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성(性)의 역사
고대 로마의 성

원래 유목민이었던 로마인들은 그리이스를 비롯한 주위의 문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로마와 그리스 문화는 많은 유사점이 있기는 하지만, 성 관념에 있어서는 차이가 많습니다. 로마인 역시 다양한 성적 활동을 즐겼으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성에 관한 여러 단어 중에는 로마인의 라틴어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자위 행위(masturbation), 매춘(prostitution), 구음(cunnilingus) 등이 있습니다.
로마에도 역시 매춘은 있었습니다. 그리이스와 달리, 매춘부는 대개 두 계층이 있었는데 하층은 현재의 매춘부와 같이 극장이나 경기장 주위에 기거하며 지나가는 남자들을 유혹했고, 고급 매춘부는 고급 주택가에 살면서 특정 부류의 남성들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고급 매춘부들은 그리이스의 매춘부에 비하면 지적인 면에서 훨씬 뒤졌으며, 그만큼 사회의 인식도 낮았습니다
로마 공화정 첫 1세기 동안에는 동성애적인 행동이 비교적 억제되었으나 로마가 점차 세력이 확장되어감에 따라 황제들이 동성애와 양성애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이스와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리이스에서의 동성애가 사회적, 지적인 직위나 위치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던 것에 비하면 로마에서는 동성애의 대상이 거의 남성노예들이었으며 그리이스인들이 갖고 있던 낭만적이며 철학적인 측면은 없었습니다.
이렇듯 로마인의 성적 행동은 다분히 자학적인 성향이 짙었으며 말년에 이르러서는 도덕적인 타락이 극심해졌습니다. 집단 동성애와 혼음이 곳곳에서 성행하였고, 매춘이 로마 최대의 사업이 되었으며 그 이유는 지배계층, 특히 정복자라는 비정상적인 성도덕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 성문화의 차이점

초기 로마 시대를 지나면서 로마 사회는 자작농에서 벗어나고 제2차 포에니 전쟁 후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즉, 로마가 많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노예의 수가 증가하였고, 초기에는 부가 많이 축적됨에 따라 춤, 음악, 시 등에서 많이 발전하였으나, 점차 세력이 확대됨에 따라, 정복지로부터의 노예, 재물 등을 축적함에 따라 사람들은 점차 방탕하고 나태한 생활 속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일 예로 로마 시대에는 목욕문화가 발달하여 대단히 화려한 목욕탕이 많았으며, 플라니우스 시대에는 남자는 거의 나체로, 여자는 짧은 앞치마 같은 목욕의상을 입고 남녀가 혼욕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목욕탕에서 만나기도 하였는데 목욕 시에는 사랑의 감정을 유발하기 위해 향수를 이용하였고, 불쾌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하여 온몸의 털을 제거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연고와 화장품을 이용하였으며, 피부와 머리카락을 다양한 색으로 물들이기도 하였습니다.
고대 로마의 법률인 로물루스 법에서 보면 전쟁과 정복을 위해서 남성의 힘이 많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로마의 남성들은 모든 아들과 첫딸만 양육할 수 있었으며 많은 여자아이를 계곡에 버렸다고 합니다. 이렇듯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위해서 남성만을 선택적으로 키웠으며, 교육 또한 남성에게만 우선권이 있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여성

로마의 여성들은 그리스의 여성에 비해서는 그래도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었지만, 이 시기에도 여자의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보잘것없었으며 결혼 전에는 아버지의 소유물, 결혼 후에는 남편의 소유물에 불과하였습니다.
로마의 법률인 로물루스 법에 따르면 로마의 남성들은 아들과 첫딸만 양육할 수 있었으며 많은 여자아이들은 계곡에 버려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초기 로마제국 여자의 숫자는 남자의 20% 정도에 불과하였습니다. 그 외에 신성한 신탁에 의해서 맺어진 아내는 모든 재산과 제례의식을 남편과 함께 소유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주부들은 남편과 동일한 식탁에서 식사가 가능하고 남편을 포함한 구성원들은 주부들을 마님이라는 뜻의 도미나(Domina)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을 떠난다는 것은 금지되었으며, 이에 반하여 남편은 아내의 간통과 자녀의 양육 문제를 이유로 아내와 헤어지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가 많은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노예의 수가 증가하였고, 부와 여러 가지 기회가 확대되어 짐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따라서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춤, 음악, 시 등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반면에 부도덕과 사치, 방탕한 삶에 물들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폼베이의 여러 벽화나 조각에서 보면 로마 여성들은 그리스의 여성에 비해 성문화에서는 적극적이었으며 여성이 적극적인 성행위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로마의 여자들은 차츰 제국이 강해져서 물질적인 풍요가 만연해져 남편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로마의 여자들이 추구한 것은 정신적·정치적인 자유보다도 물질적인 자유의 추구에 탐닉하여 엄청난 값의 사치품, 중국의 비단, 아프리카의 상아와 금 등을 구하게 되면서 로마 경제는 차츰 침몰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