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산골에서 통나무집 짓고 사는 동서네 댁은 사방 2km이상이 인가도 없는 조용한 숲속이라서 10여마리의 토종닭을 풀어 놓고 키우고 있었다. 허지만 저녂 때가 되면 어김없이 닭들을 닭장안으로 몰아 넣어 버렸다. 안 그러면 산 속의 오소리, 너구리, 들고양이의 밥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낮이라고 멍청한 닭들이 집근처만 안전하게 맴돌며 지낼 것 같지 않아서 걱정삼아 “저렇게 다 놔 주면 도망병이나 탈주범도 있겠네”했더니- 천만의 말씀이란다. 우두머리 수탉이 어련히 잘 통제를 해서 별 신경을 안 쓴단다. 즉 이 닭들의 세계는 [우두머리수탉] 한 마리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통치되는 일인 독재국가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닭들은 항상 보기에도 즐겁고 활기차게 꼬꼬댁거리며 잘들 지내고 있었다.
그때부터 슬슬 이 닭들의 세계가 궁금해져서 그들의 삶을 유심히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닭들 중에서 수탉은 보통 -무리숫자에 따라 다르지만-최저 2~3마리정도다. 고기가 목적이 아니라 대부분 계란이 목적이므로 숫놈은 유정란을 위해 그리고 고기도 먹고자 하는 경우 암놈대신 잡기 위해서다. 그 수탉들이 처음 무리를 이루면 제일 먼저 치루는 요식행사가 서열결정 시합이다. 이 피 흘리는 치열한 투쟁에서 이긴 최종 승자가 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리고 패배한 나머지 수탉들의 신세는 그 때부터 암탉들과 같이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하는 피지배 백성의 일원으로 추락하게 된다. 사실 그들의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도 좀 처량하고 비루하게 보인다. 항상 [우두머리]의 눈치를 보며 눈에 가급적 띄지 않는 곳으로 슬금슬금 피해 다니는 꼴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다가도 기회만 생기면 잽싸게 좀 멀리서 어정거리는 미욱한 암놈을 슬쩍 채 가서는 순식간에 볼일(?)을 마치는 묘기를 보여 주기도 한다. 물론 그때 걸리면 [우두머리]로부터 처절한 응징을 당하게 되고 졸지에 당한 암놈까지 혼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좀 치사하게 살아가는 이 수탉들마저 그 숫자가 몇이 되든 또 자기들끼리 서열을 정한다고 코피터지는 싸움을 벌린다. 무슨 부귀,영화볼일이 있다고 그 짓거리하는건지 한심하지만 이것이 바로 숫컷들의 가련하고 슬픈 숙명인 것 같았다.
수탉의 세계에 비하면 암탉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평화와 사랑의 세계였다. 수시로 알을 낳으면 꼬꼬댁거리며 [나,한껀 했다구]하며 동네방네 나팔을 불어 대고, 알을 품기 시작하면 마치 기도하는 천사같고 참선하는 고승같이 엄숙하고 철저하게 제 자리를 지키며 물도,먹이도 사양하고 끝까지 임무를 완수한다. 자기들끼리는 무에 그리 좋은 일이 많은지 항상 이리저리 몰려 다니며 낄낄대고 장난치며 즐겁게들 산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우두머리]가 그야 말로 절대군주라서 그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새끼요, 매앞에 꿩새끼가 되고 만다. 그러다가도 다른 별 볼일 없는 수탉한테는 보란 듯이 팅팅거리며 콧대를 세우는 모습이 귀엽기도하고 우습기도하다. 이 숲속의 집에 사는 닭들의 삶은 그야말로 지상천국에 사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닭들의 보편적인 생태야 아시다시피 대단위주택단지나 대규모공장식 주거상태에서 알을 낳게 하거나 살을 찌게 하도록 특별히 고안 된 장치에 온 몸을 완전히 붙들어 매다시피하여 강제사육시키는 형태인 것이다. 따라서 이 닭들이 보여 주는 생태도 이렇한 특수한 조건이 만들어 주는 특별한 모습의 일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암탉들이 항상 되풀이하는 가장 한심한 시행착오는 도무지 국경(?)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두머리의 일상적이며 중차대한 업무도 암탉들의 경계이탈을 통제하는 것이다. 먹이를 따라 이곳저곳 쏘다니는 암탉들은 지겹도록 늘상 넘어 서는 안 되는 바로 그 경계선을
꼭 누구 약올리려는 듯이 넘나들곤 하며 그때마다 우두머리는 불난 호떡집 주인같이 쏜살같이 현장에 나타나서 암탉을 부리로 쪼아 대며 안전지대로 몰아 내 버린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서 저 [우두머리]수탉은- 그놈이나 암탉이나 계란에서 나온 건 마찬가진데-
이 통나무집의 안전경계 지역을 파악하고 터득해서 그리도 자신만만하게 암탉을 몰아 대느냐 하는 대목인데-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어쩌다 닭장안에서 좀 늦게 먹이를 주면 암탉들이 일제히 달려 들어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 되는데 그때면 우두머리가 재빨리 먹이통위에 떡하니 서서 대가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겁을 주면 대체로 분위가 잡히곤 했다. 우두머리 수탉이보여 주는 가장 카리스마넘치는 멋진 모습이 몇가지 있다. 일부러 한 암탉을 골라서 먹이를 주면서 슬슬 유인하여 붙잡으려고 하자 어느 틈에 나타나서는 내 앞쪽으로 대가리를 디밀며 막아 서서는 암탉을 제 등 뒤로 숨도록 하기에 이번에는 발로 그 놈을 차는 듯하면서 잽싸게 그 뒤에 숨은 암놈에게 손을 대려 하자 놀랍게도 이 우두머리 수탉은 푸드득 뛰어 오르며 그 암탉 위로 덮치듯이 하며 내 앞을 막아 서는 것이었다. 나도 막상 주춤했다. 사실 나야 꼭 잡아서 몸보신 할 목적이 아니라서 그 쯤으로 끝내는 것이지만 어쨋건 그 놈이 보여준 용감한 행동은 꼭내게 이렇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어이! 이 인간아! 내 여자 손댈 생각일랑 아예 하지를 말라구!
다친다구] 가당치도 않게 덤비는 꼴이 우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참으로 당차고 대견스럽구나 하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쩌나 보려고 그 놈 앞에만 먹이를 좀 넉넉히 주고 다른 암놈들은 막대기로 다른 쪽으로 물러 가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그 놈은 처음에는 혼자서 그 먹이를 몇번 쪼아 먹더니 곧 구구구구하고 암탉들을 불러 댔다. 나도 일부러 막지는 않았더니 암탉들은 신나게 뛰어 오더니 눈치코치 볼 것없이 자기들 것인양 그 먹이를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이 숨 쉴 새 없이 먹어 댄다. 그 광경을 지긋이 보니 이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우두머리 수탉은 평소에 하늘에서 따로 영양 공급을 받고 있는 선택된 은총의 존재인양 천천히 한두알씩 먹이를 먹는 것이다. 나는 잠시 약간 충격을 느끼며 그 진기한 풍경을 감상했었다. 동물이라는 것이 제 아무리 잘 나 봤자 본능으로 사는 존재이고 그 가장 기본적 본능이야 먹는 것과 짝짓기일 것인데 이 수탉이 보이는 행태가 그런 면에서 보면 어떤 비동물적인 모습- 즉 희생(?)과 헌신과 유사한 행위같아서 가슴이 훈훈해 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영화 제목이 생각났다-[수탉같은 사나이]
1960년대중반에 당시 영화계를 주름 잡던 신성일씨 주연의 [수탉같은 사나이]라는 영화는 실은 이 글에서 보여 주는 그 수탉의 모습과는 좀 달라서 오히려 [의리의 사나이 돌쇠]같은 그런 인간상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나이라는 말은 그당시ㅡ그래도 야성이라는 것에 대한 존경심이 남아 있던-에는 그런대로 쓸모있던 단어였지만 지금은 아마 용도 폐기된 것 같다. 지금 사나이 어쩌구하면 저게 어느 구석기시대 돌도끼 들고 다니는 유인원일까 하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대신 [사내]라는 말은 [사내구실이나 제대루 한다든?]하는 용도로 아직은 살아 있는 것 같다. 우리들-남성제위-께서는 [사나이로 태여 나서 할 일도 많다만]하고 목이 터져라 불러야 했던 그 군가를 잘 잊지 못하실 것이지만 그것도 이제는 그 시절의 특수지역 민속가요정도로 잊혀 져야 할 것 같다. [사나이]야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 해도 그 [우두머리 수탉]의 영상은 그래도 마음속에 진하게 남겨진다. 동물세계의 숫컷으로써 그리고 그 집단의 지도자로써의 그 확고한 의지와 책임감이 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한 인간에게도 뭔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꼬-끼-요!”
신 새벽 어둠을 뚫고 힘찬 하루를 여는 호각소리가 고요한 숲속을 뒤 흔든다. 드디어 [우두머리 수탉]께서 하루의 시작을 선포하신 것이다. 어둠의 적막은 깜짝 놀라 떠날 채비를 하고, 저 산 너머에서는 이글거리며 떠 오르는 빛나는 아침해가 내 곧 갈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희끄무레한 구름에다가 불그스레한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준다. 수탉은 구소련시대 크래믈린궁전 순찰대의 발걸음같은 큼직하고 힘찬 보폭으로 뚜벅뚜벅 닭장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그의 바쁜 하루도 방금 또 시작되었다. -끝-
첫댓글 자세히 관찰하셨네요. 동물의 세계야 말로 자연법의 세계인 것 같아요.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데, 복잡한 인간은 도덕을 만들고 도덕을 기반으로 평등을 펴나가려 하죠.
저는 가끔 복잡한 인간의 법보다는 자연의 법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하면 안되겠죠. 왜 냐면 도덕 때문이 아니라 기득권을 세습하려 하기 때문이지요.
강자와 우월한자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습받은 자가 강하지도 우월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 하겠지요.
기득권을 세습하지 않는 동물 사회가 참 순수합니다.
기득권을 독과점화, 제도화, 세습화해온 인류역사를 끊임없이 개혁,혁신,혁명을 통해 자율,복지,균형의 길로 이끌어 온 것이 선진과 발전과 진보의 참 모습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찿아 주시고 각별한 관심을 보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가볍게 읽어내려온 글에 보리수님과 야생초님의 댓글을 보고 머리가 어질어질~ @_@ 옳고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저처럼 단순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는 역시 단순하게 생각하는게 편한가 보네요.. ^^ 잘 읽고 갑니다..
요즘 한국남성들의 위상이나 실상이 그전과는 달라진 것은 사실이고....암탉들을 거느리고 위세좋게 돌아다니는 수탉의 모습이 흥미도 있고 부럽(?)기 도 하고 해서 볼펜가는대로 써 본 글입니다. 들려 주셔서 고맙읍니다.
혀거 참으로 감동이라 해야하나.............!!
그렇게 느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면 볼수록 한 생명체의 독특한 세계가 흥미진진했었읍니다.
수탉~ 그 카리스마~대단하군요. 암컷을 지켜내려는 그 용맹무쌍함 인간들이 배워야 할것 입니다. 애인을 이용해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자행하는 인간들보다 정말 순수하고 멋 집니다. 앵~ 콜 두번 읽었습니다. ^^
이 후미진 곳까지 왕림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귀하의 [매일만평]의 애독자입니다. 재미와 공감을 느끼며 열심히 보고 있읍니다.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닭은 일부다처제인가봐요 ㅎㅎ
엄격한 제도적 일부다처라기 보다는 강자가 모든 것을 갖는 구조라고 할까요..실상은 난교,잡혼과 유사하겠지요.어쨋건 [동물의 세계]이나까요. 그래도 [암컷]들 거느리고 다니다가 생각나면 근처 수풀에서 순식간에 [볼일]도 보고 그러고는 또 의젓하게 폼 잡고 다니는게 [개콘]만큼 재미나더군요.. ㅎㅎㅎ
편하게 읽었는데, 보리수님 댓글에 어질어질하네요....
[카페지기]님은 꽉차게 사는 분 같이 짐작되는군요. 글을 쓰시면서 카페도 운영하시고 게다가 틈틈이 농사일도 하시고....글을 쓰시는 분들은 글 쓰는 능력외에도 깊은 내면의 성찰이 뒷받침되야 하는 것 같더군요. 아마 그래서 다른 각도로 살펴 보신 감상같읍니다. 편하게 읽으셨다니 저로써는 반갑읍니다. 저도 편하고 즐겁게 썼으니까요.
에고 적당한 경계를 넘어가지 못하도록 돌보는 수탉이 있는 줄도 모르고 어릴 적 풀어놓고 있는 닭들을 소나무 끝에 앉아 있던 솔개가 채갈까봐 친구들과 멀리 놀러가지도 못하고 닭들 주위에서거리며 놀았나 보네요.
어쩐지 형들은 솔개가 너를 채가겠지 했었는데.....
닭네이야기 잼나게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바로 그 대목도 무척 흥미로웠읍니다. 주위가 온통 숲이고 낮에 온 종일 내 깔려 두어도 탈주나,행방불명이 전혀 없더라구요. 모듬살이의 생태도 잘 지켜 보면 재미있는 면이 꽤 있더군요. 그 맛에 연구도 하고 관찰도 하는 모양입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수탉의 존재가 부러워지는 오늘의 한국 사회상입니다. 구태여 성차별 뭐 이런거보다 유아시설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등학교등등의 선생님/교사 구성 비율 부터 T.V 인기드라마 작가들의 70-80프로 이상이 여자들이다보니 ....며누리가 시어머니의 뺨을 치는 장면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지경까지 나오는 건강하지못한 여성 우월시대가 작금의 우리현실의 한 부분이네요. 수탉같은 남자들이 많아지는 --좀더 튼실한 양성 균형이 보여지는 사회의 흐름이 이뤄지길 이글을 읽고 새삼 느낍니다
동감
봉우리가 높으면 골짜기가 깊다는 속담도 있듯이 지난 시절에는 가부장제도의 질곡으로 한국여인들의 한도 깊었다고 하던데 지금은 세상이 달라지고 있더군요. 귀하의 [튼실한 양성의 균형]은 개념의 제시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잇다고 보며 공감을 느낍니다. 제 글이 그런 뜻에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점이 있다면 망외의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읍니다 문득 수닭의관과 연관성은 우두머리 닭의 관은 좀더 품위가있지않을까
상상해밨음 감사감사
우두머리가 특별히 따로 태어 난 것 같지는 않더군요. 상대적인 소규모 집단에서 생기는 흔한 일이니까요. 따라서 숫놈 끼리의 외모 차이도 비슷했는데... 우두머리 된 후에는 왠지는 그 수탉이 모든 면에서 돋보여서 착시인가 싶기도 했읍니다. 뭔가 달라지는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읍니다. 재미있는 상상이심니다. 감사합니다.
닭 하나로 이렇게 좋은 글이 나오는군요 .재미있게 잘 이보았습니다 .감사
찿아 주셔서 감사드림니다.
관찰력과 표현력이 정말 부럽습니다.
고맙슴니다. 새해 좋은 일 많으시기 바랍니다.
좋아요~~
좋은 글 감상 잘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