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질병, 약해짐 속에서 ‘인간’을 다시 질문한다
조한진희(‘다른몸들’ 활동가), 백소영(『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저자), 최의헌(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추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아버지와 저자인 딸의 동행기. 이 동행에서 “아버지도 살고 나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해석학’이다. “‘어떻게 삶을 해석해 낼 수 있느냐’가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돌봄의 방식과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질문한다. ‘아버지는 왜 정처 없이 밖을 배회하는가’ ‘대소변 실금에 대한 혐오는 정당한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지배 질서는 무엇인가.’ 이는 결국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는 철학·신학·사회학을 경유해 ‘인간’을 다시 질문하는 “생존의 해석학”적 작업이다. 지난한 일상에 두 발을 딛고 철학적 사유를 펼치는 몸짓이다. 그 치열하고도 유쾌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책 속으로
인지와 신체 능력이 서너 살 수준으로 퇴행한 아버지는 깨어 있는 동안 남들 보기에 한없이 가엽고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나는 ‘오로지 시간을 견뎌 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겸허한 삶의 단계가 인간에게 존재한다는 진리를 아버지가 내게 온몸으로 가르쳐 주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성취한 빛나는 것들보다, 나는 병든 아버지가 죽기까지 버텨내며 증거하는 삶의 진리를 더 오래 기억하며 내 삶을 버텨 내는 힘을 얻을 것이다.
신학은 그리스도인들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다. 삶의 해석학으로서의 신학은, 세례를 받고 기독교 교리를 받아들이며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신학의 언어 핵심에는 경쟁이 최우선의 논리로 작동하는 세상에서 아등바등 생존하기 위해 타자의 취약함을 쉽게 외면하던 우리의 삶이 정말로 정당한 것인지 따져 묻는 ‘보편적 질문’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이 글은 치매 환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호소문이 아니다. 이 글은 치매 환자가 된 아버지와 하루하루 더불어 살기 위해 애쓰는 내 마음에서 쉬지 않고 발생하는 갈등과 폭력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삶 그 자체에 대한 경외감으로 아버지와 가족을 다시 이해하고자 하는 생존의 해석학이다. 좌절과 희망이 무한대의 변증법처럼 교차하는 삶의 순간순간, 이 해석학을 통해 나는 아버지의 질병을 이해하고 나의 부족함을 견뎌 보고자 한다. --- 「1장」 중에서
이제껏 우리는 치매 환자의 사회적 삶에 내려진 사망 선고에 너무 쉽게 순응하며, 치매 환자를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존재로 취급해 왔다. 그렇게 그를 수치스러워하며 집안의 사적 존재로 숨겨 왔다. 그러나 인간은 죽는 날까지 사회 밖에서 존재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인간은 단 한 순간도 ‘사회적 존재’가 아닌 적이 없다. 동시에, 인간이 하나의 사회 안에만 고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일도 없다. --- 「5장」 중에서
나이가 드는 일, 그래서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일은 어느 사람도 피할 수 없다. 폴 리쾨르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서로를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의무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진심에 달려 있다. --- 「6장」 중에서
변화 가능성과 취약성, 그리고 상호 관계성에서 다시 쓰는 현대 신학의 존재론과 신론 위에서 치매 환자의 존재는 더 이상 저주받거나 열등한 존재로 해석될 수 없다. 그는 ‘죽음만을 남겨 둔 절망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존재’로서 날마다 취약하게 변해 가는 그의 몸과 정신이 그에게는 의존 속에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을 주고, 타인에게는 돌봄을 제공하며 의존할 수 있는 축복을 준다. 그렇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버지도 나의 손을 잡고 무섭지 않았지만, 나도 아버지의 손을 잡아 세상에 우쭐대지 않을 수 있었다. --- 「7장」 중에서 추천평 가족 내 돌봄 노동은 늘 우리 곁에 있었던, 가장 친밀한(때로는 ‘폭력적’인) 일상의 상호 작용이었다. 다만, 돌보는 역할을 주로 담당해 온 여성들이 일차적 경험을 공적으로 발화할 수 있는 시각과 언어와 힘을 가지게 되면서, 돌봄에 대한 사유가 사적 공간과 관계망을 넘어 공론화될 수 있었다. ‘기억을 잃어 가는 아버지’와 동행하는 일상을 담아낸 이 책은, 저자가 가진 철학과 신학, 윤리학적 성찰과 성서적 묵상의 지적 사유를 넘나들며, 우리의 삶이 결국은 ‘기억’을 서로에게 전해 주고 전해 받는 ‘선물’과도 같다고 말한다. ‘한참 늦게 찾아오는 기억’도, ‘빨리 사라지는 기억’도 공동체 안에서 기쁨으로 기억하는 존재가 기꺼이 확인해 주는 한 그 어떤 연약함 속에서도 삶은(그리고 죽음도) 긍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위로한다. - 백소영 (강남대학교 기독교사회윤리학 교수,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저자)
친밀함과 사랑이 전제된 관계에서 기꺼이 선택한 돌봄이지만, 우리는 한 번씩 돌보는 이에게 큰소리나 한숨을 쏟게 되고 이내 자책하며 괴로워한다. 돌봄의 과정은 크고 작은 보람과 고통의 웅덩이가 끊임없이 차오르는 일인데, 저자는 그 웅덩이에 흠뻑 빠지면서도 기어이 거리를 두고 질문한다. 돌봄받는 자의 취약함과 돌보는 자의 취약함을 연결하면서 의존과 독립, 인지저하증(치매)이라는 질병의 의미를 재해석해 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돌봄을 통해 우리 삶을 재해석하는 길에 이르게 된다. 페미니스트이자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감정과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써 내려간 “생존의 해석학”은 우리 사회 돌봄의 세계를 확장시킨다. 우리가 끝내 도달해야 할 돌봄 중심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돌봄 과정에서 파생되는 내면의 복잡한 감정과 기존 세계의 한계를 집요하게 해석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바로 이런 책이 필요하다. - 조한진희 (‘다른몸들’ 활동가,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 치매를 진료할 수는 있으나, 거기까지다. 전문 지식은 늘 실제 경험과 괴리가 있고, 경험보다 꼭 나은 것도 아니다.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에는 그 ‘경험’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사유가 담겨 있다. 치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렇게 깊게 인문학적으로 사유해야 할까? 물론이다. 치매 당사자나 가족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긍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지난한 일상 가운데 ‘너’와 ‘나’를 지켜 주는 중심은 무엇인가? 이 책은 이 절박한 질문에 응답한다. - 최의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청어람 ARMC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