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청천강 햇빛이 바닥까지 비추는데(氷合淸川光徹地)
···································································· 병산 이관명 선생
객관의 병풍에 있는 여덟 수의 절구를 차운하다〔次客館屛風八絶韻〕
홍제교 옆으로 눈이 땅을 덮었고 / 弘濟橋邊雪滿地
모래톱에 해 지지만 이별의 정은 친근해라 / 沙頭落日別情親
종남산 산빛은 고개 돌리자 사라졌으니 / 終南山色回頭失
갈림길의 악수가 사람을 시름케 하네 / 握手臨岐愁殺人
둘째 수〔其二〕
뿔피리 세 번 울려 나그네 행차 재촉하니 / 畵角三聲催客行
동틀 무렵 말 채찍질해 평양성을 나서네 / 平明策馬出箕營
보통문 바깥에서 머리 돌려 바라보니 / 普通門外回頭望
고목의 푸른 연기가 온 성을 감쌌구려 / 古木蒼煙鎖一城
셋째 수〔其三〕
해 저무는 푸른 숲에 까마귀 돌아와 깃들고 / 落日蒼蒼鳥返棲
흐릿한 먼 봉우리에 저녁연기 나지막한데 / 依微遠岫夕煙低
모래바람 휘이잉 사람 얼굴로 불어와서 / 風沙獵獵吹人面
말 타고 조심조심 언 시내를 밟았어라 / 征馬凌兢踏凍溪
넷째 수〔其四〕
오늘의 행장도 어제와 같은데 / 今日行裝昨日同
먼 길을 서쪽으로 달려 어느 때나 끝나려나 / 脩程西走幾時窮
차가운 얼음에 흰 눈 쌓인 삼천리 길이니 / 氷寒雪白三千里
아침과 저녁 보냄이 이 가운데 있어라 / 消却朝曛在此中
다섯째 수〔其五〕
언 눈이 산을 덮고 바닷가에 닿았으나 / 凍雪埋山際海濱
추운 빛 이겨내는 자새원(紫塞垣)의 봄이로다 / 寒光凌轢塞垣春
바쁜 나그네 몇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 紛紛行旅知多少
아 그대 왔구려 먼 길 가는 사람아 / 嗟爾來哉遠道人
여섯째 수〔其六〕
서쪽 변방의 요새와 군영은 예전부터 있었으니 / 西垣亭壁自前時
조정의 의논 지금에야 축성이 좋다 하지 / 廟議如今好設施
무적의 긴 성 쌓는 건 참으로 급한 일인데 / 無敵長城眞急務
총사령관 누구인지 알지 못하겠네 / 不知制閫是阿誰
일곱째 수〔其七〕
펄럭펄럭 수레 덮개에 서풍이 소리를 내 / 飄飄行盖響西風
관하(關河)를 짚어 보니 길이 몇 겹인가 / 指點關河路幾重
얼어붙은 청천강 햇빛이 바닥까지 비추는데 / 氷合淸川光徹地
말발굽 가볍게 새벽 서리 낀 곳 밟아 가네 / 馬蹄輕踏曉霜封
여덟째 수〔其八〕
쌓인 눈 녹기 시작해 봄은 돌아오고 / 積雪初殘春意還
하늘가에 두어 봉우리 점점이 이어졌네 / 天邊點綴數峰山
수레 세워 멀리 연기 이는 곳 가리키자니 / 停車遙指煙生處
오늘 저녁 나그네는 저곳에서 묵겠구려 / 今夕行人宿此間
[주-1] 홍제교(弘濟橋) :
지금의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었던 홍제원(弘濟院) 인근의 다리로 여겨진다.
[주-2] 종남산(終南山) :
목멱산(木覓山), 즉 서울의 남산을 가리킨다.
[주-3] 평양성(平壤城) :
기영(箕營)은 평양 감영(監營)을 가리킨다.
[주-4] 보통문(普通門) :
평양성의 동쪽의 문 이름이다.
[주-5] 자새원(紫塞垣) :
새원(塞垣)은 변방의 성을 뜻한다. 진(秦)나라 때 쌓은 만리장성이 모두 자색(紫色)이고, 한(漢)나라 변방(邊方)의 성도 자색이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주-6] 관하(關河) :
함곡관(函谷關)과 황하(黃河)의 병칭으로, 변방을 가리킨다.
[출처 : 병산집(屛山集) 제2권 / 시(詩)]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유영봉 황교은 (공역)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