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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으로 아픈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여행 (4)>
『아픈 가족의 보호자라는 이유로 감당해야 하는 상실감 결핍들...』
- 잘 견딘다는 것은 안으로 병들고, 오래 견딘다는 것은 많이 상실하는 중이라는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들었어?”
“뭘?”
“전에 ㅇㅇ호실에 있던 친구, 왜 의정부에 있는 병원으로 옮겼잖아.”
“아, 그래! 생각났어.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된 친구!”
“그 친구 그 병원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밤에 자살했데...”
모두들 놀라고 아는 사람들은 마음이 무거워져서 웅성거렸다. 이어서 알려진 속사정은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까지 참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는 교통사고로 보상을 꽤 받았지만 그 돈으로 평생을 변변한 직장도 가질 수 없이 살아야하는 불안에 늘 괴로워했었다. 더구나 아직 30대 후반인 그에게 재활병원을 떠돌면서 산다는 것은 또 다른 고민을 안겨주었다. 결국 그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에게는 아직 아이도 없는 젊은 아내만 있었다. 보상금과 조금의 재산이 있었지만 까먹으며 평생을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진 재신과 보상금을 전부 아내의 이름으로 돌리고 법적으로 이혼을 했다. 그리고 기초수급자가 되었고, 병원비와 생활비도 일부 지원받게 되었다. 물론 아내와 의논한 일이었다. 이후 젊은 아내는 이혼으로 되어있어 공개적으로 간병을 할 수도 없었고 다른 일을 하면서 한동안 유급 간병인을 두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젊은 아내가 자기 앞으로 된 현금과 재산을 전부 가지고 사라져버렸다. 처음에는 그저 바쁜가보다 하다가 계속 소식도 없고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된 그 친구는 어느 날 저녁에 비어있는 학교 운동장으로 휠체어를 밀어달라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소주를 몇 병마시고 자살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 소식을 들은 전신마비 중증환자 중 어떤 이는 그것도 부러워했다. 수저도 들지 못하는 그는 가족이 도와주지 않으면 자살도 불가능했기에.... 참 이상한 세상이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남들 앞에서는 공개적으로 말 하지 않았지만 자기들끼리 나누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젊은 아내가 돈만 탐이 났으면 어차피 그 돈은 자기가 가지고 관리하면서 쓸 돈인데 도망갈 이유가 없었다. 그 남자를 잘 알고 곁에서 한참을 같이 지내본 사람은 이미 짐작하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 젊은 나이의 여자가 혼자서 이미 망가져버리고 아무 낙이 없는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가기 힘들 것이라는 걸.... 아무 희망과 기대도 없이 장래를 상실하고도 남아서 살기에는 쉽지 않아보였다는 것을.
봄 가을 계절마다 다들 다니는 꽃놀이도 갈 수 없고, 영화 한 편을 보려고 해도 남의 도움이 필요한 불편을 감수하다보면 아예 접는 게 일쑤였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나이에 한창 누리고 살 부부사이의 성생활도 불가능해졌다는 것. 더 막막한 것은 신경손상에 사고여파로 자녀를 가지는 것도 불가능해졌다는 진단이었다. 그러니 가깝게는 즐거운 생활과 멀리는 꿈같은 미래가 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늘 쉬는 날마다 병원에 매여 장애를 가진 남편만 보며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젊은 시절의 여자에게.
그 이야기를 수군거리는 모두가 멀리 있는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자기들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 힘들 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아예 결혼을 포기한 총각 처녀들이 수두룩했다.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도 잦은 부부싸움으로 호락하지 않은 부부사이를 유지하는 커플도 참 많았다. 환자로 누운 당사자의 고충이 첫 번째로 힘들고 괴롭겠지만 덤으로 인생의 모든 계획과 자유가 날아 가버린 남은 배우자의 고충도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 영화 속의 이 남편에게 던져야 할 것이 과연 돌일까? 아니면 공감에서 나오는 면죄부일까?
시한부를 선고받고 투병하는 아내를 돌보면서 아내에게서 생기는 상실을 다른 여자에게서 채우는 생활을 반복하는 한 남자의 실화를 다룬 영화가 있다. 바로 <카르페 디엠>.
사실 이 실화는 영화 제작 전에 이미 네덜란드의 국민적 베스트 셀러로 ‘네덜란드 올해의 책’에 선정되며 2006년 출간 즉시 100만부 돌파한 베스트 셀러 [사랑이 떠나가면(원제:A Woman Goes To Doctor)]였다. 이 책의‘레이 클룬’ 작가가 실제 암으로 아내를 떠나보낸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여러 평가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한 남자의 실존적 고뇌를 다룬 21세기형 새로운 러브스토리로 이 책은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전세계 30여개 국으로 번역되며 큰 화제를 몰고 왔다. 영화 <카르페 디엠>은 제10회 렘브란트어워드 작품상, 남ㆍ여우주연상, 주제가상 4개 부문을 석권했으며 네덜란드에서는 역대 최단 기간 100만 관객 돌파를 기록하며 ‘다이아몬드 필름상’을 수상하였다.
이 영화의 내용, 작가의 행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찬반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애를 쓰는 사랑이 감동이다’부터 ‘어떻게 죽어가는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와 성유희를 즐기며 놀아나느냐’ 라고 비난을 하는 사람까지. 그것은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길들여진 순애보 같은 로맨스를 벗어났기 때문일 거다. 우리는 죽어가는 배우자를 둔 남편이나 아내에게 성자에 가까운 헌신과 순결을 바라며 박수를 보내는 것에 익숙했기에, 솔직한 남편의 방황하는 심리상태와 선택을 보면서 좀 당황스러운 것이다.
결혼 전부터 자유분방하고 여러 여자들과 성생활을 인생의 즐거움으로 살던 남자, 아내가 된 여자를 만나면서 결혼을 하고도 여전히 바람을 피우며 살던 남자였다. 그러나 아내와 딸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점점 바람기를 줄여가던 그에게 아내의 유방암 진단, 항암과 방사선 치료과정의 고단함은 참기 힘든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솔직한 사랑으로 아내를 보살피던 그에게 아내가 펑크를 내버린 것의 결핍은 견디기 힘들었다. 바로 둘의 정열적인 부부성생활. 특히나 부부가 죽이 맞아 뜨겁게 나누던 성생활의 공백은 남편인 그에겐 특히나 힘겨웠다. 연신 토하고 늘어지는 아내와 잠자리를 할 수도 없게 된 그는 사투를 벌이는 투병의 환경 속에서 긴장과 분노, 괴로움이 폭발직전이 되었다. 어쩌면 완전 밀폐된 스트레스로 터져 죽든지, 막다른 담에 구멍을 뚫어 탈출해서 살든지 하나를 해야만 했다.
그러다 그는 그림 그리는 여자 로즈와 만나게 되고 뜨거운 성생활로 폭발의 위험을 풀면서 견디게 된다. 두 개의 생활이 한동안 그렇게 지속되었다. 남편으로 아내 곁에서 감당하는 의무적인 간병과, 미칠 것 같은 심정을 새로 만난 파트너 로즈와 성적행위로 풀어놓는 외도의 생활. 아내가 완쾌진단을 받았을 때 아내의 요청으로 성적 파트너 로즈와 헤어지고 중단되었던 이중생활은 결국 아내가 재발하면서 다시 시작되고 결국 환자가 스스로 선택한 안락사로 임종할 때까지 계속 된다.
과연 그의 행적들이 그걸 본 100명이면 100명에게 돌을 맞을 만큼 추악한 일탈로만 보아야 할까? 50명쯤이나 혹은 몇 십 명은 다른 시각에서 이해와 안타까운 동조를 하지는 않을까? 누구나 겪는 상태, 욕구불만과 결핍의 문제를 다만 그는 실행으로 선택하고 그 모습을 그대로 솔직히 책으로 고백했다는 것이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아닐까? 꽤 많은 경우 그 결핍을 몸부림치다가 그렇게 하는 게 세상의 흔한 풍조다.
물론 이 영화기 실화와 자전적 책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성행위 표현이 자주 나온다. 그 상황이 중심 주제라 피할 수 없다보니 부득히 청소년 불가 19금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종교를 배경이나 바탕에 두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인 관점이나 신앙적 측면에서는 그다지 추천의 대상도 아니다. 신을 향해서보다는 나약하고 방황하는 인간적 위태로움을 솔직하게 조명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을 뿐이다. 안락사를 선택하는 여자의 마지막도 여러 찬반을 낳게 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상실과 결핍에 견디지 못하는 환자가족이 겪을 위기를 감추지 않고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 신앙인은 애쓰다가도 견디지 못하고 흔들리면 큰 비난을 받는다. 비신자는 그럴 만도 하다고 동정을 받기도 하는데...
30대의 마지막 해에 아프기 시작한 아내, 40대의 중간에 있던 내게도 병원에서 지내는 투병과 간병은 여러 고통을 불렀다. 보통은 모든 부부가 자연스럽게 가지는 사랑의 나눔, 성생활을 할 수 없는 것도 하나의 문제였다.지극히 정상이고 건강했던 아내와 남편으로, 신체적으로 주기적으로 몰려오는 그 당연한 욕구를 어떻게 불순한 본능이라고 비난을 할까? 그러나 환경여건도 안되고, 아내의 건강상태도 허락하지 않는데도 틈만 나면 눈에 들어오는 유혹들 충동들은 내놓고 말도 못하는 지독한 괴로움이었다.
내가 신앙인이 아니고 어떤 남정네가 그 문제로 괴로워한다면 아마도 나는 그에게 돈으로 해결할 어떤 방법이라도 권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억누르기만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거나 통째로 가정을 팽개치고 등 돌려 버리면 가정이 왕창 파괴되는 더 큰 불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 달래고 인내하면서 지극히 순애보적인 생활을 유지한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걸 누가 강요하며 한다고 될까싶다.
그런 점에서 나도 많이 뿌리치느라 참 힘들면서도 등 떠밀려 참고 넘겨가는 중이다. 내 속의 고귀한 성품이나 능력이라기보다는 겁도 없이 잘 견딜 것 같이 내뱉은 고백들 때문에, 그래서 당연히 따라오는 감시와 엄중한 기대에 힘입어, 또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뭐 그래서 요행히 살아진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어느 남편은 나에게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 하냐고 물었다. ‘그냥, 이럭저럭...’
정말 심정적으로는 수도 없이 무너지고 패배했다고 나는 인정한다. 밤거리를 걸으면서 영화 <카르페 디엠>의 남자 주인공처럼 그냥 빠져들고 싶은 충동으로 기웃거리기도 했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다른 여자들에게서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접근을 했다. 눈 맞아서 도망이라도 가자고, 다만 건강하다는 한 가지 이유로 아무 여자라도 안고 싶었고, 자고 싶었고, 돌봐야한다는 부담 없이 늘어지게 잠에 빠져도 들고 싶었다. 세상의 많은 비슷한 사람들이 그러고 살아가지않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무슨 다른 힘으로 사는 걸까? 너무도 궁금해진다.
신앙인이 왜 단호하고 미련 없이 극복하지 못하냐고 야단 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신앙인이라서 더 견디기 힘들고 고통스러운 부분도 있다. 신앙인들은 늘 사랑의 마음을 가지려고 애쓰며 생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 옛말에도 금슬이 좋으면 자녀가 많다고 했다. 그것이 다복이라고도 했다. 부부간의 사랑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사랑의 나눔도 잦고 아이들도 많아지니 당연한 현상일거다. 그런데 갑작스런 단절로 막힐 때면 금단현상과 같은 강도가 좀 더 심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성적 결핍으로 생기는 한 분야일 뿐이다. 어디 사람이 누리고 사는 종류가 그것 하나일까? 그러니 상실할 종류도 여러 가지가 맞다. 성적 결핍은 아마 열 손가락 중의 한 손가락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해마다 봄이 오면 녹음기처럼 말했다. ‘산수유가 밉다.’라고, 봄마다 했으니 봄마다 가슴앓이를 하고 가을에도 그러했다. TV에 여행 프로그램이 나오면 여행을 가고 싶어 몸살이 나고 못가는 신세가 딱해 우울해지면서 공연한 투정을 부렸다.
- 환자보다 더 우울해지는 가족, 멀티 고민에 빠지는 보호자
일본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우에노 치즈코가 쓴 『아들이 부모를 간병한다는 것』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간병하는 남성, 그들은 자신의 실태를 잘 말하지 않고 타인의 개입을 꺼린다. 그로 인해 사회에서 고립되기 십상이다.’라고. 목록 중에는 이런 소제목도 있다. ‘보통’ 사람으로 살 수 없는 생활‘ / ‘며느리 역할’이라는 족쇄/ 계속 일할 수 없게 되는 시기 / 고립되기 십상인 간병하는 아들 / 등. 제목자체가 어떤 상태를 말해준다. 불가능한 ‘일상’ , 족쇄, 고립, 일할 수 없는 상태...
최근 국립암센터에서 암환자 가족 3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암환자 가족 대부분이 매우 심각한 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병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우울증 발생 위험도가 2배나 높다. 간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 경우 2.7배 높아진다. 직접 암환자를 돌보는 가족 3명 중 1명은 심각한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고 나왔다.
환자 간병에 따른 신체적 부담과 함께 환자의 상태 악화, 죄책감, 긴장과 같은 심리적 부담, 병원비 증가와 수입 감소 등 경제적 부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사회적 부담 등이 우울과 직결된다. 전문가들은 암환자를 돌보다 보면 정작 자신의 건강에 소홀해지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거나 직장을 상실하기도 하는 등 때로는 암환자보다 가족이 더 우울한 경우도 있다고 조언했다.
- 중증 아내를 돌보느라 엄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는 불효가 되어버린 상실감.
바깥 사회생활이나 꿈꾸는 미래를 못사는 것만이 아니라 안쪽, 그러니까 가족이나 친인척의 경조사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고립이 된다. 나도 아픈 아내를 돌보느라 정작 어머니가 위독하다는데도 갈 수가 없었다. 사람구실을 못하며 사는 입장, 마치 버러지가 된 심정이었다.
“...엄마가 좀 전에 돌아가셨어”
“......”
“형,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 오래 고생 안하시고 편히 임종하셨어,”
그렇게 동생이 전화로 전해 온 엄마의 임종, 그것이 엄마와 나의 이별이었다. 아내는 일산에서만도 3년째 병원생활, 엄마는 울산에서 5년째 병원생활, 나의 사랑하는 두 여자는 그렇게 각각 병원생활이 일상이 되어 살아가는 중이었다. 한 때는 충주에서 한집에 살며 나물 캐고 채소 키우며 한 솥 밥을 먹으며 살았었는데...
엄마가 먼저 당뇨와 파킨슨으로 입원,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아내의 난치병으로 또 병원에서 24시간 간병에 붙들리면서부터는 엄마는 전화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병원 복도에서, 치료실에서 전화로 간간히 하는 말은 ‘미안해 엄마, 좀만 더 버티고 기다려줘, 곧 갈께...’ 그게 전부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날 아침, 군무원으로 멀리 강원도에서 근무하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아무래도 어머니가 안 좋아지셔서 울산으로 내려 가봐야 할 것 같아, 못갈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혹시나 싶어 연락했어, 갈 수 있으면 들러서 가려고, 가기 힘들지?“
“그러게, 바로 사람 구하고, 아내를 맡기고 내려가기 쉽지 않으니...”
“그럼 가서 연락할게,”
그렇게 전화는 끊고 종일 불에 데인 사람처럼 동동 구르고 보내던 중 오후 3시에 마침내 소식이 온 것이다. 마음은 미어지는데 눈물은 한 방울도 안 나오고... 어쩌면 운다는 것조차 할 자격이 없는 아들이다 싶었다. 무슨 아들이 엄마가 그 마지막 몇 년을 병상에서 힘들게 보내는데 명절에도, 생일에도 얼굴 한번 안 보여주었다는 말인가?? 임종 연락이 와도 가보지도 못하는 그게 무슨 아들이라고...
전화 몇 통으로 형제들에게 대신 ‘미안하다, 미안하다,’ 엄마에게 못한 말 대신하고 병원 근처 공원으로 숨어들어갔다. 새벽 두시가 되도록 산길을 걷다가 공원 벤치에 앉아 하늘 보며 커피만 마시고... 또 밤 길거리로 나가서 텅 빈 도시의 아스팔트를 마냥 걸었다. 며칠이 지나도 몽롱한 침묵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이러다간 눈물도 없는 3년 상 치르겠다 속으로 염려하며 엄마에게 편지하나 썼다.
(두 번째 탯줄을 끊고 소천하신 엄마에게)
나 태어날 때 기다리며 들여다보시며 몸의 탯줄을 끊으신 어머니.
이 세상에 온 생명을 홀로 반겨주신 어머니가 오늘은 떠나셨습니다.
나 태어난 후 탯줄 끊고 오래 마음 졸이며 살다가 이제 마음의 탯줄도 끊으셨습니다.
무슨 잘못이 내게 많았는지 발이 묶여 임종소식을 듣고도 못갑니다.
올 때는 어머니가 반겨주셨으니 가실 때는 내가 배웅 해드리는 게 도리인데 그리 못합니다.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도 못가고 임종하셨다는 연락을 받고도 못 갑니다.
사람 구실을 못하고 아픈 중입니다.
또 한명의 사랑하는 여인 아내가 난치병으로 침대에서 몇 년을 등을 붙이고 삽니다.
두 시간 이상을 벗어나기 힘들게 하는 중이라 나보다 더 슬피 우는 아내를 보기만 합니다.
오고 가는 생명 내 힘으로 안 되는 거 알지만 도리가 아님에 가슴 찢으며 피 흘립니다
이 밤이 지나고 내일, 그 다음 날도 지나면 흘러간 강물처럼 모든 게 지나가겠지요?
지금 세상은 꿈쩍도 않고 하늘 어디 새는 곳도 없네요.
주위 사람들 얼굴색 변한 사람 하나 없이 웃고 먹고 끔찍하도록 아무 일 없네요.
고개 들어 올려 본 하늘 저 어디쯤 이승의 질기던 고통 벗어놓고
휘적거리며 가시는 어머니 보일라나 기웃거려보지만 흐린 구름만 무심하게 흐릅니다.
어머니 부디 평안하소서. 사랑할 줄 몰라서 못해드리고
알만하니 형편 안 되어 못해드린 불효자식 용서하시고요
정말 어머니 사랑했어요. 아시지요?
이천십일년 삼월 스물아홉날에 어머니 보내드립니다. - 2011.3.31. 아들
그랬다. 한 분뿐인 낳아주신 어머니의 위독한 소식도 맘에만 담고, 돌아가셔도 마음에만 담고, 몰염치도 담고 슬픔과 회한도 마음에 꼭꼭 담아야 했다. 그렇게 아픈 환자의 가족으로 보호자로 산다는 것은 바깥 안쪽 가리지 않고 사람구실을 하지 못하게 한다. 무슨 재미거리만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사람의 도리도 못하게 한다.
- 일상생활의 행복에서 추방당한 사람들, 그래도 일상인 하루씩을 살아서 버텨야 한다. 희망을 가지되 기대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우며...
일상생활의 평안에서 추방당한 사람들, 그들이 살아내야 하는 모든 일들이 서러움이고 외로움이고 고단함이다. 요셉은 부모와 형제들과 평온한 가정생활을 보낼 수도 있는데 형들의 미움을 받아 버려졌다. 일상생활을 모두 상실당하고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힘든 것이었다. 다윗도 풍잔노숙 도피생활을 하면서 일상을 사는 행복에서 추방당했다. 무슨 천벌 받을 욕심을 내다가 그런 것이 아니다. 민족과 사울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억울한 사정이었다. 무려 십년을 넘게 그 세월을 보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 눈이 멀었다가 나아서도 다소 지방에서 13년을 은둔하다시피 살아야 했다. 유배자처럼. 바울이 예수를 전하는 사람을 잡으러 다닐 때 무슨 악랄한 현상금 사냥꾼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열심인 하나님의 종이었다. 자기의 기준으로 그들이 신성을 모독한다고 굳게 믿어서 그렇게 열심이었던 것이다. 어찌되었던 그도 오랜 일상을 상실한 사람으로 힘겹게 살았다.
그들은 모두 무던히도 잘 견뎌내었다. 가장 큰 힘은 변함없는 하늘의 돌보심이었고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고,순종과 자신들의 연약한 자리를 분명히 알고 살아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높은 인간적 가르침이나 슬로건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일상으로부터 추방당해서 괴로운 시절을 보내는 사람들을 달래주지도 못하고 보상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속 어디에서 그런 헤쳐 나갈 초인적 능력이 있겠는가? 성적 욕망 본능의 끈질긴 유혹하나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는 인간성정은 위태롭기만 한데...
그러니 섣부른 인내심과 자력으로 완벽하게 이겨내겠다는 목표 같은 것은 절대 세울 일 아니다. 그것은 도박이고 반드시 무너지는 굉장히 위험한 시행착오다. 또 믿음은 불가능이 없다는 신앙 만능 요술봉을 휘두르지도 말일이다. 불가능이 없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지 우리의 주문은 아님은 분명하다.
아픈 가족과 그로 인해 생긴 환경들, 악조건들이 우리를 흔들어 놓는다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늘의 도움을 끝없이 간구하면서 그럼에도 위험에 내던져진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당연히 따라오는 어려움들에 얻어맞고 멍들고 피 흘림도 감수해야한다.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도록 믿음을 걸고 도박을 시도할 것이 아니라 넘어지면 일어날 힘을 주시라고 할 일이다. 잘못했을 때는 다윗처럼 베드로처럼 용서를 구하고 다음 날을 다시 제대로 살기 위해 애쓸 일이다. 간병이나 신앙이나 삶이나 모든 법칙이 그렇지 않을까?
스탠리 하우어워즈의 경험에서 권하는 말 한마디를 다시금 새겨본다. 아픈 가족에게든지 자신에게든지 희망은 가지되 기대하지 않고도 하루씩 사는 각오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정신질환자와 함께 산다면 희망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고 사는 방법을 익히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