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전도서 9 : 1, 11 - 12
제목: 빠른 경주자
일시: 2009. 6. 21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빠른 경주자라고 해서...
요즘 입학시험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애를 쓰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피나는 연습을 한다.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선생님을 콘탁하고 평가를 받아본다. 왜 그렇게 하는가?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합격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연습을 많이 하고 준비를 많이 했다고 해서 합격이 보증된 것은 아니고 합격의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 디플롬과 엑자멘, 혹은 마이스터 등 힘들게 학위를 따면 이제 모든 것이 다 된 것은 아니다. 플라츠를 잡아 활동을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이다. 좋은 직장을 가졌다고 행복하고 이제 안심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할 가능성이 더 커졌을 뿐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지 그런 것은 아니다.
솔로몬은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얻은 지혜로운 경험이 있다.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빠른 경주자는 그 누구보다도 우승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결승지점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빠른”이라고 했을 때 “이겼다”라는 말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와 같이 힘이 있는 자라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아니며, 정보를 수집해서 심사숙고하여 결정했다고 잘 선택한 것도 아니며, 머리를 잘 쓰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고 부자가 되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II. 이는 시기와 우연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늘 경험하는 것이 있다. 가능성을 가지고 선택한 일들과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던 일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 는 것이다. 꼭 내가 계획하는 것은 안 되는 것 같다. 웬 운명의 장난인지... 솔로몬의 고백같이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지금까지 내 계획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이때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더 철저히 계획했고 가능성이 높았을 때 더욱 절망한다. 가능성이 없었더라면 절망도 없었을 터인데. 계획을 계속 해야 하는가요? 가능성을 계속 높여 가야하는 건가요? 그러면 어쩌란 말입니까? 라는 의문이 나온다.
왜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는가? 솔로몬은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기는 내가 정하지 않은 것이다. 우연은 내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계획 속에 고려하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돌발적인 변수가 갑자기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이 갑작스런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예측을 할 수 없다. 물고기들이 헤엄쳐 잘 놀다가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하늘을 신나게 날다가 올무의 걸림같이 생각지 못한 곳에서 우리의 인생을 전면 수정해야 할 때도 있다.
시기와 우연은 빠른 경주자가 예상한 것이 아닌 변수이다. 우리 인생의 방정식에서 밝혀지지 않은 비밀의 부호 x인 것이다. 뭐가 들어가서 어떠한 등식이 성립 될른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무슨 일이 일어 날른지 예상할 수 없다라는 것 밖에 예상할 수 없다.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세계경제가 년말에 어떻게 되겠는가? 한국의 경제회복이 하반기부터 되겠는가? 주가는 오를 것인가 내릴 것인가? 환율이 좋아질 것인가 나빠질 것인가? 그래서 돈을 미리 부치는 것이 좋은가? 좀 더 기다릴 것인가? 수많은 경제학 박사가 있고 연구소들이 있지만, 제대로 예측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뉴스를 보면 어떤 기사를 올리고 나서 종종 마지막에 한 줄씩 넣는 것이 있다. 실컷 얘기하다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고 있지 않다는 둥의 말이다. 일기예보에서도 곳에 따라 소나기가 내릴 수 있다고 한다. 아주 애매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비가 안 내리면 이곳이 아닌가벼 싶고 비가 내리면 이곳인가벼 라고 생각해야 한다. 틀리면 사람들은 틀리다고 난리다. 기상청이 뭐하냐고 한다. 사실,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는가? 변덕스런 날씨가 문제이지. 그래서 올해부터는 장마예보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컴퓨터 중에 가장 최신이고 가장 비싼 슈퍼컴퓨터는 기상청에 있다고 한다. 그래도 자꾸 틀리는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그 시기와 우연은 우리가 관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살얼음을 걷는 것 같다. 빠른 경주자라도 근육에 쥐가 날 수 있고 빨리 달렸다고 싶었는데 돌부리가 있을게 뭐냐! 시험 준비를 잘 해 놓았는데, 그날 아프지 말아야 한다. 시험을 치기 위해 그 도시에 가는데, 기차가 연착하지 말아야 한다. 교수님이 연주해보라고 하는 곡이 내가 가장 자신 없는 곡이 되어서도 안 된다. 모든 가능성들은 우연과 시기로 인해 일순간에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이 전도자의 충고이다.
III. 지혜자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그러므로 지혜자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내가 빠른 경주자라고 했을 때 “빠른”이란 단어에 마음을 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빨라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유력자라고 했을 때 힘이라고 하는 단어에 마음을 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혜자나 명철자라고 했을 때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지혜와 정보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혜자는 먼저 인력으로 할 수 없다는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자신의 모든 가능성이 시기와 우연으로 일순간에 허망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미 전도서 1장 2절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인생이 헛되다는 정의부터 내리고 시작하고 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노력과 수고와 계획이 무익함을 아는 자이다. 지혜로운 자는 인생의 헛됨을 알기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헛됨을 알지 못하기에 여전히 삶의 욕망을 위해 애쓰게 된다. 전도서 5장 13절 이하를 보라.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라...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이라...” 폐단을 볼 수 있는 것이 지혜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음을 아는 것이 지혜이다.
예)“world after people”이라는 상상의 다큐멘타리를 보았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하루가 지나면 어떻게 되고 어떠하고 일년, 혹은 몇 년이 지나면 어떠해지는지 수십 년이 지나면 어떻게 변하는지를 재미나게 영상화시킨 것이다. 인간이 사라지고 나면 인간이 만든 전기는 완전히 끊겨서 밤이면 밤, 낮이면 낮이 되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은 수풀이나 나무로 밀림처럼 덮힌다는 것이다. 축구운동장도 도시도 원시림으로 덮힌다. 재미난 것은 인간의 모든 문화유산과 역사기록도 소실되어 없어진다는 것이다. 누가 파괴하지 않아도 자연 속에서 모든 것들은 저절로 소실이 된다. 최적의 환경 속에 두지 않으면 책들도 벌레가 먹고 태양빛으로 인해 색이 바래고 낡고 없어진다. DVD로 구워놓으면 영원히 갈 것인가? 최적의 상황에 놓여도 짧으면 수 십년 길면 수 백년 되면 없어진다. 아이러니하게 인류가 새로운 물질을 개발해서 저장을 하지만, 가장 좋은 기록방법은 이집트피라미드에 있는 점토나 돌에 새긴 것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도 소실된다.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이 지혜이다. 그렇게 머리 좋고 지혜로운 솔로몬의 삶의 결산이 그것이었다. 세상은 영원하지 못하고 허무하고 없어질 것이다. 세상에는 가짜와 불합리와 억울함이 가득찬 곳이다. 수고로움과 눈물이 있는 곳이다. 정의롭지 못하고 불의가 만연한 곳, 불평등이 범람하는 곳이 이 세상임을 아는 지혜가 지혜로운 자이다.
악인은 장수하고 의인은 단명하며 악인은 일이 잘 풀리고 의인은 일이 꼬이고,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누구는 열심히 일하고 굶는데, 누구는 일도 안하고 돈을 많이 번다. 하루 종일 일해도 일 달러를 채 못 버는 사람이 있고 일도 안하는데,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본다. 맨유의 로날도는 한주일에 4억 천만(30만 달러)을 번다고 한다.
IV. 그러면 지혜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2절에 보라.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라고 하고 있다. 그 말은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시기를 아신다는 것이다. 최고의 지혜는 인생의 변수 X를 알고 계신 분이다. 그 변수를 콘트롤하고 계시는 분이다. 9장 1절을 보라. 우리 인생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지혜자는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아는 자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께 맡기는 것이 최고의 지혜이다. “어떤 알지 못하는 물체가 갑자기 내게 던져져서 놀래 자빠질 뻔 했다”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자. 이것은 우리에게 해당되는 표현이다. 하나님에게는 그 문장에서 빼야 할 단어가 많다. "어떤" “알지 못하는” “갑자기” “놀래” 등과 같은 단어는 하나님께 어울리지 않는다. something 은 없다.
예)지난 슬로바키아 선교사대회에서 파우제 시간에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아내가 커피를 마시려고 막 타서 마시려는 참이었다. 나는 옆에 가서 혹시 커피 더 있을까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이것 마셔요라고 준다. 그것을 마시려고 하는데 장목사님이 오셔서 커피가 어디에 있나라고 한다. 그러니 내가 드릴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아내가 마시려고 한 것인데, 제가 주인인줄 알았더니 목사님이 가지고 가시네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목사님 왈, 가져가면 아내가 달라고 할지도 모르지... 지혜자는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고려하지 않는 것이 너무 많기에 슬퍼도 하고 초조해하기도 하고 원망도 한다. 예)어제 구역예배를 마치고 먼저 나가던 보라 이모를 좇아서 조은이가 신발을 신고 나가려고 한다. 그것은 니 생각이고... 엄마 아빠는 귀엽게 본다. 웃기고 있네 싶다. 신발을 벗긴다. 그래도 버팅기면 어떻게 하는가? 해 준다. 그러다가 달랜 다음에 다시 돌아온다. 왜냐? 결국 하나님의 주권대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사소한 것에서도 우리의 시기와 우연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른다.
지혜자는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하나님께 나의 인생을 맡기는 자이다. 그래서 시기와 우연을 알지 못하지만, 그 시기와 우연이라고 하는 기회가 왔을 때 우리는 그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알아서 즐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전3:11). 지혜자는 서핑을 즐기는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때를 탈줄 아는 자이다. 그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9장 10절을 보라.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그래서 지혜자가 귀히 여기는 것은 바로 현재이다. 전도서는 지금(Jetzt)와 여기(Hier)를 말하고 있는 지혜서이다. 하나님이 주신 때이다. 하나님이 주신 시기와 우연이다. 우리가 만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뿐이다. 과거는 지나갔다. 미래는 우리가 지금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ast is history, future is mistery. Present is gift! present는 영어로 현재라는 말도 되지만 선물이라는 뜻도 된다. 지혜로운 자는 지나간 과거를 한탄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거나 낙관하여 교만하지 않는다. 바로 지금 이곳이다. 지금 내 손에 일이 있는가? 그것에 총력을 기울여라! 지금 내게 주어진 기회가 있는가? 최선을 다해 살려라.
V. 오늘 지혜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처음 말씀으로 돌아가 보라.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나의 빠름을 믿지 말라. 나의 의지가 나를 실망시킬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라. 그와 같이 역으로 느린 경주자라고 늦게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느린 자라고 실망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뛰게 하실 것이다. 유력자라고 교만하지 말라. 그 힘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역으로 무기력한 자라고 좌절하지 말라.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라. 이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내가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지식이 있고 경험이 있다고 할찌라도 그것을 의뢰하지 말라. 그것이 지혜이다. 올바른 선택을 하고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리고 탁월한 결단이었다하는 고백을 할 수 있도록 매 순간 하나님께 맡기라. “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다.
나를 믿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 그 안에 나를 던지라. 그 어떤 것도 미래를 보증해 줄 수 없지만, 하나님은 보증하신다.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의 계획을 맡기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