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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정문 ‘돈화문’ 앞에서 출단식을 가진 제9회 정조대왕 능행차길 체험순례단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을묘년(1795년), 조선의 성군 정조대왕은 길을 나섰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찾아가는 참배길이자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세계문화
유산 수원 화성 행궁에서 열기 위한 효의 순례길이었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1789년에 수원부 화산(현 화성군 태안읍)으로 옮긴 후, 지금의 서울 창덕궁에서 경기 화성시 융·건릉까지 을묘년을 포함해 13차례나 무던히 이 땅을 밟았다. 시간이 흘러 효심을 바탕으로 백성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나라의 융성을 꾀했던 으리으리한 정조대왕 능행차는 사라졌다.
길 위에는 낮은 기와집과 초가집 대신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처럼 역사책 기록으로 박제된 이 길을 다시 걷는 이들이 있다. 수원문화원이 주관하는 ‘정조대왕 능행차길 체험순례단’이 주인공이다.
■ 지식과 감성, 두 마리 토끼 잡는 체험순례
올해로 10회째 열리는 ‘정조대왕 능행차길 체험순례’는 매년 5월말께 참가 희망자를 접수 받아 6월초 최종 선발, 7월 중 진행된다.
전국의 초중고 학생으로 구성된 체험순례단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가던 길인 창덕궁에서 융릉까지의 62.2Km를 3박4일 일정으로 걷고 또 걷는다.
단순히 수 백년 전 국가적 행사였던 능행차를 재현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정조대왕 재위 기간의 그 위업과 치적을 되짚어가며 역사와 효심을 한 걸음씩 밟으며 꼭꼭 새기는 장이다.
특히 순례에는 전문가가 동행해 길 위에서 마주하는 유물과 유적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살아있는 역사책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국에 산재한
국토대장정과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체험순례단으로 모인 성장기
청소년이 낯선 이들과 공존과 상생을 함께 깨우칠 수 있도록 다양한 놀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조선시대 정조대왕 능행차도 그러했겠지만, 청소년들이 뙤약볕 아래 62.2Km를 걷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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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셋째날에 찾은 만석공원 내 저수지 만석거를 걷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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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도보 순례 중 찾은 수영장은 꿀 같은 달콤한 휴식 시간. | |
전국의 많은 청소년과 학부모들이 의미있는 체험순례단에 지원해 탈락자들이 항의할 만큼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지만, 실제로 일정이 시작되면 ‘괜히 지원했다’고 하소연하는 참가자도 여럿이다.
지구 환경오염으로 빨리 그리고 강하게 찾아오는 여름 더위가 가장 큰 장애물이다.
최근 몇 년간 체험 순례가 진행되는 7월이면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위에 갑자기 쏟아지는 비까지 겹쳐, 순례단의 체력은 물론 정신력마저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순례 일정 첫날에 진행되는 서울구간은 다른 도시보다 복잡한 도로사정과 많은 교통량에 체험 순례단의 안전확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이때 문화원 측 인솔자와 전문가, 경찰,
자원봉사자 등 많은 이들이 총동원된다.
이처럼 힘든데 10년이나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단연 역사를 배우면서 효심과 극기를 키우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세부 일정이 그 근원이다.
주인국 수원문화원 사무국장은 “전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문화원 주관 행사 중 가장 큰 프로그램으로 참가자들이 우리역사와 문화를 스스로 배우고 느끼는 한편 세계문화유산이 있는 도시 수원을 알릴 기회로 그 의미가 깊다”며 “10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순례단 규모를 확대하고 순례 일정에 다채로운 이벤트를 추가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걸으며 배우는 생생한 역사책짧다면 짧은, 그러나 그 시간의 수백 수천에 달하는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일정을 들여다보자.
체험 순례 첫날에는 이른 아침 7시쯤 서울 창덕궁 앞에서 모인다.
매년 잠기운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아이들이 억지스레 내달리고 부모와 참가 학생이 대화를 나누며
지하철 안국역 계단을 오르는 다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출단식을 알리는
현수막이 창덕궁 돈화문에 걸리고 순례단원들은 청룡ㆍ백호ㆍ주작ㆍ현무ㆍ황룡ㆍ봉황 등 6개팀으로 각각 나뉘어 줄을 선다.
이들은 정조대왕이 주로 지낸 궁궐이자 을묘년 능행차 출발지였던 창덕궁을 돌며 본격적인 체험 순례에 돌입한다.
수원문화원장의 출발 선언에 기수단 깃발을 선두로 한 순례단이 발걸음을 떼면 부모들은 걱정과 기대감으로 박수치며 자식을 떠나 보낸다.
이렇게 시작한 순례단의 첫날은 광화문에서 수문장 교대의식을 관람하고 경복궁, 덕수궁, 삼각지, 노량행궁, 남사초교, 과천초교로 이어진다.
순례단은 이 길을 걸으며 보고 듣는다.
경복궁 동남쪽 모서리에 설치한 망루였으나 일제에 의해 담장을 잃고 섬처럼 도로 한 가운데 떨어져 있는 ‘동십자각’(東十字閣), ‘구중궁궐’(九重宮闕)의 뜻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각 궁궐의 특징, 도심을 관통하는 아름다운 강이지만 능행차때는 장애물이었던 탓에 정약용이 고안한 배다리(배를 줄로 이어 그 위에 널판은 얹은 다리)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금은 건물 하나만 남아있지만 정조대왕이 한강을 건넌 후 잠시 쉬었던 ‘용양봉저정’(龍?鳳?亭ㆍ노량행궁)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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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단식에서 순례기를 반납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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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이 수원양궁장에서 열린 해단식에서 모자를 하늘로 던지며 3박4일 일정을 완주한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 |
이후 걷고 또 걸어 숙영지(宿營地ㆍ군대가 병영을 떠나 묵는 장소)인
과천초등학교에서 과천문화원과 수원박물관 측에서 준비한 역사 교육을 들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남은 일정도 알차다.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만큼 순례다은 서로 다독이며 서로 밀고 끌어주며 성장한다.
둘째날의 첫 행선지는 정조대왕이 과천을 지날 때 들러 쉬던 객사 성격의 과천행궁이다. 이어 조선시대 지방에 설치한 국립 교육기관인 과천향교에서 전통 예법을 익히고, 갈현삼거리에서 인덕원사거리까지 한 폭의 산수화 속 주인공인 듯 경치를 감상하며 걷는다.
사근행궁 자리에 위치한 고천동사무소에서 허기를 달랜다. 동사무소장은 터만 남아있지만 곧 복원 예정인 사근행궁을 설명하며 간식을 제공한다.
수원을 향해 발길을 재촉, 비탈길이어서 한 발자국 떼기도 힘겨운 지지대고개에 오르면 드디어 푸른 소나무가 도로 좌우에 늘어서 있는 노송지대를 마주한다. 이 길 끝에서 만난 둘째날의 숙영지
대평초등학교에 도착하면 지친 순례단원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환호성이 터져나온다고.
늦은 밤, 순례단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틀간의 고생한 기억을 떠올리고 그동안 편안했던 일상을 만들어 준 부모님에게 감사 편지를 쓴다.
정조대왕이 보여준 효심이 손편지를 쓰는 고사리손에서 한 그득 영그는 아름다운 시간이다.
‘죽음의 이틀’을 보낸 순례단에게 나머지 일정은 ‘누워서 떡 먹기’다.
정조대왕이 농사를 위해 축조한 후 쌀을 만석 이상 생산해 이름 붙은 저수지 ‘만석거’, 취타대의 힘찬 환영 연주를 들으며 당당하게 걸으며 관람하는 세계문화유산 화성, 화성행궁과
수원화성박물관, 수원 향교, 용주사와 융릉 등이 남은 일정을 장식하는 관람지다.
이 같은 알찬 역사 교육에 신나는 수영장과 한 여름 밤 수원양궁장에서 펼쳐지는
캠프파이어로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나흘 동안의 순례를 마무리하는 해단식에서 순례기를 반납하고 인증서를 수여받는 순례단의 얼굴에는 ‘해냈다’는 뿌듯함과 ‘배웠다’는 자부심이 만개한다.
노현호 수원문화원 주임은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드디어 문화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며 “특히 수원문화원의 능행차 체험순례는 서울에서 화성까지의 각 지역 문화원과 전문가 등이 힘을 합쳐 만드는 것으로 우리나라 대표 문화원 프로그램으로 꼽을 만 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