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북촌 한옥마을 답사기.
-언제:2013.07.13 토요일
-여행동선:지하철2호선 시청역->서울광장->광화문네거리->
안국역->북촌 한옥마을->인사동->종로2가->교보문고->서울광장
칠월의 장맛비가 잠시 멈춘 토요일 오후,
모처럼 서울 구경을 갔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장맛비로 눅눅해진 습한 마음과
카메라를 꺼내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이름에서
'북촌'이라 불리는 한옥 마을 답사에 나섰습니다.
복잡하고 번화한 서울 도심 한 복판에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동네,
북촌은 골목 굽이굽이마다 이곳을 터잡아 살아가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그들의 삶을 켜켜히 채워냈는지
그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전통과 현대,개발과 보존,자본과 문화가 교차하는 북촌은
현대와 과거가 정다운 공존을 하고 있었습니다.
구 서울 시청 건물 앞 서울 광장입니다.
서울 시청으로 사용되었던
저 건물은 1926년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식민의 잔재인데 서울 시청은 그 옆으로 신축(유리건물)하여 이전하였고
현재 '서울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복원당시 조선총독부 건물과 함께
왜 이 건물을 철거하지 않았는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의 후손들이 득세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지하철 시청역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동상.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이순신 장군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한결같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교보생명 빌딩
계절에 따라 바뀌는 문구가 흥미롭습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세종문화회관
세종대왕 동상 뒤로
경복궁의 관문 광화문이 보이고
그 뒤 북악산 아래 명당에 터잡은 청와대가 보입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길가에
장맛비에 몰락해가는 무궁화꽃이
현재의 정국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경복궁의 관문 광화문입니다.
광화문은 조선 개국(1935년,태조4년)에 맞춰 건축됐고,
세종7년 집현전 학사들에 의해 '광화문'이라 불렸습니다.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탔고,
흥선대원군이 재건했으나 6.25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1968년 박정희(일본이름:다까키 마사오) 정권의 개발논리에 맞춰
전통적인 광화문의 모습을 상실한 채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된 바 있는데
2010년
조선총독부 건물등 치욕스런 식민의 잔재들을 철거하고 새롭게 복원했습니다.
저 광화문 현판 글씨는
흥선대원군의 복원 당시 임태영이 쓴 것을
디지털로 복원한것입니다.
북촌으로 가는길은
지하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약 100m 정도
올라가면 길 안내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상인들이 '서촌'을 이뤘고,
북동쪽에는 나랏일을 하는 양반 관리들이 북촌을 형성했습니다.
그 이름도 정겨운 가회동과 송현동,안국동 그리고 삼청동이 있습니다.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랫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다는 창덕궁의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왕실의 일을 돌보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골목길을 만납니다.
이곳이 바로 '북촌2경'이라는 원서동 공방길입니다.
창덕궁길 북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중앙중고교
교정은 담쟁이 넝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북촌 한옥마을에서 바라본 남산
켜켜히 쌓아놓은 기와장위에는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납니다.
한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이 묻어납니다.
북촌 한옥마을의 골목길
가회동의 집들은 가파른 언덕을 끼고
제일 작은 11평짜리부터 1천평이 넘는 한옥들이
밀집되어 있는것이 특징입니다.
제법 큰 한옥들은 행랑채와 솟을대문에 막혀
집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 작은 한옥은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기단을 돌로 깔고 댓돌을 놓은것이 인상적입니다.
가회동 11번지 일대는
한옥과 함께 소박함과 전통이 살아 숨쉬는
있는 그대로의 북촌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북촌 한옥마을의 돌계단 길
복잡하고 번화한 서울 도심 한 복판에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서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동네,
북촌 한옥마을은 현대와 과거가 정다운 공존을 하고 있었습니다.
창덕궁뒤 한옥마을 전경
과거 왕실의 일을 돕던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었습니다.
가회동 11번지 일대 한옥 마을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사람이나 동물이나 누군가를 원하고,
사랑하고,함께 살고 싶어 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대체 언제쯤에나 연애와 사랑의
속박에서 벗어나 담대한 단독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해바리기가 있는 집
배롱나무 꽃 지고 여름 다 가는 날,
너는 깊이 담쌓아 감춘 것을
내게 들켰으니
저 담 끝에 문 하나 두어도 좋겠다
문 끝에 이파리 하나 돋을 새겨도 좋겠다
담이 높아도 꽃은 넘는다
김승해/<꽃담>
캐나다에서 온 여행자
TV에 나와서 유명해진 인력거꾼.
저 청년은 외국 유학까지 다녀와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습니다.
전국 주요 여행지로 인력거 사업을 확장하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 지금,
매우 무더운 날씨였는데
자기 만의 방향으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미소가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윤보선가 바로 옆에 위치한 안동교회
윤보선가
윤보선 전 대통령이 살았던 집으로
고종 7년(1870년) 건립 되었으며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친께서 1910년 경에 매입했다고 합니다.
약 1,500여평의 대지의 넓은 집은 솟을대문과 중문을 거쳐
정원을 한참 들어가 안채와 별채,사랑채가 있다고 하는데
현재 공사중으로 내부를 볼 수 없었습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청와대가 아닌 이곳에서 집무를 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비바람 막아주는 지붕,
지붕을 받치고 있는 네 벽,
네 벽을 잡아주는 땅
그렇게 모여서 집이 됩니다.
따로 떨어지지 않고,
서로 마주보고 감싸 안아
한 집이 됩니다.
아늑한 집이 됩니다.
-강지인,<집>
윤보선 가의 돌담
가회동 31번지의 한 정통 한옥집
격식을 제대로 갖춰 지은 한옥이었습니다.
북촌 한옥 마을의 한옥집 앞마당
가회동 31번지 일대는 적극적인 한옥 지원사업으로
비교적 한옥들이 잘 보전되어 있는 곳입니다.
고즈넉한 분위기와 작은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소박한 골목으로
주민들의 친근한 일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북촌 6경 가회동 골목길입니다.
한옥 지붕 사이로 펼쳐지는 서울의 전경과
처마 끝 사이로 보이는 서울 시내 전경이
북촌 산책의 백미로 꼽히는 곳입니다.
옛 서울의 풍경을 형성하던 궁과 수많은 한옥들이
헐려 나간 뒤 마지막 남은 900여 채의 한옥들이 모인 동네,북촌
오래된 골목길이 정겹습니다.
감나무가 있는 집
북촌의 한옥들은 조그만 안마당에
정원과 텃밭을 예쁘게 꾸며놓고 살고 있었는데
대부분 높은 담장이 가로막고 있어서 엿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북촌 한옥 마을 소경
북촌 한옥 마을 소경
북촌 한옥마을 소경
위에서 훔쳐보는 한옥은 그 공간의 깊이를 더해주는것 같습니다.
집은 그 시대를 담는 그릇이라고 했는데
이 땅에서 우리보다 먼저 사랑을 나누고
미움을 추스르던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그들의 삶을 채워냈는지 집은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북촌 한옥마을은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지만
지루하지 않게 보이는것은
아마도 변화가 많은 저 투박한 기와지붕의 율동감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북악을 닮은 기와지붕들이
북악산 자락에 터잡은 북촌 한옥마을
'집은 역사의 망원경이며
동시에 그 시대를 꼼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입니다.
가외동 이준구 가옥의 높다란 담장에는
담재이 풀이 무성했습니다.
누가 봐주거나 말거나
커다란 입술 벌리고 피었다가, 뚝
떨어지는 어여쁜
슬픔의 입술을 본다
그것도
비 오는 이른 아침
마디마디 또 일어서는
어리디 어린 슬픔의 누이들을 본다
-나태주,능소화
한옥의 창은 사람이 팔을 얹으면
팔무릎이 창틀에 얹어지는 높이가 바람이 잘 들어오고
거부감 없이 잘 만들어 놓은 집이라고 합니다.
연꽃 정원이 있는 집
삼청동 일대
비 내리는 북촌 한옥 마을
인사동
인사동 남도음식점 '여자만'
여자만은 순천만의 옛 이름이기도 합니다.
인사동 길
인사동 거리
인사동의 꽈배기 아이스크림 가게
종로2가에 위치한 국세청 건물
책 욕심이 많은 여자.
광화문 교보 문고
광화문 교보문고
너는 가슴을 따라 살고 있는가!
"남의 재능은 크게 보지만 자신의 재능은 초라하게 여긴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결례다."
(55쪽)
광화문 교보 문고
국가 안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할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서 특정 후보 낙선을 위해
직원들을 동원하여
인터넷에 조직적인 댓글을 달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황당한 사건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가히 '국민걱정원'이라 할만합니다.
수구 세력 5년 집권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현 정부 역시 또 얼마나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되돌려놓을 것인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출구를 찾아나갔던
당신의 백번째 네거리는 물바다였다
촛불은 쉽게 꺼졌고 당신은 흩어졌고 쫒겼다
핸드폰이 끊겼고 빗줄기는 굵어지는데
십만 백만의 흰 몸을 태우던
십만 백만의 작은 불씨들이 모여들던
거기 또다시 네거리에서
간다면 당신은 어디를 간단 말인가요?
-정끝별,<또다시 네거리에서>부분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엔
빛나는 열매를 보여준다 했지
우리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그날의 노래는 우리 귀에 아직 아련한데...
동물원의 노래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를
흥얼거리며 지하철 시청역에서 광화문 네거리
일산으로 가는 광역버스 1000번을 타러 걸어가면서
본 광화문의 밤하늘은 별도 달도 없는
회색빛이었습니다.
-끝.
-글,사진:윤선한.
첫댓글 다리가 좀 고생햇겟네요
산길이나 흙길이 아니라서 발바닥이 좀 아프더라구요^^
7.8번 사진이 좋아보이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멋지네요.. 그러고 보니 저도 안가본 곳이네요.. 식구랑 시간내서 함 가봐야 겠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북악산길 산책로까지 다녀오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삼청동길로 올라가서 삼청공원들렸다가 감사원에 들려 야단도 좀 치시고, 길상사에 들리시어 법정스님의 흔적도 얹으심 더욱 좋았을 것을요~~^*^
가회동 31번지 바로 윗길 33번지에 살았었네요.
고풍스런 곳에서 사셔서인지 남다른 예술적 감각을 지니신듯 합니다.
서울을 떠나 변방에 살아서 가끔씩 서울에 나가면 당췌 어디가 어딘지 잘 몰라서 헤매기 일쑤입니다.
겨울에 말씀하신 길로 나들이를 나서봐야 겠군요..감사원에 들러 야단치는건 제 전문이긴 합니다만^^ 이젠 낼 모레면 마흔이라 자중하려고 합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