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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김 동 인
1 – 1
여는 어떤 벗의 딸의 주검을 따라서 진남포 공동묘지에 가본 일이 있다. 그것은 겨우 해토가 시작된 이른 봄이었다.
아직껏 다른 곳의 공동묘지를 본 일이 없는 여인지라 비교는 할 수 없으나 진남포의 공동묘지는 ‘참담’ 그 물건이었다. 그것은 사람의 주검을 묻으려고 작정해놓은 지역이라기보다 죽음을 모욕하기 위하여 만들어놓은 제도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참담하였다. 겨우 해토 때로서 겨울 동안에 갖다가 묻은 무덤들은 아직 그 위에 덮은 거죽의 빛도 변하지 않고 그 거죽이 바람에 날아남을 막으려고 두어 줌씩 올려놓은 흙에는 아직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겨울 동안에 그 작은 진남포에서 웬 사람이 그리 많이 죽었는지 눈앞에 저편 아래까지 보이는 무덤은 모두 아직 송장 내가 나는 듯한 새 무덤뿐이었다.
진남포의 공동묘지는 산비탈이었다. 그리고 땅은 발간 흙이었다. 글자 그대로 새빨간 무덤이 산마루에서 저편 아래까지 규칙 없이(더구나 땅 한 평에 주검 하나씩을 묻었는지라 그 주먹만큼씩 한 무덤과 무덤의 사이에는 사람 하나가 통행할 자리조차 없이) 수천 개가 놓여 있으며, 아직 나무 빛이 변하지 않은 묘패에는 그 죽은 사람의 이름과 죽은 날짜(그것도 모두가 소화 5년)가 씌어 있었다. 미상불 이 관과 저 관은 서로 머리와 발이 맞닿았을 것으로서, 말하자면 부세(浮世)에서는 서로 알지 못하던 사람이 여기에서는 공동묘지라는 제도 때문에 뜻에 없는 친밀을 서로 주고받는 셈이었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부는 날로서 모두 무덤 위에 덮은(아직 빛은 변하지 않은) 거죽들은 벗어질 듯이 펄럭였다. 산비탈의 괴상스러운 바람 소리와 새빨간 흙더미 위에서 펄럭이는 거죽은 어떤 의미로 보아서는 처참하달 수 있었다.
벗의 딸의 무덤 자리는 산마루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날은 또 한 패의 장례가 있었다. 그리고 주검의 무덤 자리는 벗의 딸의 무덤 자리와 잇달아서 바로 윗자리였다. 두 개의 주검이 나란하게 놓여 있고 일꾼들은 구명 두 개를 파고 있었다. 아랫구멍의 윗끝과 윗구멍의 아래 끝의 거리는 두 자에 지나지를 못하였다.
그것을 구경하고 있던 여는 문득 생각난 일이 있어서 아래로 발을 옮겼다. 그것은 작년 봄에 심장마비로 열일곱 살이라는 아까운 나이로 저세상에 간 B의 무덤을 찾아보려 함이었다. 여는 그의 죽음을 신문에서 보았다. 그리고 언제 진남포를 갈 기회가 있으면 한번 그의 무덤을 찾아보리라고 늘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여는 처음에는 주검을 존경하는 뜻으로 무덤을 발로 밟지 않고 내려가보려 하였다. 그러나 무덤과 무덤 사이에 발 하나를 들여놓을 자리가 없는 진남포의 공동묘지에서는 도저히 그러한 재간은 할 수가 없었다. 여는 어떤 무덤 위에 올라섰다.
겨우 해토 때로서 얼었던 흙이 녹아서 여가 올라서는 순간 여의 무게 때문에 발 짚은 곳은 서너 치 쑥 들어갔다. 여는 발을 궁글면서 그다음 무덤의 꼭대기로 건너뛰었다. 무덤은 역시 쑥 들어갔다. 이 무덤 꼭대기에서 저 무덤 꼭대기로 또한 그다음 무덤 꼭대기로·… 여는 마치 캥거루와 같이 겅중겅중 뛰면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한 무덤에서 한 무덤으로 건너뛸 때마다(마음상이 그런지) 여는 발로써 이상한 저항력을 감각하였다. 그것은 결코 흙의 저항력은 아니었다. 목판(木板), 공허…… 그것은 마치 기선의 갑판에 내려뛰는 것과 같이 일종의 형용하지 못할 공허를 발로써 감각하였다.
지금에 생각하면 그것은 지극히 부도덕한 일이었다. 소재가 분명하지 못한 무덤 하나를 찾느라고 여가 발로써 밟은 수효는 500으로써 헤지 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여가 밟은 곳은 모두 무덤의 마루인지라 말하자면 죽은 이의 배, 혹은 가슴의 직상(直上)일 것이었다.
1 –2
이리하여 한 시간이나 한 덩이의 흙더미를 찾느라고 헤매다가 못찾고 산마루에 돌아왔을 때에는 벗의 딸의 주검은 벌써 몇 줌의 흙 아래 감추어졌고 미지의 사람을 넓은 구멍에 넣으려고 방금 들어 넣는 때였다.
본시 이런 것에 대하여 공포중이 있는 여는 돌아서버리려 하였으나 이상한 호기심은 여로 하여금 여의 마음과는 반대로 오히려 두어 걸음 가까이 나아가서 구경하게 하였다.
널은 굵은 바에 걸쳐서 네 사람의 손으로 구멍 아래까지 옮겨다 놓았다. 그때에 여의 눈에 몹쓸 호기심과 함께 불유쾌하게 비친 것온 널에서 흐르는 사수(死水)였다. 널의 머리쪽이 높아질 때는 밑으로, 밀이 높아질 때는 머리 쪽으로, 사수가 뚝뚝뚝 땅에 떨어졌다. 널 속에는 얼마나 사수가 괴어 있는지 관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물지게 지나간 자리와 같이 역연히 알아볼 수가 있었다. 차차 호기심이 더해진 여는 두어 걸음 더 나섰다. 여와 무덤 구명과의 거리는 세 걸음이 되지 않도록 가까웠다.
관은 묘혈 속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겨냥을 잘못하였던지 들어가던 관은 중도에 걸렸다.
“삽!”
“호미!”
관은 다시 빼내어 묘혈에 가로 걸쳐놓았다. 그리고 구멍을 더 깎았다.
좀 깎아낸 뒤에 관을 다시 넣었다. 그러나 아직 깎아낸 것이 부족하였던지 또 중도에서 걸렸다.
“더 파야 돼.”
“그럼 도로 들어낼까?”
“아니, 넉넉할 텐데 어디 눌러봐요. 누르면 들어갈걸.”
서로 이런 소리를 주고받던 그 일꾼의 한 사람은 발로써 관 머리를 내리찧었다. 덜컥하니 머리가 땅에 닿는 소리가 났다. 아래쪽도 쿵 하니 구멍 속에 들어가 놓였다.
거기까지 보고 있던 여는 벗들의 재촉에 못 이겨서 그 자리를 떠났다. 대단한 불유쾌와 기괴한 호기심을 남겨둔 채로……
그날 밤 여는 여관에서 매우 곤하여 저녁상을 물린 뒤에 곧 자리를 펴고 불을 끄고 누웠다. 피곤 때문에 생겨나는 상쾌한 졸음은 여의 온몸을 지배하였다. 차차 잠에 빠져들어가려 할 때에 여의 머리에는 광막한 벌판이 떠올랐다.
끝없는 벌판과 끝없는 하늘, 어두컴컴한 빛, 상쾌한 음악, 그때였다. 그 광막한 벌판에 문득 난데없는 무덤이 하나 불끈 솟아올랐다. 그것을 군호로써 그 넓은 벌판은 수천만 개의 주먹만큼씩 한 새빨간 무덤으로 변해버렸다. 그 위에는 거대한 관이 하나 흐늘흐늘 흔들리고 있었다. 묘혈은 관보다 작았다. 커다란 발이 하나 나타나서 관의 머리를 찼다. 사수의 흐른 자리가 있었다…….
여는 스스로 책망을 하고 혀를 차면서 돌아누웠다. 즉 발에서는 아까 무덤 꼭대기에서 꼭대기로 뛰어다닐 때에 받은 그 기괴한 공허를 다시 감각하였다.
아직껏 온몸을 지배하던 졸음은 어디론가 사라져 없어졌다. 그리고 여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기괴한 광막한 벌판과 문득 생기고 문득 없어지는 수없는 무덤과 흐늘거리는 넋이었다.
여는 이편으로 돌아누웠다. 저편으로 돌아누웠다. 이리로 저리로 돌아누우면서 여는 온갖 망상을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다.
여는 여의 생애 가운데에서 가장 유쾌했던 일을 생각해보려 하였다.
1 –3
어느 것이 가장 유쾌하였나? 낚시질? 소년 시기의 산보? 결혼? 동경 시내? 방탕? 지금 유쾌하게 생각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추억의 끝은 모두 한결같이 기괴한 망상으로 몰려들었다. 낚시질하는 푸르른 강은 광막한 벌판으로 변하였다. 소년 시기의 산보는 여의 머리를 모란봉 뒤에 있는 묘지로 끌고 갔다. 온갖 생각은 모두가 의논한 것같이 한결같이 여를 또다시 기괴한 망상으로 끌어들였다.
동시에 여의 베개가 차차 불편해지기 비롯하였다. 베개는 왜 얼굴 전면을 괴도록 만들지 않았나. 베개에는 귀가 놓일 자리를 왜 좀 들어가게 하지 않았나. 베개는 모름지기 사람의 머리에 꼭 들어맞게 머리는 좀 낮고 목은 좀 높게 만들어야 할 터인데 사람에게는 그만 눈치도 없다.
또 왜 두 팔은 양옆에 달려서 모로 누워 자기에 이렇게 불편하게 되었나. 팔이 앞뒤에 달렸으면 모로 누워 자기에 오직 편찮겠나.
9시가 지났다. 10시도 지났다.
여는 역시 잠을 못 들고 세상의 온갖 것을 저주하면서 이리 돌아누웠다 저리 누웠다 하고 있었다.
12시도 지났다. 사면은 고요해졌다. 여의 방은 이 여관의 사랑채로서, 넓은 사랑채에 묵고 있는 손은 여 한 사람밖에는 없었다. 이 사실은 여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였다. 더구나(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한편으로는 도적이 온다 할지라도 이 방은 빈방으로 알리기 위하여) 방 안에 들여놓은 여의 구두는 여를 괴롭게 하였다.
그 구두는 여의 머리에서 두 자가 되지 못하는 거리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구두는 아까 묘지에서 송장의 가슴 위를 밟고 뛰어다니던 그것이었다. 뿐이랴, 혹은 그때에 흐른 그 사수를 밟았는지도 모를 것이었다. 이것이 생각나면서 여는 얼른 그 구두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그때부터 여는 다시는 그 구두 쪽으로 돌아눕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옴짝을 못할 공포 가운데에서 조금씩 조금씩 바지를 향하여 움츠려 들어갔다. 할 수 있는 대로 그 구두와의 거리를 멀리하려 함이었다. 이리하여 새로 1시가 칠 때에는 여는 다리를 기역자로 꺾고야만 누워 있을 만큼 움츠려 들어갔다.
2시도 지났다. 그러나 여는 그냥 잠이 못 들고 인젠 더 움츠려 들어갈 곳은 없으므로 옴짝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 숨도 크게 못 쉬었다.
마침내 여는 커다란 용기를 냈다.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여는 벌떡 일어나면서 전등줄을 잡아가지고 불을 켰다. 그리고 목침으로 구두를 윗목으로 밀어놓은 뒤에 가방 속에서 최면제 아달린을 꺼내 극량 이상을 먹은 뒤에 얼른 불을 끄고 다시 누웠다.
이리하여 여는 겨우 잠이 들었다.
여는 그 뒤 때때로 생각하였다. 그때에 무엇이 여의 신경을 그렇듯 자격(剌激: 자극을 받아 급하고 세차게 움직임)하 였던가고. 죽음? 그것은 그렇듯 무서운 것인가. 그것은 한낱 ‘정지’ 로써 간단히 설명해버리면 안 될 것인가?
죽음은 우리의 생활에 얼마나 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여는 여의 들은 바의 몇 가지를 가지고 기록하여 죽음이 사람의 생활에 무엇과 비교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1 –4
D가 이 일본 사람이 경영하는 여관에 사환애로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그가 열두 살 나는 아직 철없는 시절이었다.
평양에서 50리쯤 되는 어떤 촌의 농가의 아흡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생활을 위하여 어려서부터 제 입은 제가 쳐야만 되는 운명에 붙들렸다. 동리 집 아이 보기에서 면소의 사환애로…… 여덟 살 적에 벌써 집을 떠나서 제 입 치기 시작한 그는, 열두 살이라 하는 나이는 아직 다른 아이들 같으면 동서를 분간 못할 나이 였건만 D에게는 그런 방면의 지혜는 벌써 넉넉히 있었다.
그는 온갖 것을 탄하지 않고 일하였다.
D가 열아흡 살이 되었다. 그는 사환에서 가쿠히키(‘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 을 가리키는 일어)로 승격하였다.
많은 공상과 꿈으로 보낼 이 좋은 시절도 D에게는 그다지 별한 느낌을 주지 못하였다.
“조선 명물 노에, 조선 인삼 노에…….”
늘 이러한 콧소리를 하면서 정거장에 드나드는 것으로 그는 일과를 삼았으며, 그는 그것으로 또한 만족하였다. 공상이라 하는 것은 이 젊은이에게는 아무런 뜻도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그가 스물한 살이 되었다. 그해 봄, 그 여관에는 아이 보기를 겸한 ‘어머니’ 로서 탄실이라는 열여덟 살 된 조선 계집아이가 들어와 있게 되었다.
이 사실은 아직 공상이라는 것을 모르고 스물한 살까지 자란 이 젊은이에게드 심상찮은 마음의 떨림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는 때때로 일하는 탄실이의 무르익은 뒷모양을 바라보고는 몸을 떨고 하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이상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일본 사람 여관에서 일하는 두 조선 사람, 가쿠히키와 어머니, 두 청춘…….
여기는 자연의 결합이 있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생기지 않았다 하면 천도가 무심하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는 동안에 둘은 어느덧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의 천극은 공상이라는 도정을 뽑아 먹고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공상이라는 도정을 뽑아 먹느니만치 더욱 맹렬하였다.
주인과 손님들이 잠든 뒤에 두 청춘은 뒤뜰에서 사랑을 속삭였다.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지나가는 길에 슬쩍 몸을 건드려보는 것으로 자기네의 사랑을 나타냈다.
사랑이라 하는 것은 괴상한 물건이었다. 아직껏 달밤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지 못한 그들은 서로 사랑을 속삭이기 비롯한 뒤부터는 달밤의 비상한 아름다움에 오히려 몸을 소스라쳤다. 잠든 거리의 아름다움도 뜻하지 않았던 바였다. 만월, 그믐달, 달 없는 하늘, 혹은 폭퐁우며 무서운 우레 소리까지라도 사랑하는 두 청춘을 즐겁게 하였으며, 그들의 미감(美感)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의 꿈과 공상의 대상이었다.
아직껏 평범하고 쓸쓸하고 외롭다고 보던 이 세상이란 것의 뜻밖의 아름답고 즐거움에 그들은 경이의 눈을 던졌다.
2- 1
그러나 하느님은 너무나 공평하셨다. 즐거운 일은 반드시 비극으로 막을 닫히게 지휘하는 하느님 이셨다. 탄실이의 배가 차차 부르기 비롯하였다. 두 사람의 눈으로 보면 사랑의 씨,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면 불의의 씨…… 탄실이의 뱃속에 생겨난 한 개의 생명은 차차 자랐다.
‘가법(家法)을 범한 불의.’
탄실이의 배가 남의 눈에 감추지 못하리만치 커졌을 때 주인에게서 이러한 선고가 내렸다. 이리하여 그들은 그 여관에서 쫓겨 나왔다.
그들은 성안에 있는 어떤 조선 사람의 여관에 몸을 던졌다. 객보(客報)에 적은 ‘부처’ 라는 명색이며, 한방에서 거처하고 한 이부자리에서 마음 놓고 자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형용하기 어려운 공포에 가까운 희열을 주었다.
신혼한 부처…… 이러한 명색 아래 그들은 팔다리를 뻗치고 여관에 묵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때때로 예고 없이 엄습하는 괴상한 기분 때문에 전 전긍긍하였다.
그것은 무엇? 그들은 그것의 정체를 몰랐다. 때때로 ‘야단’ 이라고밖에는 형용할 수가 없는 괴상한 기분이 폭풍우와 같이 그들의 마음을 엄습하고 하였다. 서로 웃음을 주고받으며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마치 어린애의 각시놀이와 같이 재미있게 지내는 그들도 마음속은 늘 극도로 긴장되어 있었다.
뜻하지 않게 한숨을 쉰 뒤에 그 한숨 쉰 까닭을 말하지 못하여 다투고 반복하였던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분으로 언제까지든지 지낼 수는 없었다. 정체가 분명하지 못하던 괴상한 기분은 차차 구체화하여 그들의 마음에 똑똑하고도 거대한 그림자를 주었다.
공상을 모르고 따라서 ‘장래’ 라 하는 것을 모르고 지내던 그들의 앞에 갑자기 ‘장래’ 라 하는 괴물이 나타났다. 긴 생애와 (당연히 있어야 할) 가정과 장차 생겨날 여러 개의 자식에게 대한 어버이의 책임이라 하는 것은 결코 그들을 언제까지든지 각시놀음과 같은 공포 속에 묻어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어둠이 있었다. 참담이 있었다. 주림과 괴로움이 있었다. 눈물과 부르짖음과 아픔이 있었다. 한 가지의 ‘권리’ 를 못가진 그들의 앞에 천백 가지의 의무와 책임과 어려움이 었었다. 그것과 싸우기 에는 그들은 너무 약하였다.
공포와 환락의 현재에 앉아서 암담한 장래를 엿볼 때에 그들은 거기 대하여 일절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할 수만 있으면 생각도 안하려 하였다. 때때로 몸을 고민하듯이 떨 뿐이었다.
어떤 날 밤 자리 속에서 젊은 아내는 이런 말을 하였다.
“죽으면 속상한 걸 모르갔디?”
남편은 혀를 차고 돌아누웠다.
12시가 지났다. 1시도 지났다.
남편은 아내가 아직 자지 않는 것을 보고 아내 편으로 돌아누웠다.
“오마니 보구프디 않우?”
아내는 대답 없이 한숨을 쉴 뿐이었다. 그리고 몸을 약간 떨었다.
2- 2
이튿날 밤 깊어서 여관에서는 두 개의 위독한 생명이 자혜의원으로 실려갔다. 넘치는 정열과 장래에 대한 공포에 위협받은 젊은 남편이(아내에게 의논조차 없이) 사온 쥐 잡는 약을 아내는 말없이 승인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밤이 들기를 기다려서 그 약을 한 통씩 떡에 발라서 먹은 것이었다.
3
D와 탄실이가 묵고 있던 곁방에는 여의 우인(友人) 일본 사람 I씨가 묵고 있었다. 그날 저녁 I씨에게는 손님이 찾아왔다.
곁방에서는 젊은 남녀가 혹은 느끼며 혹은 속살거리는 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들려왔다.
“곁방에서 저런 소리가 나면 혼자서 주무시기 거북하지 않아요?”
손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밤 깊어서 손님이 돌아간 뒤에 I씨는 자리를 펴고 누웠다. 그리고 곁방에 대한 불쾌와 호기심을 마음에 품은 대로 꿈의 나라로 들어갔다.
새벽 2시쯤 I씨는 곁방에서 나는 심상찮은 소리에 깼다. 그러나 깨어서 보니 역시 신음하는 소리지 별다른 소리는 아니었다.
I씨는 그 신음하는 소리에 별한 연상을 해보고 몹시 불유쾌해져 돌아눕고 말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그의 졸음은 산산이 헤어져버렸다. 그리고 I씨의 신경은 차차 날카로워갔다.
신음 소리의 뒤끝에 여인의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등을 쓸어주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연하여 사내가 또 토하였다. 사내와 여편네 두 사람의 신음 소리는 차차 커갔다. 그러면서도 사내는 일어나서 걸레로 그 토한 것을 모두 훔쳐서 문을 열고 내다 버리려 뜰로 나갔다.
5분이 지나서야 사내는 돌아왔다. 그리고 맥이 빠졌는지 덜컥하니 마루에 걸터앉아 숨을 태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마루에서 또 토한 사내는 그것을 모두 훔친 뒤에 방 안으로 기어들어가서 털썩 몸을 내던졌다.
‘무엇에 체한 모양이군.’
I씨는 이렇게 판단하고 단잠을 깬 것을 분하게 여기면서 담배를 피웠다.
곁방에서는 남녀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연하여 들렸다. 조선말을 잘 모르는 I씨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 진실한 어조로써 결코 그것은 경박한 이야기가 아닌 것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이윽고 사내는 또 토하였다. 이번에는 내장까지 쏟아내는 듯한 소리였다. 킁킁 고민하며 올라 뛰는 소리도 들렸다. 여편네토 또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쿵쿵 쾅쾅 두 남녀는 몸을 올라 뛰면서 고민하였다. 단말마의 부르짖음이 연하여 나왔다.
I씨는 마침내 혀를 차고 허리띠를 다시 매며 일어났다. 그리고 책망을 하든 의사를 불러주든 하려고 마루로 나가서 곁방 문을 열었다.
아픔 때문에 다른 정신이 없는 두 남녀는 자기네 방에 사람이 들어온 것조차 모르고 고민하다가 몇 번을 어깨를 흔들린 뒤에야 겨우 알았다. 그리고 공중걸이를 하던 몸을 억지로 진정하였다. 그들의 얼굴은 무서운 아픔을 참느라고 밉게까지 되어 있었다. 몸은 와들와들 떨었다. 그리고 사내는 몸을 일으켜서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면서 걸레를 집어다가 방안을 또 훔치기 시작하였다.
이때에 I씨의 눈에 뜨인 것은 몇 개의 쥐 잡는 약의 빈 곽이었다.
‘빠가(바보)…….’
I씨는 허망지망 뛰어나왔다. 그리고 주인을 깨우며 일변 자동차를 부르며 경찰서에 전화를 하며 응급치료를 명하며 하였다.
자동차가 왔다. 두 위독한 생명은 자동차로 자혜의원으로 보냈다.
그러나 자혜의원에 채 도착하기 전에 젊은 아내는 이 세상을 떠났다. 자혜의원에 내리면서 남편도 또한 제 사랑하는 아내 뒤를 따라갔다.
4
생활이라 하는 커다란 괴물 앞에는 죽음이란 진실로 가벼운 것이었다. ‘생활의 공포’ 와 ‘정열’ 에 직면하여 D와 탄실이가 죽음의 길을 취한 것은 우리가 매일 신문 지상에서 보는 바로 별로 신기할 것이 없다. 여기서 저기서 비슷비슷한 일이 매일 몇 개씩 일어나는 것을 신문지는 우리 에게 ˙보도한다.
D와 탄실이의 죽음에서 오히려 우리가 더 기이하게 느끼는 바는 죽기 순간 전까지 자기의 토한 것을 감추기 위하여 걸레를 들고 방안을 훔치던 그의 태도였다. 그러면 ‘체면’ 혹은 ‘체재’ 라 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순간 뒤에 이를 ‘죽음’ 까지 잊어버리게 하리만치, ‘죽음’ 이라 하는 것은 ‘체재’ 나 ‘체면’ 때문에 잊어먹을 만치 그림자가 약하고 가벼운 것인가?
‘죽음보다도 강하다.’
이 말은 아직껏 가장 강한 힘을 형용하려고 사람이 만들어낸 형용사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죽음’ 보다도 강한 ‘체재’ 를 보았다. 그러면 인생에 관한 죽음의 가치란 그렇듯 가벼운 것인가?
여는 어떤 날 이 이야기를 어떤 회석에서 꺼낸 일이 있었다. 그때에 그 회석에 있던 모씨가 이런 실례를 들어 여의 말에 찬성하였다.
지금은 몇 개의 학교와 기상대가 들어앉았고 저녁 때의 평양 시민의 산보 터로 되어 있는 만수대는 30년 전만 해도 소나무 몇 개만 서 있는 무시무시한 언덕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죄수를 목맸다는 소나무가 있었다.
그 소나무는 여의 어렸을 때에도 그냥 서 있었다. 인과라 할까, 숙명이라 할까. 다른 소나무들은 아직 그냥 청청할 때에 그 소나무만은 벌써 고목이 되어 있었다.
그 소나무가 아직 청청하고 때때로 사형수를 매달던 때의 이야기니까 벌써 30년 이전의 일인 것이었다. 그때에 한창 장난꾸러기의 모씨는 사형이라도 있는 날은 온갖 일을 제쳐놓고 그 구경을 다녔다.
어떤 날, 강도 셋이 사형을 받게 되었다. 세 명을 끌어다 내다 놓고 이날이 마지막 날이라고 친척들이 가져온 술이며 음식을 먹인 뒤에 사형을 집행하게 되었다.
그 소나무에 늘인 바를 향하여 지척지척 가던 죄수의 한 명은 우연히 거기 놓인 돌부리를 찼다. 동시에 신이 벗겨졌다. 죄수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몸을 틀어서 그 신을 도로 집어다가 신은 뒤에 다시 일어서서 세 걸음 앞에 있는 바 아래까지 가서 목을 디밀었다. 이리하여 명 아닌 목숨을 거기서 끊었다.
그러면 그 죄수는 신짝이 그렇게 아깝던가? 혹은 관습의 힘이 죽음의 순간 전에도 그로 하여금 주저앉아서 신을 도로 신게 하였는가.
그 어느 방면으로 보든 죽음이라 하는 것이 사람의 생활에 가지고 있는 가치의 그다지 크지 못함이 중명되지 않나.
동리 집에 불이 붙어도 신짝을 미처 못 신고 뛰어나가는 ‘사람’이, 자기의 신 벗어진 것을 의식하리만치 죽음이란 것은 사람의 생활에 관련이 적은 것인가.
여는 또 한 가지의 죽음의 가치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5
전라남도 어떤 고을에 이(李)라 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가세도 보잘 것 없고 문벌도 보잘 것 없는, 말하자면 생리학이 말하는 바 ‘몸집’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젊은이였다. 똑똑치는 않으나 그의 할아버지는 백정이란 말까지 있었다.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행화(杏花: 살구꽃) 장사로 그날그날 지내고 있었다.
어떤 날, 그것은 늙은이의 마음까지도 다시 젊게 하는 어떤 봄날이었다. 그리고 젊은이의 마음은 더욱 정열과 희망과 공상으로 떨리게 하는 어떤 봄날이었다. 그러한 봄날 저녁 이 젊은 행화 장수는 역시 봄의 향기에 유혹된 바 되어 그 동리 뒤에 있는 동산을 일없이 거닐고 있었다. 그리고 눈 아래 벌여 있는 동리를 내려다보면서 그 가운데 같이 ‘생(生)’ 을 즐긴 미지의 많은 처녀들을 머리에 그려보면서 혼자 기뻐하고 있었다.
그때에 문득 그의 시야 한편 끝에 알지 못할 분홍빛의 점 하나가 걸핏 지나갔다. 그의 눈은 뜻하지 않게 그리로 향하였다. 그것은 그 동리뿐 아니라 그 근방 일대의 재산가요 세력가인 J○○ 씨의 집 한 채의 건넌방이었다. 그리고 분홍빛의 점은 쏙 발가벗은 처녀였다. 그의 눈이 그리로 향했을 때에 그 처녀는 벌써 속옷을 입었다. 그리고 앉아서는 버선을 신는 즈음이었다.
그러나 아아, 그 풍만한 육체! 흐드러진 몸집! 무르익은 젖가슴! 기다란 머리!
젊은 행화 장수는 눈알이 앞으로 쏟아져 나올 듯이 뜨고 정신없이 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녀는 옷을 다 입고 그 방에서 나와 다른 방으로 사라져 없어졌다.
그날 밤이 깊어서야 젊은 행화 장수는 제 집에 돌아왔다. 그는 그때껏 그 동산에서 처녀가 다시 뜰에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튿날도 그는 하루 종일을 그는 그 동산에서 J씨 집 뜰만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뒤부터 그는 날만 밝으면 동산에 올라갔다. 그리고 밤이 들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얼굴도 똑똑히 못 본 그 처녀는 젊은 행화 장의 온 마음을 거머쥐었다. 심방에서 자라는 처녀, 뜰 출입조차 꺼리는 아름다운 임을 다시 한번 볼 기회를 얻어보려고 날마다 날마다 동산에 올라가서 그 집 뜰만 내려다보고 있는 이 젊은 행화 장수는 마침내 애타는 가슴을 억제하지 못하여 병상에 넘어졌다.
그의 병에는 백약이 쓸데가 없었다. 가세가 넉넉지 못한 그로써 고명한 의원은 볼 수가 없었지만 그를 진맥한 의사마다 그의 병에 대하여 제각기 다른 병 명을 대고 제각기 다른 약을 주었다.
젊은 행화 장수는 의사가 주는 약마다 다 말없이 받아먹었다. 그러나 제 병 에 대하여 가장 확실한 판단을 가지고 있는 이 젊은이는 그러한 모든 약이 아무 쓸데가 없음을 가장 똑똑히 알고 있었다.
마침내 그의 병의 원인은 그의 어머니도 알게 되었다. 정신없이 한 헛소리에 첫 기수(幾數: 낌새)를 채고 캐물어서 그 원인을 자백시킨 것이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세상의 그 무엇에 비기지 못할 만큼 큰 것이었다. 어머니는 자기네 집 안과 J씨 집안의 문벌을 비교할 만한 이성도 잃었다. 자기 집안의 가세도 잊었다. J씨 집안의 세력도 잊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오직 일편단심은 어머니로 하여금 아직껏 30여 년간을 경험해온 세상의 온갖 관습이며 염치를 잊게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J씨 집 하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집 하인에게 온갖 것을 다 말하고 뒷일을 부탁하였다.
뜻밖에 회답이 며칠 뒤에 이르렀다. 그것은 그 동리에 사는 J씨 집 하인의 먼 일가 되는 집에서 어느 날 젊은 행화 장수와 처녀를 만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날 흥분으로 말미암아 들뜬 행화 장수는 새 옷을 갈아입고 그 집을 찾아갔다. 일어날 기운조차 없도록 쇠약한 그였지만 세상에 다시없는 기꺼운 소식은 그로 하여금 없던 힘을 내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커다란 희망을 품고 이르렀을 때에 뜻밖에 장정 서너 사람이 달려들어서 그를 결박을 해놓았다.
어머니는 집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행복을 위하여 잠이 못 들고 이리 뒤채고 저리 뒤첼 동안 아들은 영문도 모르고 결박을 당하여 어두컴컴한 움에 꾸겨 박혀 있었다.
그날 밤부터 사흘 그는 물 한 모금 못 먹고 결박을 당한 채로 그곳에 박혀 있었다. 그를 결박한 사람들은 그 뒤에는 잊어버렸는지 그의 앞에 얼씬도 안 하였다. 그리고 사홀째 되는 저녁 경찰의 힘으로 그가 구원을 당했을 때 그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한 달이 지나서야 그의 몸은 회복되었다. 동시에 이상하게도 몇 달을 두고 애타하며 안타까워하던 그의 마음도 회복되었다.
인위적 죽음이 커다랗게 그의 위에 그림자를 비출 때에 그의 마음에 불붙던 온갖 정열과 사랑은 퇴각을 한 것이었다.
‘죽음’ 은 ‘사랑’ 보다도 강하였다.
6
사랑은 가장 크다고 옛날의 철인이 우리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여기서 죽음으로써 위협을 받고 퇴각한 사랑을 발견할 때에 우리의 생활 가운데 사랑보다도 더 큰 가치를 갖고 있는 ‘죽음’의 한쪽 면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펼 때에 거기는 죽음으로써 위협을 받고 자기의 온갖 영예나 지위를 내던지고 일생을 굴욕적 생활에 담근 많은 제왕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죽음’ 이라 하는 것은 사랑보다도 더 무거운 것인가. 제왕의 기세와 영예와 지위보다도 더 무거운 것인가. 한낱 ‘체재’ 보다도 가볍던 ‘죽음’ (조그마한한 ‘관습’ 보다도 가볍던 ‘죽음’), 그 ‘죽음’ 은 또 여기서 사랑보다도 무겁고 ‘제왕의 권세와 영예’ 보다도 무거운 한편 면을 우리 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죽음의 참말 ‘면(面)’ 인가.
여는 몇 가지의 ‘죽음’ 을 또 나열해보고자 한다.
7
여배우 메리는 어떤 날 성냥을 긋다가 불티가 날아드는 바람에 얼굴에 조그마한 상처를 받았다. 유명한 외과의사 몇 사람이 그 상처를 치료하였다. 달포를 문밖에도 안 나가고 메리는 성심을 다하여 상처를 치료받았다. 상처는 조금 빛이 검을 뿐 다 나았다. 메리는 다시금 무대에 나섰다. 그 밤의 연극은 진행되었다. 러브신이었다. 애인 되는 사람은 마리(메리가 분장한)를 부둥켜안고 뺨에 키스를 하였다.
그때에 문득 메리는 제 뺨에 있단 상처가 생각났다. 화장으로써 그 검은 자리를 감추기는 하였지만 이제 그 키스에 화장이 벗겨지지나 않았나 초조해지기 시작한 그는 연극은 되는 대로 해버리고 들어왔다.
그 뒤부터는 무대에 나설 때마다 그 상처가 마음에 켕겼다. 손님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것은 그에게는 뺨의 상처를 보는 것 같아 연극이 되지를 않았다. 거기에 대한 번민이 차차 과하여져 신경쇠약에 걸린 그는 마침내 자살을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미모’ 보다도 가벼운 ‘죽음’ 을 보았다.
안은 어떤 조그마한 산촌의 처녀였다. 그는 늘 자기의 미모를 자랑하였다. 그 자만심이 과하여진 그는 자기의 미모로써 도회 사람을 놀라게 할 양으로 도회에 나왔다. 그러나 도회 정거장에 내리는 순간부터 안의 코는 낮아졌다. 정거장에서 그는 자기보다 훨씬 아름다운 얼굴의 소유자를 수없이 본 때문이었다. 거기 대한 번민의 끝에 그는 마침내 자살을 하였다.
여기서 ‘자즌심’ 보다도 가벼운 ‘죽음’ 도 보았다.
병고(病苦)의 자살, 빈고(貧苦)의 자살, 공포의 자살, 이런 것은 너무 평범한 일이매 예를 들 것은 없거니와 당연히 사형을 받을 만한 죄를 지은 범인이 고문의 아픔에 참지 못하여 범행을 자백하는 것은 ‘일시적 고통’ 보다도 가벼운 ‘죽음’ 의 한 면을 보여준다.
제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자식이나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는 것은 ‘본능애’ 보다도 무거운 ‘죽음’ 의 일면도 보여준다.
8
그러면 그 어느 것이 죽음의 진실한 ‘면’ 인가? 혹은 사랑보다도 무겁고 혹은 체재보다도 가벼운 면을 가지고 있는 ‘죽음’ 의, 생활에 대한 진정한 가치는 어느 것인가.
죽음은 신성하다 한다. 그러면 죽음이란 그런 잡된 비교를 허락하지 않고 그런 문제 위에 엄연히 초월해 있는 ‘범하지 못할 신성체’ 인가?
죽음이란 풀지 못할 커다란 수수께끼다.
-끝-
2016년 10월 26일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