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5년 농촌공동체로 시작한 '풀무원'은 76년 국내 최초의 유기농운동체인 '정농회' 설립으로 이어진다. 그사이 사람을 바로 세우기 위해 경남 거창고등학교 이사장(1960)을 맡았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국내 최초의 국제구호활동단체인 '기아대책 한국지부'를 창설했다. 1992년에는 78살의 나이에도 브라질 리우환경회의 글로벌포럼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뒤, 환경단체인 '환경정의시민연대'를 세웠다.
풀무원의 뜻
"풀무질 있잖아요. 쇠 달구는 풀무질. 그거 하자는 뜻이었어요. 내가 부천에서 청년들을 모아 농사짓기 시작한 곳이 미군 비행장 부근이었어요. 미 군목들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하우스보이(미군부대에서 잡일하던 전쟁고아)들을 보낼 테니 농사도 가르치고 교육도 시키겠느냐'고 했어요. 내가 '보내라'고 했지. 그 사람들 모아 일을 시작했어요. 일이 사람을 만드는 풀무질이지요. 쇳덩이가 풀무질로 쓸모가 되듯이. 그래서 이름이 풀무원이에요."
원경선 원장은 애초 사업가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성공한 청년 농장주였고, 중국 베이징에서 인쇄소를 열었던 적도 있다. 해방 후에는 토목건축 사업으로 큰돈을 벌기도 했다. 그러나 불혹이 넘어 그는 새로운 삶을 택했다. 1955년 경기도 부천의 황무지 1만평에서 새 꿈을 담은 풀무원을 지었다. 협업농장 체제로 운영되었는데, 초기에는 구성원의 절반이 고아와 떠돌이, 부랑자들이었다. 원 원장은 오전 한나절엔 성경과 교양 교육을 하고, 오후에는 영농기술이나 양계법을 가르쳤다. 슬하의 7남매도 따로 두지 않고 풀무원 구성원들과 한방에서 자고 한솥밥을 먹게 했으며, 농사일과 허드렛일도 똑같이 시켰다고 한다.
[ 원경선 원장 약력]
1914 평안남도 중화군 출생
1935 황해도 수안공립보통학교 졸업
1955 경기도 부천에 풀무원농장 및 공동체 설립
1976 풀무원농장을 경기도 양주로 옮기고 한국 최초로 유기농을 시작함
1976 한국 최초의 유기농단체 '정농회' 창립
1990 한국기아대책기구 부회장 취임
1992 환경정의시민연대 이사장 취임
1995 유엔 '글로벌 500'상 수상
1997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1998 '인간상록수'와 '인촌상' 수상
2002 영농조합법인 풀무원농장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