였던 원주민 출신인 알론소 라우따로 Alonso Lautaro에게 생포되어 처형되었다.
아르마스 광장의 파고라. 시민들과 여행자들의 휴식처다.
아르마스 광장
아르마스 광장, 발디비아 동상의 대각선에 코너에 있는 알론소 라우따로 Alonso Lautaro 조각
칠레 원주민인 마푸체 족의 '알론소 라우따로'는 어렸을 때 스페인 군대에 잡혀 발디비아의 시종이 되어 그의 말을 돌보며 말타기와 스페인 군대의 전술을 익혔는데, 스페인 군인들이 마푸체 포로들을 잔인하게 다루는 것을 보고 1550년 결별한 이후 아우라칸 부족들과 함께 발디비아 군에 저항하였다. 1554년 발디비아를 생포하여 처형했지만, 그 역시 1557년 스페인 군에게 잡혀 처형되었다.
구 국회의사당 건물 /2015.4.10 오전
아르마스 광장과 이어진 보행자 거리 '아우마다 Paseo Ahumada'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넘쳐흘렀다. 서울의 명동거리처럼,
아르마스 광장의 동쪽을 지나는 아우마다 거리는 산티아고의 대표적인 보행자 전용도로다. 백화점, 상점, 까페는 물론 다양한 레스토랑이 줄지어서 있는 거리에는 멋진 가로수와 벤치가 놓여있고, 구두닦는 사람들과 꽃집들이 거리의 명물로 시선을 끌고 있었다. 때때로 이곳에는 각자의 주장들이 담긴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고, 그 한켠에서는 거리의 연주자들의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는데 프리 투어를 마치고 나서 산티아고에 머무는 시간을 이용해 두어 차례 더 방문한 아우마다 거리에는 시끄러운 소음을 동반한 시위도 있었지만 그 다음날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온한 분위기 속에 바이올린 연주가 열리기도 했다.
아우마다 거리의 바이올린 연주자
헌법광장에서 본 모네다 궁(대통령궁, Placio La Moneda)의 뒤편. 이 헌법광장에서는 칠레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아옌데 대통령의 추모식을 비롯하여 위병 교대식 등 다양한 국가적 행사가 열린다.
모네다Moneda는 Money, 화폐를 뜻하는 스페인어다.
궁의 이름이 말해주듯 모네다 궁은 원래 1805년 조폐국 건물로 건립되었는데, 아르마스 광장의 총독 청사(현 중앙우체국)에 있던 대통령 집무실을 이곳으로 옮겨 1864년부터 대통령궁으로 사용하고 있다. 칠레 현대사의 비극적 현장이기도 하다.
헌법광장 Plaza de la Constitucion의 '살바도르 아옌데 고센(1908~1973)' 대통령상. 뒤의 건물은 법무부 청사다.
1844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칠레는 1932년 이후 여러 차례의 쿠데타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불황을 겪었다.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최초로 민주주의 선거에 의해 사회당 정권이 탄생하였으나, 1973년 9월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발생하여 이후 20여년간 폭압적인 군사독재가 자행되었다.
당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모네다 궁에서 칠레 국민들을 향해 마지막 방송연설을 마치고 쿠데타의 주역인 피노체트의 반군을 맞아 저항하다 소수의 지지자들과 함께 사망하였는데, 지난 과거의 암울했던 역사를 딛고 아옌데 대통령은 칠레의 위대한 영웅의 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다.
모네다 궁(대통령궁) 정면. 그 앞으로 분수와 멋진 잔디가 조성된 자유광장이 펼쳐져 있다.
모네다 궁전 주변에는 문화부, 재정부, 법무부 등의 정부부처들과 헌법기관들이 자리잡고 있고, 대통령 벙커로 쓰이던 궁전의 지하 공간은 영화관, 전시관, 카페 등 일반에게 공개된 문화 센터가 있다. 광장의 중앙에 있는 동상은 역대 칠레 대통령 중 가장 업적이 뛰어났다고 평가되는, 1920년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당선된 칠레 최초의 대통령인 "알레산드리 팔마 Arturo Alessandri Palma"의 동상이 서있다.
자유광장 앞 O'higgings대로의 중앙에 서있는 대형 칠레 국기 게양대.
자유광장에서 누에바 요크 거리로 가는 길에 만난 거리의 사진.
'누에바 요크 Nueva York' 거리. 은행과 증권거래소 등이 들어서 있는 금융 중심가인 누에바 거리는 고층빌딩들과 백화점, 음식점들을 비롯하여 칠레 최고의 사교 모임 "유니온 클럽"이 있는 번화가다. 뉴욕의 월스트리트쯤 될까? 이 거리 맞은 편에 칠레 대학이 있다.
누에바 요크
누에바 요크의 증권거래소
산티아고 거리의 먹거리 모떼 꼰 우에시요 Mote con Huesillo. 맛은? 글쎄....
프리 투어를 진행하던 가이드가 아우마다 거리의 한 지점에 이르러 안내한 곳은 바로 이 전통 음료를 파는 가판대. 모떼 꼰 우에시요라는 이 음료는 삶은 옥수수 Maiz와 껍질을 벗긴 모떼(율무)를 끓인 달콤한 물에 우에시요(말린 복숭아)주스를 넣어 만든 칠레의 전통 음료였다. 우리의 수정과나 식혜 쯤 될까? 하는 호기심에 한 잔을 사서 나누어 마셨는데 한모금 맛을 본 아내는 이내 손을 내민다. 약간 비위가 상할 듯한 이상스러운 느낌의 이 음료는 그다지 친근하지 않은 맛이다. 하지만 칠레 국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간식거리임이 분명했다.
오페라 하우스
산 프란시스코 교회. 식민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산 프란시스코 교회는 프리 투어 코스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투어 중에는 이 교회를 둘러보지 못했다. 하지만 누에바 거리에 들어서기 전 O'higgings대로변에 보이는 이 교회가 인상적이어서 기억해 두었다가 발파라이소를 다녀온 다음 날 산타 루이스 언덕에 오르는 길에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칠레 대학의 위쪽에 있는 산 프란시스코 교회는 O'higgings대로변의 현대식 높은 빌딩들 사이에 있다. 붉은색 외형과 인상적인 시계탑으로 인해 쉽게 눈에 들어 오는 이 교회는 산티아고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586년 건설을 시작했다. 교회 옆에는 산 프란시스코 박물관이 있는데 이 교회 앞에서 안내를 하던 젊은 이가 다가와 무엇이 필요한가 묻고는 궁금한 점을 상세하게 일러주기도 했다.
산 프란시스코 교회와 박물관, 그 앞의 분수대
산타루치아 언덕 북쪽 입구. 프리 투어 중에는 가지 못했지만 나중에 별도의 시간을 내서 이곳에 올랐다.
산타루치아 언덕은 발디비아가 산티아고를 지키기 위해 만든 요새였는데 지금은 성벽이 있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언덕은 남쪽과 북쪽 두 곳에 출입구가 있는데 큰 규모는 아니지만 낮은 언덕을 따라 천천히 오르면 멋진 성채를 감상할 수가 있다.
산타루치아 성채 정상. 시내의 고층 건물들과 고문서보관소들이 내려다 보인다. 하지만 도시는 매연으로 뿌옇게 흐려있다.
라스따리아 거리 Lastarria Neighborhood. 프리투어의 중간 휴식 지점.
모르고 지나쳤으면 그저 단순한 건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지만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그 의미를 새기면서 돌아보는 시내 투어는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프리 투어는 중간중간 음료도 마시고 휴식도 하면서 진행되었는데 아르마스 광장에서부터 이곳까지 대략 3시간 동안 약 60%의 투어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난 동행인 시니어가 더 이상 투어를 하기 어렵다며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를 희망했다. 나와 아내는 마지막까지 마치기를 바랬으나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여 투어 진행자에게 약속한 투어비(1인당 5천 페소)를 지불하고 이곳에서 투어를 마무리하겠다는 인사를 건넸다. 우리의 젊은 일행들은 마지막까지 투어에 참가하기로 했다.
프리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의 거리. 오래된 교회의 시계탑이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다.
프리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의 산티아고 거리. 깔끔하게 정돈된 도시가 인상적이다.
산티아고 거리의 과일상점
산티아고 시내의 시티 투어 버스
프리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숙소 아래 층에 있는 마트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샀다. 여행 처음에는 분위기가 낯설어 마트에 들러 무엇을 산다는 것이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이제는 마트만 있으면 어디든 들러 먹거리도 사고 간식거리도 살 수 있으니 부러울 것이 없다. 배낭여행이라지만 이만한 환경이면 호사로운 여행 아닌가? 굳이 분위기 좋은 멋진 레스토랑이 아니어도, 격식 갖춘 성찬이 아니라해도 아쉬울 것 없는 하루였다.
산 크리스토발 언덕의 탑들에 하나 둘 불이 들어오면서 이른 새벽부터 숨가쁘게 시작했던 하루가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다. 내일은 또다시 이른 새벽부터 산티아고 북쪽 120km지점에 있는 발파라이소로 가 프리 투어를 할 예정인데 오늘과 같은 투어라면 환영할 만했다. 오늘은 투어 코스가 만만치 않아 비록 전 코스를 모두 마무리하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기에 내일의 투어도 기대가 되었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을 내려다 보며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달래는 사이 산티아고의 밤이 기분 좋게 무르익고 있었다.
산티아고를 떠나기 전 점심시간에 찾아간 산티아고 중앙시장의 식당가. 1872년 마포초 강변 남쪽에 문을 연, 해산물 시장으로 유명한 이곳의 한켠에는 이런 식당가가 있다.
첫댓글 유럽의 한도시를 보는듯합니다
긴 후기와 사진에 감복하고 여행을 대신즐깁니다
견공의 의젓함이
잼나네요 ㅋㅋ
유독 남미에는 주인없는 견공들이 많았는데 이 견공 역시 아르마스 광장의 터줏대감 인 듯했습니다. 한동안 지켜보았는데 저 자세만 취한 것이 아니고 말 뒤쪽에 가서 누었다가 앉았다가,,,^^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제지하거나 쫒아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달려들거나 덤비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산티아고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되어
더 매력적이고 꼭 가고싶은 곳으로
마음에 새겨두게되네요! 역사와 문화
먹거리까지~참 좋아요
감사합니다^^
여행지에 관한 느낌은 여행자가 무엇을 보고자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느 여행자들은 산티아고에서 아무 것도 볼 것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긴 세월 살아온 곳인데 어찌 감흥이 없겠습니다. 눈을 돌려 보면 산티아고 역시 충분히 매력적이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곳이었습니다. ^^
유럽같아요
즐감하고갑니다 이리자세하게
소개주시니 아주좋아요
그렇지요? 대도시는 과거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데다 유럽 각국으로부터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유럽의 분위기가 뭃씬 나더군요. 즐겁게 읽어주셔서 저도 즐겁습니다~~^^
즐건여행하고갑니다.
자유롭게 여행을 가고싶지만 언어의 한계 때문에 늘상 패키지신세 예비군 훈련이죠.
17년전에 보스니아 여행중에 언어소통 때문에 맞아 죽을뻔했던 적이...ㅎㅎ
여행이란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현장과 문화를 접하고 싶지만 학창시절에 공부를지질이도 못 해서 영어점수는 빵.
해외 여행할 때마다 느낀 점이 언어 소통부재를 절실히 느끼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
언어가 여행의 큰 장벽이기는 합니다. 언어를 못 한다고 해서 여행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면 그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니 여행이 빈곤해지더군요. 더듬거리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것이 언어인데 특히, 자유여행에서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로 다가오더군요. 앞으로의 여행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게으름 피지 말고 언어 공부해야겠습니다. ^^ 저도 늘 반성하고 반성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