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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소설가 한강,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아시아 여성작가 중 최초, 한국문학 새 역사를 쓰다
우리문학이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커다란 발판 마련
2024년 10월 10일은 한국문학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날이다. 소설가 한강(54) 씨가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깜짝놀랄 소식이 왔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분야까지 합쳐도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놀랍고 자랑스럽고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기 그지없다.
올해 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씨를 뽑은 스웨덴 한림원은 한 씨가 "역사적 상처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과 제주 4.3 사건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이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화해의 방식으로, 문학적 승화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2014)는 노벨문학상 수상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의 총에 스러진 열여섯 살 소년 동호를 중심으로 5월 광주를 정면으로 다뤘다. 출간 당시 한강은 여러 인터뷰에서 5·18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소설을 쓰는 동안 거의 매일 울었다. 세 줄 쓰고 한 시간을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광호(문학평론가)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소년이 온다>에 대해 “역사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섬세하고 시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문학적 작품”이라며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폭력과 기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문학적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강 소설가는 "설령 역사적 배경이 다르다고 해도 우리가 인간으로서 공유하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누구든 이해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한다. 한강 소설가에게는 한화 13억 4천만 원에 달하는 상금과 메달, 증서가 수여된다. 시상식은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소설가 한강은 이미 2016년 5월에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상(Man Booker Prize)을 수상한 적이 있다.
영어권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맨 부커상은 1969년에 제정되어 영어로 쓰인 최고의 소설에 수여되는 상이다. 맨 부커 인터내셔널상 부문은 2005년 신설된 것으로 어떤 언어로 쓰였든 영어로 널리 읽히는 작가의 공을 기리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2016년부터는 번역상의 의미도 포함해 영어로 번역돼 영국에서 출간된 작품에 상을 수여하게 됐다. 상금으로는 작가인 한강과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5만 파운드(한화 약 8,600만원)를 나누어 수여받았다.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소설가 한강과 함께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상을 수상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36)는 보이드 톤킨 심사위원장으로부터 “그의 완벽한 번역은 매 순간 아름다움과 공포가 기묘하게 뒤섞인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았다. 영어만 할 줄 알았던 영문학도 스미스는 당시 6년 전인 2010년에야 독학으로 한국어를 시작했다. “한국 문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한국인을 한 명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할 만큼 한국과 인연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영문학 학위를 마치고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한국어 번역가가 적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는 한국어 번역을 택한 것에 대해 “이상하지만 확실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2년가량 한국어 공부 후 처음 번역할 때만 해도 “사실상 하나 걸러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봐야 했던, 끔찍한 실력”이었지만, 꾸준히 노력해 안도현의 <연어>,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과 <서울의 낮은 언덕들>, 한강의 <소년이 온다> 같은 한국문학 작품을 다수 옮기며 전문 번역가로 올라섰다. 당시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데버러 스미스라는 이상적인 번역가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의 작품성을 알아보고 주요 출판물로 밀어준 영국 문학전문 출판사 포르토벨로의 편집자 맥스 포터의 덕도 컸다고 한국 관계자들은 전했다. 번역자에게 1만5,000달러와 한국문학을 출간하는 해외 출판사에 5,000달러를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 문학·번역 지원사업을 벌이는 대산문화재단도 ‘수상’을 만들어낸 공로자들이다.
<채식주의자>는 해외에서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 유력 일간지로부터 "한국 현대문학 중 가장 특별한 경험", "감성적 문체에 숨이 막힌다", "미국 문단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등의 호평을 받았다. 또 맨부커상 최종후보 선정 뒤 아일랜드 일간지 아이리쉬 타임스(IT)가 한강을 맨부커상의 주인공으로 꼽는 칼럼을 싣고 미국의 해외문학 소개 전문지인 'WLT'(World Literature Today)가 메인 인터뷰로 다루는 등 관심이 쏠려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당시 심사위원단 5명은 만장일치로 <채식주의자>를 수상작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위원장인 영국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 보이드 톤킨은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 잊혀지지 않는 강력함과 독창성을 가진 소설”이라며 “강렬한 알레고리로 꽉 차 있으면서도 재치와 절제가 조화된 작품”이라고 밝혔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2016년의 가장 관능적인 소설”, AP통신은 “심연을 흔드는 소설”이라고 평가했으며, 가디언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산문과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내용의 조합이 충격적이다"라고 평가했었다.
2004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처음 발표된 <채식주의자>는 한강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세 편의 소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을 하나로 연결한 연작소설. 이중 <몽고반점>은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단행본 <채식주의자>가 출간된 것은 2007년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각인된 기억 때문에 철저히 육식을 거부한 채로 ‘나무’가 되기를 꿈꾸는 영혜. 미약한 존재가 난폭하고 어두운 세상과 어떤 식으로 대결하는지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몽고반점>은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처제인 영혜를 성적 욕구대상으로 삼는 형부의 이야기, <나무불꽃>은 영혜가 입원한 정신병원으로 찾아가는 언니가 들려주는 자매의 서사다. 한강은 “이 소설은 우리가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계를 견뎌낼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채식주의자>는 전 세계 수십개국에 판권이 팔린 상태다.
한강은 "책을 쓰는 것은 내 질문에 질문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때로는 고통스러웠고 힘들기도 했지만 가능한 한 계속해서 질문 안에 머물고자 노력했다"며 "나의 질문을 공유해줘서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한강 자신은 이 작품을 "인간의 폭력성과 인간이 과연 완전히 결백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 작품"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허윤진 평론가는 소설 <채식주의자>에 대해 “작가는 상처와 치유의 지식체계를 오랜 시간 동안 기록해온 신비로운 사관(史官)이다. 그녀의 많은 소설은 일상의 트랙을 벗어나 증발해버린 타인을 찾아나서는 이들의 움직임을 그린다. 이런 여러 탐색담은 대상을 찾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정상성을 벗어난 인물들을 찾아나선 ‘정상적’인 인물들은 스스로 감추었거나 잊었던 트라우마와 조우한다. 마치, 애초에 그들이 그토록 닿으려 했던 목적지가 그 깊은 상처였던 것처럼”이라고 평한다.
또, 황도경 평론가는 한강의 작품세계에 대해 <문학사상>2005년 2월호에서 “존재의 숙명적 상처와 세상의 근원적 어둠에 대한 처연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식물적 상상력으로 그에 대응해온 작가가 도달한 이 새로운 미적 차원은 놀랍고 신선하다. 상처와 어둠의 극한까지 밀어붙여 존재의 처음과 끝, 그 신비로운 근원을 엿보고자 하는 열망으로 도달한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는 우리 소설을 일상과 탐욕의 저잣거리로부터 끌어올려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시키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소설가 한강은 1970년 늦은 11월에 태어났으며,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않는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대산문학상,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김유정문학상, 김만중문학상, 인터내셔널 부커상, 말라파르테문학상, 산클레멘테문학상, 메디치 외국문학상,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2024년 노벨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9년에는 세계 100명의 작가가 작품을 제공해 2114년에 공개하는 노르웨이 '미래도서관' 프로젝트의 참여작가로 선정되어 원고를 전달하기도 했다.
2018년까지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한 후 현재는 전업작가로 글을 쓰고 있다. 한강의 문학적 배경에는 ‘문인 가족’이 있다. 아버지는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해변의 길손> 등을 펴낸 소설가 한승원(85)이고, 오빠 한동림(56) 역시 신춘문예 등단 작가로 소설과 동화를 쓰고 있다. 남동생 한강인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후 카페를 운영하며 만화와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 한강의 남편은 김달진문학상·유심문학상 등을 수상한 문학평론가 홍용희 경희사이버대 교수다. 한강은 한국문단의 대표적인 문인 가족이라는 문학적 자양분도 갖고 있는 셈이다.
한승원과 한강은 1988년과 2005년 각각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대에 걸친 ‘부녀 수상’이라는 진기록도 갖고 있다. 한승원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화 돼 1989년 제27회 대종상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한강의 <채식주의자> 역시 2009년 임우성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다. 한승원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아버지가 소설가이지만 (딸이) 한번도 소설을 봐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숨어서 소설을 썼다”며, “딸의 소설은 문체가 섬세하고 시적이고 서정적이며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녀가 2014년 발표한 <소년이 온다>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중학생 동호와 인물들의 아픔을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채식주의자>에 이어 해외 문단의 큰 주목을 받아왔다. 2016년 5월에는 신작 소설 <흰>, 2021년 9월에는 <작별하지않는다>가 또 출간됐다.
2023년에는 <작별하지않는다>로 프랑스의 4대 문학상중 하나인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경하, 인선, 정심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장편소설이다.
소설가 한강의 작품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평가도 나온다. 혹자는 노벨문학상 수상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않는다>의 경우 5.18광주민주화운동이나 제주4.3사건을 지나치게 편향적 관점에서 기술, 역사를 왜곡한 작품이라고 혹평하는가 하면, 맨부커상 수상작인 <채식주의자>의 경우에는 작품 전개 과정에서 성적(性的) 묘사가 너무 리얼하여 청소년유해도서로 지정하는게 당연하다는 평도 거침없다.
그렇지만 이건청 시인(한양대 명예교수,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은 “많은 소설작품들이 역사의 트라우마를 작품의 제재로 하고 있으며, 거대 권력에 맞서는 작품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 거대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취약성 역시 소설문학이 다뤄오는 흔한 주제이다. 그런데, 스웨덴 한림원은 소설문학이 다뤄온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취약성을 폭로’하는 일반적 주제를 다룬 한강의 소설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면서, 그런 작품들이 지니는 ‘강력한 시적 산문’을 노벨상 수상작을 선정한 이유로 들고 있다. 다시 말해 역사적 트라우마라는 무거운 주제를 시적 아름다움을 지닌 문체로 이뤄낸 업적을 평가척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한다. 즉,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인간의 취약성’ 보다는 ‘강력한 시적 산문’에 더 큰 무게 중심이 놓이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필자가 한강 작가를 처음 만난 건 2010년 10월, 경주에서 열린 김동리문학상 시상식장에서다. 당시 한강 작가가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로 제13회 김동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수수한 옷차림에 마치 소녀같이 수줍어하는 모습이었던 그녀가 불과 14년 만에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엄청난 쾌거를 이루다니 필자도 참으로 기쁘고 놀랍다.
당시 한강 작가는 김동리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이 소설은 쓰면서, 소설을 쓰는 일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삼분지 이쯤 써놓고 거의 포기한 채 1년 정도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4년 반의 시간을 힘겹게 품고 있었고 때로 부딪치며 싸웠던 생각들, 의문들을 이즈음에도 종종 다시 꺼내 들여다 봅니다. 제가 글을 쓰는 한 이 싸움이 더 오래 계속될 거라는 사실이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문득 담담하게 받아들여집니다”라고 말했었다. 다시 한번 한강 작가 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글/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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