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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82년 10월 14일)
알트카스틸리엔 (Altkastilien)의 아빌라(Avila, 스페인)에서 태어난 성녀 데레사(Teresa)는 12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슬픔에 가득 찬 그녀는 대모(代母)에게 어머니가 되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는 곧 아빌라에 있는 가르멜회의 수녀원에 들어갔고 거기서 수도회의 일상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18세가 된 후에 그녀는 채찍질을 당하는 예수의 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개심할 것을 맹세했으며 그 맹세를 실천에 옮겼다. 그녀는 갑자기 하느님 의 현존을 느꼈다. 그녀는 신비로운 탈혼을 체험했고, 명상을 거듭하면서 신앙의 신비를 하나하나 깨치며 체득해 나갔다. 성녀가 받은 가장 큰 은총 중의 하나로서 환영을 보는 것을 들 수 있다. 그 환영 중에서 하느님은 그녀에게 지옥의 모습을 보여주셨고 그녀가 이전과 같이 태만한 가운데 머물러 있었다면 당했을 벌을 알게 해주셨다. 그러한 지옥으로부터 영혼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이제 모든 것을 태워 없애는 불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그녀는 곧 가르멜회의 오래 된 수칙들을 엄격한 관점에서 그 근본 정신을 이해하려는 충동을 느꼈다. 물론 그것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자기 주위에 모으게 될 동료들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성 페트루스 알칸타라(Petrus von Alkántara) 와 성 루드비히 베르트란(Ludwig Bertran)으로부터 이 계획에 대한 공감과 격려를 받고 용기를 얻었다. 그녀 자신은 몹시 병약하고 빈곤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울러 많은 경우에 극한적 고통에 처하거나 적대자의 세계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일곱 개의 가르멜회 수녀원과 그리고 십자가의 성 요한(Johannes vom Kreuz)의 도움을 받아 열다섯 개의 수도원을 세웠다. 이 회에 속한 사람들 모두에게 그녀는 이렇게 충고의 말을 해주곤 하였다. "하느님을 뵈려고 애쓰고, 하느님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하느님 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시오!"
성녀는 또한 저 세상에서 정화의 고통 속에 있는 영혼들에게도 지대한 사랑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녀는 그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바쳤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그녀의 생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죽은 이들에 대한 환영"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다른 기회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사람들로부터 한때 우리 수도회 관구장을 역임하다가 후에 다른 관구를 이끌었던 신부님이 임종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전에 그분과 영신적 친교를 가진 적이 있었고 또한 그가 내게 보여준 헌신적 봉사 때문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은 나를 몹시 슬프게 했다. 그는 아주 후덕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명복을 생각하며 근심에 싸 였다. 그는 거의 20년간을 수도회의 수도원장으로 있었다. 그런데 나는 수도원장의 위치에서 사제직을 수행한다는 것이 자신의 구령이라는 면에서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주 그분의 영신적 사정에 대하여 걱정하곤 했었던 것이다. 깊은 슬픔에 젖은 나는 기도실로 가서 일생에 내가 행한 모든 선한 공적을 그에게 돌려주시기를 주께 기도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의 영혼이 천국의 지복에 들어가는 데 충분할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께 이 영혼이 연옥에서 풀려 나가는 데 필요한 것으로서, 그가 일생 동안 쌓은 공덕을 갚아 주시기를 간절히 빌었다. 내가 그처럼 깊은 명상 가운데 주께 간청하는 사이에 그 죽은 사제가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와 내 오른편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환영으로 나타났다. 나는 그가 기쁨에 넘친 모습을 하고 하늘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는 임종 때에 노쇠한 나이였다. 그런데 이제 그는 마치 삼십 세 안팎으로 보였고 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이 현시는 잠깐 사이에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이 현시에 의해서 크게 위로를 받았다. 그는 생전에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지만 나는 이제 이 사제의 죽음을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받은 위안은 더할 수 없이 컸기 때문에 나는 이 사제의 죽음에 대해 내적인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이 환영이 진실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여기에 어떠한 미혹도 존재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이 사제가 돌아가신 지 이제 14일이 흘러갔다. 그 사이에도 나는 그의 영혼과 또한 다른 영혼들을 하느님께 맡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환영을 직접 보았을 때처럼 그렇게 열성으로 행할 수 없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만일 주께서 나로 하여금 어떤 영혼의 환영을 보게 해주실 경우에만 내가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주님의 엄위하신 사랑에 의탁하려 한다면 그것은 내가 주님의 사랑을 제한시켜 나누는 것이 되거나 참된 선행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 수사 신부님은 여기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임종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야 비로소 주께서 그에게 어떻게 마지막 시간을 갖도록 허락하셨는지를 들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임종 때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마지막 시각에 보여 주었던 그의 온전한 의식과 통회의 눈물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경건 한 순종을 통하여 모두들 마음 깊이 놀라운 신앙심을 새로이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우리 수녀원(곧 아빌라에 위치한 성모 방문 수도원)에 한 수녀가 살고 있었는데 그 수녀는 이틀 전쯤에 죽었다. 한 수녀가 고인을 위해 성가대에서 기도하고 나서 죽은 이를 위해 성서 구절을 봉독했다. 그때 나는 봉독 후에 그 구절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 그때 나는 성서 봉독 중에 고인의 영혼이 실연에서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같은 수녀원에서 또 다른 수녀가 죽었는데 그녀는 그 당시 스무 살이 채 안 된 나이였다. 그녀는 항상 병을 앓으며 지냈었다. 그녀는 열성적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고, 성가대에 다녔으며 성덕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뛰어난 인내를 갖고 병치례를 했으므로 나는 그녀가 확실히 연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천국으로 갈 만큼 넘치는 공덕을 쌓았으리라 믿었다. 그녀가 눈을 감은지 대략 네 시간이 지나서였다. 아직 매장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나는 그녀가 심연에서 나와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았다.
언젠가 나는 예수회 신학교에 부속된 교회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당했다. 그 고통은 간헐적으로 그리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나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아픔을 느꼈다. 그날 밤 이 신학교의 한 수사가 죽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그의 영혼을 하느님께 의탁하며 기도하였다. 같은 예수회의 한 신부가 그를 위해 추도 미사를 집전했다. 추도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깊은 명상에 빠졌는데 그 명상 중에 나는 고인이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았다. 나는 주께서 친히 당신의 엄위하신 사랑의 품안에서 그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특별한 은총을 입어 바라볼 수 있었다.
우리 수도회에 열성적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한 수사가 있었는데 그 역시 자주 병을 앓았다. 언젠가 다른 사람의 추도 미사에 참가했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의 추도 미사 중에 갑자기 이 수도자가 죽어서 연옥을 거치지 않고 천국으로 인도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되었지만 그는 내가 환영을 본 바로 그 시간에 죽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연옥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알고 보니 그는 수도자로서 자신의 수도회에 입회한 이래 입회 서약을 한결같이 성실하게 지켰으며, 수도회에 수여된 특은(Bulla Sabbatina)이 그에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그가 연옥을 면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체험이 깨우쳐 주고자 하는 정확한 의미를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아마도 옷이 수도자를 결정짓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도자는 수도복을 입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가 완전한 상태에서 보장받은 은혜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해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주께서는 내가 이러한 종류의 환영들을 많이 볼 수 있도록 은총을 내리셨지만 그것들을 일일이 보고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단지 여기서 한 가지 알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게 나타난 영혼들 중에서 단 셋만이 연옥을 거치지 않고 천국으로 갔다는 사실이다. 즉 언급한 신부의 영혼(성 마티아스의 디다쿠스, Didakus von hl. Matthias), 수사 성 페트루스 알칸타라(Petrus von Alcântara) 의 영혼, 그리고 페트루스 이바네츠(P. Petrus Ibañez OP.)가 곧 그들이다. 주께서는 또한 내가 몇몇 영혼들이 도달한 영광의 단계를 볼 수 있게 해주셨고 또 내게 그들이 차지한 자리가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보여주셨다. 그 영혼들이 얻은 영광의 자리와 다른 영혼들이 얻은 자리의 차이는 말할 수 없이 엄청난 간격이 있는 것이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신비한 그녀의 저서 「영혼의 성(De Seelenburg)」에서 하느님을 가까이 느끼려 하는 거칠고 광포한 요구가 야기할 수 있는 영혼의 고통을 직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연옥에 떨어진 불쌍한 영혼들이 자신에게는 결여된 하느님에 대한 행복한 직관을 동경하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을 그녀는 이 책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를 충분하게 묘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리라. 그것은 하나의 황홀경인데 이미 말했다시피 이 황홀경은 고통을 극대화시킬 뿐 그것을 경감시키지 못하며 감각과 재능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지성이란 것은 영혼이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아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느님은 바로 이 시간에도 연옥 영혼에게 당신의 본질에 대해 아주 생생한 인식을 주시면서 스스로 도우시므로 영혼의 고통은 절규할 정도에까지 이르게 된다. 연옥 영혼은 보통 아무리 큰 고통도 인내심으로 참는 데 익숙해 있지만 여기서는 달리 행동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연옥 영혼이 받는 고통은 육체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즉 성녀 테레사 자신과 같은 여기서 영혼의 고통이 육체의 고통보다 얼마나 더 격렬한가를 인지(認知)해 내었다. 동시에 연옥 영혼들이 겪는 고통이 바로 이러한 내면적이고 영신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육체로부터 벗어나서도 고통을 겪는다는 의미는 아직 육체를 지니고 살고 있는 모든 지상의 사람들이 겪는 고통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뜻한다.」
나 자신이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의 고통을 보며 나는 정말로 그가 임종이 가까웠다고 믿었다. 사실 죽음에 임박해서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게 되면 고통은 놀랄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육체는 완전히 뒤틀리고 맥박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희미하게 뛰어서 마치 영혼이 이미 하느님 곁으로 간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육체에 남은 온기는 점차로 식어 가고 영혼은 다른 불에 싸여 타 들어 가고 있었다. 하느님을 가까이 느끼려는 그의 욕구는 충족 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때 그는 이미 말했듯이 몸이 뒤틀리고 나중에는 삼사 일 동안 커다란 고통 속에서 글을 쓸 기운조차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고통은 전혀 느끼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무감각은 내면적으로 영혼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 너무 큰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영혼은 육체적으로 겪는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무감각한 상태였다. 나 자신이 이미 경험했다시피 우리가 육체의 어느 한 부분에 심한 아픔을 느낄 때면 그 외의 다른 아픔은 곧 잊고 만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는 영혼의 고통 상태 속에서는 육체의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의 몸뚱아리가 천 갈래로 부수어진다 해도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이처럼 격렬한 요구는 결함이라고 말할 것이다. 도대체 어째서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의 의지에 완전히 맡긴 후에도, 하느님의 의지에 맞게 자신을 형성해 가지 않는 것 인가? 지금까지는 그 사람도 그렇게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성이 더 이상 그를 지배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고통의 뿌리가 무엇인지만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최고선(最高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가 어떻게 아직도 살기를 바라겠는가? 그는 어떤 특이한 고립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지상의 모든 창조물과 천국에 있는 이들도 또한 내가 믿고 있는 바와 같이 당장 그들의 통공을 통하여 그를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오직 그가 사랑하는 이에게만 가능하고 다른 모든 이들은 그에게 고통일 뿐이다. 공중에 떠 있으면서 발이 땅에 닿지도 그렇다고 하늘로 오를 수도 없는 사람과 같은 처지에 그 사람은 놓여 있는 것이다. 영혼은 하느님을 소유하려는 타는 갈증에 시달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에 도 달할 수가 없다. 이 갈증은 참을 수 없이 크며 이미 어떤 다른 물로는 풀리지 않을 그런 정도에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우리 주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했던 그 물이 아니라면 이 영혼은 갈증이 풀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그 물을 지금은 얻지 못할 것이다.
오.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모하는 이들에게 왜 이처럼 고통을 주시나이까! 그러나 이 모든 아픔도 당신이 후에 그들에게 베풀어 주실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확실히 가치가 있는 것은 얻기가 힘든 것인데 영혼의 정화에 관해서 볼 때 여기에든 예에서처럼 일곱째 하늘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가치가 있는 일이다. 불을 통해 정화를 이루기 전에 천국으로 들어가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은총에 비한다면 이 고통은 대양에 물방울만큼이나 하찮은 것이다. 나는 지상에 이보다 더 큰 고통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위에 언급한 사람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다른 고통을 참아 왔겠지만 이 고통, 이 고난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혼은 이 고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고 있을 것이며 또한 이러한 인식이 그의 고통을 조금도 덜어 주지 못한다 해도 그는 진심으로 그 고통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의지가 그러하시다면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일회적인 죽음일 뿐만 아니라 영구적인 죽음일 것이다.
지옥에서 신음하는 저주받은 자들에 대해 살펴보자. 그들은 하느님의 의지와 반대되는 상태에 있으며, 하느님께서 은총을 내리신 영혼에게 선물로 주시는 기쁨과 희열을 모르고 사는 자들이다. 이 저주받은 영혼들은 자신이 겪는 고통에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며, 사악한 죄악에 해당하는 고통은 점점 더 강도가 심각해질 것이 틀림없다. 영혼의 고통이 대체로 육체의 고통보다.. 더 깊고 크며, 저주받은 자들의 고통이 우리가 지금까지 다뤄온 이들의 고통보다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것이라면, 지옥의 저 불행한 이들은 자신의 고통이 영원히 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찾아 들 때 과연 어떨 것인가? 우리가 짧은 인생에서 잘못한 것을 정화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겪는 연옥의 고통들은 지옥에서 처참하게 영원히 지속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1. 성 루드비히 베르트란(1581년 10월 9일)
1526년 새해 첫날 스페인의 발렌시아(Valencia)에서 태어난 성 루드비히 베르트란(Lndwig Bertran)은 엄격한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도자로서 처음에는 수련 수사로 수도회 생활을 시작해서 다음에는 7년 동안(1562년부터 1569년까지) 선교사로서 뉴그라나다(오늘 날의 콜롬비아)에서 활동을 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다시 고향 스페인으로 돌아와서 고향의 도시에 머물면서 발렌시아의 훌륭한 대주교 성 요한 리베라(Johannes von Ribera, 1611년 사망) 그리고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82년)와 함께 트리엔트 공의회 개혁 정신으로 일을 했다. 또한 내세의 정화에 대한 트리엔트 공의회의 정신과 그 교의 규정에 입각해서 불쌍한 영혼들을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도울 수 있고 또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서품식 (1547년)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완전히 개인적으로 체험했었다. 그 당시에 그의 죽은 아버지가 8년 동안이나 여러 번 그 앞에 나타나서 도움을 청했다. 마침내 성직에 있는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하느님께 수없이 많이 드린 기도와 추도 미사 봉헌 후에 그의 아버지가 연옥 정화의 고통에서 벗어나 지복(福)의 광휘 속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성 루드비히 베르트란은 위령의 날에 고인들을 위한 세 번의 추도 미사를 집전할 특권을 얻은 최초의 성직자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성 루드비히 베르트란이 죽은 지 일 년 후에 그의 수도회 동료 수사인 빈첸시오 안티스트(Vinzenz J. Antist)가 저술한 전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다. 즉 그가 어느 날 추도 미사를 올릴 수 없게 되었을 때 이 도미니코회의 성자에게 성찬식에 대한 큰 사랑이 더욱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인데, 크리스마스는 이 축제일의 세 번의 미사와 함께 그에게는 아주 각별한 축제였으며 또한 위령의 날에는 "(발렌시아) 관구 전체에서 연령들을 위해 세 번의 미사가 봉헌되는데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의 관례에 따른 것일 뿐만 아니라 교황 율리우스 (Julius) 3세의 특별한 허가를 근거로 한 것이다.""
성 루드비히 베르트란의 일생 중에서 다음의 일들이 알려져 있다. 그는 언젠가 밤에 성가 기도가 끝난 후에 이미 고인이 된 수도희의 동료를 환영으로 보았다. 그는 불에 휩싸인 채로 성 루드비히 베르트란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해서 폐해를 입힌 것을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다. 이어서 고인은 자신이 지금의 연옥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신을 위해서 추도 미사를 올려 줄 것을 성인에게 간절히 부탁하였다. 성인은 그 다음날 즉시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날 성인은 고인이 장엄한 영광의 광채에 싸여 천국으로 오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피앗미희님이 카톡으로 보내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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