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면의 지명유래
◎ 갈전리(葛田里)
갈전리는 안동시에서 청송군으로 넘어가는 가래재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원래 임하현에 속하였으나 고종 23년(1895)에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정리에 따라 추곡과 신곡을 병합하여 오늘에 이른다.
갈전리는 1리와 2리로 구별되어 있다.
갈전리는 갈전, 갈밭으로 부르는데 칡덩쿨이 일대에 무성하게 번져있는 것을 개척하여 이룬 마을이라고 한데서 유래하였다.
갈전리에는 현재 87가구에 216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 못밑·못밑마·지하촌(池下村)·상촌(上村)
이 마을은 갈전의 여러 자연마을 중에서 위쪽에 위치하였던 관계로 상촌(上村)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1943년 마을 위에 갈전못이
완공되자 못 바로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현재는 주로 못밑 또는 못밑마로 불리고 있다. 이 마을은 원래 장씨(張氏)가
많이 살았다고 하며, 그 후 한씨(韓氏)가 주성을 이루며 살았다가 지금은 한씨 1가구, 이씨 1가구가 살고 있다.
◇ 불 밋 골:못밑마에서 갈전못 쪽으로 올라가는 길 서쪽에 있는데 이곳에 불을 당기는 풀무가 많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 큰가시골:가시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것으로 못밑마 서쪽에 위치한다.
◇ 작은가시골:큰가시골과 인접하여 있으며 종가시골이라고 하기도 한다.
◇ 갈 전 못:1943년에 조성된 것으로 마을 끝에 있는 계곡을 막아서 제방을 쌓았다. 저수지의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다.
▶ 조산마·조산촌(造山村)
조산마는 못밑마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서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이 마을 앞쪽에 당이 있었는데 이 당을 만들 때에 흙과 돌을 모아서
조산을 형성한 후 만들었다고 하며 이런 흙과 돌로 이루어진 무더기가 산처럼 많이 쌓여 있다는 데서 조산촌(造山村)으로 불리었다.
현재는 주로 조산마로 칭하고 있으며, 그전의 흙과 돌무더기는 전답(田畓)으로 변하였다. 류씨(柳氏)가 주성으로 20가구가
농업에 종사하고 살았으나 현재는 전주류씨를 비롯한 여러 성씨 8가구가 살고 있다.
◇ 곳 집 들:조산마 동쪽에 있는 들로서 들 가운데 마을 상여를 보관하는 곳 집이 있어서 붙여진 명칭이다.
◇ 진 다 물:다물 즉, 돌무더기가 길게 늘어져 있었어 붙여진 명칭으로 조산마 뒤쪽에 위치하고있다.
▶ 금마·항리(港里)
이 마을의 명칭은 이곳에 물이 흐르는 깊은 지대가 있었다 하여 금마, 항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마을 가구수는 40여호 정도이고
갈전1·2리에서 가장 큰 자연마을이다. 조산마 아래에 마을이 있으며 계곡을 따라 1km 정도 가옥들이 늘어서 있다.
◇ 봉산골:금마 동쪽 산에 위치한 골로서 봉산사(鳳山寺)라는 절이 있었던 계곡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나,
현재 절은 없으나, 옛날 탑이 있었다는 탑밭에는 현재도 탑의 기단 일부가 남아있다.
옛날 탑 해체 때 흰 항아리에 은구슬 15개, 은수저, 명주천이 나왔다고 전하여 온다.
◇ 봉산사지(鳳山寺止):봉산골 입구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서북으로 낮아지는 경사지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군데군데 돌무더기가 산재하여 있다. 형태는 원형으로 쌓아 올린 제단 위에 자연석을 올려 놓고 신위를
만들었다. 제단의 크기는 직경 160cm이고 높이는 80cm이다.
◇ 때백장골:봉산골에서 갈려져 나온 작은 계곡으로 큰 계곡에 붙어 있다고 하여 명칭이 유래되었다.
◇ 수 구:금마로 들어서는 입구에 조성된 것으로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등으로 구성되었다.
약 30년 전에 마을주민들이 뜻을 모아서 조성한 것이다. 도로에서 마을이 너무 훤하게 보여서 이것을 막고자
조성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마을이 번성한다고 믿고 있다.
◇ 번답들:수구 앞쪽에 위치한 넓은 들이다. 들이 비교적 넓어서 번답들이라고 붙여졌으며 수구가 조성된 후로는
수구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음식골:농사를 짓기 위한 물을 대기 위하여 음보를 팠다고 하여 붙여 진 것으로 금마 서쪽에있다.
◇ 학봉선생유허비:수구가 있는 곳의 길 건너에는 학봉선생유허비가 조성되어 있다.
▶ 납실·신곡(申谷)
청송방면의 국도 변에 있는 마을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께서 이곳을 지나시다가 마을의 지세가 원숭이 형상과 유사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현재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마을 대부분은 수몰되었으며 마을주민들은 아랫대수리와 금마 아래의 자뭍골에
이주하였다고 한다. 납실의 수몰되지 않은 터에는 현재 휴게소가 세워져 있다.
▶ 가랫골·추곡(楸谷)
안동과 청송 사이를 왕래하는 산중턱에 위치한 마을로, 가래나무가 많았다 하여 가랫골 또는 추곡이라고 불리었다 한다.
현재 15가구 정도 살고 있으며 갈전2리에 속한다.
◇ 가래재:가래골에 있는 높은 고개로서 주위에 가래나무가 많아서 생긴 명칭이며 안동과 청송의 경계지점이
되기도 한다.
▶ 대실·죽실(竹實)·대수리
원래 정씨(鄭氏)의 죽실파(竹實派)가 1960년대 자리잡고 살아 이곳을 죽실(竹實)이라고 불렀으나, 그 후 이곳에 이주한 사람들이
한자(漢字) 죽(竹)자의 훈(訓)을 따서 대실이라고 불렀으며 주로 대수리라고 많이 부른다. 대수리는 윗대수리와 아랫대수리로
나뉘어져 있는데 윗대수리는 갈전1리에 속하며 현재 2가구가 살고 있다. 그리고 아랫대수리는 갈전2리에 속하며 5가구가 살고 있다.
마을 위치는 납실과 금마 사이 뒤쪽 계곡을 따라 약 3km 정도 올라간 산 위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