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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25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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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화가 김홍도의 ‘점심’. 일꾼들이 식사를 하며 막걸리를 따라 마시고 있어요. /국립중앙박물관
"막걸리가 한 동이 가득 있습니다. 내일이 바로 중양절인데 함께 어디로 갈까요?"
때는 고려 말, 고려의 충신 이숭인이 정몽주에게 보낸 시입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에 산과 같은 높은 곳에 올라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이 고려의 풍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정몽주와 이숭인, 그리고 다른 친구들인 정도전, 염흥방 등은 함께 모여 즐겁게 막걸리를 마시며 놀았습니다. 고려의 충신도, 간신도, 그리고 조선의 개국공신도 함께 마실 수 있었던 술이 바로 막걸리였습니다.
최근 'K푸드'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며 우리나라의 전통주 막걸리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막걸리는 아주 역사가 오래된 술입니다. '마구 거른 술'이란 의미에서 막걸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곡식을 발효시켜 술을 만든 뒤 맑은 부분은 청주라 부르지만 찌꺼기가 많이 들어간 것은 뿌옇고 탁하다고 해서 탁주라고 했으며, 이 탁한 부분이 곧 막걸리였습니다.
막걸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술이었습니다. 맑은 부분만 떠낸 청주와 달리 색은 뿌옇고, 맛은 시고 털털했기 때문이었지요. 막걸리의 다른 이름은 농주(農酒)였으니, 농사일을 하면서 마시는 술이란 뜻이었지요. 김홍도의 민화 '점심'에서 그린 그대로, 또 농촌의 풍속을 노래한 농가월령가에서 말하는 대로 힘들게 농사일하던 사람들에게 막걸리는 절대로 빠질 수 없었습니다. 고려 시대 문인 이규보는 자기가 출세 전에는 막걸리를 마시다가 출세하면서 청주를 마셨는데, 벼슬에서 물러나면서 또 막걸리를 마시게 됐다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걸리를 좋아해서 마시는 사람도 많았으니, 어떤 사람은 친구와 즐겁게 놀기 위해, 또 어떤 사람은 시름을 잊기 위해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전라남도 강진에서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던 다산 정약용은 '막걸리를 마시게 되면서 소주를 멀리하게 되었네'라고 할 만큼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효종의 장인 장유와 실학자 이수광은 막걸리에 황태 안주를 곁들여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무너져가는 조선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유학자 최익현, 그리고 황현도 친구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마음을 달랬지요. 이뿐만 아니라 폭군 연산군도 막걸리를 좋아해 시를 남기기도 했으니,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더냐. 한 잔으로 천 가지 근심을 잊어버리네"라는 구절입니다.
이제는 사라진 풍경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집집마다 술 익는 냄새가 흘러나왔습니다. 오가는 손님들이 막걸리 한 잔 얻어 마시며 새로운 이야기를 자아내곤 했습니다. 고려 때도 조선 때도 좋은 사람과 만나 막걸리를 마시며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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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작가·'한잔 술에 담긴 조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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