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안산으로 이사온지 10여년이 됩니다
서울살때부터 꼭 빠지지 않고 찾아가는 곳이 있습니다 헌책방입니다
그중 특별히 가톨릭 서적을 파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김승훈 마티아 신부님이 하늘나로로 가셨습니다 그분이 가시기전에
기억이 남을 만한 가난한 동네인 시흥동성당에 많은 책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저는 그중 몇권을 골라서 왔습니다 영어로 된 사전이며 그 책안에 신부님의 흔적과 향내를 느낍니다
제가 주로가는 서점은 지금은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서울역에서 남양동으로 내려오다가
보면 헌책방이 주루룩잇지요 점차 헌책방이 들어들어갔지요
지금은 안양 주앙성당근처에 있는 2001아울렛 뒷골목의 헌책방에서 구입합니다
거기 가는 이유는 물론 책값이 싸기 때문이기도 하고
절판되거나 서점에서 볼수없는 귀한 책들을 구할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보면 거의 새책이나 다름없습니다
때로는 저자의 친필싸인이 들었거나 아니면 견진등 단채로 성당에서 무료로 나누워준 책들입니다
그러면 저는 무조건 사옵니다 집에 그책이 있다고 해도 사옵니다
왜냐하면 다른사람들에게 선물로 줄수가 있기 떄문입니다
요즈음에 구입한 책이 있습니다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 부산교구에서의 미국신부님 이야기입니다
연도는 정확히 잘 모르지만
1962년서 부터 1973년 사이에 부교교구장이신 최재선요한 주교님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그무렵인것 같습니다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행적입니다
병이 나서 고향인 미국으로 건너가서 원조를 청할때에도
비행기요금 500달러가 없어서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는 화물선을 얻어타고가셨다고 하십니다
미국전역을 주교님과 따로 돌면서 원조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어느때는 같이 지내기도하셨던 모양입니다
외국이라고 간적이 없었던 주교님이 식비 1달러 20센트에다가 팁 20센트를 내는 신부님을
보시고 깜짝 놀라서 우리노동자 하루 품싟인데 하시면서 다음부터 나올때에 집에서 샌드위치를
준비해오시고 산길에서 차를 세우고 점심을 드십니다
발에 맞지 않는 신발도 메리놀수녀님이 주신것이라고 해서 그냥 신으시고 이발도 미국보다는
유럽이 싸다고 하시면서 미루신 주교님이 등장하십니다
주교님은 유럽을 가시게됩니다 그곳에서도 원조를 받기위해서이지요
짐을 부치는데 짐무게가 12파운드가 더나간다고 24달러의 청구서를 보고 가방안에 있는 옷을 꺼집어내어서
몇벌을 곁입고 이를 대신하셨다고 합니다
그돈이면 한국에서는 한달치 봉급이었다고 합니다
주교님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생각해 내셨다
그래서 만든것이 우편모금과 손수건사업이였다
우편모금은 학생들을 채용해서 우편물에다 주소를 적고 불을 붙이는 일들을 학생들을 시켜서 하고
2천여명의 부녀자들을 통해 손수건을 만들어 파셨다
손수건 사업은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살아갈수 있게 한 좋은 일거리였다
바늘과 실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할수가 있었다
주교님의 특히 가난한 어린이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전에 어떤 외국인이 시내를 돌면서 '부산에는 높은 아파트가 많지요...'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그다음날 낮에 그곳을 지나가보니 산언덕을 올라가면 촘촘히 판자촌이었든것을 알게됩니다
요즈음 음식프로그램을 자주 보게된다
어느 음식프로그램을 보는데 대부분의 음긱점이 값싼 음식을 만들려고 그러는지 온통 첨가료를
많이 넣는 경향이 있다 돈벌이가 좋지않는 사람들이 먹는 것이지만 건강에는 상당히 좋지않다
이것은 정작 값싸고 싱싱한 우리농산물의 판로를 막게된다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으로 우리의 마음은 점차로 급해져가고 우리는 점점 어렵게되어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옛날의 경제학자의 생각이 난다
대형 프렌차이즈음시점은 결과적으로 몇몇 대형자본자의 부만 늘여줄뿐 가난한들을 돌보지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위해서 식자재나 대형 프렌차이즈처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엇인가를 공급해줄수있는 조합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빵이나 쿠키를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그가게는 그의 기술을 그동네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누워주어서 이를 납품하게하여서
가정식수제품을 만들어 팔앗다고 합니다
미국가정은 빵이 주식이기 때문에 집에는 장작 전기등 여러가지방식의 오븐기가 있기
때문인것이다 그들을 위한 일꺼리를 준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가내수공업이 발달해서 서로가 돕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맘입니다
지금은 어떤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지만
제가 10여년전에 실직상태에 있을때 도서관자료를 찾다가 보게된것입니다
광명시에서나 아니면 남쪽지방에서 품앗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문용어로는 지방화폐입니다
일종의 물물교환이라고볼수가 있습니다
어떤집에 그녀의 자녀를 위해서 아이를 지도하러오시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그아저씨에게 몇시간 교육을 받은 학생의 어머니는 그 아이를 위해서 얼마만큼의 숫자가 든 종이를 써줍니다
그 종이를 갖고 가까운 시장에 가서 필요로하는 식료품을 그 종이로 구입합니다
그식료품아주머니는 텃밭에서 일하는 품삯으로 그 종이를 지불합니다
종이가 매개체이지만 결국은 품으로 교환하는 일이지요
남쪽지방은 5일장의 풍속도입니다
어느집에서 열심히 황토흙으로 염색하는 아저씨가 그 옷감을 들고 근처
재래시장을 기웃거립니다 그리고 필요한 물건과 그 옷감을 교환하게 됩니다
그 옷감을 받은 아줌마는 그근처 옷가게 가셔서 다른 필요한 옷과 바꾸어온다는 것입니다
재래시장을 오고가는 곳에서 어떤 이상한 아주머니가
마치 커피를 팔듯이 점심식사를 파는 곳이 있습니다 잘 팔리지는 않지만 자릴르 뜰수가 없는
대부분의 아줌마는 점심을 거르기가 일쑤이지만 그곳 장날은 이시간이 즐겁기만 합니다
커피판매대와 같은 리어커에 여러가지 야채며 밥을 잔뜩 싣고 다니면서 그데들의 점심을 해결합니다
식사는 비빔밥형태로 약간의 국이 곁들여져있고 운이 좋으면 반찬도 제공되지만
이들의 재료들은 팔다 남은 식자재로 이루어졌기에 때로는 이런 식자재로 식비를 대신하기에
서로 즐겁기만 하는 식단입니다
저는 이런일로 재래시장에 장아찌를 파는 아줌마를 보게됩니다
대구에 있는 칠성시장은 꽤 큰 재래시장이지만 그곳에서 대구역으로 오는 길안쪽에는
또다른 풍경의 시장이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건강하실때에 몇절준비를 위해서 이장을 보셨지요
여러가지를 팔지만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장아찌입니다
특히 무우장아찌는 그 생산하는 공정이 복잡해서요 하지만 재료비에 비해서 판매가가 크지만
오랫동안 두고 먹을수가 있는 안전한 식품이기에 그러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돕는
우리가 팔고사고하는 것도 이제는 자본가들에게 의해 점령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