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며칠이 지나고 이삿짐도 정리가 되었다..
어느날은 느닷없이 마을에 사시는 아주머니 한분께서 불쑥 문을 열더니
실내로 들어 오셨다.
"남녀호랑개교를 믿으신다면서요?"
-.네?...무슨 말씀이신지요?
"남녀호랑개교를 믿으신다고 해서 왔어요."
-.저흰 아무교도 믿지 않습니다.."
화들짝 놀란 아주머니께서 두말도 않고 얼릉 나가버리신다..
마을에서는 우리둘을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은가보다.
"돈을 아주 많이 벌어놨나보네..젊은 사람이 회사도 다니지 않고 ...."
"공무원 생활을 오래해서 돈이 많은갑다."
"어디 아픈것 아냐?"
"뭐..얼마나 살다 가겠어..몇달 버티다 말겠지.."
"아..젊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살지 뭣 때문에 시골에 온거야?."..........등등...
도시같으면 이삿짐이 오면 "누가 이사 왔나 보다.." 하며 끝날일인데...
다들 연로하신 어른들만 계신데다가 3년째 비어있는 집엘
이사를 오니 궁금하실 수 밖에.....
젊은 우리들이 이 시골에 이사온것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가 보다..
돈이 없어서 시골내려왔다는 소문보다는 벌어놓은 돈 쓰려고 왔다는 소문이
더 괜찮지 않은가? ㅎㅎ
사람이 사는 어느곳에 든지 없는 자에 대한 생각은 그리 후한 편이 아닐것이다.
시골생활의 기본은 인사라 생각하고
만나고 또 다시 만나도 인사..인사...인사...
이제
마을에 어른들께 그야말로 인사를 해야겠는데..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고민끝에 이장님과 의논을 해야겠다고는 생각이 들어 상의를 드렸더니
노인분들만 100명은 되다한다. 웬만한 돈 같고는 식사한번 하기 어렵다고 하셨다..
참석 못하는 사람들은 뒷말이 나올 수도 있으니 식사는 하지 말고 마을에 개발기금만 조금 내는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우린 마을 개발기금이라는 말에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물론 금액도 예상보다 적었기 때문이였겠지만
어찌되었든 어르신들께서 이곳에 사시면서 이 좋은 경치를 잘 지켜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곳을 선택해서 올 수 있었다는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식사를 한다해도 5,000원씩 계산해도 50만원..거금이였다..
결국 이장님과 협의 하에 마을기금을 조금 내어놓기로하고
(말이 기금이지 식사비용보다 현저하게 적은 간식비 정도였다..어르신들의 성정이 좋으셔서 큰 덕을 본셈이다.)
식사를 대접하고 나면 인사로 끝나지만..
적지만 간식비라도 마을 기금이다보니 마을가계부에 계속 남게 된다..ㅎ
(이것을 년말 마을 경영보고때 알았다..ㅎ)
사실 귀농한 이들의 이야길 들어보면 이 문제가 참 어렵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이 정도의 인사라면 난 엄청나게 좋은 곳으로 이사한 셈이다..ㅎ
4월에 마을에 대한 인사는 그렇게 큰부담없이 하고
나는 시간이 조금씩 생기면 산과 들로 산야초를 뜯으러 다녔다.
산야초효소발효액을 담그고 덕유산에만 나는 약초를 채취하시는
어른신께 약초를 구입하여 술을 담그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도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고 약초에 대한 일반인에 대한
생각도 활발하지 않을때 전문 약초꾼들에게 약초를 구입해서
이왕 끓여서 먹는 물이라면 보리차물 보다야 약초를 넣어 끓인 물을 마시면
좋치 않겠는가...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생각이 맞은것 같아..둘다 결혼 후 감기.몸살 한번없이 지금까지 지내는것을 보면..)
늘 집에서 반주로 술한잔씩을 하는 옆지기와 나는 이왕이면 소주보다는
약초담금주가 좋겠다는 생각에서 약초술은 떨어지지않게 담궜던터라
이사올때 약초술만 큰 병으로 8병이나 되었으니..ㅎㅎ
누가보면 서울에서 이사온 살림이라고 볼 수 없었을것이다.ㅎ
옆지기는 오미자를 심고 내가 도와줄것이 없는 날은
매일 얕은 산에서 부터 큰산까지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어서 참 재밌었다..
그때는 모르니까 그냥 돌아다녔는데..ㅎ
도시에서의 생활로 익숙한 우리들의 체력은 저녁이 되면 완전 녹초가 되다싶이 했다.
누우면 그냥 잠이 들었다..
새벽일찍 집앞을 지나는 경음기 소리로 잠에서 깨어나는 하루였다..ㅎ
---
오미자는 넝쿨식물이기 때문에 묘목을 심고
일정 간격으로 철근을 박고 철근과 철근사이에 망르 쳐야한다..
그래야 넝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옆지기는 오미자밭에 철근을 박기위해 작업을 하러간 어느날..
그날이 5월5일 이였던것으로 기억한다.
날씨는 흐렸었고 어린이 날이라 그냥 하루 푹 쉬자고 했다.
도시생활에서 익숙함이 남았었기 때문인지 일요일이나 쉬는 날에는
그냥 쉬고 싶었다..
이런 나는 집에 있기로하고...
옆지기는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여서 심난할텐데도 일을 끝내야한다며
밖으로 나가는데 그 뒷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왜그랬는지 편치 않았다.
오후 3시쯤 됐을까..
한순간 불연 듯 몸이 쭈삣하면서 불안한 생각이 들며 심장이 심하게 요동을 친다.
"무슨 일일까?"..덜컥 불안했다..
불안함에 바로 옆지기에게 핸폰을 했는데 받지 않았다.....
비는 부실부실 오고 있는데....연락이 되질 않으니
불안한 생각을 해서인가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초조해진다.....
얼마가 지났을까..
한참만에 차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 밖에 나가려고하니
울옆지기 얼굴이 흙빛이 되어 차에서 내리자 마자 그대로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놀란 가슴에 신발도 신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보니..
봄날에 일을해서 검게 그을린 얼굴이 하얗게 질려 말도 못하고 손가락으로 신발을 가르킨다..
"아~~발을 다쳤나?"..
신발에 손을 대려하니 놀란듯이 않된다는 손짓을 했다..
잠시 지나니 정신이 수습되는듯...
얼릉 병원을 가잖다..
사연인즉..오미자에 필요한 철근 작업을 하는데
200키로가 넘는 자르는 기계가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친것이였다.
그 시각이 3시쯤이였다니..
내가 집에서 순간적인 불안감으로 초조해있을 그때였다..
부부라는 것이 이런건가 보다..
그 기계는 장정 서너명이 힘을 합해도 못움직이는 기계였다..
비가 부실부실 오는 날이였으니 지나가는 사람도 없더란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마침 그 곳을 지나가는 이들이 있어 그들이 서둘러 발 주변의 흙을 파가며 도와줘서 발을 빼낼 수 있었다는데..
사람들이 지나갈때까지 꼼짝 못하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생각하니 목이 메였다..
신발을 벗겨보니 발은 이미 새카맣게 흙빛이 되어 퉁퉁 부어오르고 있었고..
이것을 본 나는 가슴이 철렁거렸다..."세상에나...."
안전화를 신었으니 망정이지...
순간 병원..병원을 가야하는데 마을에는 한의원과 의원뿐...
허겁지겁 정신없이 무주에 있는 병원으로 갔더니 엑스레이만 찍어보고는
엄지발가락쪽에 뼈가 쪽이 나갔는데 여기서는 수술이 않되니 ...
금산이나 대전..전주로 가란다..
이 말에 난 너무나 화가났다..
"아니 이 뼈가 떨어진것도 수술못합니까?"
"그럼 대체 왜 엑스레이를 찍어 본겁니까?"
"다리에 금이갔다면 이정도로 아프고 부어올랐겠습니까?"..
따지듯이 이야기하는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렇게 시간 낭비가 되고 옆지기가 아파하는 것에 난 화가 나 있었다..
금산이나 대전에 있는 병원으로 가란다..
도시에서 2.30분은 가까운 거리지만 고속도로로 가는 거리는 제법 길었다.
25분을 걸려 우선 가까운 금산으로 갔다..
상태를 정검하고 수술을 위해 입원을 해야한다기에
입원하기 위한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해야하는데 심장에 이상이 있는것으로 나왔다..
기계에서 심장이상으로 나왔기 때문에
자기네 병원에서는 입원을 할 수 없으니 이번에는 대전에 있는 큰병원으로 또 가란다..
순간 나는 돌아버릴것만 같았다..
아니 왜...감기한번 걸리지 않고 건강한 사람인데 ..
무슨 심장에 이상이 있다고 하는지...
난 이건 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기계 고장일것이라는 생각이였다.
모르긴 해도 그때 마음속으로 서울에서만 살아온 나는 의료시설에 관한한
이 시골을 신뢰하지 못했던터라 순간 의사에게 질문했다..
"이건 기계 작동 고장일 수 있지 않느냐.."
"기계 작동 고장으로 오진 확률은 어떻게 되느냐?..고 의사에게 따지듯 물었다..
또 대전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니 엄청 열받아서 한 질문이였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기계 오작동 확률은 몇%에 지나지 않치만 정말 심장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
이 말에 나는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사말을 자신있게 부정할 수는 없었다.
비가 오는 이 밤에 구급차를 타고 또 대전으로 가게 되었다..
비는 왜 그렇게 서글프게 오는지...
구급차를 타고 대전을 가는 내내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순간 괜한 귀농을 했나? "
"내가 귀농이라는 것에 환상만 있었던것은 아니 였는지..."
"집에 있지말고 함께 나갔을것을...."
순간적인 후회가 들며 옆지기한테 너무나 미안했다..
그렇게 대전병원에 도착하니 밤 12시를 넘고 있었다..
결과는 새벽 5시경에 나왔다..
다행이 심장초음파 결과 이상 없다고 한다..
수술은 하지 않고 시술과 기브스를 하고 한달정도 입원을 하면 된다고 해서
모든 처리는 대전에 있는 병원에서 하고 입원은 집과 가까운
금산병원에서 하기로 했다..
기계의 오작동도 인정 했지만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마음 고생.몸고생은 고생 대로 하고..
"아~~이래서 나이들수록 병원 가까운 도시에 살아야 한다는 말도
나올 수있겠구나.." ..이해가 되었다..
도시야 동네 병원들이 종합병원 있수 있지만 시골은 그러질 못하다..
이곳에서도 병원으로 가려면 대전이나 전주로 가야한다.
그러니 어찌 생각하면 나이들어 귀농한다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기도 하다.
나이들어도 아프게 되는 것은 누구나가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
옆지기는 한달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만 했다..
인생의 복병...
위기란 이렇게 계획된바 없이
그렇게 한순간에 오는것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다음)
첫댓글 에혀~~~
모든일이 순조롭게 지나가면 참 좋은데~~
많은걸 극복하시고
이제
그 많은 일들 지나간 시점에서 하나하나 되새김~~
대단 하십니다
훅하고~~
차 몰고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추운날 옷 따습게 입으시고 건강하게 지내셔요
그러게요..
산너머 산, 문열고 나가면 또 다시 열어야 할 문..ㅎ
산다는것이 이런 하나하나를 해결하며 가는것인가 봅니다..
차 몰고 나서고 싶으실 때 무주로 오셔요..ㅎ
무주 생각보다 멀지 않아요..
고맙습니다..님께서도 겨울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셔요..^^
매회 읽고 있어요~ 다치셨으니 오미자나무
기둥 세우는것은 또 어찌했을까요?ㅜㅜ
생생하게 생활을 들여다 보는듯 합니다.
대단하세요~~
다 지나간 일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귀농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을 궁금해 할 수도 있고..
나만 힘들때 다른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궁금하기도 하죠..
저역시 그랬으니까요..
매회 읽고 이렇게 댓글 달아주시니 고맙습니다.
매회 읽고 가슴 따뜻합니다
또한 두근두근 떨리는 소설같은 귀농이야기 다음회가 궁금해집니다
귀촌을 꿈꾸며 사는 일인입니다^^
충의맘님~~오랫만에 뵙습니다..
귀촌을 꿈꾸신다니 꼭 이루는 날 있으시길 바랍니다..
자연속의 삶...밖에서 보는것보다 좋은것이 많답니다..ㅎ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화님 얼마나 마음 고생을 하셨을까요!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답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순간은 힘들었지만...다 지나갔네요..ㅎ
덕담도 주시고 마음도 나눠주시니 고맙습니다..^^
읽으면서 가슴이 쿵~~~~살면서 얼마든지 있을수 있는 일이지만
얼마나 놀랐을까...
그때를 생각하면 등골이 싸~~아 합니다..ㅎ
그렇게 이일저일 겪으면서 나일 먹는건가 봅니다..
에구 정말 많이 놀라시고 아득 하셨을것 같아요
인화님 그 순간 을 생각 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지금도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기억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