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인들이 담아낸 조선의 일상과 전쟁… 우리 눈에도 낯선 그때 그 모습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성벽 위에도, 아래에도 빼곡하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평양에 입성하는 일본군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다. 갓을 쓴 남자와 아이를 둘러업은 아낙이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의주에서 벌어진 러시아와 일본의 전투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미국과 영국의 잡지에서 러일전쟁 당시 조선인들을 묘사한 사진 자료들이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평양에 입성하는 일본군을 구경하는 사람들.
일본과 러시아가 벌인 싸움이지만, 러일전쟁의 전쟁터는 조선 땅이었다. 러시아와 일본의 충돌이 시작되자 조선은 1904년 1월 21일 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2월 9일 서울에 진주했고, 조선 정부를 강압해 한일의정서를 체결했다. 조선 땅에서는 일본군이 제 땅인 양 쏘다니며 전쟁 수행에 나섰다. 외국 잡지와 신문에 소개된 러일전쟁 중의 조선인은 철저하게 구경꾼이었다.
이 책은 홍순민 명지대 교수팀이 2005년 9월부터 2년간 근대 전기 서양인들이 만든 한국에 대한 이미지 자료를 정리하고, 분석한 자료집이다. 명지대 LG-연암문고와 프랑스 국립기메박물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영국 런던대 등이 소장한 한국 관련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삽화 등을 모아 서울 풍광과 조선인의 일상 그리고 전쟁 편으로 각각 묶었다. 책에 수록된 이미지 자료만 1800여 컷이다.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사진도 있지만, "어, 이런 것도 있었나?" 싶을 만큼 낯선 장면도 수두룩하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한국 여성의 누드 사진도 그중 하나다. 의자에 걸터앉아 수건으로 하반신을 가린 채 비스듬히 시선을 향한 여인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가슴을 훤히 드러낸 채, 사진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응시하는 여성들의 사진은 구한말 널리 유포됐다. 짧은 저고리와 치마 사이로 훤히 노출된 젖가슴은 서양인들에겐 꽤 이채로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일본에서 게이샤를 모델로 제작한 사진이 유통됐듯이 가슴을 노출한 모습은 조선 여인을 대표하는 상품 사진으로 알려진 모양이다. 프랑스·영국·독일·미국 등 서구에서 출판된 책에 이런 사진들이 실려 있다.
서구에 조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사진을 만든 이들은 선교사와 외교관·기자· 여행가·지리학자·상인들이었다. 그들이 기록한 시각 자료 덕분에 100년 전 우리들의 일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은 수확이다. 그러나 사진 속의 조선과 조선인들이 남루하고 미개하다는 느낌을 줘서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서양인들이 함께 등장하는 사진에선 문명과 야만, 근대와 전근대의 대비가 더욱 뚜렷하다. 사진 속 인물과 풍경은 분명 우리 것인데, 타자(他者)처럼 낯설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렌즈 뒤에 가려진 서구인들의 시각 때문일까, 아니면 철저하게 서구화돼 버린 현재 우리의 시각 때문일까. /김기철 2009.10.31

1902년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해 광화문사거리에 세운 칭경기념비전 주변. 장작을 진 소 2마리와 아이들로 보아 이 근처에 장작시장이 섰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