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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암벽의 절경
소매물도, 등대섬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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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그렇게 맘 편한 꽃이라 할 수가 없다.
혈관을 터트리고 줄줄 흐르는 피보다 더 진한 붉은 꽃잎과 줄기에 돋친 가시가
화려한 듯 장엄한 진혼곡 같아서다.
어제는 6월 민주항쟁(6月 民主抗爭)이 있는지 23년째 되는 날이었다.
1987년 6월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으로 “6.10민주항쟁”이라고도 말한다.
6월 항쟁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권위주의적 권력유지에 맞서 민주세력과 학생,
시민들의 역량으로 이를 저지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컸지만,
직선제 이외에는 이렇다 할 만 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점에서 항쟁의 한계를 지닌다.
또한 6월은 한국전쟁발발 60년이 되는 해이다.
1950년 6월25일 새벽에 북한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적
남침을 감행함으로써 일으킨 전쟁이었다.
법정스님은 이렇게 썼다.
“6월이 장미의 계절일 수만 없다.
아직도 깊은 상흔이 아물지 않고 있는 우리에게는 카인의 후예들이 미쳐 날뛰던 6월.
언어와 풍속과 핏줄이 같은 겨레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흘리던 악(惡)의 계절에도
꽃은 피는가.” (무소유에서)
요즘 산기슭이나 볕이 잘 드는 냇가나 골짜기에는,
장미과에 속하는 관목나무인 찔레꽃이 하얀 꽃잎을 터트리며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들에 핀 꽃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마라! 나도 한 성질 가지고 있다.”
꽃은 은근히 내게 겁을 준다.
민족의 한(恨)처럼 느껴지는 찔레꽃.
소박하면서도 한을 간직한 여인의 몸짓 같은 꽃이 달빛처럼 하얗게 피는 첫여름이다
“찔레꽃 피고 지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일제강점기말기에 제주가 고향인 가수 백난아가 부른 트로트 곡으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이 노래는 국민애창가요가 되기도 했었다
오늘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西南단 끝에 있는 경남 통영시 한산면에 딸린 섬.
소매물島, 등대섬을 찾기로 했다.
해양관광도시 거제도에서 소매물도로 가는 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산행버스가 1시간을
앞당겨 광주역광장에서 오전 7시에 출발을 하기로 했었다.
출발시간을 앞당긴다는 것은 정신적 경제적 측면에서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하지(夏至)가 가까운 여름철이라 날이 일찍 밝기는 했어도 아내가 없는 아침은 왠지
쓸쓸하고 외롭고 궁상맞은 기분이었다.
산행장비를 갖춰들고 “김밥나라”에 들려 아침을 해결하고 점심도시락도 샀다.
24시간 영업하는 김 밥집 주인아줌마가 피곤하지만 상냥하게 웃으며 맞아주는 것이
그나마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오늘은 왕복 승선요금으로 1인당 16.000원을 지불해야한다.
이시간대 시내버스가 운행되는지 알 수 없어 아파트입구에서 대기 중인 택시를 탔다.
승차요금 7천원을 지불하고 내렸는데 역 광장에는 아무도 와 있는 사람이 없었다.
06시30분,
산행버스가 느릿한 자세로 도착했는데 버스 안에서는 시끌벅적 금광에 경사가 났다네!
세력약화를 걱정했던 양동매씨들이 버스 뒤 좌석을 완전장악하고 그 위세를 아낌없이
떨치고 있었다.
화순봉철형도, 이상섭회원도, 山에살고파님도 부부간에 참여를 해주었다.
그동안 소원했던 이상설회원님도 반가운 얼굴을 내밀었고,
젊은 금호 팀도 산악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어주었으며 다른 회원들도 참석을 했다.
항상 23번 좌석을 즐겨 앉던 나는 내 자리를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만석+즐거운 비명소리는 우리회장님 홍복일세, 만세, 만만세!
일부회원들은 자리 때문에 산행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산행버스는 섬진강휴게소에서 한번 쉰 뒤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통영으로 들어섰다.
통영에서 거제대교를 건너 1018도로를 따라 거제시 남부면 매물도여객선터미널이
있는 저구港에 도착했다.
저구港은 전형적인 어촌港처럼 생겼는데 매물도가 알려지면서 여객선터미널로 개발된
것 같았다.
바다는 푸른빛갈의 에메랄드처럼 맑았고 항구는 아담하고 깨끗했으며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한 항구였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사랑은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이라고, 그 갯벌은 가르쳐주었다.
내 영세한 사랑에도 풍경이 있다면, 아마도 이 빈곤한 물가의 저녁 썰물일 것이다.
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다.”
(김훈에세이 바다의 기별에서)
소매물도(小每勿島)는
면적이 0.51㎢로 해안선길이 3.8㎞, 최고점이 해발 157.2m인 작은 섬이다.
통영港에서 남동쪽으로 26㎞ 해상에 있으며 매물도와 바로 이웃하고 있다.
웃매미 섬이라고도 하는데 북서쪽에 가익도(加益島),
남동쪽에 등가도(登加島)가 있다.
평지가 드물고 해안 곳곳에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하여 경관이 아름답다.
옛날 중국 진(秦)시황제의 신하가 불로초를 구하러 가던 중 그 아름다움에 반해
“서불과차(徐市過此)”라고 새겨놓았다는 “글씽이” 굴이 있다고 한다.
우리를 태운 매물도유람선은 저구港을 떠나 푸른바다를 가르며 힘차게 달렸다.
육지의 최남단이라는 망山(397m)을 보았다.
가익도, 등가도, 대병대도, 소병대도, 이름을 알 수없는 수많은 섬들의 풍광을 멀고,
가깝게 바라볼 수가 있었다.
배는 35분 만에 소매물島 선착장에 도착했다.
오늘산행은 선착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웬일일까! 양동매씨들이 마을뒤편의 비탈길을 작정을 하고 올라가고 있었다.
3년 넘게 금광을 다녔지만 오늘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 같았다.
어느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삶이라는 배낭을 메고 인생여정을 걸어가는 것이다.
대단한 행보요 아름다움의 절정이었다.
20여분 정도 올라가니 섬의 최고점인 망태峰정상에 도달했다.
등대섬을 비롯해 수많은 통영의 섬들과 거제해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천연전망대였다.
천태만상의 기암괴석과 부딪쳐 부서지는 하얀 포말과 물보라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형제바위, 龍바위, 부처바위, 촛대바위 등 바위立像들이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데
그 사이사이로 바위굴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한층 묘미를 더해주고 있었다.
부근에는 용도가 폐기된 세관 해안 감시초소가 유리창도 없이 방치되어있었다.
마을 위쪽에서부터 등대섬으로 넘어가는 작은 길 주변에는 수크령이 군락을 이루고
자생하고 있었다.
검푸르고 키 작은 소나무들이 바다를 등지고 솔잎머리를 치켜든 체 일제히 앞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과연 누구의 명령으로 저렇게 일사불란하게 서있는 것일까?
등대섬에 상륙하기위해 산길을 내려갔다.
동쪽의 등대섬과는 물이 들고남에 따라 약 70m거리가 몽돌자갈길로 연결되었다가
다시 나누어지곤 한다는데,
바닷물에 씻긴 몽돌이 깨끗하고 반질해서 보기가 아름다웠다.
소매물島 등대섬은
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里에 속한 섬으로 2006년 8월24일 국가지정문화재인 자연경관
명승(제18호)로 지정되었다. (통영시장이 관리함)
“통영 8경”의 하나로 통영港에서 뱃길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가파른 해안절벽을 따라 수평, 수직으로 갈라지고 쪼개진 암석들이 빼어난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파도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이루어진 해식애(절벽), 해식동굴 등이 발달되었다.
섬에는 해양성기후의 영향으로 草地가 발달하고 관목類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는데,
특히 돈나무, 동백나무, 보리밥나무 등 60여 종의 자생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한다.
또한 해안절벽 위의 흰 등대와 썰물 때가 되면 바닷길이 열리는 몽돌해안은 등대섬의
상징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었다.
선착장에서 등대까지는 목제계단으로 만들어져있었다.
등대 옆에는 기계실이 따로 있었고 우리는 주변에 삼삼오오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유람선 한척이 해안을 따라 물살을 가르며 천천히 섬을 지나간다.
해안바위에는 갯바위 낚시를 즐기는 낚시 마니아들이 여럿이 있었고 가족단위로 텐트를 치고
여가를 즐기는 곳도 있었다.
그런데 몽돌지대에 있던 양동매씨 한사람이 넘어져 어께를 다치는 안전사고가 생겼다.
호사다마(好事多魔)랄까,
머피의 법칙이랄까?
졸지에 배낭을 두 개나 메야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급경사 길을 오르던 여성회원들이
힘들어해서 스틱도 빌려주었다.
16시경에 시간을 앞당겨 전세유람선으로 소매물도 선착장를 떠났다.
뱃길은 잔잔했고 햇살은 바다에 부서져 그대로 보석가루가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갈매기가 저녁거리를 찾아 물위를 낮게 날고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
바다는 섬들의 울타리 속에 갇혀 마치 내륙에 있는 하나의 큰 호수처럼 보였다.
바위들로 이루어진 무인도가 거실에 놓아둔 수반石처럼 풍취 있게 보인다.
섬들은 제각각의 모양으로 치마를 살짝 치켜 든 여인네옷맵시로 바다와 경계하고 있다.
포구안쪽으로는 하얀 양식용 부표(浮漂)가 사찰의 초파일 등(燈)처럼 줄지어 떠있었다.
양동 강 금순 매씨가 하산酒를 냈다는데 22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고마울 수밖에 없는 것은 음식재료대가 그 정도이니 준비하고 만드는 인건비를
생각하면 그 액수를 가늠하기가 미안스럽다.
어느 산악회를 다녀 봐도 우리 금광처럼 가족적이고 푸짐한 인심을 베푸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무료봉사해주는 양동매씨들의 고마운 마음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고 싶다.
떡을 해오고, 과일을 가져오고, 술과 안주를 마련해주고,
여러 가지 간식거리를 자비로 해주는 여성회원들의 세심한 정 때문에 금광은 지금껏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런 매씨들과 여성회원들의 천사 같은 얼굴을 바라보며
오늘도 홍어회가 불티나고 상추쌈에 매운 고추가 입맛을 돋운다.
-경남 통영시 한산면 소매물도 등대섬을 다녀와서-
(2010년 6월 11일)
첫댓글 산행후기를 제일먼저 기다려지는것은 역시나 팡팡님의 소설같은 맛나는 글이아닐까 싶네요^*^그날의 추억이 되살아나네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