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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김포&강화 100코스 제1부
김포함상공원-대명항-초지대교-초지교차로
초지광장-장흥저수지-길상낚시터-장흥교차로-
전등사남문교차로-전등사교차로-온수옛길상그름
20241009
1.코스 개요(두루누비)
1)코스개요
- 섬 자체가 하나의 역사관이자 박물관인 강화도로 떠나는 역사 탐방 길
- 외세에 대한 저항이 남아있는 문화유산과 오감을 깨우는 짜릿한 루지를 체험할 수 있는 코스
2)관광포인트
- 조선 효종 때 구축한 요새 '초지진'
- 중력만을 이용해 트랙을 내려오는 무동력 바퀴썰매로 동양 최대규모의 길이를 자랑하는 '강화씨사이드리조트루지'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로 병인양요 때 승려들이 참전하여 호국도량으로 불리는 '전등사'
- 고려의 문신 이규보의 묘소와 석물이 있는 '이규보묘'
3)여행정보(주의사항)
- 시점 :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517-4 김포함상공원 옆 북측
대중교통) 김포골드라인 구래역에서 60-3, 직행 8000번 승차, '대명항' 정류장 하차 후 도보 600m
- 종점 :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156-5 곤능버스정류장 옆
대중교통) 강화여객자동차터미널에서 지선 48번 버스 이용, 곤능 버스정류장 하차
- 대명항은 수산시장과 어부들이 운영하는 횟집이 있어 신선한 해산물을 구입하고 맛볼 수 있음
- 전등사에서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음
- 길이 16.5km, 소요시간 6시간, 난도 보통
- 주요경로 : 대명포구 1.5Km 초지대교 6.1Km 전등사 입구 5.6Km 이규보선생묘 3.3Km 곤릉버스정류장
2.염하강 초지대교에서 환상적 풍경에 취하다
제1부 : 서해랑길 100코스를 탐방하기 위해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대명포구에 왔다. 100 숫자가 가슴에 큰 바람을 일으킨다. 100! 백(百)은 토박이말로 '온', 완성을 뜻하는 만(滿)'이다. 서해랑길 100코스 탐방은 서해랑길 탐방을 완주한다는 뜻이지만, 서해랑길 전체 코스는 103개이며, 지선이라고 하여 6개 코스가 추가되어 서해랑길 총 코스는 109개이다. 서해랑길 지선은 서해랑길 64코스 서산시 부석면 창리포구에서 출발하여 서산시와 당진시 내포 지역을 가로질러 삽교천방조제에 이르는 길이다. 그렇기에 서해랑길 100코스를 탐방하지만 서해랑길 전체 코스를 탐방하여 완주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그럼에도 100 숫자는 서해랑길 탐방을 완성한다는 의미로 가슴을 물들이며, 남은 코스는 넝쿨째 굴러오는 것 같다. 마음이 부풀어올라 충만해진다.
서해랑길 100코스 출발지는 평화누리길 1코스 출발지와 같은 곳이지만 진행 방향은 정반대이다. 그래서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진행 방향인 북쪽 염하강철책길로 나가서 염하강과 맞은편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도 해안과 산줄기를 살펴 보았다. 그 풍경을 보는 순간 강화둘레길 그리고 염하강철책길을 포함한 김포 해안길을 걸어야겠다는 욕망이 불쑥 솟아올랐다. 평화누리길은 경기도 김포시, 고양시, 파주시, 연천군 지역 12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제 평화누리길은 DMZ평화의길에 통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24년 9월 23일 코리아둘레길 DMZ평화의길이 개통하였기에 평화누리길은 제1코스 염하강철책길을 빼고 11개 코스를 코리아둘레길 DMZ평화의길 전체 34개 코스에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래서 염하강철책길 탐방은 코리아둘레길을 잇는 화룡정점처럼 보인다. 염하강철책길 탐방의 욕망을 불태우며 평화누리길 1코스 문주를 나오며 김포시 캐릭터 포수와 포미를 다시 살핀다. 포수는 물방울 모양, 포미는 쌀 모양으로 조형되어 아침 햇빛에 반짝 윙크한다. 그래, 평화와 통일을 어서 이룩해 내자.
서해랑길 100코스 출발지로 되돌아왔다. 평화누리길 대명함쉼터 기둥에 서해랑길 100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고, 그 왼쪽에 서해랑길 99·100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왼쪽은 김포함상공원 담장이다. 김포함상공원은 퇴역한 운봉함이 정박하고 있는데, 62년간 바다를 지켜오다 2006년 12월 퇴역한초계(哨戒) 상륙함(上陸艦, LST) 운봉함을 전시관으로 개조한 함상공원이라고 한다. 김포함상공원 담장을 돌아 함상공원 출입구를 지나 대명포구 전망대로 올라갔다. 강화도의 중심이 되는 산은 마니산과 정족산이라는 생각이 박혀서인지, 마니산과 정족산이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참성단과 성화 점화로 친숙한 마니산은 두 산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니산 정상은 오른쪽 산봉이다. 정족산은 서울의 삼각산처럼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상은 중앙의 산봉이며 삼랑성과 정족산사고터, 전등사로 잘 알려져 있다.
대명포구 전망대에서 내려와 대명항 어판장 앞 해안길을 따라 대명항으로 들어갔다. 대명항은 그동안 지방어항이었는데 올해 8월8일자로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경기 지역에서 국가어항은 화성시 궁평항 한 곳이었는데, 이번에 안산 방아머리항과 화성 전곡항·제부항 그리고 김포 대명항이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어 경기도에서는 국가어항이 네 곳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대명항이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것을 축하하는 알림막이 여러 곳에 펼쳐져 있다.
대명항은 대곶면 대명리와 약암리를 가르는 호동천 하구 북쪽 포구에 자리하고 있는데 국가어항 지정으로 현재 여러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복잡하다. 대명항에서의 풍경 조망도 대명항 전망대에서의 조망과 유사하지만 그 백미는 초지대교 조망이다. 염하강 남쪽에서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와 강화도 본토,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를 잇는 1.2km의 초지대교가 염하강을 가로지르는 풍경은 자연과 문명이 조화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풍경의 환상적 모습은 아마도 야경일 것이다. 상상 속에 초지대교의 불빛이 반짝이며 긴 행렬를 이룬다.
대명항을 나오면 어판장과 횟집 거리 입구에 이른다. 이곳에 김포대명항 조형물 꽃게와 즈꾸미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이곳이 대명항 중심통로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대명항, 북서쪽으로 어판장과 횟집 거리, 북동쪽으로 수산물타운으로 갈라진다. 이 갈림목의 중심도로가 대명항1로이다. 대명항1로는 북서쪽으로 어판장과 횟집 거리로 벋어가고, 북동쪽으로 대명항 수산물타운 A동과 B동으로 벋어간다. 대명항1로 북동쪽 방향으로 대명항 수산물타운 A동과 B동을 거쳐 대명항 거리를 빠져 나간다. 대명항에 두 번째로 왔는데도 소주 한 잔도 못 들이키고 대명항을 빠져나왔다. 어쩔 것인가? 뒷날을 기약할 수밖에. 아쉽지만 홀가분한 마음으로 호동천 배수갑문교를 건너 한적한 약암리 해안길로 나가 코자자 호텔을 지나고 텅 빈 식당가를 거쳐 초지로로 올라갔다.
초지로를 따라 염하강을 가로지르는 초지대교를 건넌다. 초지대교는 서해랑길 100코스에서 최고의 풍경을 조망하는 탐방길이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활짝 열린 풍경을 조망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돌린다. 몸을 돌리며, 아! 탄성을 지르며 넋을 잃는다. 쌩쌩 질주하는 차량들의 굉음에 몰아지경의 도취는 산산조각이 되어 날아가고 초지대교를 건너고 있다는 현실 자각에 몸이 움츠려든다. 굉음 속을 걷는 몸은 움츠려들지만 마음은 새가 되어 풍경 속으로 훨훨 날아간다.
2주 전 승마산에서 이 풍경을 조감하며 가슴이 얼마나 요동쳤던가? 2주 뒤 이 풍경 속으로 들어와 풍경을 이루고 있다. 이 풍경을 조감하던 동쪽의 승마산이 염하강과 초지대교의 풍경을 이룬 탐방객을 내려보고 있지 않은가? 염하강이여, 초지대교여! 너희 안에서 너희를 본다. 왜 염하강이냐? 소금鹽이 있는 바다인데 왜 민물 河와 江을 두 번씩이나 쓰는가? 김포반도와 강화도 사이의 바다는 좁은 해협(海峽)이다. 이 해협의 바닷물은 마치 강(江)물처럼 유유히 흐르는 것 같아서 바다와 내(河)를 합성한 염하(鹽河) 또는 염하강(鹽河江)이라 이른다. 염하강 양안은 조선시대 몽골,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의 외세와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그래서 양안에는 외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천혜의 지형을 이용해 설치한 진(鎭)과 보(堡), 돈대(墩臺) 등 역사적 군사 유적지가 남아 있다.
초지대교에서 바라보니 호동천 하구 북쪽에 자리한 김포 대명항은 복작거리던 현장의 모습보다 단아한 항구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보인다. 자질구레한 일들로 복작거리는 삶의 현실은 조금 떨어져서 볼 때 낭만적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것임이 확실하다. 북쪽으로는 멀리 한남정맥의 대미를 장식하는 문수산이 김포반도의 자존심으로 솟아 있고, 북동쪽 가까이에는 대명리 노판산이 나즈막하게 엎드려 있고 그 서쪽에 대명리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동남쪽에 이 지역을 조감하는 최고의 전망지 승마산이 손짓하고 그 자락에는 대곶면 약암리와 대벽리 지역이 펼쳐지는데, 대벽리에 쓰레기 소각장을 설치하는 것이 현재 가장 큰 문제이다. 2주 전 약암리 지역을 통과할 때 주민들이 쓰레기 소각장 설치를 결사 반대하고 있는 알림막이 몇 곳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남쪽에는 김포시 양촌읍과 인천광역시 서구 일대, 그곳을 통과하는 한남정맥 산줄기 - 계양산, 중구봉, 천마산이 희미하게 들어오고, 청라도국제도시 서쪽으로 영종도를 잇는 영종대교가 시야에 들어온다. 초지대교 남쪽 바로 앞에는 황산도, 그 남서쪽에 동검도를 확인하며 몸을 곧바로 세워 초지대교를 건넌다. 서쪽 눈 앞으로 강화도에서 이름을 아는 산봉들이 강화지맥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펼쳐져 있다. 남쪽 길상산에서 시작하여, 정족산, 마니산, 진강산, 덕정산, 혈구산을 거쳐, 북쪽 고려산으로 이어져 있다. 강화지맥 산줄기를 바라보면 서해랑길 강화도 탐방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 걷고 있는 100코스는 진강산 동쪽 자락에서 마치게 되고 101코스는 혈구산 서쪽 외포항에서 끝난다. 초지대교에서 이번 탐방의 전체를 한눈에 가늠하고 촞니대교를 건넜다.
굉음을 벗어났다. 초지교차로를 통과하여 야외 공연무대장을 갖춘 초지광장으로 진입하여 차량의 굉음에서 해방되었다. 서해랑길은 초지로를 따라가지 않고 초지리 들녘으로 나가 초지로 바로 아래에 조성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간다. 들녘은 황금 들판으로 물들었고, 위쪽 초지로에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들이 일렬로 줄지어서 초록빛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가을빛이 예쁘게 물드는 들녘과 가로수를 보며 어느새 사라진 무더웠던 여름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 여름날 땡볕의 폭염을 무릅쓰며 걸었던 탐방길의 추억이 솟아오른다. 흘러버린 시간의 흔적들이 초지리 들녘의 황금물결과 초지로 메타세쿼이아 바늘잎 색채 속에 피어오른다. 사라져라, 지나간 그리움이여. 살아오라, 새로운 동경(憧憬)이여.
포장도로를 따라가는 내내 앞쪽의 길상산과 그 동쪽 언덕의 회전전망대, 강화루지 케이블카가 눈길을 끈다. 이 시설물은 길상산 자락 길상면 선두포리에 자리한 강화씨사이드리조트에서 레저용으로 시설한 것 같다. 길상면 초지리에서 장흥리로 넘어가면 들녘에 제방이 길게 이어져 있다. 알아보니 장흥저수지, 정확하게는 장흥제2저수지이다. 이곳을 지나면 길상낚시터가 있는 저수지가 있는데 이 저수지는 장흥제1저수지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저수지를 길상낚시터 이름 때문인지 길상저수지라고 부르는 것 같다.
길상낚시터 입구를 지나 장흥로로 들어간다. 오른쪽으로는 초지로가 달리고 앞쪽에는 삼랑성이 있는 정족산이 솟아 있다. 정족산은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삼랑성 또한 세 봉우리 각각에 조성되어 있는 것 같다. 정족산 삼랑성을 바라보며, 왼쪽의 선두포리 들녘, 오른쪽의 초지로, 그 사이에 조성된 장흥로를 따라 가면, 장흥교차로에 이른다. 장흥교차로는 남쪽의 초지로, 서쪽의 보리고개로, 북쪽의 전등사로, 이렇게 세 도로가 만나는 곳으로, 이 고개를 보리고개(보릿고개)라고 이르기에 보리고개교차로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이 보리고개교차로는 길상면의 세 지역, 장흥리, 선두포리, 온수리가 만나는 꼭지점을 이룬다. 이 꼭지점에서 서해랑길은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간다.
전등사로는 전등사 남문교차로와 전등사교차로를 지나 온수리 회전교차로로 이어진다. 서쪽에 삼랑성과 전등사를 품은 정족산을두고 전등사로 서쪽 보도를 따라간다. 걸어가는 내내 한남정맥의 대미를 이루는 문수산이 북쪽 김포반도의 끝에서 손짓한다. 문수산에 올랐던 때가 오래되었다. 문수산은 열강의 조선 침략 때 아픔이 서린 곳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문수산성을 공격하여 조선군은 사상자를 내고 후퇴하자 프랑스군은 문수산성을 불살랐다. 패배한 조선군의 흔적이 서려 있는 문수산은 김포의 자존심이다. 조선군은 강력한 서양 군대에 중과부적이었다. 쓰라린 패배였지만 그럼에도 조선군의 자존심으로 우뚝 선 문수산이 가을 하늘에 가느다란 곡선을 그리고 있다.
도로 가로등 기둥 곳곳에 제24회 삼랑성 역사문화축제를 알리는 알림막이 걸려서 바람에 펄럭인다. 살펴 보니, 2024년 10월 5일부터 10월13일까지 9일 동안, 역사 강의(신미양요와 병인양요의 진실), 학술세미나(전등사 대웅보전에 대하여), 봉산탈춤 공연 등이 전등사에서 진행된다. 정족산에 오르지 못하고, 삼랑성을 탐방하지 못했다. 다만 전등사에 오래 전에 한 번 다녀왔었다. 이 탐방길에서 전동사에 다녀올 시간이 되지 않아 전등사 가는 것은 단념했다.
강화도 정족산전등사의 추억 속에 오규원(1941~2007) 시인이 떠오른다. 그의 명시 '한 잎의 여자'는 언제나 가슴을 적신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마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한 잎의 여자' 일부) 김영태(1936~2007) 시인도 떠오른다. "흰 말(馬) 속에 들어있는/ 고전적(古典的)인 살결,/ 흰 눈이/ 저음(低音)으로 내려/ 어두운 집/ 은(銀)빛 가구(家具) 위에/ 수녀(修女)들의 이름이/ 무명으로 남는다/ 화병마다 나는/ 꽃을 갈았다/ 얼음 속에 들은/ 엄격한 변주곡(變奏曲),/ 흰 눈의/ 소리 없는 저음/ 흰 살결 위에/ 램프를 켜고/ 나는/ 소금을 친/ 한 잔의 식수(食水)를 마신다./ 나는 살빠진 빗으로/ 내리 훑으는/ 칠흑(漆黑)의 머리칼 속에 / 삼동(三冬)의 활을 꽂는다."(김영태의 '첼로' 전문)
먼저 고인이 된 오규원 시인은 화장되어 강화도 전등사 수목장의 나무 뿌리의 흙으로 돌아갔다. 그와 친했던 김영태 시인 또한 오규원 옆에 묻히고 싶다는 평소의 뜻에 따라 사후 강화도 전등사 수목장 나무 뿌리의 흙으로 돌아갔다. 두 시인은 각기 나무 뿌리에 누워서 나무 줄기처럼 하늘로 오르고 있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은 또 어떤 것인가? 세상에 와서 조금 울다가 가는 것, 그래서 나무 속에서 잠자는 것인가. "과꽃이 무슨/ 기억처럼 피어 있지/ 누구나 기억처럼 세상에/ 왔다가 가지/ 조금 울다 가 버리지/ 옛날같이 언제나 옛날에는/ 빈 하늘 한 장이 높이 걸려 있었지"(김영태의 '과꽃' 전문)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오규원의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전문)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7.8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7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김포함상공원 북쪽의 평화누리길 문주 뒤에 서해랑길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서해랑길 100코스 탐방 전에 평화누리길1코스 염하강철책길로 들어가 염하강과 강화도를 살피고 나오기로 한다. 평화누리길 입구에 김포시 공식 캐릭터 포수와 포미가 탐방객을 맞이해 준다.
물방울 모양을 형상화한 '포수'는 김포(金浦)의 '포'와 물 '수(水)'자를 합성한 이름으로 물과 운하의 도시, 김포를 상징합니다. 쌀 모양을 형상화한 '포미' 역시 김포의 '포'와 쌀 '미(米)'자를 합성하여 만든 캐릭터로 5,0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김포금쌀을 상징합니다. 포수와 포미는 김포시의 다양한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포수와 포미를 많이 사랑해 주세요~
온 국민의 통일 염원을 간직한 곳, 천혜의 자연경관과 수많은 동식물들의 보금자리이자 반만 년 역사유적을 품고 있는 곳, 여기는 평화누리길입니다. 이제는 2024년 9월 23일 개통한 코리아둘레길 DMZ 평화의 길에 자리를 내준 것 같다.
평화누리길은 2010년 5월 8일 개장된 DMZ 접경지역인 김포시, 고양시, 파주시, 연천군 등 4개의 시·군을 잇는 대한민국 최북단의 걷는 길이다. 평화누리길은 총 12개 코스(김포 3코스, 고양 2코스, 파주 4코스, 연천 3코스로 구성), 189km의 길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길 위에서는 경기도의 다양한 역사 유적을 만나는 것은 물론 마을 안길, 논길, 제방길, 해안 철책, 한강 하류, 임진강 등 다양한 길을 접할 수 있다. 노인들에게는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들부터 아이들에게는 자연과 역사,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까지 자연스럽게 제공하고 있다. 평화누리길은 한국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평화염원의 길이다. 천혜의 자연과 동식물의 보금자리로 멸종위기 동물들의 서식지인 임진강 하구 일대의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 공존하는 길이다. 고려 태조의 위패가 있는 숭의전과 율곡 선생의 화석정, 조선 시대 진영인 덕포진, 권율 장군의 얼이 서린 행주산성 등 살아 숨 쉬는 한국 역사를 가슴에 품기를 바라며 만든 길이다. - 위키백과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은, 대명항→덕포진→쇄암리쉼터→고양리쉼터→문수산성남문, 14km, 4시간이 소요된다. 평화누리길의 시작점으로 바다 건너 강화도를 바라보며 덕포진과 부래도, 염하강을 따라 철책길을 걷는 구간으로 가족과 함께 걷기 좋은 길이다. 염하강철책길순환코스는 조선시대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때 서구열강과 치열하게 싸웠던 천혜의 지형을 이용해 설치한 군영인 덕포진을 순환하는 코스이다.
평화누리길1코스 염하강철책길로 들어와 살펴보며 이 길을 걸어볼 마음을 품는다.
염하강 건너 강화도 왼쪽 뒤에 진강산, 오른쪽 뒤에 혈구산(왼쪽)과 고려산(오른쪽)이 확인된다.
염하강 건너 강화도 중앙에 정족산과 삼랑성, 그 왼쪽 뒤에 마니산, 맨 왼쪽에 길상산, 맨 오른쪽에 진강산이 확인된다.
평화누리길 1코스 문주를 통해 들어와 염하강을 살피고 나간다.
평화누리길 대명항쉼터정자 기둥에 서해랑길 100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고 그 왼쪽에 서해랑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평화누리길 대명항쉼터정자 왼쪽 기둥에 서해랑길 100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고, 그 왼쪽에 서해랑길 안내도가 있다.
서해랑길 100코스는 거리 16.5km, 소요시간 6시간, 난도 보통이다.
서해랑길 99·100코스 안내도와 함께 서해랑길 100코스 탐방 출발을 기념한다.
오른쪽 뒤에 평화누리길1코스 문주와 포수&포미, 중앙 뒤에 경기둘레길&평화누리길 안내판, 왼쪽에 서해랑길 안내도와 평화누리길 대명항쉼터정자가 있다.
서해랑길 출발지에서 울타리 너머로 김포함상공원을 바라본다. 중앙 뒤의 함선이 운봉함인 듯.
김포함상공원 입장료는 대인 3,000원이라고 한다. 함상공원 앞을 통과하여 대명포구를 돌아간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대명항의 김포함상공원은 지난 62년간 바다를 지켜오다 2006년 12월 퇴역한 상륙함(LST)을 활용하여 조성한 수도권 최초의 안보의식 체험장 함상공원이다. 다양한 볼거리와 안보체험 등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문화관광해설사가 있어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영상관, 선실재현공간, 한국전쟁 홍보관, 한주호 준위 추모관 등 전시관을 보다 재미있게 관람 할 수 있다. 상갑판을 지나 조타실, 전탐실을 올라가면 군인들이 생활하던 공간이 있고 이 공간을 통해 간접적으로 해군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운봉함의 가장 꼭대기인 함교에 올라서면 서해바다의 정취를 눈앞에서 느낄 수 있다. - 두루누비
왼쪽 뒤에 매표소가 있으며, 서해랑길은 김포함상공원 앞에서 왼쪽 대명항 어판장 앞으로 이어간다. 어판장 앞 전망대로 올라가서 염하강과 강화도 지역을 조망한다.
지방어항이었던 김포 대명항은 2024년 8월 8일, 국가어항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뒤에 초지대교가 바다를 가른다.
김포 대명항은 김포시의 유일한 어항이며, 대명포구 또는 대명포라고 불린다. 100여 척의 어선들이 연안어업을 하고, 어판장에서 직접 해산물을 판매하는 김포 유일의 지방어항이다. 봄이면 삼식이와 주꾸미, 밴댕이, 여름이면 자연산 광어, 가을이면 꽃게와 대하, 갑오징어 등을 찾는 관광객이 많다. 수산물 직판장 옆 젓갈 건어물 부설 시장에서 젓갈류, 건어물, 냉동 수산물을 구매하는 이도 많다. 대명항에서만 즐길 수 있는 축제도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풍어제가 열린다. 풍어제는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고 서해를 둘러싸고 전개된 역사의 아픔을 함께 풀어내는 의식이 담겨있다. 이 밖에도 쭈꾸미 철을 맞아 5월 열리는 대명항 축제, 가을에 열리는 대하축제 등이 열려 일 년 내내 풍성한 볼거리와 신선한 먹거리를 선사해 대명항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볼거리와 추억을 전해준다. - 두루누비
김포 대명항에서 염하강 건너편 강화도를 조망한다. 오른쪽 등간 왼쪽에 초지진, 맨 오른쪽 뒤에 길상산이 조망된다.
대명항에서 염하강 건너편의 강화도,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지역을 조망한다. 왼쪽 등간 뒤에 초지진, 중앙 왼쪽 뒤에 길상산, 오른쪽 뒤에 정족산과 삼랑성이 확인된다. 그 왼쪽 뒤 화도면 문산리 산봉우리 둘 중에서 오른쪽 산봉은 마니산이다.
왼쪽에 대명항 어판장과 주차장이 있으며, 서해랑길은 오른쪽 대명항 해안길로 이어간다. 중앙 뒤에 승마산과 그 오른쪽 승마산전망대가 마루금을 이루며 서해 바다로 가라앉는다. 전망대에서 조망을 마치고 앞쪽의 대명항으로 들어가 또 조망한다.
대곶면 대명리 대명항은 호동천 하구에 자리하고 있다. 호동천은 대곶면 대곶리와 약암리를 경계하며 서해 바다로 흘러든다. 중앙 뒤에 대곶면 약암리 승마산과 승마정이 확인되며, 오른쪽 앞에 초지대교 동단이 보인다.
초지대교가 서해 바다 공중을 가르고 오른쪽 뒤에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황산도가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와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를 잇는 아치형 4차선 다리로 1996년 인천광역시에서 착공하여 2002년 8월 완공한 다리이다. 길이 1.2km에 왕복 4차선이며 섬과 내륙을 잇는 연륙교라는 특성에 따라 교량부에 900mm의 상수도관과 300mm의 도시가스관이 함께 설치되었다. 이 다리의 개통으로 서울 강서구와 경기 부천, 김포시 등 수도권 서부지역에서 강화도에 도착하는 시간이 기존 강화대교 이용 시보다 30분 빨라졌다. 이 다리를 건너 우회전하면 해안도로를 따라 덕진진, 마니산 국민관광지, 화도면 철새도래지 등 관광명소가 많다. - 두루누비
초지대교 맨 왼쪽 뒤에 황산도, 바다 건너 맨 오른쪽 등간 왼쪽에 초지진, 오른쪽 맨 뒤에 길상산이 있다.
강화도 왼쪽 뒤 두 산봉 중 오른쪽 산봉은 마니산, 크레인 뒤에 정족산과 삼랑성, 오른쪽 뒤에 진강산과 덕적산이 보인다.
대명항에서 나와 젓갈&건어물 종합시장을 지난 뒤 대명항을 뒤돌아본다. 맨 뒤에 강화도의 길상산이 우뚝하다.
대명항 젓갈&건어물 종합시장 왼쪽에 인천해양경찰서 대명파출소가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에 공영주차장이 있고 왼쪽은 대명항 어판장과 주차장 방향, 서해랑길은 대명항1로를 따라간다.
대명항과 어판장 입구에 대명항 조형물 꽃게상과 주꾸미 조각상, 그 뒤에 김포관광안내도와 대명항 설명안내판, 그 뒤 건물은 화장실이다. 왼쪽 건너편 전기차충전소와 주차장 2층 난간에 대명항의 국가어항 선정 축하 알림막이 펼쳐져 있다.
김포대명항 조형물 뒤에 김포시 관광안내도, 주요 관광지 안내판, 대명항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코끝을 파고드는 소금기, 갓 잡아올려 펄펄 뛰는 물고기, 물때에 맞춰 먼 바다에서 돌아오는 고깃배, 어시장과 횟집을 기웃거리는 사람들, 풋풋한 삶의 활기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이곳은 어판장에서 직접 해산물을 판매하는 김포 유일의 지방어항 대명항이다. 봄이면 삼식이와 주꾸미, 밴댕이, 여름이면 간혹 걸려드는 농어와 3~4kg씩 나가는 자연산 광어, 가을이면 통발을 가득 메운 살찐 꽃게가 입맛 나는 곳이다. 한겨울을 나고 모내기철이 될 즈음이면 이곳에 주꾸미가 넘쳐난다. 흥정이 오가면 한 주먹씩 덤이 오간다. 그렇게 흥정한 주꾸미를 살짝 데쳐 입에 넣으면 마치 밥알이 씹힌 듯 영양 많은 알이 톡톡 터진다. 알은 밥이요, 검은 먹물은 반찬이다. 그리고 가을과 함께 찾아드는 꽃게는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늦가을이면 그물 가득가득 채운 추젓(가을 새우젓)의 짠내로 도시 사람들을 부른다. 대명항은 대명2종 어항 사업과 풍어제 개최로 인하여 대내외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2001년에 '한국관광공사 추천 겨울바다 7선'에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 경치와 재래식 포구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 설명안내판
김포대명항 조형물과 설명안내판 왼쪽에 대명항, 오른쪽에 어판장이 있으며, 왼쪽 뒤 강화도에 길상산이 솟아 있다.
왼쪽에 대명항 어판장이 줄서 있고, 오른쪽은 식당가이다. 대명항1로 끝에 함상공원과 서해랑길 100코스 출발지가 있다.
대명항1로에 김포대명항 수산물타운 A동과 B동이 나란히 서 있다.
대명항에서 대명항1로를 따라 젓갈&건어물 종합시장, 대명파출소, 김포대명항 조형물, 수산물타운 A동과 B동을 거쳐왔다.
대명항1로에서 오른쪽 배수갑문교가 있는 대명항1로89번길로 이어간다.
대곶면 대명리에서 호동천의 배수갑문교를 건너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로 넘어간다.
대곶면 약암리 코자자호텔 삼거리에서 왼쪽은 대명항1로, 서해랑길은 오른쪽 대명항로를 따라간다.
대명항로를 따라 앞에 보이는 식당가를 지나 초지로로 진입한다. 왼쪽 뒤에 승마산 능선 끝의 승마산 전망대가 보인다.
초지로 출입구에 약암리 식당가가 자리하는데 폐업한 듯 텅텅 비어 있다. 바닷가쌈밥집은 영업하는 음식점일까?
초지대교 앞까지 이어지는 대명항로는 이후 초지로라고 이름이 바뀌어 강화도로 진입한다. 뒤쪽 중앙에 승마산이 보인다.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를 잇는 초지대교는 1996년 착공하여 2002년 8월 완공하였으며, 다리 길이 1.2km에 왕복 4차선이다.
건너편 오른쪽에 초지진이 보이며, 그 뒤쪽에 정족산과 삼랑성, 그 왼쪽 뒤에 마니산(오른쪽), 맨 왼쪽 뒤에 길상산이 보인다.
초지리(草芝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리(里)이다. 동쪽으로 서해와 바로 접해 있는 마을이다. 마을 동쪽으로 바로 강화초지대교가 놓여 있어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다. 자연마을은 초지, 내진, 밤나무골 마을이 있다. 초지 마을은 초지진이 있어서 초지진이라고 하였는데, 후에 초지라고 개칭되었다. 내진 마을은 앞재너머 동쪽에 있는 마을로 초지진의 안쪽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밤나무골 마을은 밤나무가 많아서 밤나무골이라 불려진다. - 두산백과
왼쪽부터 진강산, 덕정산, 오른쪽에 혈구산과 고려산이 확인된다.
염하강(鹽河江)이 강화도와 김포시를 가르고, 오른쪽에 김포시 대곶면 대명항, 왼쪽 뒤에 혈구산과 고려산이 보인다.
염하(鹽河)는 인천광역시 강화군과 경기도 김포시 사이의 해협(海峽)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강화도)과 경기도 김포시 사이에 있는 남북 방향의 좁은 해협(海峽)이다. 마치 강(江)과 같다 하여 염하(鹽河)라고 부르며 강화해협 또는 김포강화해협이라고도 한다. 폭이 좁은 곳은 200~300m, 넓은 곳은 1km 정도이고, 길이는 약 20km이다. 밀물 때의 최대 유속은 약 3.5m/sec로 물살이 거세고 수심이 얕아서 썰물 때에는 곳에 따라 바닥이 드러나기도 한다. 염하의 북쪽으로는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의 강물이 흘러 들어오는데, 염하 북쪽의 월곶과 남쪽 황산도 간에는 물높이(해수면 높이) 차이가 아주 커서 물살이 빨라지게 된다. - 두산백과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호동천 하구에 대명항이 자리하고 맨 오른쪽 뒤에 판구산, 중앙 맨 뒤에 한남정맥 문수산이 보인다.
대명리(大明里)는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에 위치한 리(里)이다. 김포반도의 최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마을에는 고잔, 사래, 너머말 등이 있다. 고잔은 곶으로 되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사래는 사래울이라고도 하며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너머말은 사래 북쪽 등성이 너머에 있는 마을이다. - 두산백과
맨 왼쪽 호동천 하구로부터 오른쪽은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 그 왼쪽은 대명리 지역이다. 왼쪽 뒤에 대명리의 노판산이 보인다.
초지대교에서 동남쪽을 바라보면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와 대벽리 지역이 펼쳐지고 승마산과 승마산 전망대 능선이 서해 바다로 내려앉는다. 오른쪽 맨 뒤에 인천의 계양산, 그 오른쪽에 중구봉과 천마산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남쪽을 바라보면 오른쪽 가로등 뒤에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황산도, 왼쪽 맨 뒤에 인천광역시 서구 청라국제도시, 그 오른쪽에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영종대교, 맨 오른쪽 뒤에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도가 보인다.
황산도(黃山島)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속하는 섬으로, 강화해협의 남단에 있다. 조선 시대에는 항산도(項山島)로 불리기도 하였다. 황산도 서쪽의 소황산도는 1962년 간척으로 강화도에 합쳐졌으며 황산도도 현재는 강화도와 2개의 연육교로 이어져있다. 황산도는 서남쪽과 서북쪽이 각각 강화도(옛 소황산도)와 방조제로 연결되어 사실상 강화도의 일부가 되어 있다. 섬의 동북쪽에 있는 황산도항은 어촌정주어항으로 지정되어 있고, 2008년에 재개장한 어판장이 있다. - 위키백과
초지대교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왼쪽에 길상산, 중앙에 마니산, 그 앞 오른쪽에 삼랑성과 정족산이 보인다.
정족산(鼎足山)은 산의 생김새가 마치 세 발 달린 가마솥과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산이다. 높이 220m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큰 사찰인 전등사와 정족산성 등 많은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삼랑성이라고도 하는 정족산성은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았다고 하는 석성이다. 특히 정족산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 터가 남아있다. 산행은 전등사에서 시작되어 전등사의 요사채 뒤로 난 길을 오르면 정상에 이른다. 정상까지 2시간 정도 소요되며 정상에 서면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전등사 풍경과 서쪽으로 마니산, 남쪽으로 인천 앞바다의 섬들을 볼 수 있다. - 두루누비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초지진이 맞은편 해안 정중앙에 있으며, 왼쪽 뒤에 마니산, 그 오른쪽 앞에 삼랑성과 정족산, 오른쪽 뒤에 진강산과 덕적산, 맨 오른쪽 뒤에 혈구산이 확인된다.
강화 초지진은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鎭堡) 중 하나이다.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구축한 요새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 초지진 설치에 대한 기사에 따르면 조선 효종 6년(1655)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때 미군과 충돌했던 격전지이다.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이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이후 1875년(고종 12년) 일본 운요호 사건 때 상륙을 시도하는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 뒤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돈을 복원하였다. 정비된 초지돈대 안에는 대포가 전시돼 있다. 돈대 옆 소나무에는 신미양요 혹은 운요호 사건 때 포탄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 두루누비
강화 해안 중앙의 돌출한 곳에 덕진진, 그 왼쪽 뒤에 나즈막한 대모산이 보이고, 덕진진 맞은편 김포 해안에 덕포진이 가늠된다. 왼쪽 뒤에 진강산, 그 오른쪽에 덕적산, 중앙 왼쪽에 혈구산, 그 오른쪽에 고려산이 확인된다.
염하(鹽河)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조선시대에 삼남지방에서 서해를 북상해 온 세곡선(稅穀船)이 염하를 통해 한강으로 진입하여 한양으로 들어갔다. 염하는 교통의 요지였을 뿐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외세를 막는 군사적 요충지였는데 개항기 때에는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를 치른 격전지였다. 염하를 따라 군대 주둔지인 진(鎭)과 보(堡), 초소인 돈대 등 수많은 방어유적이 산재해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초지진(草芝鎭, 사적 제225호), 덕진진(德津鎭, 사적 제226호), 덕포진(德浦鎭, 사적 제292호), 광성보(廣城堡, 사적 제227호), 갑곶돈(甲串墩 갑곶돈대, 사적 제306호) 등이 있다. - 두산백과
오른쪽 염하 해안에 대명항, 중앙 맨 뒤에 한남정맥의 대미를 장식하는 문수산이 솟아 있다. 염하(鹽河)를 염하강(鹽河江)이라고도 부르는데, 염하강은 북쪽 끝에서 조강(祖江)과 만나며 그곳에 문수산이 솟아 있다.
염하(鹽河)는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북한 신의주까지 오가던 뱃길이었는데 전쟁 후 뱃길이 봉쇄되었다가 2007년부터 민간어선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염하를 가로질러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놓여 있다. - 두산백과
초지대교에서 남서쪽을 바라보면 초지대교 왼쪽 뒤에 황산도, 중앙 맨 뒤에 영종도, 오른쪽 뒤에 동검도가 가늠된다.
동검도(東檢島)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동검리에 있는 섬으로 강화도의 남동단에 인접하여 있다.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와 연륙교로 연결되어 육지화되었다. 면적은 1.61㎢이고, 해안선 길이는 6.95㎞이다. 옛날 삼남지방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선박은 물론 중국에서 우리나라 서울을 왕래하던 사신이나 상인들이 통과하는 동쪽의 검문소라는 의미에서 동검도라 하였다고 전한다. 강화군 삼산면의 서검도와 대비를 이루는 지명이다. 섬의 중앙부에 산지가 솟아 있으며, 서쪽과 동북쪽 해안은 비교적 완경사지이다. 섬 주변에는 간석지가 넓게 분포하며, 그 가운데 일부는 간척되었다. 취락은 섬의 서쪽과 동북쪽에 주로 분포하며 남쪽 해안에 일부가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콩·고추 등이 재배된다. 연안에서는 숭어·준치·새우·낙지 등이 어획되고, 넓은 간석지에서는 굴·바지락·백합 등이 양식된다. 조선시대에 설치된 봉수대가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서해랑길은 초지로를 따라 앞쪽의 초지교차로로 이어간다. 오른쪽 뒤에 길상산이 보인다.
초지교차로 건널목에 강화 캐릭터 강돌이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서해랑길은 왼쪽 초지로를 건너 위쪽의 해안동로를 건넌다.
강화군 캐릭터 강돌이 설명안낸판이 강돌이 조형물 지대석에 붙어 있다.
'강돌이'는 강화군의 대표적인 상징물로서 개국 이래 면면히 이어져온 강화의 역사성과 강화인의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강화 고인돌의 이미지를 담아 제작하였다. '강돌이'는 강화군의 '강'과 고인돌의 '돌' 자의 합성어로, 귀여우면서도 부르기 쉽도록 지은 이름이다. 찬란한 역사의 내일을 향해 힘차게 도약하는 강화인의 모습을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표현하였다.
왼쪽 초지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위쪽의 해안동로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 중앙 뒤의 초지광장으로 이어간다.
초지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초지교차로 건널목에 조성된 강돌이를 뒤돌아본다.
해안동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초지광장 안으로 진입한다. 오른쪽 뒤에 길상산이 보인다.
초지광장에는 야외무대장이 설치되어 무대공연을 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초지광장을 거쳐 초지리 들녘으로 나간다.
서해랑길은 초지로 아래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간다. 중앙 뒤에 길상산, 마니산(오른쪽 두 봉우리 중 오른쪽 산봉)이 보인다.
마니산(摩尼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華道面)에 있으며, 마리산(摩利山)·마루산·두악산(頭嶽山)이라고도 한다.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해발고도 472 m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다. 정상에 오르면 경기만(京畿灣)과 영종도(永宗島)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정에는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塹城壇)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지금도 개천절이면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聖火)가 채화된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이종휘(李種徽)가 지은 《수산집修山集》에 "참성단의 높이가 5m가 넘으며, 상단이 사방 2m, 하단이 지름 4.5m 상방하원형(上方下圓形)으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여러 차례 개축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산 정상의 북동쪽 5㎞ 지점에 있는 정족산(鼎足山) 기슭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三郞城)이 있고, 그 안에는 유명한 전등사(傳燈寺)가 있다. 북동쪽 기슭에는 정수사법당(淨水寺法堂:보물161호)이 있고, 북서쪽 해안에는 장곶돈대(長串敦臺) 1기(基)가 있다. - 두산백과
초지로(草芝路) 아래의 초지리 들녘 옆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간다. 맨 오른쪽에 길상산, 왼쪽 뒤에 동검도가 보인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죽 늘어선 초지로(草芝路) 아래, 초지리 들녘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간다. 중앙 뒤에 길상산이 솟아 있고, 그 왼쪽 언덕에 회전전망대와 케이블카 승강장이 조성되어 있다.
길상면 초지리에서 장흥리로 넘어간다. 중앙 뒤에 강화온천스파월드와 강화청소년수련원캠핑장 건물이 보이는데, 그 앞쪽에 장흥제2저수지가 있으며, 저수지 둑방이 보인다. 뒤에는 길상면 선두리 길상산이 솟아 있고 왼쪽 언덕에 회전전망대가 있다.
길상산(吉祥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길상면 선두리에 위치한 산이다(고도:336m). 『강도지』에 "부의 남쪽 30리에 있고 둘레가 30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강화부 남쪽 30리에 있으며 주위가 13리이고 목장(牧場)이 있다."고 되어 있다. 『강화부지』에도 목장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와 『대동지지』, 『조선지지자료』에 지명이 기입되어 있다. 예로부터 왕에게 진상했다고 하는 일명 '사자족애(獅子足艾)'라고 부르는 약쑥이 많이 났다고 하여 유명한 곳이다. 길상산 동사면 장흥리에는 지금도 쑥밭다리라 부르는 자연마을이 남아 있다. 1706년(숙종 32) 길상면 선두리와 화도면 사기리 사이의 갯골 약 1㎞를 막아서 선두포 둑을 쌓아 이 일대 농경지를 개간했다고 전한다. -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회전전망대가 있는 왼쪽 고개에서 루지를 타고 중앙의 길상산 아래에 위치한 강화씨사이드리조트까지 내려온다. 길상산, 회전전망대와 케이블카 승강장, 강화씨사이드리조트가 있는 곳은 길상면 선두리(船頭里) 지역이다.
장흥리(將興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리(里)이다.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진 반농반어촌 마을이다. 마을 동쪽으로 서해가 흐르고 있으며, 그 지류가 북쪽에도 흐르고 있다. 남쪽에는 오류골이 있다. 자연마을은 감목관, 기증골, 갯말 마을이 있다. 감목관 마을은 어리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 때 길상목장의 감목관이 살았다 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증골 마을은 어리골 서쪽에 있는 마을이며, 갯말 마을은 갯가에 위치한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 두산백과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장흥리 대한종합철강을 지나 길상낚시터로 올라간다.
장흥제1저수지에 길상낚시터가 있는데 길상낚시터 입구와 매표소는 위쪽에 자리한다.
길상낚시터 입구와 매표소가 위쪽에 보인다. 서해랑길은 길상낚시터 입구에서 길상낚시터를 나간다.
회전전망대가 있는 왼쪽 고개에서 루지를 타고 중앙의 길상산 아래에 위치한 강화씨사이드리조트까지 내려오며, 그곳에 자리한 케이블카 하부승강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회전전망대 상부승강장까지 올라간다.
강화루지는 특별한 동력장치 없이 특수 제작된 카트를 타고 땅의 경사와 중력만을 이용해 트랙을 내려오는 다이내믹한 체험 레포츠 시설이다. 방향조정과 제동이 가능하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트랙 경사도는 완만하지만 곡선 코스가 반복되는 트랙으로 이내 속도감과 스릴을 느낄 수 있으며 보호구를 착용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트랙 규모는 연장 1.8km/line 총 2코스(오션코스, 밸리코스)로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각 코스마다 흥미와 재미를 배가 시켜주는 360 º 회전코스와 구간별 터널과 낙차구간을 배치하였다. - 두루누비
길상낚시터를 나와서 앞쪽의 장흥로로 나간다. 왼쪽 뒤 고개 위에 회전전망대와 그 왼쪽에 케이블카 상부승강장이 있다.
강화 케이블카(곤돌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서해안의 아름다운 노을을 편안하게 전망할 수 있는 시설로 탑승객 2400명/h, 루지썰매 1,200대/h를 동시에 수송할 수 있는 전세계 최초, 유일 시스템 입니다. 강화 케이블카(곤돌라)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기업 “BMF社”에서 만들고, “포르쉐 디자인 스튜디오 (Porsche design studio)”에서 디자인하여 국내 첫 선을 보이는 제품입니다. 케이블카 베이스 스테이션에서 길상산 정상까지 총 700M의 하늘길을 편하고 안전하게 강화도의 풍경과 여유를 ‘강화 케이블카’에서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 강화씨사이드리조트 https://www.ganghwa-resort.co.kr
윤규농장 앞에서 오른쪽 정족산 방향으로 장흥로를 따라간다.
앞쪽에 정족산의 삼랑성(정족산성)이 보인다. 장흥로를 따라 보리고개교차로 방향으로 올라간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삼랑성(三郞城)은 고려시대 이후 개경과 한양을 방어하는 성곽이었다. 둘레는 2.3km 정도이며, 성곽은 산 정상부에서 남문쪽 해발 75m 능선까지 산의 지형을 따라 쌓아서 북쪽과 남쪽의 고도 차가 크다. 단군의 세 아들이 세 봉우리로 이루어진 정족산의 한 봉우리씩 맡아서 쌓게 되었고, 이를 본 사람들이 이 산성의 이름을 사내 랑(郞)을 써서 삼랑성(三郞城)이라 불렀으며, 강화도 남쪽 해발 222m의 정족산(鼎足山)에 있어 정족산성으로도 불린다. 마니산 참성단과 더불어 단군과 관련된 역사 유적이다. - 두루누비
장흥교차로를 보리고개교차로라고도 이르는 듯. 서해랑길은 장흥교차로에서 위쪽 전등사로를 따라간다.
장흥교차로는 길상면 장흥리, 선두리, 온수리 세 지역이 만나는 꼭지점이다. 삼랑성 아래에 선두포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다.
삼랑성을 쌓은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거친 자연 활석을 이용한 삼국시대 축성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시기를 추정할 뿐이다. 1739년(영조 15)에 중수하면서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고 종해루(宗海樓)라 하였고, 1764년(영조40년)에 다시 성을 중수했다. 1866년(고종3년) 병인양요 때 양헌수 부대가 프랑스군을 물리친 승전지이다. 삼랑성 안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자 강화에서 제일 큰 절인 전등사(傳燈寺)가 있다. - 두루누비
장흥교차로 왼쪽은 길상면 선두리, 오른쪽은 장흥리, 위쪽은 온수리 지역이다. 위쪽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로를 따라간다.
장흥교차로는 남쪽(아래쪽)의 초지로(장흥리), 서쪽(오른쪽)의 보리고개로(선두리), 북쪽(위쪽)의 전등사로(온수리)가 만난다.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로의 보릿고개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위의 고개를 보리고개 또는 보릿고개라고 부르는 듯.
전등사로를 따라 전등사 남문교차로 앞으로 이어간다. 중앙 맨 뒤에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문수산이 보인다.
전등사로 서쪽 보도를 따라 전등사 남문교차로를 통과한다. 맨 뒤쪽에 한남정맥의 대미를 장식하는 문수산이 보인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傳燈寺)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 호국불교 근본도량으로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사찰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삼랑성은 단군이 세 아들(三郞)을 시켜 쌓았던 고대의 토성이었고, 삼국시대에는 토성 자리에 석성을 쌓아 올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었다.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이후 고려 왕실에서는 삼랑성 안에 가궐을 지은 후 진종사를 크게 중창시켰으며, 16년이 지난 충렬왕 때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玉燈)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傳燈寺)’라 사찰 명칭을 바꾸었다. - 두루누비
제24회 삼랑성 역사문화축제가 2024년 10.5~10.13 전등사에서 열리는 알림막이 전등사로 곳곳에서 펄럭인다.
전등사(傳燈寺)는 조선 광해군 때인 1614년에 화재로 인해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가 지경 스님을 중심으로 재건을 시작하여 1621년 2월에 전등사의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전등사(傳燈寺)에는 대웅전, 약사전, 범종 등 대한민국의 보물이 있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사고가 경내에 있다. 또, 동문 쪽에는 전등사가 호국불교의 진원지임을 증명하는 양헌수승전비가 있다. 병인양요 때 전략적 요충지였던 전등사에 쳐들어온 프랑스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고종 10년인 1873년에 건립한 것이다. - 두루누비
전등사 남문교차로의 전등사 남문 출입구에 프레시아 호텔이 자리한다. 중앙 뒤에 김포의 문수산이 보인다.
원두막가든을 보며 전등사로 서쪽 보도를 따라 전등사교차로 앞으로 이어간다. 김포의 문수산은 시야에 계속 들어온다.
전등사교차로는 전등사 동문 진출입로인 듯. 문수산을 바라보며 전등사로 서쪽 보도를 계속 따라간다.
성가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복지시설 '성안나의집' 출입로가 왼쪽에 있고, 서해랑길은 온수리 가는 길로 직진한다.
아이들이 바람개비를 돌리며 달리고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모습의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아이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바람개비를 돌리며 달리고 있다. 왼쪽 뒤에 길상산이 솟아 있다.
'온수옛길 상그름'으로 진입한다. 상그름은 온수리 주변을 뜻하는 옛 지명이다. 온수옛길 상그름은 어떤 모습일까?
이곳을 탐방했던 길동무가 김밥을 사기 위해 현관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영업 시각이 아직 되지 않았다.
삼랑성길이라 명명된 길을 따라 앞에 보이는 길상초등학교 앞으로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