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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1월 17일 주일
[(녹)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16년 11월 ‘자비의 희년’을 폐막하며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도록 선포하셨다. 이날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모범을 보여 주신 예수님을 본받아, 모든 공동체와 그리스도인이 가난한 이들을 향한 자비와 연대, 형제애를 실천하도록 일깨우고 촉구한다.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며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보살피시니,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시어 잠에서 다시 깨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날마다 열심히 사랑을 실천하며,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어 뽑힌 이들을 모두 주님 나라에 모아 주시기를 기다립시다.
말씀의 초대
다니엘 예언자는, 재앙의 때가 올 것인데,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고 한다(제1독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 때에 네 백성은 구원을 받으리라.>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2,1-3
1 그때에 네 백성의 보호자 미카엘 대제후 천사가 나서리라.
또한 나라가 생긴 이래 일찍이 없었던 재앙의 때가 오리라.
그때에 네 백성은,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2 또 땅 먼지 속에 잠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수치를,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
3 그러나 현명한 이들은 창공의 광채처럼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은 별처럼 영원무궁히 빛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14.18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3 이제 그분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판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사람의 아들은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4-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25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26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28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29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31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2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예리코의 눈먼 이에게 하신 말씀은 이웃에게 호의를 베풀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묵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자비를 청하는 눈먼 이를 곧바로 고쳐 주시지 않고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루카 18,41)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십니다. 눈먼 이는 예수님께 자신의 바람을 아룁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18,41). 예수님께서는 그가 바라는 것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형제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할 때, 먼저 그가 바라는 것을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주게 됩니다. 그것은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내 만족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애덕의 행위는 자신의 만족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상대를 위한 행위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에는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세심한 배려와 겸손이 필요합니다.
도움을 주려는 선의가 자칫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가 필요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것을 받도록 강요할 때입니다. 살레시오회의 설립자인 요한 보스코 성인은 사랑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방식으로 사랑할 때 상대는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상대를 중심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통찰입니다.(최정훈 바오로 신부)
우리의 절박한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이스라엘의 지형은 독특합니다. 해발 천미터 남짓되는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가 있는가 하면, 해수면 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도시도 있습니다. 다양한 꽃들과 식물들로 온화하고 풍성한 지역이 있는가 하면 황량하고 척박한 광야도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들르신 지역도 정말이지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리코! 지구 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자리한 도시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지구상 가장 낮은 도시 예리코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심각한 시각 장애를 안고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간의 세월이 얼마나 고달팠겠습니까? 비장애인인 우리는 상상도 못할 고통을 그는 겪고 살아왔습니다. 앞이 조금도 안 보이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눈 떠도 깜깜 눈 감아도 절망! 그 삶이 참으로 혹독하고 절망스러웠습니다.
지구상 가장 낮은 도시에서 살아가던 그, 이 세상에서 가장 가련히 살아가던 예리코의 시각장애인에게 어느 날 뜻밖의 행운이 찾아옵니다. 해방자요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코앞으로 지나가시는 소식을 전해 들은 깃입니다.
그는 직감으로 느꼈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크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수많은 군중의 말소리에 파묻혔을 법도 한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절박하고 목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의 간절함을 나 몰라라 하지 않으시고 마침내 그의 평생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오늘 우리를 향해서 주님께서는 자상하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종말의 법칙: 죽음의 법칙을 알면 생존 법칙도 보인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은 세상의 종말에 대한, 적어도 이스라엘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죽음은 생각하기 싫은 주제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묵상 할수록 더 오래 살 수 있는 생존의 방법을 터득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멸망의 징조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우선 세상의 한때 잘 나갔다가 망하게 된 여러 사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들에게서도 분명 태양과 달, 별이 빛을 잃는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먼저 한때 휴대전화 분야의 글로벌 리더였던 노키아 제국의 멸망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노키아는 자신의 명성과 기술에 안주하여 새롭게 개발되는 애플과 구글의 터치스크린 시스템을 거부하였습니다. 잠깐이었지만, 더는 그 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코닥의 멸망을 살펴볼까요? 코닥은 세계 카메라 필름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하게 되었습니다. 디지털카메라는 결국 자기 이익을 갉아 먹는 결과를 초래할 것임으로 그 기술을 묻어버렸습니다. 다른 회사들에서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하고 실용화하였을 때 그들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반면 삼성 이건희 회장이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자사 제품을 사주는 고객들에게 불량품을 내놓는 게 부끄럽지도 않으냐고 호통을 치며, “아내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1995년 삼성 휴대폰에 심각한 결함이 발견된다는 말을 듣고는 이건희 회장은 공장에서 휴대폰, 텔레비전, 팩스기 등 불량품을 모두 폐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추정 가치 약 500억 원(당시 약 5,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자신들이 만든 상품이 불타 없어지는 모습을 본 삼성 직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자기 이익만이 아닌 고객을 감동하게 하려는 마음을 회복했을 것입니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는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경영 합리화로 잉여를 많이 올려 궁극적으로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기업인의 본분이며 사회적 의무다.”(1976년 언론기고)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면 그 상품을 사용하는 사람의 이익은 잊히게 됩니다. 그러면 구매자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그러면 망하게 됩니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처음의 관심은 고객들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나약함으로 차차 자기 이익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홍익인간, 곧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이념으로 생겼습니다. 이것이 잊힐 때는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계명을 기억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이익을 조금은 희생하면서 본래의 정신을 회복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예배’라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계명을 위해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살려면 규칙적인 화형식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셋째 날에 땅에서 나무들이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 나무들이 인간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인간이 멸망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존재임을 되새겨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습니다. 해는 하루, 달은 한 달, 별은 1년 주기로 돌아옵니다. 이 규칙적인 예배와 기도가 우리를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성경에는 하루, 한 달, 1년 주기로 규칙적인 예배 규정을 수없이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 예배가 무시되는 날 종말입니다. 이것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으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입니다.
대전 ‘성심당’을 모델로 삼읍시다. 창업자 임길순 씨는 “평생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라는 정신으로 ‘성심’(예수님 마음)으로 가게명을 지었습니다. 여기서도 화형식이 있었습니다. 사업 확장을 위해 무리하게 빚을 냈다가 공장에 불이 난 것입니다. 이때부터 다시 마음을 다잡고 후손들은 창업자의 홍익인간의 마음으로 시작하여 5개의 매장으로 순이익이 3,400개 대기업 파리바게뜨를 넘어섰습니다. 지금도 그분들은 성당에 나와 기도하며 하느님과 창업자의 정신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만든 물품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괜히 그것에 에너지를 쓰지 않기 위해 그것을 파기합니다. 제 역할 수행을 위해 우리의 태양과 달과 별빛이 흐려지지 않도록 합시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며, 교황님께서 제정하신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셨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성서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픈 사람을 위해서 왔습니다.” 착한 목자의 이야기도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곁에는 가난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세품아(세상을 품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지금부터 16년 전인 2008년 명성진 목사님은 학교를 나와, 세상에 버려진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학생들은 소년원엘 들락거렸고, 본드를 흡입했습니다. 희망도 없고, 갈 곳도 없고, 고독한 아이들이었습니다. 명성진 목사님은 우연히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고, 학생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을 위해서 경찰서, 법원을 다녀야 했습니다. ‘중독은 중독으로 치료할 수 있다.’라는 신념으로 학생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음악 공연을 했습니다. 자전거로 몽골 여행을 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걸었습니다. 목사님의 진심을 본 학생들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서 튕겨 나온 학생들이 이제는 세상을 품은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자전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자전거는 바퀴가 있고, 페달을 밟아야 움직입니다. 페달을 멈추는 순간 자전거는 쓰러지기 마련입니다. 세상에서 버려진 것 같은 학생들이 ‘믿음과 희망’의 페달을 밟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학생들은 거침없이 세상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과 같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목적을 잃으면 멈추게 되고 멈추면 자전거처럼 넘어진다고 합니다.
저는 1988년, 지금부터 36년 전에 ‘돈 보스코 센터’에서 1년 동안 일하였습니다. 돈 보스코 센터는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만든 청소년 자립 직업 학교였습니다.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청소년들이 찾아왔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청소년들이 왔습니다. 돈 보스코 성인은 청소년들을 사랑했습니다. 세상에서 버려진 청소년들을 모아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돈 보스코 성인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었고, 그것이 살레시오 수도회가 되었습니다. 1988년 군대에서 제대한 저는 복학 할 동안 돈 보스코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성소국에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학생들은 돈 보스코 센터에서 ‘선반, 조립’과 같은 기술을 배웠습니다. 주일에는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저는 학생들과 함께 농구도 하고, 미사도 드리고,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주일에는 학생들과 함께 방송통신고등학교에도 갔습니다. 저는 돈 보스코 센터에서 학생들을 위해서 헌신하던 신부님, 수사님,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일하면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그때 했던 영어 공부는 복학해서 대학원 시험 볼 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놀라운 일을 체험했습니다. 20년 후인 2008년 제가 본당 신부로 갔던 본당에서 그때 돈 보스코 센터에서 함께 했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결혼해서 세 아이의 아빠가 돼 있었습니다. 본당에서는 청소년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20년 전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예전에 읽은 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글을 모르는 사람도, 세상의 지혜를 모르는 사람도, 특별한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진리의 길은, 깨달음의 길은 구원의 길은 아주 평범한 곳에 밝혀 놓으셨다고 합니다. 하늘의 별, 구름, 들의 꽃,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하느님의 진리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내가 변하는 만큼 세상은 그만큼은 변한다고 생각하면 구원의 문제도 그리 큰 숙제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후안 데 카스틸로(Juan de Castillo)
신분 : 수사, 순교자
활동지역 : 파라과이(Paraguay)
활동연도 : +1628년
같은이름 : 까스띠요, 까스띨로, 까스띨료, 얀, 요안네스, 요한,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카스티요, 카스틸료, 한스
성 로쿠스 곤잘레스 데 산타 크루스(Rochus Gonzalez de Santa Cruz)는 에스파냐의 귀족 출신으로서 1576년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Asuncion)에서 태어났다. 부모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착하고 열심한 소년으로 성장한 그는 사제직을 지망하여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23세에 마침내 사제가 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교구 사제직에 부적합하다고 느낀 그는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다가 1609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 당시는 바로 유명한 파라과이 ‘정복’이 시작될 때였다. 에스파냐는 제국주의를 앞세워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에서 가혹한 식민지 정책으로 이 지역의 원주민들을 무참히 짓밟고 통치하였다. 예수회 회원들은 그들의 제국주의에 강력히 맞서 싸우면서 원주민들의 개종사업을 전개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성 로쿠스 곤잘레스 신부는 거의 20년 동안이나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원주민들로부터는 적대감을 이겨내야 했고, 정복자인 에스파냐 당국으로부터는 공개적인 반대와 억압을 받아야만 했다.
1626년 성 로쿠스 곤잘레스 신부는 동료인 성 알폰수스 로드리게스(Alfonsus Rodriguez) 신부와 성 후안 데 카스틸로 수사와 함께 원주민을 위한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착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원주민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 로쿠스 곤잘레스와 성 알폰수스 로드리게스 신부는 현재의 브라질 남단지역인 카아로(Caaro)로 갔다. 이곳에서 헌신적인 노력을 경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지역 주술사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1628년 11월 15일 주술사가 고용한 일당이 도끼를 들고 성당에 잠입해 그들을 살해하고 성당에 불을 질러 시신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카아로에 있지 않았던 성 후안 데 카스틸로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고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성 로쿠스 곤잘레스와 동료 순교자들은 1934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파라과이의 순교자로 그리고 남아메리카 최초의 순교자로서 복자품에 올랐다. 1988년 5월 1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파라과이의 아순시온에서 그들을 시성하였다. 한편 성 로쿠스 곤잘레스의 생애는 영화 ‘미션’(Mission)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성녀 엘리사벳(Elizabeth)
신분 : 왕비
활동지역 : 헝가리(Hungary)
활동연도 : 1207-1231년
같은이름 : 엘리자베스, 엘리자벳
헝가리의 프레스부르크(Pressburg)에서 국왕 앤드레 2세(Endre II)와 왕비 제르트루다(Gertruda)의 딸로 태어난 성녀 엘리사벳(Elisabeth)은 14세 되던 해에 튀링겐(Thuringen) 영주 헤르만 1세(Hermann I)의 둘째 아들인 루트비히 4세와 결혼하였다. 비록 이 결혼이 정치적 이유로 이루어졌지만 화목하고 평화스러웠다고 하며 6년 동안을 서로 만족스럽게 살았다. 그들의 집은 아이제나흐(Eisenach) 근교의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에 있었고 자녀는 세 명을 두었다.
그러나 1227년에 루트비히 4세가 풀리아(Puglia)로 출정하는 십자군에 가담하였다가 9월 11일 이탈리아 남동부 오트란토(Otranto)에서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그녀는 온갖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다가 자선활동에 전념하기 위하여 집안의 많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자녀들을 위하여 대비책을 마련한 뒤에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되어 세속을 떠났다. 이때부터 그녀는 헤센(Hessen)의 마르부르크(Marburg) 성에 살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데 헌신하였다.
성녀 엘리사벳은 마르부르크의 콘라트(Conrad)로부터 영적 지도를 받았는데, 그녀의 영적 생활은 날이 갈수록 풍요롭게 변화되었다. 누구나 놀랄 정도로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으며 깊은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감쌌던 것이다. 그녀는 운명하기 4년 전에 자신을 쫓아냈던 시동생으로부터 마르부르크 성으로 돌아올 허가를 받았고 또 그녀의 아들에게 백작을 승계시킬 수 있었다.
여왕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직접 음식을 날라주고 옷을 지어 준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녀는 독일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성녀가 되었다. 그녀는 불과 24년밖에 살지 못하고 마르부르크에서 운명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작은 형제회 재속 3회의 수호성인으로 높은 공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는 1235년 5월 28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14세기 이후 엘리사벳의 성화는 망토에 장미꽃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려고 몰래 빵을 감추고 나가다가 남편에게 들키자 그 빵이 장미꽃으로 변했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빵 제조업자와 빵 집의 수호성인이다.
성 그레고리오(Gregory)
활동년도 : 213-270년?
신분 : 주교, 선교사, 기적자
지역 :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
같은 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타우마투르고, 타우마투르구스
소아시아 폰투스(Pontus)의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의 이방인 가문에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 타우마투르구스(Gregorius Thaumaturgus, 또는 기적자 그레고리오)는 훌륭한 집안의 자녀답게 그곳에서 법률을 공부하였다. 233년 그는 동생인 성 아테노도루스(Athenodorus, 10월 18일)와 함께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레바논의 베이루트(Beirut)로 가려 했으나,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 갔을 때 오리게네스(Origenes)를 만나 결국 그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리게네스에 의해 세례를 받고 개종하였다. 5년 동안 오리게네스의 문하생으로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그는 선교사로서 폰투스로 돌아왔다.
이때 그는 아직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네오카이사레아의 주교로 임명되어 거의 30여 년 동안이나 지역 주민들의 개종사업에 전력을 다하였다. 그는 교회의 축제일에 세속적인 흥미를 가미시키는 방법으로 그리스도교 전통을 대중화시킨 인물로서 유명하다. 또한 그는 수많은 신학논문들을 남겼고, 그의 높은 인기 때문에 '타우마투르고' 즉 '놀라운 일을 하는 사람'(기적자)이란 별명을 얻었다.
성 후고 (Hugh)
활동년도 : 1140-1200년
신분 : 주교
지역 : 링컨(Lincoln)
같은 이름 : 위고, 후꼬, 휴스
아발론(Avalon)의 성주 빌리암(William)의 아들인 성 후고(Hugo)는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의 아발론 성에서 태어났으나, 8세 때에 어머니 안나(Anna)를 잃고 빌라드-브느와(Villard-Benoit)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는 19세 때에 부제로 서품을 받고 성 막심(Maxim)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1160년에 그랑드 샤르트뢰즈(Grand Chartreuse) 수도원을 방문한 뒤에 그는 카르투지오 회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그곳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10년 후에 그는 카르투지오회의 재정담당이 되었고, 1175년에는 잉글랜드(England)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의 성덕과 학덕에 대한 명성은 전 영국에 퍼졌고, 그의 영향력 또한 점점 커졌다. 이 때문에 그는 거의 18년 동안이나 공석 중이던 영국 잉글랜드 중동부 링컨 교구를 맡아 교구의 신앙을 일신하였는데, 이때 보여 준 그의 지혜와 정의는 너무나도 유명하였다. 그는 잉글랜드에 사는 유대인 박해정책을 반대하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1200년 11월 17일 런던(London)에서 사망하였고, 1220년 교황 호노리우스 3세(Honori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