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두 장이 주는 행복/수궁동 이정숙
"아이고 죽겠어, 외손주 두 놈이 학교를 안가니, 밥 해먹이느라 죽겠어!"
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섰는데 바로 앞에 계신 초로의 할머니가 혼잣말이 아닌 듯
중얼거리셨다.
"힘드시겠어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는 할머니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길게 줄 선 시간이 길어지자
할머니는 지친 표정이 역력했고, 나에게 자리를 부탁하고서는 약국 옆 계단에 주저앉으셨다.
외손자 둘, 꼬박꼬박 삼시세끼를 챙기랴! 요일 맞춰 마스크 사러 나오랴! 할머니의 모습에서
누적된 피로감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래도 마스크 2장을 살 수 있었다는 안도감과 환한 미소
를 나에게 남긴 채 할머니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지셨다.
사실 마스크는 우리집에서도 홀대 받아왔던 물건이었다. 평소 마스크를 잘 쓰지도 않았을 뿐
더러 여기저기 집안에 굴러다니던 마스크가 이리도 귀하게 대접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구석구석에서 찾아낸 면 마스크를 깨끗이 빨아 햇볕 좋은 베란다에서 말리고 다림질까지 해놓고,
비닐에 넣어 무슨 귀한 보석처럼 보관한다. 한 번만 쓰고 홱 버리던 일회용 마스크도 어떻게 하면
재활용 할까? 고민도 한다. 마스크를 사는 날, 마스크 2장을 손에 넣으면 왠지 뿌듯하고 안도감이
밀려온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 보통날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다. 일상의 평화가
깨진 후에야 아무 일도 없이 그저 무료하다고 불평했던 보통날에 대한 고마움이 일 듯 요즘 우리네
일상이 정말 그렇다.
일요일 아침 온 가족이 함께 가던 성당 미사, 2주일에 3권씩 책을 빌려보던 도서관, 아침밥 먹고
집을 나서면 자연스럽게 발길이 가던 경로당이 문을 닫은 지 두 달째로 접어든다. 당연하게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이 모두 중단된 뒤에 비로소 느끼는 보통날에 대한 고마움이며, 너무 소소해서 소
중한 줄 몰랐던 것들에 대한 재발견이다. 이제 다시 돌아올 평범한 보통날을 기다리며 우리 모두
조금은 더 성장하고 변화하는 시간들이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디지털 구로신문 5월호 독자마당 7쪽에 실린 이정숙 님의 글입니다.
내일부터는 공적마스크를 한 번에 3장씩 살 수 있어 불편함이 좀 감소되겠지요......
대리구매도 좀 완화되어 편해지겠네요......
마스크 두 장이 주는 행복이 아니라 이젠 "마스크 세 장이 주는 행복" 이라고 써야 할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