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
: 신문에서 스님들의 '가사'를 조계종 총무원이 주관하여 직접 제작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승복 제작자들의 반발도
있다고 하던데요. 答 :
질문에 답변을 드리기
위해서 먼저 '가사'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가사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져 있는 수행과 의식의 옷입니다. 원래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카사야(kasaya)라는
말에서 유래됐는데, 괴색(壞色)이라 해서 색깔을 파괴했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한국 불교에서는 비슷한 뜻으로 검게 물들인 옷인 치의(緇衣)라는
이름이 있는데, 스님들을 치문(緇門)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또 가사는 흔히
시주받은 천을 조각조각 꿰매어 만들어 입었다는 의미로
납의(衲衣)라고도 합니다. 스님들이 스스로를 낮추어 납자(衲子), 소납(小納)이라고 칭하는 것도 납의를 입은 수행자란 말에서 나왔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분소의(糞掃衣)라고도 했습니다. 분소의란 죽은 시체를 감싸던 천을 말합니다. 물질적으로 보면 전혀 가치가 없어 버리는 천인데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이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는 수행자에게 몸을 가리는 기능만으로 가사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가사는 공양그릇인 발우와 더불어 스님들이 평생 간직하는 청정과 무소유의 대명사가 됩니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 법을 잇는 증표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복전의(福田衣)란 말도 있습니다. 가사를 보시하거나 입음으로써 복을 받는다는 의미와 함께 길고 짧은 조각을 이은 것이 마치
전답(田畓)모양을 상징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여기에서 가사가 기원했다고
하는데, 경전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설법에 깊은 감명을 받은 마가다국의 프라세나지트
국왕이 어느 날 말을 타고 길을 가는데 반대편에서 불도 수행자가 오므로 말에서 내려 공손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들은 불제자가 아닌
바라문이었습니다. 왕은 바라문을 불제자와 혼동한 것을 큰 실수로 여기고 부처님을 찾아가 불제자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승복의 제정을
간청했는데 부처님께서 옆에 있던 아난을 보고 논을 가리키면서 저런 모양으로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가사의 시작이 됐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뜻을 지니고 있는 가사는 부처님 당시부터
사사공양(四事供養)의 하나로 중요한 보시의 품목이었습니다. 재가자들이 출가자들에게 올리는 보시의 대표적 방법이 사사공양인데 여기서 4가지는 음식,
약, 옷, 방사를 의미합니다. 옷의 공양이 바로 가사인 것이지요. 인도에서 가사는 1년 내내 입을 수 있는 평상복이었습니다. 지금도 기후가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는 가사 외에는 다른 옷이 필요 없으므로 맨 몸에 가사만을 걸칩니다. 이것이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의식이나 각종 법회를
장엄하는 의식복으로 사용 범위가 넓혀진 것입니다. 이렇게 가사를 입는 것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승가를
상징하는 불교의 전통입니다. 예전엔 절에서 가사불사를 벌여 절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바느질로 가사를
만들어 입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승복을 전문으로 만드는 승복가게에서
공급하게 되었지요. 자연히 가사의 가격이 매겨지게 되고 그러다보니 값비싼 가사도 등장하게 됩니다. 또한 여러 승복가게에서 만들다보니 색깔이나
모양이 제각각이었습니다. 일반인도 쉽게 구해 입을 수 있어서 나쁘게 쓰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조계종단에서는 그
의미가 많이 변질된 가사의 공급과
의제를 바로잡고 종단의 정체성 확립과 출가 승가의 위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직접 가사제작을 주관하기로 한 것입니다. 생계문제 등이 얽혀있는
승복 제작자들의 항의와 저항이 있긴 하지만 최근에 종단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일을 추진 중이어서 곧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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