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새벽빛이 유난히 환한 느낌에 경선은 눈을 뜬다. 바람을 타고 사선으로 내리는 눈송이가 병실 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오후가 되면 쌓일지도 모른다. 눈길을 밟아 집으로 돌아가겠네. 경선은 그대로 누워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본다.
생의 어떤 순간 불현듯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낯선 도시의 골목 안에서 불쑥 남루한 아이들과
마주쳤을 때, 가을로 접어든 어느 날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높다고 느꼈을 때, 절집 처마에 매달려
녹고 있는 길고 투명한 고드름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이처럼 세상의 모든 풍경을 지우며 하염없이 내리는 조용한
눈을 바라볼 때면 마치 어린 시절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린 시절 경선은 겨울이 오는 것을 손꼽아 기다렸다.
겨울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아버지가 집에 있는 날이 늘어나고 엄마는 장롱을 열 때마다 새 외투와
겨울옷이 필요하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친할머니네 소작농 아저씨가 지게에 쌀가마니를 실어온 뒤로 밥상 위에
햅쌀밥이 올라온다. 오일장에 다녀오다 집에 들른 외할머니는 엄마와 함께 메주콩 시세나 김장 날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마루에 걸터앉지 않고 곧장 방안으로 들어온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호문 밖이 아직 어두워서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고 다시 눈을 감았다가 자칫 지각을 하게 되는
때이기도 하다. 학교에 가는 길, 바람이 얼굴을 상쾌하게 잡아당기더니 싸늘한 교실에 도착해서 책가방을 열다보면
고리의 쇠붙이가 뻑뻑하고 차갑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겨울이 왔다고 말할 수 없다. 경선의 겨울은 하얀 입김이 눈앞에 보여야만 했다. 학교가 파하면
경선은 일부러 한적한 골목을 통과해서 집에 가곤 했다. 골목 깊숙이에 들어선 뒤 걸음을 멈추고 허공을 향해 천천히
숨을 뿜어올려본다. 입김이 나타나지 않으면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풍선을 불듯이 뺨을 부풀려서 숨을 뿜으며 걸음을
빨리 옮긴다. 손에 바람개비를 들고 뛸 때처럼 배에 힘을 주고 푸우푸우 세게 몰아 내쉬면서 달려보기도 한다. 입에서
하얀 입김이 만들어져 공중으로 퍼져 나갈 그 순간을 향해 힘껏 달리는 것이다.
머리통이 점점 덥혀지고 뒷목으로 땀방울이 한 줄 흘러내리던 그때. 마침내는 숨을 헐떡이며 담쟁이넝쿨이 말라붙은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섰을 때 쉴새없이 오르내리는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오고 늘어진 다리에는 아무런 힘이 느껴지지
않았던 그때, 몸 전체로 부딪쳐오던 어떤 낯선 외부의 느낌.
하지만 그 방법으로 한 해의 첫 입김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한 해의 첫 눈송이가 떨어지는 순간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것과 똑같다. 첫눈은 대개 초겨울 아침 잠에서 깨어나 창호문 밖이 유난히 환한 걸 깨닫고 어떤 직감에 이끌려 급히
방문과 덧문을 차례로 열어젖힌 순간 마당 가득 소복이 쌓여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입김은 어느 아침 등굣길에 마주친
친구의 이름을 무심코 불렀을 때 입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더니 한순간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게 시작이다.
그때에 경선은 깨닫곤 했다. 입김을 보았으니 춥고 긴 겨울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부터는 봄을 기다리게
되리라는 걸. 갑갑하고 무거운 내복을 벗어버리고 햇살이 비치는 마루끝에 앉아 있으면 세상이 너무 환해서 눈시울을
조금 찡그리게 되고 뺨 한쪽이 따뜻해지는 봄. 학교 뒷동산을 지나다가 바위틈에 숨어 피어난 그해의 첫 진달래꽃을
발견했다면 발끝에 힘을 주고 얼른 걸음을 멈춰야 하는 봄. 그때에 엄지발톱이 아파서 운동화가 작아졌다는 걸 깨닫는
봄. 이불 빨래를 한 날에는 빨랫줄 가득 널려 있는 얇은 홑청 사이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햇빛의 색감과
농도를 실험해 보는 봄.
그러고 나면 다시 여름을 기다렸다. 어서 수박이 익어 마당 평상에 식구들이 모여 앉아 어깨를 맞대고 큼직하게 쪼갠
수박 조각을 나눠 먹는 날을. 여름방학이 가까워질 무렵 굴다리 위에 펼쳐진 노점에서 햇고구마를 삶아 나무 소반 위에
쌓아놓고 파는 할머니들의 등장을. 뒷마당의 감나무에서 떨어진 초록색 땡감을 보시기에 담고 물을 부은 뒤 어두운
부엌 시렁에 얹어놓고 색깔 변화 실험을 하던 그때처럼, 어서 시간이 흐르기를.
그리고 가을이 오면 경선은 발목이 푹푹 빠질 정도로 낙엽이 쌓였던 군청 앞 은행나무 길에 서리가 내리고 찬바람이
쌩쌩 불어오기를 기다렸다. 목욕탕 굴뚝에 매일 김이 피어오르고 빙판길에 뿌려진 연탄재 조각을 발뒤꿈치로 으깨며
지나가는 날을 기다렸다.
그때에는 잘 몰랐지만 경선이 기다린 건 어떤 한 계절이 아니었다. 계절의 주기와 시간의 흐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온몸으로 실험하고 느껴보고 싶었다.
경선이 지금 느끼는 희미한 회복의 감각은 그런 어린 시절을 닮은 듯하다.
여름방학마다 경선은 곤충채집 숙제나 심부름을 핑계로 학교 뒷산과 들판, 외할머니네 텃밭을 돌아다녔다. 안나와
함께였다. 안나는 머리 위에서 뜨겁게 내리쬐는 쨍한 햇빛 아래로 걷는 걸 좋아했다. 경선도 늘 안나를 따라 걸었고
그늘로 들어가는 비겁한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애초에 피부가 검은 편인 안나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경선의
하얀 얼굴은 얼마 안 가 까매졌다. 임시 소집일인 광복절 날 학교에서 오랜만에 경선을 본 아이들은 반공 교과서에
있던 베트콩이 다 됐다고 놀렸다. 하지만 그 무렵부터 과일이 많이 나올 시기여서 경선은 매일 포도와 수박을 먹었고
그 덕분인지 개학 날에는 하얀 얼굴로 되돌아가 있었다. 경선이 뭔가가 나빠지더라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회복의 감각을 처음 느낀 게 그때였을 것이다.
언젠가 소나기를 흠뻑 맞았을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열이 올라 학교를 결석하고 며칠 동안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어느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방안이 유난히 환하고 몸이 가뿐했다. 경선은 병이 낫고 상처가 회복되는 일이
신기했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몸이 다시 가벼워지는 그 감각이 기분좋았고 거기 닿을 수 있다면 열에 들뜬 채로 한동안
물속을 헤매듯 긴 잠 속에 가라앉는 무력감 또한 오히려 즐길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경선에게 고통은 회복의
전조였다.
주치의가 조직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을 때 경선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종양이 발견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 왔고 그 최악보다는 낫다는 정도만으로도 기운을 차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술이
잘됐고 고통스러운 치료는 하지 않아도 된다니 최악이 아닌 게 맞았다. 다만 문이 언제 닫힐지 모를 그늘의 영역으로
들어와버렸다면 거기에 맞는 방식으로 삶을 감각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도 경선은 몸에 달려 있던 줄과 기구를 하나씩 떼어낼 때마다 가벼운 해방감을 느꼈다. 어린 시절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과거의 어느 상태로 되돌아가는 회복의 감각만으로도 경선은 그 시절의 생기와 짧게 해후한다. 때맞춰서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모양을 갖추고 쉬게 하고 잠을 재우는 일은 여전히 귀찮겠지만 이제 고통을 통과한 몸에게
조금이나마 더 잘해줘야 할 테고 그러려면 먼저 사이가 좋아져야 한다고 느낀다. 경선의 생명을 붙잡고 제 할 일을
감당하면서 있어주니 대견하고 고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이전처럼 아무렇게나 혹은 함부로
시간을 보내버린 날에는, 이게 네가 죽음의 문턱에서 그렇게나 살아보기를 원했던 그 시간이었어?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전날 밤 안나는 아파트에 세워져 있던 자신의 차를 병원 주차장으로 옮겨놓았다. 정오가 되기 전에 간호사에게서
퇴원 확인서를 받은 안나는 짐을 꾸려놓고 퇴원 수속을 하기 위해 일층 수납 창구로 내려갔다.
열흘만에 환자복을 벗고 제 옷으로 갈아입은 경선도 준비를 마쳤다. 구두까지 신은 채 병실 창턱에 몸을 기대고
바깥을 바라본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다. 소변 통을 손에 들고 병상의 커튼 밖으로 나오던 최순영이 경선에게
가벼운 작별 인사를 건넨다. 김연화는 환자를 운동시키러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조금 뒤 안나가 병실로 들어서자
경선은 침대 모서리에 걸쳐놓았던 코트를 집어든다.
천천히 병원을 빠져나온 안나의 차는 후문 쪽의 사 차선 횡단보도 앞에서 멈춘다. 눈발 속에서 환자복을 입은
남자 넷이 링거 지지대를 끌며 차례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아마 외과 병동의 장기 입원 환자들일 걸.” 경선이 환자복 차림의 남자들을 유심히 바라보자 안나가 알려준다.
김연화에게서 이야기 들은 적 있다고 한다.
“짬뽕 먹으러 가는 거야. 다음 블록에 유명한 집 있대.”
“그런 얘기는 언제 또 했어.”
경선이 픽 웃는다.
“안나 넌 사람 싫다면서 은근히 사교적이야. 의외로 공동생활도 잘 하더라. 사회생활 고참이라 그런가? 아니다.
혹시 내가 아파서 철든 거 아냐?”
“나이들면 말 없는 사람이 인기 많아져.”
가볍게 대꾸한 뒤 안나는 환자복 남자들이 길을 다 건너가기를 기다려 차를 출발시킨다.
경선은 안나가 어릴 때부터 관찰력이 뛰어났다는 걸 안다. 자라면서는 그 이유에 대해서도 짐작하게 되었다.
눈에 띄지 않으려면 무리에 섞여야 하고 제대로 섞이려면 먼저 무리의 일반적인 성격과 모습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매번 뭘 입고 있었는지 옷차림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패션에 무심하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일
수도 있다. 눈에 띄지 않는 중간과 표준. 안나의 보호색은 훈련에 의해 만들어진 관찰력의 결과일 것이다.
때로 사람들은 뜻밖에도 그 모호한 중립성에 쉽게 경계심을 푸는 것 같다. 병실에서 보았듯이 안나는 경선의
생각처럼 폐쇄적이거나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거리를 확보하는 것뿐이었다. 경선의 오해는 그것만이 아니다.
자신처럼 호불호의 경계가 뚜렷하고 제한된 범주 내에서 친밀을 원하는 사람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쉽게 한편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관계를 지속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경선에게 미소를 보냈지만 신뢰를 받는 건 안나였다는 생각도 든다. 잠시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안나가 와이퍼를 작동시켜 차창으로 달려오는 눈발을 밀어낸다. 병실에서 안나가 읽던 책에 주황색 고양이
책갈피로 표시해 둔 부분도 눈 내리는 장면이었다.
거기 이런 구절이 있었다. 여든 살에 그녀는 계속해서 새 친구를 사귀겠지.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놀면서.
경선의 시선이 그 앞의 한 줄에 가 닿았었다. 춤춰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