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치유하는 힘센 시
“좋은 시는 힘센 느낌이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이다.”라고 영국의 낭만파 시인, 워즈워드(1770.4.7.~1850.4.23.)가 말했다. 오래 사색하지 않고는 좋은 시를 생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색은 삶의 의미와 가치가 절실했던 과거의 모든 느낌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여혜승’ 님의 글쓰기 습관처럼 오랜 세월, 읽고 쓰고 사색해야 대단한 감수성을 지닌 소유자가 된다. 처음에는 맹목적으로, 다음에는 기계적으로, 그 다음에는 습관의 충동에 복종해서 시를 쓰다보면, 대상의 느낌들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힘이 길러진다. 감수성은 이해력과 인간미, 세상을 향한 애정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감수성이 발달되면, 건강한 연상에 의한 삶의 공허를 위로 받을 수 있다. 워즈워드가 말한 힘이 센 시는, 시인과 독자 모두에게 치유의 효과를 낳는다.
장녀로 태어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착하다 착하다고 말하는 감옥에/ 갇혔다. 그 속에서 슬펐다 숨이 막혔다/ 내 안에서 뾰족뾰족한 길들이 밀고 올라오면/ 두더지게임을 할 때처럼 나를 천번만번 죽였다/ 내가 거듭날 수만 있다면/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 천진무구한 삶을 살고 싶다/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하고 미워하고 싶을 때/ 미워하는 사람냄새가 나게 살고 싶다/ 그런 사람으로 당당하고 살고 싶다//고 <나는 착한사람 증후군에 갇혀 있다>고 ‘여혜승’은 말한다.
화자는 태어나자마자 “혜승이는 착하다 우리 혜승이는 착해요” 라는 말을 듣고 세뇌되었다고 한다. 무의식속에서조차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착한 감옥에서 살았다고 말한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가정생활에 충실했다고 고백한다. 화자는 거듭날 수만 있다면 사람냄새가 나게,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거듭난다는 뜻은 두 가지가 있다. 예수를 믿음으로 해서 영적으로 다시 새사람이 되는 삶과,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이나 태도를 개선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삶이다. 거듭나는 것은 화자의 삶이 지각되고 심원해져서 인생의 쓸쓸함을 받쳐주는 힘이다. 아마 <여혜승>은 시인이 되는 계기로 삶이 풍성해져서 거듭나고, 하나님 성품을 닮아가는 영적인 새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싶다.
성경을 읽은 사람도/ 불경을 읽은 사람도/ 자식 앞에서는 작아지고/ 노심초사(勞心焦思)해진다// 예수님을 말하다가/ 부처님을 말하다가/ -생략- 내 속이 시끄러우면 아버지는/ 이른 봄 둥지를 튼 제비가 된다/ 빨래 줄에 위태롭게 앉은 참새가 된다/ 엄동설한에 떨고 있는 문풍지가 된다//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내가 이 세상에 없으면 당신의 인생도/ 없는 것이라고……는 <숫자놀이의 비밀>이다.
이 세상의 아버지는 자식의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인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에 따라 삶이 행복해지고 불행해진다. 성경과 불경을 넘나들며 자식에게 조언을 해주는 화자의 아버지는, 인간의 내적 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종교조차도 초월한 사람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식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 아버지에 불과하다는 아버지 마음이 느껴진다. 또한 화자는 숫자놀이를 하면서 아버지 마음을 읽을 줄 아는, 효녀임에 틀림이 없다는 모습이 엿보인다.
<부치지 못한 편지>에서는 ‘딸아! 오늘도 분주한 새벽의 일상너머에서/ 너보다는 덜 예쁜 먼동이 트는구나!/ 우리 똥강아지들도 곧/ 책가방을 메고 대문을 나서겠지?// 우리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처럼/ 바람이 불다가 잠잠한 것처럼/ 사소하게 살자 물 흐르듯이 살자//-생략- 네 속에 아빠가 있다/’에서, 화자의 아버지는 아침마다 딸에게 편지를 써서 카톡으로 보낸다. ‘천둥 번개가 되다가/ 천둥벌거숭이가 되다가/ 펑펑 퍼붓는 눈발이 되기도 하는’ 장면에서 아버지와 딸의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은유적인 언어로 표감정의 절제미를 보여준다. ‘아빠! 잘살게요 울지 않을게요/ 게요 게요 게요라고/ 카톡에 울컥울컥/ 써놓고’라는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부성애를 느낀 독자에게 가족의 역할에 대한 치유의 효과를 낳고 있다.
<울지 않는 캔디에게>에서는 화자의 자의식이 만들어내는 모노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만화영화의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주인공 캔디는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과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혹에>는 소녀시절에 책상 앞에 앉아 공자의 위정 편을 배울 때는, 불혹의 나이란 먼 세월의 이야기 같았는데, 세상일에 갈팡질팡 정신을 빼앗기다보니 어느새 불혹의 나이에 다다랐다고 상기시킨다. 하지만 시인은 인생무상을 분노나 절망으로 분출하지 않고, 비싼 수업료를 내며 인생을 배웠으니 흔들리지 않겠다고, 하늘의 명령을 순종하고, 남의 말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이혜승 님의 시는 대체적으로 일상에서 마음의 파장을 그려낸다. 진리를 추구하는 경우에도 통찰의 지혜를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더 많은 시를 읽고 시 쓰기에 전념한다면, 내공을 다져놓은 감수성으로 독자에게 큰 감동을 일으켜 줄 수 있는 시인이 될 것으로 믿는다. <나는 착한사람 증후군에 갇혀 있다><숫자놀이의 비밀><부치지 못한 편지><울지 않는 캔디에게><불혹에>의 5편의 시를 수작으로 평가한다.
<심사위원/ 갈정웅, 오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