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수술을 마쳤다. 수술병원은 파○○안과, 집도의는 임○○ 선생님이다. 12월 19일 오전에 오른쪽 눈을, 20일 오후에 왼쪽 눈을 수술했다.
백내장(白內障)은 안구의 수정체가 혼탁해져서 시력장애를 일으키는 질병이다. 그리고 백내장 수술은 흔한 수술이다. 효령타운에서 만난 노인 열 명 중 여덟 명 정도는 이미 그 수술을 받았을 만큼 흔했다. 이런데도 백내장 수숭에 대하여 나는 거부감이 있다.
20여 년 전이다. 장모님께서 백내장 수술을 하신다고 하여 모시고 갔다, 당시 병원에서 수술 장면을 모니터로 보여주었는데, 그것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 거부감 때문에 수술 날짜를 잡았다가 미루었다. 3개월 정도 뒤로 미루었다, 아무리 그래도 수술 날짜는 뽀닥뽀닥 다가왔다.
병원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14일부터 아스피린 복용을 멈추고 18일에는 내과 검사도 받았다.
19일 수술 당일에는 아침을 거른 채 병원으로 갔다. 8시 30분 예약 시간에 맞추려고 서둘렀다. 우리 집에서 병원으로 가는 노선버스가 없으니 조금 일찍 나서야 했다.
병원에서 수술을 마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시장기가 느껴진다. 그것이 상당히 심하다. 그래도 별 탈 없이 수술을 마쳤다.
수술실에서 나올 때 오른쪽 눈에 정사각형 모양의 안대가 붙여져 있었다. 간호사는 그것을 ‘수퍼포아’라고 알려준다. 일부러 다가와서 속삭이듯 알려준다.
그때 다른 간호사가 복용할 약을 주고 눈물 약도 준다. 3개인데 뚜껑의 색깔이 다르다. 보라색 눈물 약 ‘기티플로’와 파란색 눈물 약 ‘라이트플론티’ 이상 2개는 4시간마다 넣고, 하얀색 눈물 약 ‘브로낙’은 12시간마다 넣으라고 일러준다. 눈물 약을 넣을 때 손을 씻고, 5분 간격으로 넣으라고 알려준다. 참 꼼꼼하기도 하다.
또 어린아이 장난감 같은 안경도 준다. 잠결에 눈을 비비거나 만지는 것을 방지하는 안경이다.
‘수술 후 지킬 사항’이 적힌 종이도 준다. 세수 샤워 등을 일정 기간 금하여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라는 당부이다.
'몸이 천 냥이라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내일은 밥을 먹고 와야지.' 아내가 준비한 음료수로 시장기를 달래며 이렇게 생각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20일에는 오후 1시 30분까지 간다.
병원 근처에서 밥을 먹고 갔다. 도착하자마자 혈당검사를 했다. 340이다.
"걸어 다니며 운동하세요.“
간호사의 말이다. 그런데 자꾸만 앉고 싶다. 식곤증이 오는 시간이라 눈이 의자로만 간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졸졸 따라다니며 걸으라고 종용한다. 그래도 앉을 자리만 보인다.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혈당검사를 받았다. 314이다. 운동을 더 하라고 한다.
'운동하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엉뚱한 질문을 했다.
"왜 수술을 안 해요?“
"수술환자가 많아서 그래요?“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간호가 대답한다 그래도 친절하게 대답한다.
"수술환자도 많지만, 혈당 수치가 300 이하로 나와야 해요,“
이때까지도 운동하라는 이유를 실감하지 못했다. 참으로 무딘 인간이다. 얼마의 시간이 되어 세 번째 검사했다. 뱃속이 편안해져서 정상 수치가 나오리라 은근히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350이다.
나와 나란히 앉아 검사받은 환자는 나보다 더 심각했다. 그의 혈당 수치가 400을 넘어 500에 육박했다. 간호사는 그 환자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때사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거기서부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목표 지점은 검사실이 있는 9층이다.
2층까지 오르는데 29계단이다.
3층으로 올라갔다. 23계단이다. 먼저 11계단 오르고 오른쪽으로 돌아 1계단 오르고, 또 오른쪽으로 돌아 11계단을 오르면 3층이다.
4층에 올라왔다. 다소 숨이 차고, 발걸음도 무겁다.
5층 6층 7층, 오를 때마다 잠깐 쉬고 숨을 고른 다음 계단을 올랐다. 다리에 힘이 빠지니 몸의 균형이 잡히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난간을 잡고 올라간다. 8층까지 올라왔다. 죽을 맛이다. 채계산에서 계단을 오를 때, 계단 사이에서 보았던 글귀가 생각난다.
“계단 걷기는 심혈관 질환을 예방합니다.“
"몸도 마음도 머리도 맑아지는 계단 오르기“
계단 오르기는 심장병 환자인 나에게 적합한 운동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힘을 냈다. 9층에 올라왔다. 190계단에 불과하지만, 검사실에 들어왔을 때, 다리가 풀리는 듯하여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래도 기분은 상쾌하다. 계단 오르기의 긍정적인 효과였다
숨을 고르고 있는데 검사하자고 한다. 네 번째 건사이다. 검사실로 걸어가는데 간호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300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포기한다.’ 무슨 결단이나 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261이에요.’ 간호사가 외치듯 알려준다. 아내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내 몸이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아 반갑다. 백내장 수술을 앞둔 사람은 금식해야 한다. 나처럼 혈당 조절이 안 되는 환자는 더욱 그래야 한다.
5시가 거의 다 되어 수술대에 올랐다.
얼굴을 파란 천으로 덮는다. 투명 비닐 같은 것을 눈 위에 덮고 접착제가 있는 종이 같은 것을 눈 부위에 붙인다.
의사의 집도가 시작된 듯하다. 눈꺼풀이 내려오지 않게 하는 장치를 끼운다. 물이 뿌려지고 무엇인가 깔짝거리는 손길이 느껴진다,
백내장 수술은 혼탁이 발생한 수정체를 빼내고, 인공수정체로 교체하는 수술이라고 한다. 상당히 까다로운 수술로 여겨지는데 의사의 처치는 매우 간단하다. 그래도 의사는 집중해야 한다, 절박한 심정이 되면서 기도가 저졸로 나온다.
’집중하게 하소서.‘
‘집중하게 하소서.’
"끝났습니다."
조금 지루하다 느껴지는 순간, 의사의 말이 떨어졌다. 긴장이 서서히 풀어진다. 이어서 간호사의 손길이 느껴진다. 눈꺼풀 고정 장치가 제거되고, 접착용 종이도 제거된다. 눈을 덮은 비닐을 떼고, 얼굴을 덮은 천도 걷어낸다. 대기실에서 붙여준 피노키오 코 같은 종이도 떼어낸다. 약간 따끔하게 느껴진다. 눈 주변의 물을 스윽 닦고, 접착제가 닿은 부분도 세밀하게 문지른다.
'수고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데 간호사가 내 몸을 일으킨다. 일어나려는데 미세한 어지럼증이 있다. 멈칫하는 사이 사라진다.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백내장 수술을 무사히 마친 일에 감사한다. 수고한 의사와 간호사에게 감사한다. 애를 태우며 따라온 아내에게 감사한다. 수술을 마치기까지 모든 과정을 주관하신 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