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로저(closer)’는 남녀 간 사랑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읽을 수 있는 흥미롭지만,
남녀상열지사를 다룬 영화치곤 머리에서 쥐가 나게 하는 영화다.
같은 제목으로 관객을 몰고 왔던 연극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첫눈에 불꽃튀는 사랑’을 모티브로
남녀 네 명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두 쌍 남녀들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사랑 행위와 관련하여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들은 사랑할 때도, 헤어질 때도 자신에게 솔직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서로의 참된 모습을 보기를 외면한 채
오로지 자신에만 충실한 전형적인 도시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자기가 만든 기준에 따라 사랑을 확인하려고 한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결국 서로에게 아픔만 남기고 뿔뿔이 흩어진다.
줄리아 로버츠, 주드 로, 클라이브 오웬,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사랑에 대해 회의를 품고 사는 현대인들이
사랑의 본질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은 사랑 없이는 못 살지만
사랑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 속에서 갈등하고 분노하는 현대인들의 단면을 은유한다.
그들은 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가?
그것은 각자 사랑에 대한 생각이, 개념정의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인데도 같은 단어를 다르게 사용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소통 불가능한 그런 존재는 아닐까?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상대이성의 있는 그대로를 포용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이 가진 닫힌 사랑의 관념을 규칙처럼 적용하려고 하다가 이내 좌절을 겪고 만다.
낯선사람을 친밀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건 무얼까?
영화 속에서 젊은 남녀들은 사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들의 친밀감을 높여간다.
그러나 그들의 서로 다른 사랑의 개념은 그들을 하루아침에 낯설게 만들어 버린다.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는 것은 그들의 정신인가 아니면 그들의 육체인가?
앨리스는 울고 있는 자신의 사진 앞에서 예술은 사기극이라고 조롱한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슬프지만 이를 감상하는 사람들은 그저 아름답다고만 할 뿐이다.
예술은 무언가를 삭제하고 일부만을 남겨놓는다.
삭제된 기억과 남아있는 기억 사이,
누가 거짓말을 하고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는 자의 내면을 간과한 채
울고 있는 상황만을 감상자 멋대로 각색해버리는 현실을 앨리스는 조롱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서로에게 거짓인가?
영화는 사실이라는 기표에 집착하여 기의를 놓치고 마는 현대인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끊임없이 되묻고 질문하는 댄이나 래리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사실에 끈덕지게 매달려있는 기표들일 뿐이지
그것들 뒤에서 살아 움직이는 기의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낯설다’와 ‘친밀하다’라는 두 단어는 외면적으로는 서로 대립적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두 단어는 서로를 전제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운 한 쌍의 개념 짝이기 때문이다)
낯선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친밀한 경험을 해도 그것이 실제로 친밀한 것인지 체험하기 어렵다.
사랑이라는 관계에서 남녀의 육체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생물학적 성?)
바따이유는 자신의 <에로티즘>에서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에로티즘의 영역에서
인간은 서로 간에 건널 수 없는 불연속성을 에로티즘을 통해 극복하고자하나
그것 역시 찰나에 불과해 그것 또한 이내 소멸해버리고 만다는 썰렁한 주장을 한 바 있다)
영화로 돌아가 보면, 육체적 관계가 갖는 여러 가지 양태를 관찰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육체적 관계는 하나인가 ? 아니면 여럿인가?
두 남자 주인공처럼 사랑의 흔적을 육체에서 찾는다면
사랑 없이 행하는 육체적 관계란 근원적으로 불가능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한 가지 기준을 이중적으로 사용하는 오류를 범하는 게 아닐까?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댄에게 이름조차 가르쳐주지 않은 제인은 비난받아야하는가?
영화에서는 그러한 행동 자체가 중요한 것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름은 관계의 본질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이라는 기표는 엘리스 혹은 제인이라는 여자의 본질과 무관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름 뿐 아니라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일(그녀가 래리와 관계를 가졌는지 여부)은
그녀의 본질(사랑과 관련한)과 무관하다.
앨리스는 댄에게 ‘ 사랑이 어디 있는데?'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며 울먹인다.
육체적 관계를 통해 그 사실 여부로 사랑의 흔적을 찾으려는 댄 앞에서
앨리스는 믿음과 공감을 통해 서로의 사랑을 간직하고 싶다는 절규를 하는 걸까?
사실 확인 대질 신문에서 통과 안 되면 그들은 다시 낯선 관계로 돌입한다.
그들은 언제까지 진실이라는 외투를 걸친 사실이라는 기표에 매달려
낯설음과 친밀감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가?
낯설음을 친밀함으로 바꾸는 그들 안의 관계 맺음에서
진짜이름과 가짜이름의 차이란 없다는 진실이 해명되는 과정이
영화 <클로저>에는 드러나 있지 않다.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는 실패로 끝난다)
사랑이란 무얼까? 그것은 존재하는 걸까?
아님 인간이 만든 신기루나 환영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정의가 가능하기는 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