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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셔터 아일랜드 - Shutter Island >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병자들이 수감되어 있는,
보스턴 근교의 절해고도(絶海孤島) '셔터
아일랜드' 에 자리잡은 정신병동...
1954년 어느날, 바로 그곳에서 레이첼 솔란도라는
여성 수감자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죠.
연방 보안관 테디 대니얼스(레오나르도 카프트리오
분)는 동료 척 아울(마크 러팔로 분)과 함께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그 외딴 섬을 향해 갑니다.
증거는 없죠. 자식 셋을 물에 빠뜨려 죽였다는
그녀는 뜻이 모호한 쪽지만 남기고 완벽하게
사라졌습니다.
영화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처럼, 짙게
깔려오는 펜데르츠키의 푸르스름한 '파사칼리아'
선율과 더불어,
배멀미로 화장실에서 꺽꺽 구토하는 주인공 테디의
모습을 비추며 그 막을 올려가죠.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건 엄청난 양의 물일 뿐야.
정신 똑바로 차리자" 라고 힘겹게 다짐하며 가까스로
섬에 도착한 테디...
그는 픽업 차량에 동승해 정신병원 본관에 가던 중
묘지 입간판에 새겨진 글귀를 보며 미묘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한때 삶과 사랑과 웃음을 누렸던 우리를 기억하라(Remember us for we too have lived, loved
and laughed)"
테디와 척은 정신병원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코리
박사(벤 킹즐리 분)를 그의 저택에서 처음 만나게
됩니다.
척은 "저도 여기서 근무할 걸 그랬네요" 라고 말하며
왠지 미묘한 웃음을 짓고는, 코리 박사의 눈치를
살피죠.
이어 자리를 함께 한 정신병원 원장 뇌링 박사
(맥스 폰 시도우 분)는 시니컬한 어조로 테디에게
얘기합니다.
"당신은 '방어 기제' 가 잘 발달해 심문할 때
유리하겠소. 사실 당신 같이 폭력적인 사람이
내 전문 분야요."
그러자 테디의 표정이 웬지 진지하면서도
어두워지죠.
애당초 테디의 치유에 대해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던 뇌링 박사는 "상처는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데, 괴물을 봤다면 처치해야
한다."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테디에게 들려줍니다.
테디는 의사, 간호사, 병원관계자 모두를 심문하지만
모두 입이라도 맞춘 듯 꾸며낸 듯한 말만 하는 터라
수사가 전혀 진척되지 않죠.
그는 레이첼이 묶던 방에서 ‘Who is 67?’ 이라고 쓴
쪽지를 발견합니다(이 메모는 영화의 키워드가 되죠).
설상가상 몰아친 허리케인으로 섬은 고립되고
보안시설마저 마비된 가운데, 테디는 67번째 환자가
누구인지 찾아 나섭니다만... 점점 그의 주변에서는
괴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테디는 이 모든 것이 정부 주도의 인체실험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심증으로 섬을 탐색하기
시작하죠.
하지만 사건 수사에 매달리던 테디는 수시로 극심한
편두통과 구토, 환영과 악몽에 시달리며, 끔찍했던
과거의 트라우마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는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다카우 유대인
수용소에서 항복 후 무장해제 상태였던 독일군들을
몰살한 일이죠.
또 다른 하나는 방화범 앤드루 레이디스에게
자신의 아내가 살해당한 일입니다.
테디는 이 섬에는 수상쩍은 정치적 음모가 뒤엉켜
있으며, 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레이첼(에밀리
모티머 분)의 행방불명조차 조작된 것임을 알게
되죠.
사실 셔터 아일랜드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인물들을
정신병자로 몰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전두엽
절제술' 을 강제 시술해 좀비 같은 폐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곳이었습니다.
테디는 그들의 덫에 자신도 이미 걸려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되죠.
계속해서 사건을 추적하던 테디는 급기야...
시술 현장으로 지목된 낡은 등대 건물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코리 박사(벤 킹즐리 분)와 마주하며
충격적인 진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앤드루 레이디스는 다름아닌 67번째 환자
테디 대니얼스 본인이였던 것이죠.
테디는 아내를 총으로 사살하고 그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이 온 끝에, 이 섬에 수감돼 집중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였던 겁니다.
코리 박사는 테디에게 환자 기록카드를 보여
주죠.
"환자는 총명하고 훌륭한 퇴역 군인 출신이다.
다카우 수용소의 석방 작업에 참여했으며, 전직
연방 보안관이었다.
매우 폭력적이며, 죄를 뉘우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뛰어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테디의 아내 돌로레스 차날(미셸 윌리암스 분)은
심한 조울증에 시달렸고 주변에서도 이에 대해 계속
경고했으나, 테디는 술독에 빠져 살며 아내의 문제를
애써 외면해 왔죠.
게다가 테디가 기억하는 방화사건도 사실은
아내가 정신이상으로 인해 집에 불을 지른
사고였습니다.
이후 테디는 가족들과 함께 호숫가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죠.
그러나 테디가 며칠 출장을 간 사이에 아내는
그가 모르고 꺼내 둔 큰 약통의 약을 다 먹어버리고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린 채, 자신의 세 아이들을
집 앞의 호수에 빠뜨려 익사시키고 맙니다.
테디는 집에 돌아와서 이 사실을 알고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혀 거의 제 정신을 잃은 나머지, 급기야
돌로레스를 총으로 쏴 살해한 것이죠.
또한 테디의 파트너 척은 바로 그를 치료하던
담당 의사 레스터 시핸 박사였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은 자신이 과거 저지른,
혹은 겪어야 했던 참혹한 결과를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테디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였죠.
다른 사람들은 그 가상현실에 맞춰서 상황극을
연출해줬던 것입니다.
코리 박사는 정신병을 적절한 약물과 상담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믿는 인물로, 당시 만연하던
전두엽 절리술에 대해서는 반대하던 입장이었죠.
하지만 너무도 과격하고 흉폭한 환자인 테디를
더이상 감싸주는 것이 어렵다는 걸 절감하게 됩니다.
코리 박사는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테디의 환상을
실현시켜 줌으로서, 그가 이를 극복하고 현실을
인정할 수 있도록 심리극의 무대, 곧 일종의
사이코 드라마를 마련했던 것이죠.
테디가 앓고 있는 정신분열증에 대한 치료 드라마라고
할까요... 결국 앤드루인 테디는 환영에서 깨어나
자신의 실체를 직시하고 받아들이기에 이릅니다.
레이첼 솔란도도 자신이 만든 가공 인물이라며
앤드루는 고백하죠.
"아내는 첫번째 자살 시도 후 말했습니다.
머릿속에 벌레가 살고 있다고요. 두개골 속을
누비면서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고요. 그런데 난
그말을 무시했죠. 죽도록 사랑했는데.
난 아내가 애들을 죽인 걸 도저히 인정할 수 없어서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 낸 거에요. 결국 아내를 돕지
않은 내 잘못이니까요. 모두가 내 탓이죠..."
코리 박사는 그런 앤드루에게 또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없이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일 것을
다짐 받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앤드루는 다시 만난 시한에게
은밀히 귀엣말로 속삭이죠. "여길 탈출해야 해, 척.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우린 안잡힐테니 걱정 마" 라고 덧붙이는 앤드루를
향해 시한 박사는 절망의 한숨을 내쉬며 응답합니다.
"그래요, 우린 똑똑하니까..."
이처럼 우려했던대로 앤드루가 또다시 환각 증세에
빠져들자, 코리 박사도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뇌 절제술을 시행토록 합의를 하죠.
그런데... 앤드루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시한 박사를 향해 "괴물로 살 것인가, 선인(善人)으로
죽을 것인가?(live as a monster or die as a good man?)"라는 의미심장한 화두를 건넵니다.
그러곤 자신을 분명코 '앤드루' 가 아닌, '테디' 라고
안타깝게 부르는 시한을 뒤로 한 채... 표표히 자리를
뜹니다.
이어 화면은 뇌 수술 장소를 암유하는 등대를
조명하죠.
단말마의 신음처럼 처절하게 울려퍼지는 파사칼리아
선율과 함께... 지글거릴 정도로 뜨거운 긴장감으로
충일했던 미스터리 스릴러 < 셔터 아일랜드 > 는
마침내 그 막을 내립니다.
1. 마틴 스코세지 감독 < 셔터 아일랜드 > 인터뷰
https://tv.kakao.com/v/22473769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압적으로 솟아오른 핏빛
건물, 길게 이어진 채 어둡고도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수용소 복도, 또 황량하고 싸늘한 공기가
짓누르는...
살인자와 정신병자들의 섬 '셔터 아일랜드' 는
인간성의 상실을 상징하는 안성맞춤의 공간으로
자리하죠.
그 곳에서 트라우마에 갇힌, 상처입은 영혼의 주인공
테디는 밀봉한 기억의 창고를 움켜쥐고 발버둥치는
자신의 참혹한 과거와 마주칩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희뿌연한 안개처럼 무겁게
드리워진 본인의 진실과 함께 말이죠.
< 셔터 아일랜드 > 에는 마치 퍼즐을 풀어나가는
듯한... 주인공 테디의 악몽이나 회상, 환상 장면 등
복잡미묘한 시퀀스가 많이 등장합니다.
로버트 리차드슨의 촬영은 원작의 음산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경이로운 비주얼의 화면 속에
묵직하면서도 절제된, 품격의 스릴러로 직조될 수
있도록 담아냈죠.
드라마 전반에 강렬한 반전의 복선이 절묘하게 깔려
있는 덕분일런지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양파껍질처럼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관객들은 그들이
왜 나름의 사연에 집착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주인공 테디를 정신병자라 생각하고 보면...
첫 장면부터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복선들(주변
인물들의 대사, 행동, 표정들)을 발견할 수 있죠
아울러 멀미나도록 어지럽게 후벼낸 슬픔과
광기어린 분노로 어지럽혀졌던 주인공 기억의
편린들이 영화 말미에야 비로소 반전의 결말로
조합되는 걸 체감케 됩니다.
영화 초반, 코리 박사가 환자들을 치료하거나
평온한 여생을 보내도록 도와준다는 정신병원
시설의 취지를 설명하자,
테디는 "흉악한 범죄자에게 평온한 여생은
개나 주세요" 라며 비꼬는 장면이 나오죠.
그런데 동료 척은 이런 테디의 말을 듣고 냉소적인
시선을 보냅니다
이 대사는 영화 결말부에 정신이 돌아온 앤드루가
스스로 결정한 선택과 연결되는데...
환상의 테디였든, 현실의 앤드루 본인였든 간에
모두가 같은 생각였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시퀀스였던 것이죠.
테디는 자기만의 특이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현실을 인식합니다만... 종국에는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죠.
테디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해 나가는 과정이나
죄책감을 이겨내는 방식, 그리고 결국 자신의
폭력성까지도 극복하는 여정은 사뭇 처절하기
그지 없습니다.
자신의 삶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과는 상관없이,
본인에게 유리한 삶을 선택해서 살 수 있는 순간과
맞닥뜨린 테디(앤드루)... 그는 그토록 불가역적인
기회를 마침내 받아들이죠.
엔드루는 끔찍한 기억이 모두 돌아왔지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본인의 사고를 포기한 채, 스스로
'유리한 삶', 즉 '어두운 기억의 상흔을 지워버리는
끝맺음' 을 수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면 아무리 진실을 깨우쳐도 매번 환상에 빠져
사는 상태로 원상 복귀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더는 폐를 끼치기 싫어
그런 결심을 했을 수도 있죠.
이렇듯... 테디가 모두를 속이고 '전두엽 절제술' 을
자청하는 장면은 여러 해석을 낳습니다.
분명한 점은 떠날 수도 헤어날 수도 없는
'셔터 아일랜드' 가 사실은 트라우마로부터 결코
헤어날 수 없는 테디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이죠.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서서 마치 테이프를 돌리듯
처음과 끝을 반복하던 테디에게... '셔터 아일랜드' 는
잃어버린 아내이고 자식이자, 그 모든 사랑의
결정체니까요.
비록 원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랑이지만
그 사랑을 온전히 간직하기 위해 모두를 속인 채
자신의 의지로 수술실로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고통과의 완전한
일치를 위한 테디의 속죄의식이자 자유의지로
울려옵니다.
고립된 섬에서 펼쳐진 한 편의 집단치료기는
통제와 단절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뒤편에서
소외된 인간 군상의 집단적 광기와 욕망의
축소판에 다름 아니죠.
< 셔터 아일랜드 > 는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듯한 영화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테크니컬러' 의 향취를 간직한 색감은 히치콕의
미스터리 스릴러를 연상시키고, 몇몇 장면의 배경은
심지어 매트 페인팅 앞에서 찍어낸 것 같죠.
모두가 결코 달아날 수 없는 과거에 발목 잡힌
사람들, 그러면서도 영속적인 도주의 상태를 꿈꾸는
사람들의 운명을 복잡한 내러티브와 빼어난
영상으로 포착해낸 수작으로...
'보존주의자(preservationist)' 마틴 스코세지는 고전
할리우드 명품 스릴러의 스타일에 경건한 오마주를
진지하게 헌정하기 위해 < 셔터 아일랜드 > 를 연출한
듯합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 살인자들의 섬 > 은 전후 미국의
도덕적 공황상태, 냉전에 대한 공포, 새로운 과학·의학
기술에 대한 망상증으로 가득한 소설이었죠.
스코세지는 자신만의 가족을 이루지 못하고
미성숙한 어른 같은 단계로 남아있는 테디 역에
디카프리오를 기용함으로써, 원작가 루헤인의
비전을 빠짐없이 되살리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여, < 셔터 아일랜드 > 는 논리적인 스릴러로서
보다는, 주인공 마음 속의 지옥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영화적 환영으로,
또한 강렬한 정서적 울림이나 장르적 쾌락보다는,
노장의 매끈한 세공력과 미학적 감수성이 빛을
발하는 영화로 자리매김하죠.
2. < 셔터 아일랜드 > 트레일러
- https://youtu.be/pIzKw4vconw
영화 < 셔터 아일랜드 > 의 시대배경은
1954년입니다.
당시 미국 사회는 제2차세계대전이 남긴 후유증과
광신적 매카시즘이 횡행하던 때이죠.
퇴역군인 테디가 전쟁의 한 복판에서 목격한 것은
유대인 생체실험과 홀로코스트였습니다.
이때의 트라우마는 셔터 아일랜드를 바라보는
테디의 눈과 의식을 지배하죠.
그리고... 감독의 시선은 전쟁이 어떻게 한 인간을
폭력과 공포로 지배하는 지를 집요하게 뒤쫓습니다.
또 다른 트라우마는 테디의 무의식까지 통제합니다.
수사가 난관에 부딪칠 때면 환영처럼 나타나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지독히 사랑했던
그의 아내 '돌로레스 차날' 였죠.
사실 테디는 자신의 아내를 방화로 질식사시킨
방화범 앤드류 레이디스를 잡기 위해 셔터 아일랜드행
배에 올랐던 겁니다.
그러나 여기엔 엄청난 비밀이 밀봉되어 있죠. 여기에는
아내와 세 자식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라진 레이첼이나 방화범 레이디스는
현실 속의 인물이 아닌 허구의 인물일 뿐이죠.
이것은 삶 전체를 통제하는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의
‘과거의 얼굴’ 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테디의
원죄의식이자 이 영화의 반전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주인공 테디로부터 출발해 테디로 귀착하며,
고통스런 과거에 함몰된 채 현재를 부정하는 그의
영혼을 깊숙하게 성찰하는 < 셔터 아일랜드>...
영화는 폐쇄되고 억압된 정신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단절과 통제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고딕 호러를 가미한 심리 스릴러다운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죠.
자신을 가둔 트라우마의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섬으로 온 테디는 안타깝게도 '트라우마', 곧 그 어떤
정신적 외상으로부터도 탈출하지 못합니다.
섬의 외진 등대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때려잡기 위해
반미(反美)조사위원회의 지시로 전두엽 절제술이
시행되고 있으며, 자신을 비롯해 동료인 척까지도
생체실험의 희생물로 보기 때문이죠.
영화는 테디에게 있어서 '과거는 현재이고, 현재는 곧
과거라는 사실' 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환상적인
장면을 통해 보여줍니다.
그것은 테디의 오늘을 규정하는 지울 수 없는 악몽인
동시에, 과거로부터 벗어나고픈 그의 욕망이 충돌하는
대혼돈의 공간인 것아죠.
테디가 그토록 아수라 같은 혼돈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은 등대에서 관객들은 '67번째 인물' 의 정체에
아연실색하는 한편,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에
주저앉고야 맙니다.
- https://youtu.be/YDGldPitxic
3. < 셔터 아일랜드 > 감독과 배우와의 대화
https://tv.kakao.com/v/22450255
영화의 주제 자체가 기억과 상처에 대한 투쟁기,
정신질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정신병원이라는 고립된
장소를 통해, 특유의 신경질적인 기운이 감도는
냉전시대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방법을 택했죠.
덕분에, 시대의 분위기로부터 강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내재된 광기, 그리고 망상에 대한 이야기가
더없이 매력적인 반전의 스릴러로 탄생될 수
있었습니다.
스코세지는 자신이 어느 상황에 당면했는지 알지
못하는 캐릭터인... '테디' 의 심리와 정신적 상태를
매 프레임마다 음산하고 몽환적인 조명과 화면
분위기, 또한 섬 자체로 표현하고 전달코자 했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가 진짜
통제하는 자이며, 누가 통제받는 자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심리적 상태를 시각적 표현으로 정치하게
그려내고자 했던 겁니다.
스코세지가 명확한 시대 고증과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를 구현하기 위한 접점으로 택한 소재는
바로 ‘전두엽 절제술' 였죠.
이 시술법은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절묘한 지적 속임수,
곧 '맥거핀'의 역할을 해줍니다.
4. < 셔터 아일랜드 > 사운드 트랙
탈옥한 수감자의 상태를 묻기 위해 테디가
동료 척과 함께 찾아간 정신병원의 닥터 존 코리
사무실에서는 뜻밖에도 부드러운 현악기와 피아노
소리가 어우러지죠.
"음악 좋네요. 브람스인가요?" 척의 물음에 테디는
"말러야" 라고 답하면서... 2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의
참혹한 추억을 떠올립니다.
미군이 독일 뮌헨 인근의 다카우 수용소까지
진주하자 나치 부사령관은 이 음악을 틀어놓고
자신의 입속에 권총을 쏘았죠.
그러나 테디가 그의 방에 들어갔을 때까지도 숨이
멈추질 않고 살아있었습니다.
그는 한 번 더 총을 쏘려고 했지만, 바닥에 떨어진
권총은 좀처럼 손에 닿질 않았고... 테디는 냉혹하게도
그 총을 군화발로 밀어버리죠.
그렇게 최후의 시간을 단축하는 것에 실패한
나치 독일군 장교는 그 후 1시간에 걸쳐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 갑니다.
그것도 '말러의 피아노 4중주' 가 울려 퍼지는
방에서 말이죠.
수용소 마당에는 유대인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독일군들을 향해 총을 마구
쏘아 댔죠. 그것은 사실상 광기어린 집단 살인에
다름없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마당에 처참하게 널부러져 얼어붙은
유대인 시체 더미 속에서 딸의 환영과 마주치죠.
"왜 자기를 구해 주지 않았냐" 고 부르짖는 아이는
테디를 몸서리치며 오열하게 만듭니다.
그 후 자신의 뇌리에 그토록 선명하고도 끔찍하게
각인된 말러의 피아노 4중주곡을 테디는 결코
잊을 수가 없게 되죠.
죽음에 대한 숙명적인 두려움을 간직했던 말러의
음악과, 테디의 삶 속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집요한
기억은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로 이어집니다.
말러는 빈 음악원에 다니던 16세 무렵에 이 피아노
4중주의 1악장을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 나머지 악장은
전해지지 않기에 지금껏 미완성 작품으로 남아있죠.
이 4중주곡의 조성은 'a단조' 로, 말러는 이를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무의식적인 예측' 을 상징하는
단조로 정의했습니다.
말러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여섯 형제들, 또
결혼 후엔 그토록 사랑했던 큰딸 마리아 까지 잃는
불행을 겪었죠.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자기 삶의 일부로 체화했던
말러에게, 이 a단조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체념적 자각이자 정서적 수용을 의미했습니다.
말러의 피아노 4중주 곡과 더불어 < 셔터 아일랜드 >
테마음악 격으로 가장 중요하게 활용된 곡은, 바로
폴란드 출신의 펜데르츠키 교향곡 3번 4악장
'파사칼리아'(Passacalgia) 이죠.
단말마(斷末魔)의 처절한 신음처럼 단속적으로
섬뜩하고 음울하게 스며들어 오는 이 음악은,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신을 휘감으며, 섬 자체를
상징하는 일종의 표제음악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 셔터 아일랜드 > 는 '현대음악의
종합선물세트' 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20세기
음악사의 중심을 꿰뚫었던 곡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죠.
현대음악은 '날 것' 의 매혹적인 생생함과 전위적이고도
원초적인 소리예술의 음향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심리 스릴러 영화와 잘 어울리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사뭇 비극적으로 들리는... 중의적이고도 은유적인
대사들과 함께, 현대음악은 영화 속 애매모호함으로
가득한, 또 다른 주인공으로 자리하게 되죠.
테디의 악몽 장면에서 불협화음으로 흐르는
존 케이지의 '초점없는 근원' 과 '마르셀 뒤샹을 위한
음악', 백남준의 '존 케이지를 기리며',
존 애담스의 Christian zeal and activity' 와
'My father knew Charles Ives : The Lake',
'리케티의 '론타노' 와 '두 에튀드 : 하모니',
그리고 슈니트케의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송가' 에 이은, 잉그램 마셜의 'Fog Tropes' 와
'Prelude - The Bay', 막스 리히터의 'On the nature
of the light' 에 이르기까지...
주요 시퀀스 마다 소름 끼치도록 오감을 뒤흔들며,
대거 활용된 현대음악들은 극적 서스펜스와
공포감을 극대화시켜 주는 동시에,
마치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장면 뒤편에
또 하나의 복선이 깔려있는 듯한 효과를
빚어내면서, 영화의 결론을 절묘하게 후반부로
이월시켜 줍니다.
20여 곡에 달하는 < 셔터 아일랜드 > OST는
록 그룹 '더 밴드(The Band)'의 기타리스트
시절부터 음악 자문을 맡았던 로비 로버트슨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빛나는 협업 산물이기도
하죠.
팝 음악 중심의 대중음악이 본래의 장기였던
스콜세지는 로버트슨과의 협력을 통해 현대음악으로
자신의 음악적 반경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겁니다.
4-1. 말러 피아노 4중주 a단조
- 프라작 콰르텟
https://youtu.be/7ve0ENhXk70
4-2. 펜데레츠키 교향곡 3번
https://youtu.be/i_a2pfwKjIY
스코세지 감독은 < 셔터 아일랜드 > 만의 공포스럽고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충격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3번 4악장 ‘파사칼리아’ 를
영화의 수미일관된 테마 선율로 활용했죠.
-'파사칼리아(Passacalgia)': 알레그로 모데라토
https://youtu.be/ebeiX7HIsw8
펜데르츠키의 교향곡 3번은 당초 1988년
'파사칼리아와 론도' 라는 관현악 작품으로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초연됐습니다.
이후 작곡가는 1955년 창단 100주년을 맞은
뮌헨 필하모닉의 위촉을 받은 뒤 5악장의
교향곡으로 전면 개작했죠.
스페인의 무곡을 뜻하는 '파사칼리아' 도
이 교향곡의 4번째 악장으로 그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러 개의 8분음표로 이루어진 D음의 동음 반복
모티브가 이 곡의 주제선율로, 형태는 단순하지만
효과는 매우 강렬한 것이 특징이죠.
저음 현악기가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음표들이
뱃고동처럼 규칙적인 리듬감을 빚어내는 가운데,
진중한 금관의 울림이 그 위에 차례로 얹히면서
부풀어 오른 강박관념과 극적인 오싹함의 아우라가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4-3. 잉그램 마샬 'Fog Tropes'
https://youtu.be/qvfxl96bPXE
4-4. 잉그램 마샬 'Prelude - The Bay'
https://youtu.be/wrzyKEdO_Yc
'시정거리 제로' 의 암울한 숙명처럼 내밀하게
풀어지는 잉그램 마셜의 미니멀한 스코어는
스크린을 온통 끈적끈적하게 휘감아 버립니다.
4-5. 백남준 'hommage a john cage'
https://youtu.be/mSREMldyFtg
4-6. 리케티 'Lontano'
- 아바도 지휘 빈 필하모니커
https://youtu.be/36naMr7xwU0
4-7. 막스 리히터 'On The nature of daylight'
https://youtu.be/InyT9Gyoz_o
4-8. 루 해리슨 'Suite for symphonic strings :
녹턴' - 레베카 밀러의 뉴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
https://youtu.be/La1y7-vhrYc
4-9. 막스 리히터 'This bitter earth - On the nature
of daylight' : feat. 디나 워싱턴
https://youtu.be/jXHGoaEtmFM
디나 워싱턴의 보컬로 변주되는 이 곡은 영화
피날레 신에 휘몰아치는 펜데르츠키의 파사칼리아를
뒤로 하며... 엔딩 크레딧에 격정적인 처연함으로
스며들어 오죠.
중독성있는 미니멀리즘의 선율로 쓸쓸하게
되풀이되는 바이올린 솔로와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은 그 도도(滔滔)한 음색으로,
'괴물로 살 것인가, 선인으로 죽을 것인가' 란 화두에
대하여 깊이 반추케 해줍니다.
4-10. 존 애담스 'Christian zeal and activity'
- 에도 데 바르트 지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https://youtu.be/3kTM7if14Gw
4-11. 존 케이지 'Root of an unfocus'
- 보리스 버만 피아노
https://youtu.be/8oFwnI7N-Ps
- 李 忠 植 -