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일- 고린도전서 6:9-11
시편 53:1-6/ 찬송 210장
씻음, 거룩함, 의롭다 하심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쟁과 불의를 차례로 다루면서, 다시 본질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누누이 강조하듯, 불의한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불의는 현재 윤리적으로 악한 모습이지만, 그 결과는 종말론적 심판에까지 이릅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없는 불의한 자의 사례 10가지를 열거합니다.
-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9-10).
바울은 비슷한 유형의 악덕 목록을 여러 차례 제시한 바 있습니다(롬 1:29-31; 갈 5:19-21, 골 3:5, 8).
바울이 불의한 자의 사례를 들추어낸 이유는 정죄가 목적이 아니라, 부정한 모습을 경계하고 삶을 돌이켜 새로운 변화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11).
고린도교회 안에도 불의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바울의 말은 과거형으로, 지금 고린도교회는 점점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의 변화입니다.
삶의 변화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11) 가능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남과 비교하여 도덕적인 순결과 윤리적인 우월성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11)은 덕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윤리는 조건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바울 자신이 그런 산체험을 한 당사자입니다.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행 22:16).
구원은 삶의 보상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하는 출발점입니다.
☀ 바울 앤솔로지
121)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9).
바울은 거듭 “알지 못하느냐”고 질문을 던집니다.
-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6:2).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9).
바울의 연속된 질문은 고린도교인들이 정답을 이미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바울의 물음은 대답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답에 맞는 삶을 살라는 엄중한 요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차 미래에 주어질 보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부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 은혜로 새로워진 사람들로부터 출발합니다.
샬롬샬롬
첫댓글 " 구원은 삶의 보상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하는 출발점입니다."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기도합니다. 깨닫고 행동하고 넓어지고 그렇게 주님앞으로 갑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그리스도와 성령안에서 부정한 모습을 경계하고 새로운 삶 살기 원합니다
오늘도 주시는 말씀을 새깁니다. 불의에서 떠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 되도록 오늘도 말씀으로 나의 삶을 고쳐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