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디즘 nomadism
2010년 3월 10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교 교정에 대자보가 붙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대자보에서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인 김예슬은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 하면서.”라고 썼다. 김예슬은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라고 말하며,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드는 대학을 떠난다는, 나는 ‘김예슬 선언’을 정착민들을 향한 노마드의 외침으로 이해했는데, 이것은 당연하게도 이 사회에 예사롭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김예슬은 수많은 젊은이들은 노동-기계로 양성하는 국가의 포획 장치인 대학에서의 탈주를 선언한다. 이것은 대학이라는 영토에 지층화된 제 삶을 탈영토화 하겠다는 선언이다. 어디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사육에서 방목으로, 국가-기계의 포획에서 질료-운동의 흐름으로! 그것은 일찍이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나는 내 편한 대로 걷고 내 맘에 드는 곳에서 멈춰 서고 싶다. 돌아다니는 삶이 내게 필요한 삶이다. 화창한 날씨에 아름다운 고장에서 서두르지 않고 맨발로 길을 나서서 한참 가다가 마침내 기분 좋은 것을 얻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모든 삶의 방식들 중에서 내 취향에 가장 맞는 것이다.”(루소, 『고백록』)라고 했던, 내 몸과 자아에 꼭 들어맞는 삶의 방식으로의 이동일 터다.
1940년 9월 26일에서 27일로 이어지던 밤, 스페인 국경 부근의 포르부라는 작은 마을에서 발터 벤야민은 죽을 만큼 많은 모르핀을 입에 털어놓고 자살한다. 벤야민은 자살하던 날 밤 아도르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상황을 끝내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소.”라고 썼다. 노마드 지식인인 발터 벤야민은 제 발가벗은 자아를 방어할 수 없는 지점에서 탈주하려고 월경(越境)을 시도하지만, 그게 실패로 돌아가자 마지막 선택으로 자살을 한 것이다. 사회의 규준들, 권력의 표준에 저항하며 영토의 경계선 너머로 떠나는 자들은 국가 권력의 처지에서 보자면 잠재적 전복자이거나 파괴자들이다. 그들은 꿈과 자유를 찾아 떠난다. “길은 우리를 어딘가에로 데려다준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그들은 항상 길 위에서 사유하며 길 위에서 산다. 길은 일렁이는 바다이고, 그들의 삶은 오디세우스의 항해인 것이다. 그들에게 망명자, 이주자, 전향자라는 이름이 붙지만, 노마드는 그 모두를 포괄하는 명칭이다.
20세기가 정착민이 세운 문명의 시대였다면 새로운 세기는 끊임없이 떠도는 자들이 만든 문명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노마디즘의 세기를 맞은 것이다. 오늘날 5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일이나 정치적인 이유에서 태어나고 자란 땅을 떠나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그들을 이민자, 망명객, 탈향민, 노숙자,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른다. 그보다 더 많은 10억 명의 사람들이 자발적이든지 아니면 어떤 불가피한 목적에서든지 여행을 한다. 날마다 집에서 직장으로 출퇴근을 하는 도시 노마들에게는 이동이 노동 조건 자체이기도 하다. 노마드들은 일정한 곳에 머물러 사는 사람들에게 왜 떠나지 않는가 라고 묻는다. 그들은 “만들어진 길에서 벗어나 움직이고, 떠돌며, 다른 곳을 사유”(니콜 라피에르, 『다른 곳을 사유하자』)한다. 떠도는 자들에게 “점유권,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 자신의 것들에 둘러싸인 자기만의 공간, 자기가 속한 세계에서 인정받는 어떤 위상”(니콜 라피에르, 같은책)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노마드들은 집이나 토지가 아니라 불, 지식, 제례의식, 이야기, 미움, 회한과 같이 가볍고 휴대하기 좋은 것들만 갖고 움직였듯 오늘의 노마드들도 크고 무거운 것들은 버리고 떠난다. ‘비결정성과 변인의 지대’로, 혹은 ‘모험 지대’로. “나아가 이러한 움직임은 어떤 아찔한 장소, 비어 있는 공간, 이미 지나간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 사이의 틈새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고, 비결정성과 변인의 지대 혹은 표지판을 아직 세우지 않은, 모호한 정체성들의 모험 지대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킨다.” 과거에도 노마드들은 있었다. 수렵인, 유랑 농경민, 대상(隊商)들, 선원, 순례자, 해적, 걸인, 추방자들, 계절노동자들은 다 노마드의 범주에 든다. 현대에 와서 정치 망명자들, 여행자, 예술가, 히피, 지사 근무자들, 비디오게임 중독자들, 휴대전화나 인터넷 사용자들도 노마드의 윤리와 문화의 범주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자크 아탈리는 노마드를 하이퍼노마드와 인프라노마드로 나눈다. 하이퍼노마드들은 예술가, 노마드적 자산 보유자, 특허권 또는 노하우의 보유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수천만 명에 달하며, 세계를 지배하는 네트워크를 만들거나 실제와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식민지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한다. 인프라노마드들은 빈곤층 노마드들인데, 이들이 인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은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 이동한다. 그들은 호화스럽게 사는 노마드의 영토나 길로 진입하려고 시도하거나 지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크고 적은 분쟁과 전쟁을 치를 수 있다. 중앙아시아, 지중해, 카리브 해 등이 전략적 쟁점 지역으로 떠오를 것이다. 인프라노마드들은 항상 세계 변동의 주요 추동력이자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의 노마드들이 만들어낸 중요한 것들은 “불, 사냥, 언어, 농경, 목축, 실발, 옷, 연장, 제식, 예술, 그림, 조각, 음악, 계산, 바퀴, 글씨, 법, 시장, 세라믹, 야금술, 승마, 배의 키, 항해, 신, 민주주의” 들이다. 그들은 미래의 정착민들이 발명하도록 “국가, 세금, 감옥, 저축, 총, 대포 화약” 등만을 남겨 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국가들이 자리를 잡고 권력을 강화하면서 국경이라는 장벽을 만들어 이동을 통제한다. 몽고족, 인도유럽인들, 투르크인들은 한때 유목민에서 정주민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그들은 성벽과 보루를 쌓고, 국경과 관료 제도를 고착시키며 정주성 권력으로 번성한다. 그들은 돌아다니는 사람을 잠재적 파괴자들로 규정한다. 그래서 국가들은 이동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관리하기 위해 신분증 제도를 고안해낸다. 그런 맥락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에서 국가의 근본 과업의 하나로 “자신이 통치하는 공간에 홈을 파거나, 매끄러운 공간들을 홈 패인 공간에 복무하도록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정착민들은 땅을 소유하고 경작하며 거기에 제 삶을 고착시킨다. 반면에 유목민들은 땅을 갖지 않고 경작하지도 않는다. 유목민들은 홈 패인 곳에 제 삶을 고착시키지 않고 구획되지 않은 매끄러운 땅 위를 미끄러져 달아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그 사실을 “정착의 공간은 벽, 울타리, 울타리 사이의 길들에 의해 홈 패인 반면, 유목적 공간은 매끄럽고, 궤적들에 의해 지워지고 치환되는 ‘특질들 traits’에 의해서만 표시된다.”라고 말한다. 국가의 정치권력은 사람과 물자, 혹은 상업과 자본의 흐름과 속도를 제한하고, 조절하며, 관리한다. 도로와 법을 통해 통제하는 권력으로(들뢰즈/가타리 식의 용어로 말하자면 매끄러운 공간에 홈을 파서) 흐름의 순환, 속도, 운동을 장악한다. “도시의 대문들, 세금 징수와 의무는 대중의 유동성, 이주민 무리(사람들·동물들·물건들)의 침투력에 대한 장벽이고 필터”들이다.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이 정착민이면서 동시에 노마드로 살아야 한다. 더 잦은 이민, 출장, 여행들은 노마드적 삶의 징표들이다. 미래에는 “어쩌면 자기 기억을 변형시키거나, 다른 존재가 되거나,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여행을 하거나, 태어날 곳을 정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새로운 모델이 욕망을 자극하면 곧바로 자기 자신은 노마드적 사물로 내버려지거나 하는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자크 아탈리,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불가피하게 세계는 날이 갈수록 더욱 더 노마드화 할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시장, 민주주의,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노마드적 환경 속에서 삶을 꾸려야 한다. 노마드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임이 분명하다. 잘 살기 위해서 우리는 몸과 의식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지금까지 세계를 움직여온 정착민적 가치와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쇄신과 변화를 강조하는 노마드의 대안적 삶의 방식에 맞게!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들뢰즈/가타리, 『천 개의 고원』, 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
이진경, 『노마디즘』1, 2권, 휴머니스트, 2002
자크 아탈리,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이효숙 옮김, 웅진닷컴, 2005
김예슬, 『김예슬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느린걸음,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