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초는 예서(八分)을 쓰는 필법으로 일점일획을 연결 시키기 않고 떼어서 쓰는 것이 특징이다.
그 어순에 대해서는 학자간에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통상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로는 후한(後漢)의 장제(章帝)가 처음 썼기 때문에 장초(章草)라고 한다고 하고, 혹은 장제(章帝)때의 사람이 쓴 것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후한보다는 훨씬 앞서서 쓰였다는 설이 보다 유력한 학설이다.
원래 초(草)라고 하는 것은 문장 등을 쓸 때의 초체(草體)를 말한다. 바르게 표면으로 내세울 경우에는 아무래도 엄격한 서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만 자기의 초고(草槁)를 잡거나 할 경우에 빨리 쓸 수 있는 방법이 편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때 쓰는 것을 초서라고 한다는 일설이 있다. 이상과 같은 여러 학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초서는 예서가 성행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초(今草)
漢의 장제(張芝)는 처음으로 점화를 연결시켜서 글씨를 썼다. 그 초서가 바로 오늘날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금초라고 하는 것이다.
금초는 많은 시대를 거치면서 몇가지 형태로 분화가 되었는데 그것을 구별하면 정초(正草), 대초(大草), 광초(狂草)로 구별할 수 있다.
정초(正草)는 한 문자 한 문자를 떼어서 규격 바르게 쓰는 것을 말하고
대초(大草)란 이것을 보다 방만하게 풀어 쓰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광초(狂草)는 이 대초를 더욱 표일(飄逸)하게 그리고 세(勢)를 발휘해서 쓴 것이다. 이 때 형태를 근엄하게 한다거나 대소(大小)에 구애 받거나 하는 일 없이 그야말로 난폭할 만큼 대담성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 곧 광초이다.
초서의 개념 이해
문자는 인간생활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것으로서 사회적으로 그 가치가 인정됨에 따라 그 사용법도 확대되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그 배경에는 두가지의 문제가 수반된다.
하나는 자수(字數)가 증가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문자를 쓰는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사항은 각기 발생 원인은 다르면서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별개의 것으로 존재할 수가 없게 되며 점차 융합해 가게 된다.
이렇듯 초서의 성장 과정에는 문자의 수의 증가와 그 토대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문자는 문화의 발달과 함께 한쪽에서는 새로이 생성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간략화 내지는 도태가 행해지게 된다. 그러다 어느 시기에 이르면 문자로서 보편성을 갖춘 것만이 남아 보급되는 것이다.
이때 기본이 된 문자를 정자(正字), 새로 생긴 문자를 속자(俗字)라 한다.
그러나 정자에서 속자가 항상 적합하게만 만들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잘못 대용(代用)된 것을 위자(僞字)라고 하여 이것을 별도로 다루게 된다.
속자는 간략화가 특징이기 때문에 보급률이 높기 마련이다. 이런 탓으로 속자가 시대와 더불어 널리 보급되면 정자는 그 번잡성으로 인해 전혀 돌아보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나라로서는 일정한 기준을 설정하고 그 사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문자가 바로 약자(略字)이다.
따라서 초서는 속자의 일종이라고 할 수가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필순(筆順)이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필순이 바르게 됨으로써 비로서 일점일필이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에 의해서 본래의 문자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