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악묘를 둘러보고 나오니 숭산 줄기가 보였다. 주위를 둘러싼 세 개의 큰 산이 모두 숭산이라고 했다. 보기에 화재가 나서 수목이 아직 제대로 자라지 않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 정도면 오악 가운데 제일 급이 떨어지는 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숭산은 오악에 드는 명산답게 지나는 곳마다 이렇게 누런 유리기와를 얹은 정자 같은 것이 산봉우리에 보였다. 드디어 숭양서원에 도착했다. 노란 글씨로 쓴 중악숭산이라는 글씨가 풍경구 입구의 지붕 위에 보인다. 차창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검표소는 패방에 설치하였는데 고산앙지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시경·소아』에서 나온 말로 높은 산을 우러른다는 뜻이다. 남의 본보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도 고산서원이 있는데 바로 여기서 따온 말이다. 들어가서 조금 이동을 하니 오른쪽에 비각이 하나 나타났다. 비각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다가가 보니 비신에는 글자 대신 수없이 많은 부처가 새겨져 있었다. 마치 다음날 용문석굴에서 본 만불동과 흡사했다. 이곳이 유불도를 함께 숭배하는 곳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숭양서원 입구. 아이 하나가 나오고 있다. 마침 이곳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많이 와서 현장 견학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서원 같은 곳에 가면 아이들이 몰려와서 선생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설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고 장난치기도 하는데... 이 비석은 높이가 9m나 되는 대당숭양관기성덕감응지송비라고 한다. 당나라 현종 이융기를 위해 단약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다. 비석은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웅장하며 사면에 귀신 모양을 돋을 새김한 것이 눈에 띈다. 측면에는 명나라 만력 연간에 주감이란 사람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글자를 새겨놓았다. 멋진 전서체로 쓰여진 대당숭양관기성덕감응지송비라는 글자. 글씨는 이임보가 썼다고 하며 모두 1078자가 쓰였다고 한다. 성덕감응비는 숭양서원 입구의 왼쪽에 있다. 이곳을 지나면 공자의 상을 모셔놓은 선성전이 나온다. 선성전에 모셔진 공자상. 살아서는 그저 그런 신분이었으나 죽어서 소왕(素王)으로 추대되어 황제를 상징하는 노란 황금빛 의상을 걸치고 있다. 공자상은 보통은 소상으로 만드는데 이곳의 상은 만든 지가 오래 되지 않는지 청동상이다. 뒤쪽에는 『논어』의 구절들이 전서체로 쓰여 있다. 숭양서원에서 유명한 측백나무. 세 그루의 측백나무가 있는데 대장군, 이장군, 삼장군이라고 한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2장군은 '내가 왜 2장군이 되어야 해.'라며 울분을 터뜨린 결과 모양이 저렇게 되었다고 한다. 선성전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도통사가 나온다. 이곳에는 공자보다 앞서 살았던 성인들의 상과 관련 그림이 있다. 중앙의 것은 요임금이고 오른쪽의 것은 순임금이다. 요임금 왼쪽에는 주나라의 시조랄 수 있는 주공이 모셔져 있다. 모두 공자가 지극히 흠모한 사람들이다. 특히 공자는 자신이 늙은 기준을 꿈에서 주공을 보지 못한 때로 정하였을 정도이다. 중앙에는 조그마한 인공 연못이 하나 있는데 중앙에 돌절구 같은 것이 있었다. 저마다 동전을 꺼내어 그곳에 던져 넣는 모양이다. 안에도 동전이 많았지만 들어가지 못한 것이 물론 훨씬 많았다. 한번씩 동전을 건져내면 그 수입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숭양서원의 기념품 가게. 마침 견학을 온 소학생들로 붐볐다. 탁본이 많았는데 자세히 보니 중악묘에서 봤던 오악의 로고를 탁본한 것도 있었고 소림사 관련 탁본이며, 이백의 장진주, 관제시죽, 심지어 여산에서 보았던 비류직하삼천척의 비류가 돋보이는 이백의 망여산폭포시를 탁본해 놓은 것도 있었다. 말하자면 이곳도 특산물이란 의미가 퇴색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날은 소학생들이 곳곳에서 견학을 하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군복을 입은 교사들이 인솔하였다. 학생들은 모두 같은 챙모자를 쓰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교과 내용을 암송시켜놓고 흐뭇해하는 군복 입은 여교사를 보노라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서원이 사립학교라도 학교는 학교니 학생들이 학습내용을 암기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이 정말 듣기에 좋았다. 숭산의 주요 고적을 나타내는 지도. 나침반 같은 방위 표시가 좀 이채롭게 보인다. 숭양서원을 다 둘러보고 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 중인 일행. 저 2층버스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강제로 사람들을 인공 암벽 등반 수준의 운동을 하게 했다. 점심을 먹은 식당 바로 곁에 있는 또다른 절인 영태사. 영태는 불심이 깊었던 영태공주를 기려 만든 절이라고 한다. 영태공주는 한나라 때의 공주로 당고종의 딸 영태공주와는 다른 인물이다. 비구니 절이라고 하는데 입장권도 팔고 구경도 할 수 있었다. 여산의 서림사는 비구니 절이래서 못보고 동림사만 돌아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점심을 먹은 영태사소식관. 소식은 육류가 들어가지 않은 채식 위주의 식단을 말하는데 고기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감자 핫도그 모양의 음식과 두부 등 콩을 재료로 만든 바싹한 튀김 같은 것은 나름대로 특색이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는 일행. 우리는 4테이블 2방을 이용했다. 조별로 구분이 되어 있었지만 이번만큼 의미가 없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모두들 그만큼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다는 말일 것이다. 총욕불경. 영욕 따위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어려운 한자나 서체가 나와도 여럿이 힘을 합치니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단체여행의 묘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식당도 그런대로 마음에 들고 식당을 꾸미는 액자도 상당히 불교적이었다. 식사를 다하고 다른 곳도 둘러보았다. 가장 위쪽의 응접실 같은 곳에는 선녀가 그려져 있었다. 이곳은 보아하니 식사를 하기는 힘들 것 같고 아마 차를 마시는 곳 같았다. 식당은 아주 절의 모습을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고풍스런 분위기를 띤 식당에는 잘 들어가 본 기억이 없었다. 이 장면에서 오른쪽이 영태사이다. 식당의 매점에서 파는 인형은 이곳이 소림사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피규어 향태의 동자승들이 참 귀엽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영태사는 비구니절임에도 불구하고 일반관광객들에게 개방되었다. 일정에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입구까지는 가봤다. 천왕이 우리나라의 절과는 상당히 달랐다. 중국에 와서 고운 단풍을 보는 것은 참 드문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단풍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숭산에 올라서 한국에서는 잃어버린 단풍을 만끽할 수 있었다. 입구의 돌로 만든 정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자로 영테사라고 쓰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지로 읽는 한자』를 보아 이번 여행에서 이런 글자들이 나오면 많이 흥미로워했다. 남방에서는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사탕수수. 식후에 먹으면 상큼하고 소화도 잘 되어 좋다. 무이산 갔을 때 통째로 사서 씹다가 거리에 뱉어놓으면 청소하는 아저씨들이 따라다니며 쓰레받기에 쓸어 넣었던 기억이 났다. 그곳에서도 주스로 팔기도 했지만 이곳에서는 100% 주스로만 팔았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사서 맛을 조금 보았다. |
첫댓글 우리가 대구공항에서 만나 북경으로 다시 정주까지. 일정을 다시 한번 되집어볼 수 있게 정리를 하셨네요.
문득 이하윤님의 수필 <메모광>이 생각납니다.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이렇게 정리하실수 있다니 메모광이신지 기억력이 뛰어나신 것인지. ㅎㅎ
아무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