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 가냘픈 맥박!
너는, 너는,
먼 먼 옛날의
간이역만 흘러 다닌
푸른
시그널
너는,
너는,
반쯤 감긴 눈에
기적소리 듣는
귀,
-서정춘, ‘반딧불이’ 전문
이 시를 그냥 줄글로 쓰면 이렇다. ‘오호, 가냘픈 맥박! 너는, 너는, 먼 옛날의 간이역만 흘러 다닌 푸른 시그널. 너는, 너는, 반쯤 감긴 눈에 기적소리 듣는 귀,’. 여느 시와 달리 이렇게 산문처럼 옮겨 놔도 시감詩感이 살아난다. 이는 시인이 경험과 사유에서 나온 언어의 결정체로만 시를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반딧불이는 푸른 시그널이고, 기적소리 듣는 귀라는 것이지만.
그건 짝을 찾기 위해 빛을 낸다고 한다. 한 열흘쯤 살다 죽는다. 여기선 간이역만 흘러 다니는 푸른 신호라고. 일반역과 달리 역무원이 없고 멈추기만 하는 시골 역 주변이나 흘러 다니는, 마치 떠도는 빈자 같은, 하나, 그건 푸른 신호. ‘푸른’이란 말은 그림의 푸른 물감처럼 푸른색을 보여 주진 않지만, 우리 머릿속에서 푸름을 연상하게 해 준다. 헤겔식으로 말하면 관념 예술. 푸름을 어떻게 느끼는가는 읽는 이의 몫이다.
기적 소리가 울린다. 눈 다 못 뜨고, 쓸쓸하게, 달려가는 달려가는 기차의 기적소리를 반딧불이는 듣는다.
이 가냘픈 것에 대한 시인의 사랑이 눈물겹다.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첫댓글 너무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