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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3~9)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아멘.
예수는 영의세계법으로 많이 말씀하셨는데,
'부자와 나사로'(누가복음 16:19~31절)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산상 수훈'도 마찬가지이고,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도 영의세계법으로 말씀해주신 것이고, '씨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1~9) 또한 영의세계법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인생들은 잘 못 알아 듣는다.
그래서 자꾸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하신다.
귀가 없는 사람이 어딨나. 선천적으로 안들리거나
다쳐서 안들리는 경우 빼곤 거의 다 듣는다.
그렇지만 깨달을 자는 따로 있다.
영의세계에서 깨달을 자에게 깨닫게 하신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삼아라 라는 비유에서도
그 청지기가 들을귀가 있어서 깨달았다는 것이다.
https://cafe.daum.net/mizzkwon/KdtU/179
씨뿌리는 자가 씨를 뿌렸댄다.
좀 잘 뿌리지 대충 뿌려가지고…쯧쯧쯧.
그런데 대충 뿌렸을까? 아니다. 내가 농사를 안지어 봤지만
잘 뿌리려고 애썼을 것이다. 길가로 떨어지지 않게,
돌짝밭으로 떨어지지 않게, 전부 좋은 밭으로 떨어지게 하려고
잘 뿌렸을 것이다.
하지만 씨가 바람에 날라갔을 수도 있고 뿌리는 자의 힘에 의해
밖으로 떨어졌을 수도 있다.
씨가 큰 것들은 구멍을 내고 하나씩 심는 것을 본다.
어떤 씨인지는 모르지만 씨가 크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 씨는 그냥 '휙~' 하고 뿌리지 하나씩 심지 않는다.
그런데 왜 씨의 잘못이라고 하지?
씨가 던져진채로 있어야 하는 것은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나도 알겠는데.
잘 생각해보자, 씨 뿌리는 자의 잘못인지 씨의 잘못인지.
길가밭, 돌짝밭, 가시떨기밭에 뿌려진 씨가 잘못했네.
길가에 떨어졌으면 잘 굴러서 좋은 땅으로 가야지,
돌짝밭에 떨어졌으면 얼른 굴러서 좋은 땅으로 가야지,
가시떨기에 떨어졌으면 죽기살기로 굴러서 좋은 땅으로
가야지, 왜 그냥 떨어진채로 있어가지고 새에게 먹히고
말라버리고 자라지 못하고, 어떤 씨놈은 재수가 좋아서
밭에 떨어져가지고 열매를 맺혔다는데.
누가 좋은 밭에 떨어지고 싶지 않았겠나.
그러나 좋은밭에 떨어져도 안심할 일이 아니다.
그곳에서 뿌리는 내려 자랐을지라도
'솎아내기법'에 걸릴 수도 있다.
(식물의 밀도를 줄여 나머지가 더 잘자라게 줄이는
과정으로 파종상에 밀집되어 생립한 묘목중 허약묘,
기형묘, 상해묘, 웃자란묘 등을 솎아내어 남게되는
묘목의 생육공간을 주기 위한 작업)
☞ 돌고 도는 인생
예수는 인생을 말씀하신 것이다.
자꾸 영의세계법으로 설명해서 못알아 들어서 그렇지.
인생은 돌고 도는데 어떤 인생은 길가 밭으로,
어떤 인생은 돌짝 밭으로, 어떤 인생은 가시떨기 밭으로,
어떤 인생은 좋은 곳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그 인생에도 영원은 없다.
한번 길가 밭 인생 영원한 길가 밭이 아니다.
언젠간 굴려져서 좋은 밭으로도 간다.
한번 돌짝 밭 인생 영원한 돌짝 밭이 아니다.
언젠간 굴려져서 좋은 밭으로도 간다.
한번 가시 밭 인생 영원한 가시 밭이 아니다.
언젠간 굴려져서 좋은 밭으로도 간다.
그냥 제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한번 좋은 밭 인생 영원한 좋은 밭이 아니다.
언젠간 굴려져서 길가 밭으로도 갈 수 있고,
돌짝 밭으로도 갈 수 있고, 가시떨기 밭으로
갈 수 있다.
2023년 5월 현재 나의 삶의 모습을 보아하니
가시떨기 밭에서 사는 것 같다.
새에게 먹혀버린 것 같지는 않고,
땡볕에 말라버린 것 같지도 않고, 뭔가 될듯 될듯...
꿈속에서도 항상 위로 올라가는데 올라가기가 힘들다.
좀 경사가 져야 올라갈 수가 있는데 완전 90도 수직이라
올라갈 수가 없다. 밑에서 밀어줘도 못 올라간다.
교회를 열심히 다닐 때도 가시떨기 밭이었는데...
아직도다. 언제나 좋은 밭으로 굴려져 갈 것인지원.
예수께서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고 설명해주신다.
그것도 영의세계법으로.
(마태복음 13:18~2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여기에서의 예수는 계속 '천국' 비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 천국이라는 것은 죽어서 가야 하는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의 선행과 구제 올바름 정직 도덕적 등
'선의값'으로 계산되는, 그래서 '천국' 같은 삶으로
올라가는 삶을 말한다.
이 천국 같은 삶으로 올라가는 것도 그냥 심령이 가난해서
아무 불평없이 사는 값일 수도 있고, 정말 실생활에서
상위층으로 올라가서 고생 없이 평온한 삶을 사는 경우일
수도 있다.
야베스의 기도응답처럼 내 지경이 넓혀지고
환란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되는 삶.
"돈 그까짓거?, 상위층의 삶? 그까짓거 없어도 됩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만 있으면 됩니다!" 이런 개소리는
안 하는게 좋다.
정말 없어보지 않아서 하는 소리지 정말 1도 없으면
죽어야 한다. 살 수가 없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빠져나갈 구멍이 1도 안보여서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걸 정죄하거나 흉보면 안 된다.
그들을 안 돌본 니 죄도 있다.
성경은 인생들 살아있을 때의 법전이다.
죽으면 개나 소나 가봐야 안다.
자기가 천국 갈 것인지 지옥 갈것인지.
누군가 씨를 뿌린다.
육의세계에서 농사를 짓느라고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자꾸 영의세계법으로 가르쳐줘서 육의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당췌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는다.
그래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어 버렸다.
신께서 말씀하신 성경을 인간들이 이렇게 해석하고
저렇게 해석하고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만 자꾸
누군가 랍비에게 물어보니 랍비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알려줘야 했기 때문에 여러가지 해석이
나왔을 수도 있다. 귀걸이법으로 코걸이법으로.
성경은 그냥 모르면 모르는대로 넘어가면 되고
알아듣게 되어 있는 실천사항들을 보면 되는데
보고 말면 소용이 없다. 실천해야 한다.
영의세계에서 씨를 뿌린다는 것이다.
이 씨가 뿌려지는 대상은 사람이면 누군가든 다 해당된다.
'씨'의 역할은 땅에 심어져서 싹을 내고 자기 씨에 맞게
키도 크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씨는 열매를 맺는 것도 있고, 먹기 좋은 채소일 수도 있고,
먹으면 안 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냥 보기 좋은 꽃일 수도
있고 커다란 나무일 수도 있고, 잡초일 수도 있다.
씨는 무한할 만큼 다양하다. 인생은 다양하다.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이라는 양이 얼마큼인지는모르겠다.
사전에는 '전체 가운데 얼마쯤'이라고 되어 있는데.
많은 양은 아닌것 같다.
이 씨는 싹도 못낸다. 무슨 좋은 말을 듣든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냈다.
누가 이런 부분에 해당되는지는 본인이 알겠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이 씨는 싹은 났다. 하지만 얕은 흑 때문에 뿌리가 내리지도
못했고 영양분도 충분하지 못해 좋은 말을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내진 않았어도 오래가지 못하고 금새 식어버렸다.
누가 이런 부분에 해당되는지는 본인이 알겠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이 씨도 싹은 났다. 하지만 줄기가 위로 올라가질 못한다.
가시들이 막고 있어서다. 좋은 말을 듣고 실천하고 싶어도
방해되는 상황 때문에 실천하지는 못한다.
누가 이런 부분에 해당되는지는 본인이 알겠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자라 열매를 맺는데 백배짜리도 있고
육십배짜리도 있고 삼십배짜리도 있다.
누가 이런 부분에 해당되는지는 본인이 알겠다.
교회만 가면 나는 좋은 땅에 떨어졌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전체인류 중에 더러는 이런 4가지 삶 속에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4분의 1씩 이런 삶을 차지하고 살고 있다는 것인지.
신께서 인생들을 말씀하실 때는 갯수를 세지 않으신다.
3분의 1씩, 더러는, 낫으로 그냥 거두시고 등 대략으로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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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았는다고 해서
나와 상관없는 그 어떤 존재가 와서 뺐는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갸나 나나 그냥 나다. 내 안에 있는 나.
내 마음에 뿌려졌다. 나의 마음 속에 있는 선함과
악함 중 악함이다. 하자. 하기 싫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말씀'이라고 했다고 해서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말하는
'설교'로 알면 안 된다. 부모에게서 듣든, 학교에서 듣든,
사회에서 듣든, 어떤 멘토에게서 듣든 내가 바르게 될 수
있는 말씀 들이다. 특히 구제와 선행.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누가복음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https://cafe.daum.net/mizzkwon/KdtU/179
(사도행전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설교 중에서도 얘기할수 있겠지만 내가 들은 바로는
"믿습니까?" 라고 하면서 믿음을 강요했지 우리가 사회로
나가서 어떤 구제와 선행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홍익인간,
에티켓, 상식, 관습, 바른생활, 공중도덕 등을 지키면서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말은 거의 못들어봤다.
그래서 교회다니는 것을 우월하게 여겼으며
"지옥에나 갈 것들" 하면서 사회생활은 우습게 알게 됐다.
(마태복음 13:24~30)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이 부분도 인간은 굉장히 착한데,
나는 굉장히 착한데 아무 이유 없이 사탄이
와가지고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알면
안 된다.
흙이 존재하는 이 땅에는 가시덤불과 엉컹퀴가
나도록 창조주 신께서 프로그램화 하셨다.
흙만 있으면 어디든 잡초가 생긴다.
인간에게는 선한 성품과 죄성성품이 있는데
이 죄성성품이 가라지다.
오늘밤 깨끗한 마음으로 잤을지라도 내일이면
내 속에 죄성 가라지가 또 생기게 되어 있다.
오늘 지내온 삶 중에 잘못한 것을 깊이 뉘우치고
회개하고 내일은 절대로 화도 안내고 싸우지 않고
욕심 부리지도 않고, 용서도 하고, 사랑도 하고,
죄를 짓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잤더라도
내일이면 다시 이놈의 가라지가 또 생긴다.
내가 죽을 때까지 가라지는 나의 옵션이다.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이 가라지는 인간들의 성품 중 존재하는 죄성성품이기
때문에 함부로 뽑아대지는 않는다. 이 가라지를 뽑을 때
그 사람이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이 세상 끝' 이라는 말을 지구가 멸망하고 하는
그런 끝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죽으면 이 세상은
끝인 것이다.
인간이 죽으면 그동안 인생에서 나를 죄짓게 만들게
했던 죄성성품들이 필요 없기 때문에 조치가 취해진다.
불에 태우는지 불못에 떨어지는지는 죽어봐야 알겠다.
성경을 기독교화 시켜가지고 '곡식'은 기독교인이고,
'가라지'는 타종교나 일반인이라고 하면 안 된다.
곡식이나 가라지나 나다. 인생은 누구나다.
(마태복음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씨뿌리는 비유 밑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무슨뜻인지는
모르겠다. 기독교에서 볼땐 서기관은 그닥 좋은 사람이라고
안배운거 같은데. 서기관이 천국의 제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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