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대장간
주말이 쾌청하면 인근 산을 찾는다. 마음을 치유하는 데는 명산이 아니라도 좋다. 근교에 수목원이 있는 낮은 산, 너그러운 산들이 많다. 숲이 우거진 산에 들어서면 미하엘리스(Thaddeus Michaelis)의 묘사 음악 ‘숲속 대장간’이 머릿속에 자동 재생되곤 한다. 경쾌한 선율 속에 유년 시절 대장간을 찾았던 추억을 떠올린다.
진달래가 피는 봄. 이른 새벽에 나는 볏짚으로 엮은 주루막을 어깨에 걸치고, 아버지는 쌀자루와 소금 포대, 황태 한 쾌와 꿀단지, 액젓 한 통과 막걸리 통을 지게에 싣고 깊은 산속 대장간을 찾아 먼 길을 나섰다. 내 주루막에는 아버지께서 어제 장에서 사 오신 고약 두 병을 담았다.
가마솥과 호미, 낫과 곡괭이, 삽 등 농기구를 장만하러 머나먼 길 20리를 부지런히 걸어 산에 이르자 솔바람이 ‘쏴~“ 마중을 나온다. 울창한 아름드리 미송들이 붉은 몸매를 자랑하며 반긴다. 짐승들이 오가는 오솔길로 안개가 스쳐 오른다. 새벽안개의 안내를 받으며 걸으니 바짓가랑이가 촉촉이 젖는다. 산마루 ‘산두(山頭)’에 이르자 동해바다 일출이 장관이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은 붉은 쇳물을 줄줄 떨어뜨리고, 바다는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는다. 하늘은 섬광으로 눈이 부시다.
새벽안개가 걷히며 베일에 싸였던 숲속의 신비함이 드러난다. 폭포가 쏟아지는 계곡. 너럭바위에 앉아 이마에 흐른 땀을 닦는데 밤이슬에 목욕을 한 진달래가 눈을 사로잡는다. 꿩과 산비둘기가 합창을 하여 잠을 깨우고, 이름 모를 알록달록한 새들과 다람쥐가 나타나 나무를 오르내리며 재주를 부린다. 토끼가 나타나 귀를 쫑긋하다가 우리를 보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동이 트니 숲속 동식물들이 기지개를 편다. 새싹 움트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풀벌레들이 숲의 향기를 마시며 바스락거린다. 나는 눈을 감고 숲속의 교향곡을 듣고 싶었다. 숲속의 여명이 이렇게 상쾌하고 신비로울 수가 없었다. 계곡을 따라 한참 가다보니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참나무와 대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산두 대장간’이 있고, 개울 건너편 파릇파릇 속새 풀이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곳에 목공소 겸 칠기방이 마주 보고 있었다. 오실 줄 알았다며 대장간 아저씨가 사립문 앞에서 반긴다. 아저씨는 가슴이 넓은 산사람이었다. 나무들이 태고부터 자손을 낳아 숲속을 지켜왔듯이, 아저씨 고조할아버지께서 이곳 대장간을 대물림을 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우리 집은 할아버지부터 이곳 대장간의 단골 고객이란다.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반가워하는 아저씨의 손길에서 대를 이어온 교분의 두터움이 느껴졌다.
지난겨울 대장간에 출몰하여 해를 입히는 멧돼지를 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아버님께서 동네 장정들과 대장간에 하루 묵으셨다. 과연 이른 아침부터 멧돼지들이 나타났고, 아버님의 선창을 시작으로 큰 녀석 두 마리를 잡았단다. 그날 가마솥을 주문하고 오늘 온다고 하셨기에 대장간 아저씨가 기다린 모양이다.
염장으로 숙성시킨 멧돼지 고기에다 죽순 무침, 도토리묵과 산채(山菜)로 칠기방 아저씨 가족과 함께하는 아침 식사는 진수성찬이었다. 참숯불에 구은 멧돼지 고기의 쫄깃쫄깃 씹는 맛과, 무쇠 솥뚜껑을 뒤집어 들기름에 볶은 산나물의 고소함이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그 담백함은 오랫동안 여운을 남겨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식사를 마치고 칠기방에 가니 옻칠로 여러 가지 색상을 만든 가구들이 많았다. 자연색으로 칠한 가구들은 곤충들이 기어오르거나 앉으려 해도 미끄러질 듯 반들반들 윤기가 났다. 아버지께서 칠기방에서 아담한 소반(小盤)을 사셨는데, 그 밥상은 훗날 나의 책상이 되었다. 방문 기념으로 칠기방 아저씨로부터 목각 인형 한 쌍을 선물로 받고 나는 좋아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대장간에서 무쇠를 만들고, 칠기방에서는 온갖 가재도구를 만드니 숲속의 제철소와 가구 제작소다. 소나무 불은 800℃인데 비해, 참나무 숯불 온도는 1000℃에 이른다. 거기에다 대나무를 첨가하면 대나무 유황이 촉매제가 되어 1200℃까지 상승하여 웬만한 쇠붙이는 다 녹일 수 있다. 석탄불에 광석을 녹이기 위해 풀무질을 하는 아저씨의 무쇠 팔뚝, 구릿빛 얼굴은 건강미가 넘쳐흐른다.
숲속 대장간은 제작할 제품에 따라 참나무와 대나무를 활용하거나 석탄과 광석으로 농기구와 연장을 만들며, 목공소는 대장간 제품의 목형을 만들어 가마솥과 농기구 제작에 일조했다. 농경문화를 발달시킨 환상의 콤비다. 칠기방 인근의 속새를 다발로 묶은 사포(砂布)는 가마솥 표면과 목공소 제품들을 매끄럽게 다듬으며 숲속의 예술을 창조했다. 숲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문명과 문화를 창조한 산실이다. 숲은 화음과 공명으로 뭇 생명의 탄생을 축복한다. 쇠붙이를 두드리는 소리에 맞추어 사포질을 하고, 새소리가 장단을 맞춘다.
이곳에서 태어난 우리 집의 징과 꽹과리는 공명 울림이 좋아 아버님이 신주 모시듯 아끼셨다. 여기서 징과 꽹과리 시타(試打)를 하시며 한바탕 숲속의 춤판을 벌였으면 산천초목이 덩실덩실 신명났을 것이다. “가마솥은 이곳 숲속의 정기를 받아 우리 가족에게 부엌 사랑을 베풀고, 여기서 만든 농기구로 농사를 지으면 곡식이 알차게 열린다.”라며 아버지는 대장간 아저씨에게 감사를 드렸다. 아저씨는 몹시 흡족하며 아버지의 “징과 꽹과리 치는 가락은 일품입니다.”라고 화답하니 대장간에 훈풍이 불었다.
아버지가 대장간에서 멧돼지 잡던 무용담을 나누며 막걸리를 드시는 동안, 나는 금세 친해진 영기와 옥순이랑 두 마리 개를 호위무사로 앞세우고 산속을 누볐다. 영기와 옥순이는 산에서 자라서 그런지 닥나무 껍질로 엮은 짚신을 신고 미끄러지지 않고 비호같이 산을 탔다. 겨울에는 설피를 신고 눈썰매를 탄다니 몹시 부러웠다. 계곡 내천의 가랑잎이나 돌을 들추면 영락없이 가재가 지천이다. 한참 가재를 잡고, 보글보글 샘솟는 물에 손발을 씻었다. 옥순이 머리에 도깨비바늘이 있기에 “옥순아. 내가 도깨비바늘을 띨 테니까 눈을 감아.” 눈을 감은 옥순이는 꼬마 천사 같았다. “됐다 이제 눈을 떠!” 한참 후에 뜬 눈은 영롱하였다. 옥순이는 내 손을 잡고 걸어오는데 숲속 대장간 묘사음악이 울렸다. 대장간에서 옷에 붙은 도깨비바늘과 거미줄을 털어 숯불에 태울 때 옥순이눈동자는 더욱 빛났다. 영기가 짚신의 가재를 꺼내 구웠다. 빨갛게 익은 가재 구이가 아삭아삭, 대장간에 온 보람을 느껴졌다.
집에 올 때 나는 호미와 낫, 칼과 칠기방 인근에서 채취한 속새 다발을 주루막에 담았다. 속새는 그늘에 말려 발한제(發汗製) 약초로 만들기도 하고, 다발로 묶어 놋그릇 닦는 연마재로 쓴다. 제삿날이 오면 놋그릇 닦느라 애를 먹었는데, 속새를 만나자 더 없이 반가웠다.
대장간 아저씨가 참숯과 죽순, 말린 산나물과 염장한 멧돼지 고기를 가마솥에 담아 주며, 철이는 이름에 쇠자가 들어가 있으니 훗날 철강인 될 거라 했다. 그 예언은 맞아떨어져 훗날 35년을 철강분야에서 근무했다. 국내외 철강회사를 방문하여 고로(高爐)를 대했을 때, 재직 회사에서 전기로를 건설하여 쇳물이 나왔올 때 나는 어린 시절 숲속의 대장간을 생각했다.
대장간 아저씨는 머릿속으로 제품을 구상하고, 알맞은 광석과 석탄에서 쇳물을 뽑아 덩어리를 만들거나 목형에 부어 형체를 만든다. 그리고 중간 제품을 다시 달군 다음 두드려 불순물을 제거하여 순도를 높이고, 강한 재질로 다듬으며 점차 모양새를 만든다. 설계도가 없더라도 제작한 완성품은 한 치의 오차가 없고, 곡선의 굴곡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미적 형상을 이루니 예술이다. 이마에 땀방울이 비 오듯 한다. 땀을 흘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무한불성(無汗不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반복된 단조와 냉각 과정을 통해 완성된 최종 제품에는 장인(匠人) 정신과 정성이 깃들어 고객 만족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나의 수필 창작 과정은 어쩌면 대장간 작업 공정을 닮았다. 수필 주제를 선정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화에 따른 구체화를 시키며, 불순물 같은 군더더기를 빼내어 단순화 시킨다. 간략화를 반추한다. 단어 하나하나를 문장속에서 자기화 시켜, 내가 느끼는 감정이 독자들에게 가 닿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일연의 대장간 제품 만들기 공정과 다름없다. 철에 이어 글을 담금질하는 수필가가 된 것은 숲속 대장간을 찾았던 인연이 이루어진 것인가!
잠시나마 정든 곳을 떠날 때 두 집 내외분과 영기 옥순이가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송이 향기가 피어오르는 철에 다시 오겠다며 우리 부자는 손을 흔들었다. 오는 도중 너럭바위에 짐을 풀고, 주위 고사리와 고비 등 봄나물을 채취했다. 나를 앞세우고 따라오시며 지나만 가도 냄새를 풍기는 더덕을 찾아 캐셨다. 하산할 때 가마솥을 짊어지신 아버님의 등은 한없이 넓게 느꼈다.
집에 돌아와서 새로 갖고 온 가마솥에다 밥을 짓고 소여물을 끓였다. 밥이 윤기가 흐르고 누룽지는 고소했다. 대장간 아저씨가 준 염장 고기와 죽순, 산나물로 온 가족이 푸짐한 음식을 들었다. 엄마소와 송아지도 야금야금 반추를 하며 여물을 즐겨 먹었으니 대장간 나들이가 선사해준 행복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숲에서 자연의 기술을 배운다. 숲속을 누빌 때 옷에 붙은 도깨비바늘은 찍찍이 지퍼로, 거미줄은 쇠줄보다 강한 나노 탄소 섬유인 수술실로, 속새는 사포 샌드페이퍼로 진화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다. 거대한 산소 저장고인 숲속은 생명의 산실이며 뭇 생명을 치유하는 병원이다. 색소 배당체인 화청소(花靑素)가 계절의 색을 창조하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언제 찾아도 숲은 너그럽게 품에 안고 마음을 다독여준다.
해질 무렵 하산하다 서쪽을 바라보면, 초승달이 별과 얘기를 나누다 눈을 지그시 감고 풀벌레 자장가를 듣고 있다. 여명이 트면 나무는 지휘자가 되어 소슬바람에 맞추어 가지를 흔들고, 숲속의 모든 것들이 묘사음악을 연주하며 합창을 할 게다. 아! 숲의 노래가 퍼지는 하늘은 숲속 대장간 추억처럼 마냥 높고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