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규 산문 진눈깨비도 쓰러진다
눈 중에서 진눈깨비는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비와 섞여 오거나 빗물을 눈 속에 넣고 오기 때문에 내리는 즉시 이미 쌓여있던 눈을 녹인다. 이미 쌓인 눈이야 그렇다지만 그것들이 차도에 닿으면 기분이 엉망이 되고 만다. 농도에 따라 그것들이 섞인 눈이 내린 날은 대개 이튿날 얼어붙어, 보행하는 사람이나 차량을 몹시 힘들게 하는 것이다. 지난해 겨울, 이 진눈깨비를 길에서 만났다. 처음에는 함박눈처럼 부드럽게 만져지더니 금세 녹으며 조금씩 쌓이는 것이었다. 진눈깨비도 쌓일 줄 아는구나......! 눈이면서, 눈도 아니면서. 축, 축. 떨어져 땅에 닿는 소리를 그렇게 듣다가 나는 불현듯, 이놈들이 사람처럼 쓰러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하고 주의 깊게 내려다보았다. 진눈깨비는 조금씩 쌓이긴 했지만 형체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땅에 닿자마자 분해되는 것이었다. 진눈깨비가 금방 녹는다는 생각은 있었어도, '형체없이'라든가 '분해된다'는 정서를 얻기는 처음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또 다시 불현듯, 진눈깨비에 대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분해된다'란 낱말의 뜻을 생명체에 갖다붙이면 '죽는다'란 뜻과 같지 않던가.
진눈깨비...... 쓰러져 얼고 있네 진눈깨비, 참 가엽네......
진눈깨비가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를 주의 깊게 그리고 소상하게 듣지않았다면, 나는 그것이 내릴 때마다 고정관념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사람의 평탄한 생활이나 희망을 꺾어 놓는, 구질구질한 이미지로만 여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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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와 새 원문보기 글쓴이: 제이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