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관찰자는 알아낼 수 없었다. 이전의 짧은 방문과 다른 점이라면 “강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사람이 다섯 명도 되지 않았고”, 한 건물 주변에서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축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이 건물은 학교로 확인됐다. 미 외무부의 비밀문서(사본이 블라디보스톡의 영사관에 전달된)에는 “암소가 달구지를 끌고 있었고”, “강에서는 어린 아이 세 명이 놀고 있었다”라고 씌어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없는 정보로, 신의주 항구에서 “2.5톤 트럭에 석탄이 적재됐고, 공장에서 배출되는 연기가 평소보다 많았다”고 적혀 있었다.
덤프 트럭, 어린 아이들, 암소... 이건 외교관들이 긴 막대기를 들고 안개 속을 휘저어보는 소리처럼 들린다. 미국은 지금까지 한번도 평양에 대사관을 둔 적이 없었다. 바로 그 때문에 북한 주변국에 파견된 외교관들에게 이런 임무가 요구되고 있다. 이들의 보고서는 대부분 북한으로 여행을 하는 인물들 가운데 신뢰할 수 있는 이들의 경험담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북한을 관찰하기에 적합한 곳으로는 선양 주재 미 영사관이 꼽힌다. 선양은 중국과 북한과 인접한 랴오닝성의 성도로 이 곳에는 북한의 영사관도 있다. 이 곳은 북한의 상업적 거점이라고 한다. 이곳 북한 영사관의 “첫 번째 임무는 외화를 버는 것”으로, 바이어들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물론 상당한 돈을 지불해야 하지만 전화 한 통화면 온갖 서류 관련 일이 다 면제되기도 한다. 북한의 상황을 짐작하게 해주는 정보는 대부분 이처럼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한테서 나온다.
북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정보 제공자는 지난 2009년 미국인들에게 북동부 지역의 항구인 라선 특별시에 최근 러시아와 중국의 소상인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휴대폰을 갖고 있었지만, 북한에 입국한 뒤 휴대폰을 새로 구입해야 했다. 북한에서 이동 통신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북한제 휴대폰이 필요하다. 휴대폰은 회선 개통 비용까지 합해 천달러가 넘는다. 통화료는 대략 1분당 1달러 75센트 정도다.
북한행 항공기에 이란인들이 왜?
북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파워가 있는 한 여성 사업가는 최근 김정일을 만났다. 김정일은 묘향산에 있는 영빈관에서 그녀를 맞이했다. “김정일의 건강과 기분 상태가 양호해 보였다”라고 이 여성은 전했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 김정일은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고”, “세부사항에 주목하고 있으며, 카리스마 있고, 기억력이 좋아보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현재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알려진 김정일은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식 면담이 끝나자마자 그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더니, 만찬 전에는 샴페인을 마시고, 만찬 중에는 위스키 칵테일을 마시고 줄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녀는 김정일이 자신의 건강 상태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정일과 그녀의 대화 내용은 김정일의 아내 김옥(Kim Ok)이 소파에 앉아 메모를 하고 있었다.
런던 주재 미대사관은 2005년 7월15일에 작성된 문서를 ‘기밀’로 지정했다. 외교관들은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에프티미오스 미트로포울로스 국제 해사기구 사무총장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했다. 그의 결론은 매우 흥미롭다. 첫째, 그가 타고 간 북한으로 향하는 비행기 승객의 절반이 이란인들이었다. 미트로포울로스는 “상황이 이러한데, 어떻게 서방세계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둘째, 그리스 국적인 미트로포울로스에게도 지도자 찬양의식에 참여할 것이 강요됐다. 환영 인사와 함께 북한 공산당 간부들은 미트로포울로스에게 “위대한 지도자 동지에게 바칠” 꽃다발을 건네주고 그가 김일성 동상 앞에 그 꽃다발을 놓는 장면을 촬영했다. 그날 밤 그가 객실에서 TV를 켰을 때 그가 볼 수 있는 채널은 “정부 방송 단 한 개뿐”이었다. TV는 114개의 채널을 저장할 수 있는 제품이었지만. 선전에 필요한 일이 끝나자 북한은 그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항만 시설을 견학할 때 해당 시설 관리자가 그를 안내하지 않았다.
미국 비판 삼가며 “영원한 적은 없다”
북한이 외교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해서도 미대사관은 기록했다. 울란바토르에 있는 미 대사관은 당시 북한 외무부 차관이었던 김영일이 몽고 대통령 보좌관 담딘 초그바타르를 방문한 일에 대해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사절단은 미리 준비해 온 연설을 읽지 않았고, 공격적이지도 미국을 비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최근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에 동의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는 서너 번의 비판이 있었다.” 김영일은 “영원한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 대사관은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양자회담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 역시 중요한 정보 제공처다. 중국을 방문하는 모든 미국 정치인들은 북한 공산당의 마지막 동맹인 중국이 북한과 그 지배자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본다. 그 한 예로 2009년 9월, 미 국무부 부장관 제임스 스타인버그는 여러 명의 중국 최고위 정부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이때 중국이 평양의 공산당 동무들에게 이중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북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우리의 이웃입니다.” 스타인버그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은 북한이 강대국 중국과 미국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아주 솔직하게 인정했다. 스타인버그가 베이징에서 만난 한 정치가는 얼마 전 그가 김정일을 만난 일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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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차기 지도자로 확정된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자강도 희천발전소 건설장을 방문해 박수를 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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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 줄었지만 건강 좋아보여
그는 이전부터 김정일과 잘 알고 있던 사이였다. 그는 북한의 지배자가 몸무게가 많이 줄어있었지만, “아직은 비교적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날카로운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김정일은 베이징에서 온 손님과 함께 술자리를 같고 싶어했지만, 일정 관계로 나중으로 미뤄야만 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상당한 술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그가 김정일에게 “이전처럼 술을 마시느냐”고 묻자 김정일은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김정일을 만난 중국인들은 현재 북한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표는 미국과 직접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베이징에서 “북한을 발전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나라는 바로 미국”이라는 소리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중국 정부는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것이 김정일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 고위급 정치인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2009년 6월에 이미 “미국과의 긴장 관계를 악화시킨 뒤, 김정일의 후계자가 그 문제를 넘겨받아 해결하도록 하기 위한” 계획의 일부로 해석했다. 또 다른 중국 고위 정치가 역시 양자 협상을 원하는 북한이 마치 어른들의 주의를 끌고자 하는 ‘응석받이 아이’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미국인들에게 말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 외교 문서는, 중국이 미국 쪽 인사들에게 공개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한국의 한 고위 정부 관계자에게는 말해주었다고 적고 있다. 이 정치가가 서울의 미대사관에 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일 사후 2, 3년 사이에 현 북한 정부가 무너질 것이고 그가 베이징에서 만난 담당자는 중국은 “남한 주도하의 남북 통일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은 비무장지대 북쪽에 군사력을 배치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북한을 살릴 수 있는 나라는 오직 미국 뿐”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회복한 이후 미국은 특히 그의 아들들에 관한 정보를 열심히 모으고 있다. 지난 2008년 9월26일에 상하이 주재 미 영사관은 세 명의 북한 전문가들과 가진 대화 내용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독재자의 장남 김정남은 “너무 플레이보이”이고, 둘째 아들 김정철은 “(정치보다) 비디오 게임에 더 관심이 많고”, 막내 김정운은 “아직 너무 어리다”고 평가했다. 이는 오늘날 증명된 바와 같이 너무 성급한 결론이었다. 김정운은 현재 명백하게 후계자로 옹립되고 있는 중이다. 생산 부족, 국제적 고립, 파산 직전의 국가 재정... 그는 아마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을 것이다.
지난 2009년 8월 서울에서는 광고효과가 뛰어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선발된 충성스러운 북한인들이 북한의 식량 부족 상황의 실상을 감추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 전에 먼저 평양으로 이송됐다고 한다. 이들은 제대로 된 식사와 비타민 공급을 통해 “살이 찌워져야만 했다”고 미 외교관들은 전했다.
지난해 말 갑작스레 이뤄진 북한의 통화개혁은 북한 사회를 뒤흔들었다. 하룻밤 사이에 국가 통화인 ‘원’에서 두 개의 0이 사라져 버렸고, 물가는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안전한 위치에 있었던 것은 오직 노멘클라투라(옛 소련의 특권 계층), 즉 “유럽 등의 원조 프로젝트를 개인적인 부로 축적할 수 있는 북한 고위 정부 관계자의 자녀들”정도였다.
번역 황수경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