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영월 언니와 형부가 정성들여 농사지은 찰옥수수가 잘 익었다고 와서 따 가라고 해.”
“그래? 그럼 돌아오는 휴일에 다녀오자.”
“감자도 수확을 많이 해 두었으니 가져가서 먹으라고 해.”
“그러지 뭐. 해마다 처형 부부에게 신세를 지는군. 이번엔 용돈을 듬뿍 드리고 오자구나.”
해마다 여름철이 오면 우리 부부는 아내의 고향인 강원 영월로 찰옥수수 식도락 여행을 다녀온다. 그곳에서 처형 부부가 작은 밭뙈기로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동서는 주택을 짓는 공사현장에 기술자로 일하러 다니고 처형은 음식점에서 일을 한다. 맞벌이부부로 일하는 셈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집 주변의 밭뙈기에 갖가지 농작물을 재배해 자신도 먹고 형제들에게도 나눠준다.
처형 부부 소유의 밭은 면적이 넓지는 않지만 땅이 워낙 기름지고 처형 부부가 부지런하게 농사를 지어서 수확물은 아주 많다. 거기엔 찰옥수수를 비롯해 감자, 배추, 파, 부추, 오이, 가지 등 다양한 농작물을 심는다. 철따라 농작물을 심고 가꾸면 상상 이상으로 수확물이 나오고 그것을 우리 형제들에게 나눠준다.
여름철이 되면 감자와 찰옥수수를 비롯해 가지, 오이, 파 등을 수확해 나눠준다. 이번 여름에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알이 크고 토실토실한 감자를 수확했고 또한 찰옥수수도 잘 여물었다고 연락이 와서 가게 된 것이다.
부산에서 강원 영월까지는 자동차로 다섯 시간 안팎으로 걸리는 거리다. 통상 신대구부산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충북 제천나들목으로 빠져 나가서 처형 부부가 사는 곳인 영월 주천마을로 가면 된다. 휴게소에 한두 번 들러 쉬었다가 간다.
우리 부부는 처형의 찰옥수수 수확 소식을 듣고 휴일을 잡아 새벽에 집을 나섰다. 여름철이지만 새벽시간이어서 그다지 더운 줄은 몰랐다. 집에서 새벽 다섯 시에 나서니 아직 어두컴컴했다.
간단하게 물과 간식을 챙겨 집을 나서니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찰옥수수와 감자 등 여러 가지 농산물을 싣고 와야 해서 자동차를 최대한 비워서 갔다. 타이어에 공기도 잔뜩 넣었다. 그리고 처형 부부가 좋아하는 맥주와 어묵도 좀 챙겼다.
모처럼 아내와 둘이서 먼 곳으로 여행을 가니 기분이 상쾌했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찰옥수수를 실컷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나는 사실 옥수수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고향 경남 사천에서 어린 시절 틈틈이 옥수수를 먹고 살았지만 배가 고프니 먹었다. 그래서 커서는 옥수수를 멀리했다. 가끔 옥수수 뻥튀기를 먹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강원도 처녀인 아내를 만나 찰옥수수를 맛보고는 찰옥수수의 풍미에 빠져들었다. 덩달아 감자도 좋아하게 됐다. 아내는 찰옥수수와 감자로 다양한 요리를 했다. 찰옥수수로 올챙이묵과 옥수수죽을 만들고 감자로는 감자떡, 감자부침, 감자수제비 등을 만들었다. 강원도 토속 요리는 내게 그야말로 별미 그 자체였다.
토요일 새벽 다섯 시에 부산을 출발해 강원 영월 주천마을에 도착하니 오전 열 시였다. 처형 부부는 우리 부부를 무척 따스하게 반겨주었다. 옥수수와 감자를 미리 쪄 놓아서 장시간 여행으로 배가 출출했던 참이라 게걸스럽게 먹었다. 찐 찰옥수수와 감자는 언제 먹어도 맛이 훌륭했다.
밭에서는 오이와 가지, 강낭콩, 대파 등 여러 가지 농작물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잘 익은 싱싱한 오이를 하나 따서 물에 씻어 베어 먹으니 갈증이 말끔하게 해소됐다.
우린 처형 부부와 수다를 떨며 좀 쉬었다가 본격적으로 찰옥수수를 수확하였다. 사람 키 크기만큼 자란 찰옥수수 사이로 오가며 잘 여문 찰옥수수를 열심히 땄다. 햇볕과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 찰옥수수는 처형 부부의 땀방울에 보답이라도 하듯 알알이 여물어 있었다. 비록 날이 덥고 습했지만 찰옥수수를 따는 즐거움은 매우 컸다.
오후 내내 찰옥수수를 따니 마대자루에 여섯 자루 나왔다. 찰옥수수 줄기나 이파리에 얼굴과 팔이 긁혀 따가워도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여문 농작물을 따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직 덜 여문 찰옥수수는 남겨두었다가 다음에 여물면 수확할 것이다.
역시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실감 났다. 처형 부부가 부지런하게 돌보니 농작물은 풍작을 이룬 것이었다. 처형 부부는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늘 동생이나 이웃에게 베풀려고 한다.
우리는 저녁에 감자부침과 삼겹살구이를 안주로 해서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처형 부부는 시골에서 자라 얼굴이 구릿빛이었다. 잔병치레 없이 건강해 보였다.
다음 날 일요일에 아침밥을 먹고 찰옥수수, 감자 들 갖가지 농산물을 차에 가득 싣고 부산으로 향했다.
“처형, 동서 형님, 찰옥수수와 감자 잘 먹을게요. 항시 받기만 해서 죄송해요. 그리고 너무너무 고마워요.”
“응,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가져가서 맛나게 잘 먹어. 우린 베푸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니까. 다음에 시간나면 또 놀러와. 부산에 무사히 도착하면 전화하고!”
우리 부부는 부산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 슬그머니 자동차 가속페달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