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청하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2016.10.6.
갈라 3,1-5; 루카 11,5-13
중앙 보훈 성당; 이기우 신부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갈라티아 공동체 교우들에게 복음을 믿어서 받은 성령에 대해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지향으로서 성령을 인내로이 청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초점은 성령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이들이 바라는 행복은 하느님의 뜻과는 달리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행복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온갖 이권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고 부정부패가 만연됩니다.
세상 풍조가 부정과 부패에 오염되어 있어서인지 믿는 이들이 바치는 기도에 있어서도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바라는 경향이 짙습니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소망을 기도에 담아 바치고 하느님의 축복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신 말씀은 많이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산상설교에서는, 무엇을 먹고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곁들여 얻어지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기도로 청하되 성령을 얻도록 청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필요는 굳이 기도로 청하지 않아도 바른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덤으로 뒤따라 얻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도의 공리입니다.
그런데도 기도를 거꾸로 바치는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세상에 내신 뜻은 우리가 그분을 닮아서 그분의 뜻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데 있습니다. 그래야 세상에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그분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하느님의 뜻을 모르거나 어기면서 죄를 짓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서부터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지향으로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뜻을 채우기 위해서 기도하시고 사셨습니다. 그것이 우리도 기도하여 청해야 할 성령입니다. 성령을 청하는 기도는 사랑의 십자가를 짊어질 힘을 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매일미사에 나오는 ‘오늘의 묵상’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믿음은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세상이 보이는 것을 갈망하고, 소유하고 집착하며, 때로는 경쟁 속에서 강탈하여 자족하는 것이 성공이라는 망상을 강요하는 반면에, 우리의 믿음은 세상이 감추고 보여주지 않는 영적인 갈망에 대한 발견이자, 우리 안에 숨 쉬는 하느님의 거룩한 영, 곧 성령을 따라 사는 기쁨의 삶입니다. 하지만 세상 속 우리 믿음은 세속적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내가 바라보고 청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다를 때 더욱 그렇습니다.”
매우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