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앙정보국보다 CNN 방송을 통해 훨씬 빨리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부시(아버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의 고백이다.
미국 정부만 CNN을 이용한 것이 아니다. 1989년 12월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했을 때, 소련 외무부는 공식 외교통로가 아닌 CNN 모스크바 지사를 찾아가 CNN 카메라 앞에서 미국에 대한 비난 성명을 낭독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CNN 방송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1991년 1월 16일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였다. 그 당시 꼬리에 불이 달린 미국의 미사일이 어둠을 가르며 바그다드를 폭격하는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 가득 펼쳐지면서부터 CNN 방송의 뉴스는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당시 세계 각국의 모든 텔레비전 방송국은 시시각각 전개되는 전쟁 상황을 CNN 뉴스 화면을 따서 내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걸프전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윌리엄 웨브스터는 첩보위성을 통해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이 발사됐다는 정보를 입수할 때마다 부하직원을 향해 외쳤다.
“빨리 CNN 채널로 돌려 미사일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알아봐!”
이처럼 국경 없는 지구촌을 실현한 ‘CNN 왕국’의 황제는 1938년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난 테드 터너다. 그리고 이 왕국의 황녀는 영화배우로 유명한 제인 폰다였다.
사실 제인 폰다는 터너의 세 번째 파트너였다.
터너의 여성 편력은 대학시절부터 소문이 났다. 그는 브라운대학에 다녔는데, 여학생을 기숙사에 끌어들인 것이 발각되어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그가 두 번째 부인과 이혼을 하고 나서 제인 폰다에게 구혼을 한 것도 여성편력이 화려한 바람둥이다운 행동이었다.
폰다가 이혼 발표를 하는 텔레비전 기자회견 장면을 보고 있던 터너는 그 자리에서 결심하였다.
‘저 여자는 이제부터 내꺼야.’
터너는 그 날 밤 곧바로 폰다에게 전화를 걸어 결혼신청을 하였다.
터너와 결혼한 후 어느 기자가 폰다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그렇게 빠른 결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까?”
“진실을 그만큼 빨리 인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터너뿐입니다. 매력 있는 남자 아닌가요?”
폰다는 남편 터너를 잔뜩 치켜세웠다.
터너는 이처럼 결단이 빠른 사람이었다. 사업 수완도 그런 빠른 결단에서 나온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터너는 남다르게 탁월한 사업가의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것은 25세 때,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권총자살을 한 이후부터였다. 그는 졸지에 아버지가 경영하던 파산 직전의 광고회사를 떠맡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의 자살은 터너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는 빚더미에 올라앉은 광고회사를 살려내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야만 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그때처럼 고독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터너는 20대에 이미 그러한 역경을 딛고 일어섰다.
워낙 열악한 상황에서 떠맡은 회사이기 때문에 터너는 사업 초반부터 마치 살얼음을 딛는 듯한 위기 속에서 온갖 어려움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 돈을 전혀 쓰지 않고 적자회사의 재건에 성공하였다.
“아버지의 사업은 내가 계승한다.”
터너는 처음부터 아버지의 사업체인 옥외광고 회사를 다시 사들일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돈이 없었다. 그는 회사를 매수한 부자를 찾아가 말했다.
“그 회사를 돌려주시오.”
“20만 달러만 내면 팔겠소.”
부자가 말했다.
“당신이 이 회사를 되팔게 될 경우 소득의 90퍼센트는 세금으로 내야합니다. 차라리 주식을 갖고 계시면 긴 안목으로 보아 이득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제게 회사를 넘기시고 나중에 주식으로 거금을 챙기는 것이 더 이득일 겁니다. 어차피 사장님은 광고회사를 운영할 능력이 없질 않습니까? 그러나 저는 자신이 있으니, 회사 운영권을 넘겨주십시오.”
터너의 설득에 부자는 굴복하였다.
결과적으로 터너는 아버지가 진 빚을 한 푼도 지불하지 않고 옥외광고 회사를 그대로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위기를 넘겼다.
“결코 내가 뛰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내가 당시 가지고 있는 돈이 없었으니, 남의 것을 이용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습니까?”
터너는 몇 년 후 아버지의 옥외광회사 대주주가 되었다. 부자로부터 주식을 되찾게 된 것이었다.
터너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적자에 허덕이던 몇 개의 지방 유선방송국을 인수했다. 그리고 이 지방방송국들을 이용하여 자신이 구단주로 있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야구단과 호크스 농구단의 경기를 독점 중개함으로써 큰 광고수익을 올렸다.
터너는 야심가였다. 몇 개의 지방방송국을 경영하는 사업가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당시 CBS, NBC, ABC 등 기라성 같은 방송에 버금가는 방송국을 갖고 싶었다.
“나는 지금까지 텔레비전 뉴스를 본 것을 다 합쳐도 백 시간이 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뉴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24시간 뉴스만 하는 방송국을 만들 것입니다.”
1980년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터너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을 내놓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당시 언론에서는 그의 그런 꿈같은 발상은 실현 불가능한 몽상일 뿐이라고 비웃었다.
“현대인은 뉴스에 목마른 사람들입니다. 3대 방송이 프라임타임에 내보내는 30분의 뉴스 가지고는 시청자들의 마른 목을 축여줄 수 없습니다. 그 30분도 광고시간을 빼고 나면 고작 22분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는 24시간 뉴스를 내보내는 방송국을 반드시 설립할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터너의 결심은 요지부동이었다.
주위에서도 그의 이러한 허무맹랑해 보이는 발상에 대해 무모한 짓이라고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그 사람들에게 말했다.
“비행기가 발명되기 전에 ‘날아다니는 물체에 돈을 내고 타고 다니겠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새로운 발명의 경우는 일반 생활용품처럼 수요에 따라 공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터너다운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말 그대로 그의 경영철학이기도 했다.
아무리 발상이 좋아도 자금이 없으면 추진할 수 없는 것이 사업이었다. 더구나 방송은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자되지 않으면 안 되는 장기적인 사업이었다. 당시 터너에게는 그만한 자금이 없었다. 따라서 언론이나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를 허풍쟁이로 몰아붙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 터너는 여유 있게 웃었다. 그는 사업가적 기질을 발휘하여 자신의 유선방송국에서 통신위성을 이용해 당시 미국 전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던 지방 유선방송국으로 뉴스 전파를 보내는 방법을 착안하였다. 값비싼 장비를 동원하지 않고도 위성 중계료만 물면 쉽게 뉴스를 내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꼭 필요한 장비로 기자들이 보내오는 화면을 편집할 편집기 24대와 인공위성과 송수신할 수 있는 7개의 안테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터너는 우선 프로그램을 만들 때 정치․경제․스포츠․인물 뉴스를 각각 30분씩 방영하고, 2시간 간격으로 새로운 뉴스를 내보내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그러다가 돌발사태가 발생되면 기존 방송을 전면 중단하고 생생한 뉴스속보를 내보낸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는 긴급 뉴스를 내보낼 때 아예 광고방송도 중단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광고비보다 시청자 서비스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CNN 방송은 특히 세계에서 대형사건이 터질 때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1980년 출범 당시 CNN을 빗대어 ‘싸구려 방송국’이라고 비웃던 전 세계 방송국들이, 대형사건이 터지자 너도나도 CNN의 프로그램을 공급받기 위해 아우성쳤다. 방송사 개국 초기에는 1백70만 가구에 지나지 않던 가입자도 1991년 걸프전 이후 전 세계 95개국 7천5백만 가구로 늘어나 말 그대로 ‘지구 방송국’이 되었다.
걸프전 직후 캐나다의 매스컴 이론가 허버트 마셜 매클루한은 터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국경 없는 지구촌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는데, 그것을 실현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오.”
터너는 CNN 방송을 통하여 뉴스의 개념을 ‘과거에 일어난 것’이 아닌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바꾸어놓은 사람이었다.
【경영 마인드】다른 업체가 손대지 않는 사업에 도전하라!
유능한 사업가는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남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다. 테드 터너가 기존 방송국들과 다른 뉴스만 내보내는 방송국을 만들겠다는 발상을 한 것은, 이미 그가 미래 공중파 시장에 떠돌아다니는 돈을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보이지 않는 돈은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였다. 터너는 ‘뉴스는 돈이다’라는 방정식의 해답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18세기 미국의 정치가이자 과학자인 프랭클린은 당시 세계 최초로 기구를 하늘로 띄워 보낸 ‘몽골피에’라는 발명가를 극구 칭찬한 적이 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비웃었다.
“대체 하늘에 기구를 띄워 올린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입니까? 무슨 목적으로 그런 허무맹랑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시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막 태어난 어린아이가 대체 인생에서 어떤 목적을 가졌다고 생각하십니까?”
프랭클린의 반문이었다.
만약 프랭클린이 테드 터너와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뉴스만 전문으로 하는 방송국을 만든다고 했을 때 콧방귀를 뀌었던 사람들에게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 틀림없다.
언제나 새로운 사업이란 '몽골피에의 기구‘ 같은 것이다. 만약 하늘을 향해 띄워 올린 그 기구가 없었다면 비행기의 발명은 한참 더 늦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테드 터너가 CNN 방송을 공중파로 날려 보내 성공을 거둔 것은 바로 그가 ’몽골피에의 기구‘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예측하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디어 뱅크】공급과 수요의 법칙 사이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숨어 있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 사이에 새로운 사업의 아이디어가 숨어 있다. 테드 터너는 새로운 아이디어야말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놀랍게도 실현되었다.
아이디어의 힘은 바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신비감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신대륙을 발견하겠다고 파도와 싸운 콜럼버스도 그런 심리에서 항해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신대륙의 발견은 세계 인류와 문명의 이동을 가져왔다. 바로 신대륙의 발견이 수요를 창출한 것이다.
〇아이디어의 신대륙은 과연 어디일까? 그것은 그 신대륙에 첫발을 들여놓은 사람, 즉 발명가의 머리 속에 있다.
엄광용 선생님 홈피에서 가져온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