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집을 떠나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코로나로 움추렸던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자유를 누리는 것 같이 기분이 좋은 것은 나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고속도로가 밀려서 생각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려 1시10분 경에 청풍호 나루에 도착을 하여 1시30분에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고 가면서 옥이 준순처럼 멋지게 솟은 옥순봉과 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답다는 금수산을 바라보면서 25분을 운행하여 목적지에 도착하여 선실에서 20분 정도 쉬었다가 다시 돌아오니 오후 시간에 별다른 계획이 없어 시간 절약을 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어 다음 날 가려고 했던 의림지로 차를 몰았다. 조용한 분위기에 수상 놀이기구는 묶여 있고 주변에 거니는 사람들만 조금 보일 뿐이다. 연못 둘레에 조성된 아름드리 소나무가 세월의 깊이를 말하는 것 같다.
둘레 길을 따라 걷다가 의자에 앉아서 잠시 몸과 마음을 식히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뇌어 보니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우던 그 의림지 생각이 나고 지금 내 발로 걸으며 눈으로 감상을 하게 되니 격세지감이 들었다.
의림지는 삼한시대 즉 신라 진흥와 때 우륵이 쌓았다는 설과 조선시대 현감 박의림이 조성했다는 설이 있지만 지명 분석에 근거하여 삼한시대 축조설이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세종신록에 의하면 정인지에 의해 두 차례 수리한 기록이 있고 1914~18년 대대적으로 수축을 하였으며 1972년 장마로 둑이 무너진 것을 이듬해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가 1000년이 넘은 것 같은데 그 시절에 어떻게 이런 크고 멋진 저수지를 지어서 농사에 사용할 것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는지? 선조들의 지혜와 실천력에 놀랍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충주호는 1985년 만들어진 인공호수로 충주 계명산 아래에 건설된 충주댐에서 시작하여 제천시와 멀리 단양군 도담삼봉까지 이르는 총67,5 제곱km의 광활한 호수로, 한편 청풍호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제천시에는 댐을 건설할 때 제천시 지역이 제일 많이 수몰이 되었으니 청풍면의 이름을 따서 청풍호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하고 충주시에서는 충주댐의 호수이니 충주호라고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 자기들에게 유리한 이름을 내세우면서 제천은 청풍호로, 충주에서는 충주호, 탄금대 일원을 탄금호, 단양군 지역은 단양호로 부르는 것이 현실화 되고 있다고 한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댐이다 보니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데도 집단 이기심이 발동하며 수십 년이 된 지금도 각자가 주장하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숙박시설과 관광지가 청풍면을 중심으로 유람선과 케이블카 그리고 모노레일까지 운행하고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다 보니 일반적으로는 청풍호로 많이 불려지고 있는 것 같다.
수년 전에 처음으로 청풍호를 끼고 있는 비봉산 모노레일을 타고 산 정상에 올라가니 시설은 아무것도 없고 모노레일 운영하는 시설 정도에 행글라이드 활공장이 있어서 사방이 확 트인 정상에서 단체로 두 팔을 벌리고 비행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사진을 찍은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케일블카도 운행을 하며 정상에는 엄청난 건물을 지어서 편이점과 까페, 전망대에 제법 여러 시설에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오는 길에 밑에서 보니 산 정상을 향하여 거의 직각으로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모습에 아찔한 느낌이 들었고, 모노레일도 45도의 급경사를 타고 올라가는데 몸이 반드시 누운 상태가 되어 은근히 겁이 날 정도다. 25분 걸려서 531m의 비봉산 정상에 도착하니 케이블카를 타고 온 사람들도 같은 곳에서 내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장관이다. 군데군데 섬처럼 작은 동산이 물 위에 떠 있고 물길로 생겨난 하얀 속살이 그대로 보이는 것이 댐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가를 가름할 수가 있고 물길을 따라 형성된 꼬불꼬불한 선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고 산자락을 끼고 옹기종기 자리 잡은 마을과 집들이 너무나 정겨운 모습이 마음을 포근하게 품어 주는 것 같고 멀리 충청권의 대표적인 월악산 정상이 보무도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 손에 잡힐 것 같아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청풍호 상공에서 날개를 펴고 싶다.
청풍호
파란 하늘 아래
산이 푸른 옷을 입으니
덩달아 호수가 따르고
푸른 바람이 온몸을 감싸니
그 속에 나도 푸르다
내가 만약 이상(李箱)이라면
날개짓 한 번에 삼천리를 나는
대붕처럼 훨~ 훨~
푸른 호수 위로
멀리멀리 날으리
가게에서 안식구와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서 먹으려고 하는데 모노레일을 같이 타고 올라온 노부부가 자기들이 앉은 자리에 앉으라고 하여 잠시 합석을 하여 이야기를 하는 중에 평택에서 왔고 나보다 한살이 많은 해방둥이라는 것과 같은 국어 교사로 퇴직을 했다고 하여 한결 친근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오니 올라갈 때보다는 한결 편안하고 마음이 놓였다.
내려오니 벌써 점심시간이 되어 무엇을 먹을까 하고 망설이다가 맛집 검색한 메모를 보니 가까운 곳에 제일 이름난 곳이 어제 저녁을 먹었던 황금 떡갈비 식당이 마음을 끄는 것 같아서 티맵으로 찾아가니 산꼭대기에서 같이 앉아서 이야기하던 노부부도 먼저 와서 식사를 하고 있고 생각보다는 제법 많은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버섯전골을 시켰더니 느타리버섯, 석이버섯, 백석이버섯, 표고버섯에 쇠고기, 당면, 파 등 각종 재료가 얼마나 푸짐한지 보기만 해도 구미가 당기는데 국물맛이 아주 시원하여 만족스럽게 점심을 먹고 남은 것이 더 많아서 포장해 가지고 왔다.
숙소는 ES제천 리조트라고 하는 곳으로 유람선을 타고 가다 보면 숲속에 그림 같은 집들이 보이고 제천에서는 유명한 리조트로, 그 전에 유람선을 탔을 때는 부러운 마음으로 쳐다보았던 바로 그곳이다. 그런데 이번에 아들 친구 이름으로 예약을 하고 조금 늦은 시간인 5시30분 경에 체크인을 하니 639호실을 배정해 주었다. 꼬불꼬불한 산길에 처음에는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서 어렵게 찾아가니 비탈길에 돌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 원시적인 느낌이 드는 곳으로 2층으로 된 숙소를 찾아 들어가니 20평짜리라고 하는데 실내가 너무 넓고 시원하며 숲속의 조용한 분위기도 좋고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청풍호의 정경이 탁 트인 시야에 눈도 마음도 아주 시원하고 미세먼지도 좋은 날, 비가 온다는 예보와는 다르게 화창한 날씨가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아들은 집에서 볼일을 보고 오후에 출발하여 6시30분 경에 도착한다고 하여 잠시 쉬면서 기다리는 중에 베란다에서 숲속을 내려보니 큰 소나무 옆에 고라니 엉덩이가 보이는데 꼼짝을 안 하여 혹시 장식으로 박제를 해 놓았나 하고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조금씩 움직이더니 드디어 얼굴이 보이고 간간이 풀을 뜯어 먹으면서 본능적으로 숨어서 조용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미와 독립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고 아직은 숲속 생활이 익숙하지 않아서 매사에 조심스러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린 녀석이 깊은 숲속에서 깜깜한 밤은 어떻게 보낼까? 혼자 생활하니 외롭지 않을까 하는 잠시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7시가 거의 다 되어 아들이 도착하여 휴대폰 충전을 하고 황금떡갈비 식당에서 떡갈비와 돌솥밥을 시켜서 늦은 저녁을 맛있게 먹고 모처럼 객지에서 아들을 만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같이 식사를 하니 새로운 마음이 들고 친근감이 더하여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숙소로 와서 아들은 바로 충주 근무지로 가고 우리는 조용한 숲속 리조트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어두운 밤길에 꼬불꼬불한 호수길을 몇 번 다니다 보니 상당히 조심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속도를 낼 수도 없는 도론데 젊은이들은 그런 길에서도 싱싱 잘 달리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한데 아들이 밤길에 돌아가게 되어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숙소에 도착하면 바로 문자를 하겠다는 약속대로 꼭 한 시간 정도 지나니까 무사히 도착했다는 카톡이 와서 마음이 놓였다.
저녁이 되니 실내에서도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 문을 닫고 티브이를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다가 보니 이불이 두껍고 더워서 잠이 깨어 볼일을 보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여행 때마다 같은 상황을 맞이하며 느끼는 것이 이불이 두껍고 조명등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으며 이번 숙소는 넓고 조용하며 전망과 분위기는 좋은데 오래된 시설에 보수를 하지 않아서 낡은 느낌이 들었고 화장실 문은 무거운데다가 크게 삐걱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옛날 시골 대문이나 정지문 같고 배란다 바닥도 벗겨지고 깨진 것이 리조트의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은 준비해 간 것으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여유롭게 9시50분에 체크아웃을 하고 모노레일 출발지로 가니 15분 전이라 조금 기다렸다가 예정대로 10시40분에 출발하였다. 그런데 내려와서 보니 다른 데는 사설 기관이라 경로 우대가 안 된다고 했는데 모노레일은 경로우대 3000원 할인이 되는 게 아닌가? 예약할 때 미리 해야지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하여 두 사람 합쳐 6,000원을 손해 봤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지난 것을 어쩌랴!
유람선도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 3,000원을 할인해 주는데 혹시나 제시간에 맞춰 가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의구심에 직접 가서 표를 사다 보니 두 사람에 6,000원 손해를 봤으니 합쳐서 12,000원이나 눈 뜨고 손해를 본 것이다.
일전에 노인들이 전자기기를 잘못 다루는 것으로 하여 손해를 본다는 기사를 봤는데 바로 내가 그 주인공이 된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제천 하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생원과 물레방앗간에서 딱 한 번 인연을 맺어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가 동이다. 허생원과 동이의 대화 중에 동이 엄마가 제천댁이라고 하던 생각이 나는 것 외에는 별로 인연이나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여행을 하면서 청풍호 길을 몇 번을 왕래하고 청풍대교도 7~8번 정도 왕래하며 시내를 오가다 보니 아직도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고 비교적 깨끗하게 잘 정비된 거리와 자연경관을 보고 안식구가 제천이 좋아졌다고 하여 나도 제천에 대한 친근감이 생기고 기분 좋게 여행을 할 수 있었고 덤으로 큰 수확을 올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